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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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27화
127화 디에프 상륙작전 (1)
X발, X발, X발, X발!
대체! 왜! 항상 이런 일만 일어나는 거냐고!
손발이 덜덜 떨리고, 머리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진심으로 온 세상이 나 하나를 엿 먹이기에 단합하는 것 같다.
이쯤 되니 내가 대체 전생에서 뭔 잘못을 했는지 진지하게 궁금해진다.
"그레이 대위, 무슨 일 있나? 아까 전부터 표정이 안 좋은데?"
"아, 아닙니다. 그, 그냥 속이 더부룩한 것뿐이라......."
"그래?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을 먹고 나도 설사를 했는데......."
"어? 저돕니다."
화제는 갑자기 오늘 아침 식사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며칠 전에도 수프가 상해서 다 버렸는데. 오늘 제대로 털어야겠습니다."
"음."
이어지던 대화는 취사병들에 대한 게이츠 원사의 사형선고로 마무리되었다.
"자,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 아무튼 이번 작전에서 우리 부대의 역할과 목표는─."
***
영국으로 복귀한 것까지는 좋았다.
딱 거기까지만.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다음 임무를 위한 훈련에 돌입했다.
기밀작전에 투입된다는 이유로 외출과 외박은 통제당했고.
모처럼 조국에 돌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싱글벙글했던 병사들의 얼굴이 피로에 찌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훈련에 매진하기를 한 달하고 2주.
그제야 우리가 투입될 작전이 어떤 작전인지 밝혀졌다.
"우리의 목표는 프랑스 디에프 해변에 상륙하여, 제리들을 박살 내고 다시 귀환하는 것이다."
디에프.
이 세 글자를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맙소사, 그 디에프라고?
브랜슨 대령이 차근차근 작전에 관해 설명했지만,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앞으로 일어날 참사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에워쌌다.
디에프 상륙작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벌일 대표적인 삽질 중 하나.
장차 있을 유럽 본토 상륙에 대비한 테스트 겸 기습으로 계획된 작전으로, 디에프에서의 경험은 훗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계획하는 데 큰 도움이 됐지만 그 대가가 너무나도 컸다.
작전에 투입된 미군, 영국군, 캐나다군 모두 크나큰 피해를 입은 데다 기습이라는 작전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덕분에 작전을 계획한 루이 마운트배튼은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까였지, 아마?
하필이면 내가 그 전설적인 작전에 투입되다니.
이번에야말로 신이 날 죽이려고 작정한 게 아닐까?
다만, 실제 역사와 비교해서 달라진 부분들도 있었다.
이번 작전은 독일군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단순 기습과 위력정찰 겸 연합군의 사기 증진을 위해 기획되었던 역사와는 차이가 있다.
또, 캐나다군 제14전차연대 대신 우리 제7전차연대가 투입된다는 것 정도?
──그런데 독일군의 시선을 돌릴 거라면 다른 곳을 택해도 될 텐데. 왜 하필이면 디에프냐고.
영국의 전력가들이 이 정도로 머리가 안 돌아갔나?
게다가 왜 캐나다군 대신 우리가 투입되는 건데?
우리 에이스라며.
에이스를 이런 곳에 버려도 되는 거야? 응?
"자, 질문 있나?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편하게 질문하게."
질문이 허가되자 나는 슬쩍 손을 들었다.
"음, 그레이 대위. 말하게나. 뭐가 궁금하지?"
"다름이 아니오라...... 이번 작전에 저희가 선택된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나도 그게 궁금해서 한 번 여쭤봤네. 그랬더니 단칼에 곳곳에 암약해있을 스파이들을 교란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오더군. 우리만큼 적에게 유명해진 부대가 없다나?"
우리가 그 정도로 유명했었나? 적들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끌 정도로?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그 범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말았다.
이게 바로 자업자득.
아니,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였나.
너무 유명해지니까 이런 일도 다 생기는군.
빌어먹을.
***
시간이 흐를수록, 작전 날짜는 나날이 가까워졌다.
이런 X발.
X망이 예정된 작전에 투입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니.
이게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랑 뭐가 달라?
아무리 내가 이름 좀 날린 전쟁영웅이라고 하지만, 그래봤자 일개 대위다.
대위 따위가 높으신 분들이 야심 차게 준비한 작전을 취소시킬 수 있을 리가.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작전에는 반드시 빠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수로?
탈영은 당연히 안 되고, 그렇다고 자해를 할 수도 없는 노릇.
꾀병......은 금방 탄로 나기 때문에 할 수 없고.
그렇다면, 직접 병에 걸리는 수밖에.
병에서 낫기는 힘들지만, 병에 걸리는 방법은 무척이나 간단하다.
무엇보다도, 나는 가장 빠르게 병에 걸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일단, 우유 한 병을 준비한다.
관물대에 넣어두고, 넉넉잡아 닷새 정도 기다리면 알아서 생화학 무기로 탈바꿈한다.
그렇게 생화학 무기로 변한 상한 우유를 마시면 끝.
가장 티도 안 나고, 건강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아픈 척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암, 그렇고 말고.
한동안 엉덩이가 고생을 좀 하겠지만, 전멸이 예정된 작전에 투입되는 것보다 백배는 낫다.
비겁한 술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살고 봐야지.
나라고 상한 우유를 마시고 싶어서 이런 짓을 하는 줄 아냐?
