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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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25화
125화 새로운 목표 (1)
'튀니지 함락! 튀니지 주둔 독일군은 항복!'
1942년 5월 16일.
연합군은 튀니지를 점령하고 추축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로써 튀니지 주둔 추축군 6만 명(독일군 4만, 이탈리아군 2만)은 포로가 되었다.
롬멜의 경우, 참모들과 함께 잠수함을 타고 이탈리아로 도주했다.
한때 '사막의 여우'로 불리며, 영국을 위협했던 명장치곤 참 허무한 퇴장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좋은 날 한 잔 안 할 수 없지!"
"마셔요, 마셔!"
"자, 여러분! 대영제국과 승리를 위해 건배합시다! 승리를 위해!"
"승리를 위해!"
이날, 처칠은 떡이 되도록 취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이보다 기쁜 날도 없었다.
시민들도 자국이 거둔 놀라운 전과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며 축배를 들었다.
리비아가 남아 있긴 하지만, 양방향에서 압박받는 리비아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오직 무솔리니만이 이집트도, 튀니지도 무너졌지만 리비아만이 버티고 있다고 요란을 떨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튀니지 함락으로부터 열흘 뒤.
처칠을 비롯한 영국 수뇌부는 모로코로 향했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 '앙파'는 중무장한 병사 수천 명이 겹겹이 건물을 둘러싸고 주변을 경계 중이었다.
이것도 모자라 거리에는 30m 단위로 무장한 헌병들이 배치되었고, 골목에는 긴급 상황 발생 시 투입될 전차와 장갑차가 대기 중이었다.
삼엄한 경비 속에 호위를 받으며 앙파 호텔로 온 처칠은 그보다 먼저 호텔에 온 거인과 만났다.
"어서 오시지요, 총리.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대통령 각하."
처칠과 루스벨트가 서로 만나 두 손을 굳게 맞잡자 사진기자가 카메라 셔터를 눌러 현장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극비로 열린 회담이니만큼, 사진이 신문에 실려 대중에게 공개되는 일은 아무리 빨라도 두 달 뒤의 일이었다.
처칠은 이어 마셜과도 악수했다.
"오, 마셜 장군. 얘기는 많이 들었소. 실제로 만나니 더욱 든든하구려."
"감사합니다, 각하."
이번 회담의 참석자는 더 있었다.
참석자 중에서 가장 키가 큰 드골이었다.
그는 FDR, 처칠보다 먼저 모로코에 머무르고 있었다.
호텔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이도 바로 그였다.
"반갑습니다, 대통령 각하. 드골이라고 합니다."
"나도 만나서 반갑소이다."
실제 역사의 카사블랑카 회담에선 앙리 지로도 있었지만, 그는 아직 프랑스에 있었다.
때문에 사진에는 이 3명만 남게 되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연합군을 대표하는 세 국가의 대표들은 전쟁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
"우선, 이거 하나만큼은 정해둡시다. 강화나 휴전이 아닌, 추축국의 무조건 항복만이 전쟁을 종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말입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폭탄 발언이 나왔다.
추축국의 무조건 항복.
이는 진주만 공습 때부터 생각해온 루스벨트의 확고한 목표였다.
"무조건 항복."
처칠은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듯이 반복해서 말했다.
"두 분 모두 찬성합니까?"
"저는 찬성합니다."
드골은 즉시 루스벨트의 말에 동의했다.
조국 프랑스를 무너뜨리고 억압하는 독일을 그 무엇보다 증오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총리는?"
"저 역시 찬성합니다만......."
안경을 벗은 처칠은 잠시 말꼬리를 흐렸다.
"무조건 항복 요구가 되려 적들의 단결을 더욱 굳세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군요."
처칠과 함께 회의에 동석한 영국 각료들과 외교관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독일이 인류의 적이며 반드시 무너뜨려야 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만. 쿠데타 등의 사유로 히틀러를 비롯한 독일 수뇌부가 몰살되고 우리와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신정부가 수립된다면, 무조건 항복 요구보단 협상으로 전쟁을 원만하게 매듭짓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총리의 말씀도 옳습니다만, 우리는 이미 관대함이 어떤 대가로 돌아왔는지 직접 봤지 않습니까?"
루스벨트는 지난 1차대전의 독일 항복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혁명으로 지도층이 물갈이된 독일은 즉시 연합국에 강화를 제안했고, 연합국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전쟁은 끝났다.