관물대 안의 우유가 생화학 병기로 변해가는 동안, 작전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그 사이 아군은 리비아를 향해 진군했고, 어느새 트리폴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또 프라하에선, 체코 총독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체코 레지스탕스들의 기습을 받아 중상을 입었고, 태평양에선 일본군이 과달카날에서 철수했다.
시기가 원 역사와 달라진 것만 빼면 방향 자체는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즉, 이번 작전도 원 역사와 비슷한 꼴이 나리란 예감이 더더욱 강하게 든다.
마침내 닷새가 지나고, 작전 개시일까지 앞으로 이틀 남은 시점에서 나는 관물대에 고이 모셔둔 우유를 꺼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인다.
하지만 뚜껑을 열면.......
"우우욱!"
으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지독한 냄새로군.
이 정도 악취면 생화학 무기 수준이 아니라 거의 전술핵이다.
악취가 방에 밸 것에 대비하여 화장실로 오길 잘했군.
상상을 초월하는 악취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지만, 이걸 마셔야 작전에서 빠질 수 있다.
마셔야 하는데...... 이놈의 악취 때문에 도저히 마실 엄두가 안 난다. 미치겠군, 정말.
상한 우유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무어 소령이 나타났다. 얼굴이 상기된 채로.
"아, 여기 있었군, 그레이 대위!"
"중대장님? 갑자기 어쩐 일로......?"
"연합작전사령관님께서 방문하셨어! 장교들은 모두 집합하라는 연대장님의 명령이니 지금 당장 따라오게!"
"예에?"
***
예고도 없이 부대를 방문한 연합작전사령관 루이 마운트배튼 때문에 부대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가, 각하. 미리 연락이라도 주셨으면......."
"아, 신경 쓸 거 없네. 그냥 지나가다가 생각이 나서 들린 거니까."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안절부절못하는 간부들과 달리, 사건의 원흉인 마운트배튼은 그들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될 인원들인데, 얼굴 정도는 봐둬야 하지 않겠나."
"과한 말씀이십니다."
마운트배튼은 일렬로 선 장교들과 한 명씩 악수하며 이름과 나이 같은 것을 물었다.
직함도 직함이지만, 마운트배튼 저 양반은 자그마치 영국의 왕족으로, 훗날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 엘리자베스 2세의 숙부다.
따라서 사람들이 과도할 정도로 쩔쩔매는데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번 디에프 작전을 고안한 원흉이기도 하고.
"오, 자네가 아서 그레이군."
"그렇습니다, 각하."
"지금까지 전선에서 많은 활약을 했던데, 참 대단한 친구야.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싸워주게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운트배튼은 나와 가볍게 악수한 뒤 다음 사람에게로 넘어갔다.
이후 그는 격납고의 전차들을 둘러본 뒤, 다시 차를 타고 돌아갔다.
평소라면 그냥 높으신 분의 방문 정도로 여겼겠지만, 저 양반 때문에 죽을 사람들을 생각하자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마운트배튼이 IRA에게 인수분해 되기 전까지 '나는 잘못 없음'으로 일관하고 다녔다는 것을 떠올리니 더더욱 곱게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 내가 위기에 빠지게 된 원인이라 생각하니...... 개인적인 원한마저 생기기도 하고 말이지.
아니,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거냐고.
아무튼 막간의 소동이 끝나고 발길을 돌린 나는 결연한 마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오늘 안으로 결판을 지어야 작전에서 빠질 수 있다.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되겠지만, 공짜 점심은 없는 법. 무슨 일이던 간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게 세상 이치다.
그런데.......
"어?"
우유가...... 없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나가기 전에 그 자리에 그대로 놔뒀을 텐데?
"어, 대위님. 다시 오셨군요."
당황해하는 내 뒤로 게이츠 원사가 나타났다.
그는 당황한 채 화장실을 뒤지고 있는 나를 보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뭐 찾으시는 게 있습니까, 대위님?"
"그, 그게 말이죠, 원사. 여기에 우유 한 병 못 봤습니까?"
"아, 그거 말씀이십니까? 상해서 버렸습니다."
"예에?"
너무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그만 쌍욕을 할 뻔했다.
그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야? 버리다니! 그게 어떤 물건인데?!
"대대장님께서 혹시 모르니 막사를 돌아다니면서 쓰레기가 있나 없나 확인하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그래서 애들 데리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이상한 악취가 나는 거 아닙니까.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었더니, 딱 그게 눈이 보더라고요. 누가 봐도 상한 게 분명해서 바로 버렸습니다."
"아, 아니......."
게이츠 원사의 쓸데없는 간섭으로 내 탈주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틀 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상륙정을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대위님? 대위님?"
"어? 어, 예?"
"괜찮으십니까? 요즘 표정이 많이 안 좋은데."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게이츠 원사를 뒤로한 채 나는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가 뜨려면 한참 남은 시간대라 그런지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이 모든 게 다 꿈이었으면.
허나 귓가에 들리는 소리하며 뺨을 스치는 바람까지.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하다.
"곧 있으면 적진인데, 기운 차리셔야죠. 자, 여기 따뜻한 차 좀 드십쇼."
게이츠 원사는 멍한 얼굴로 서 있는 내 손에 차 한 잔을 들려준 뒤 자기네 승무원들에게로 가버렸다.
차를 마셨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따뜻한 물 같은 게 식도를 타고 흐르는 느낌만 들뿐.
"허허...... 망했군, 망했어."
결국 와버리고 말았다. 그 디에프에.
이곳에서 나의 진짜 고난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