패전국이 된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이라는 어마무시한 족쇄에 묶이게 되었지만. 무조건 항복은 아니었기에 자국의 여력을 보존할 수 있었고, 이후 재기에 성공하여 2차대전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여 독일에 회생의 기회를 남기게 된다면, 얼마 못 가 세계는 다시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적들의 여력을 완전히 분쇄하는 것만이 평화를 유지할 유일한 수단입니다."
"흐음......."
처칠은 다시 안경을 쓰곤 루스벨트를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확고한 신념이 드러나 있었다.
"알겠습니다. 각하께서 제안하신 무조건 항복 안에 절대적으로 찬성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총리."
이다음 안건은 '이제 어디를 공격하느냐'는 것이었다. 모두들 우선 리비아를 제압하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리비아 다음 목표를 두고선 의견이 서로 갈렸다.
"곧바로 프랑스로 직행하는 것이 어떠신지."
미국은 아프리카가 정리되는 즉시 프랑스로 진격하길 원했다.
특히 마셜이 프랑스 우선론의 강력한 지지자로, 이탈리아나 발칸반도 같은 곳보다 프랑스에 상륙하여 곧장 독일로 진격하는 것이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처칠의 의견은 달랐다.
"죄송하지만, 그건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어째서지요?"
"저희는 상륙작전의 여러 면에서 경험이 적고 미숙합니다. 그리고 독일군은 여전히 잘 훈련되고, 막강한 존재이지요. 따라서 프랑스에 상륙한다고 한들, 독일군의 막강한 전력에 막혀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큽니다."
이어서 그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군은 그렇지 않죠. 그들은 독일군에 비하면 훨씬 약세인데다, 사기도 낮습니다. 따라서 이탈리아에 상륙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군요."
허허, 이 양반 보소.
루스벨트는 처칠이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속내는 감추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처칠의 말대로, 연합군은 아직 상륙작전에 대해 경험이 부족하다. 그리고 프랑스 주둔 독일군의 숫자가 적지 않으며, 그들 상당수가 강력한 전력이라는 사실도 맞다.
하지만 이것들 때문에 처칠이 프랑스 상륙을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프랑스 상륙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탈리아에 상륙하면 사기가 낮은 이탈리아 국민들은 그대로 전의를 잃을 겁니다. 잘하면 민중봉기나 쿠데타가 일어나 무솔리니 실각도 기대할 수 있지요. 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체를 장악하는 데 성공할 경우, 그대로 오스트리아와 독일 남부를 타격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이 잘 풀렸을 때의 경우겠지만요."
처칠은 전쟁의 양상을 그려가듯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가 추축국 대열에서 이탈할 경우, 그리스,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같은 발칸반도 국가들도 크게 동요할 겁니다. 거기다 적당히 당근 몇 개를 던져주면, 충분히 히틀러한테서 등을 돌릴 겁니다."
말 하나만큼은 청산유수다.
총리 안 하고 보험외판원 했어도 충분히 먹고 살았겠어.
루스벨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총리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하핫, 과찬이십니다."
처칠은 이미 루스벨트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한 줄 알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루스벨트의 다음 말을 듣자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었다.
"하지만 총리의 말씀대로 독일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선 이탈리아반도를 쭉 올라가야 하는데, 도저히 현실적으로 보이진 않군요. 게다가 이탈리아 북부에는 그 험난한 알프스산맥까지 있고요. 무엇보다 이탈리아가 공격받았다고 곧바로 항복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처칠이 이탈리아 공략을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가 영국의 지중해 패권 유지를 위해서라는 사실을 루스벨트는 알고 있었다.
지중해의 실질적인 지배자라 자부하던 영국은 몰타 함락과 이집트 상실로 연달아 굴욕을 당했다.
이탈리아 침공을 통해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고, 동시에 지중해 전역의 패권을 완벽하게 장악하겠다는 영국의 속내는 너무나도 빤히 보였다.
당연하지만 루스벨트는 영국의 패권을 위해 자국 젊은이들을 희생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 각하, 전쟁 이후의 일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중해를 등한시하다가, 소련이 동유럽과 지중해로 진출하게 되면 더 큰 재앙이 닥칠 겁니다."
"그건 너무 과한 우려입니다, 총리. 소련은 아직 자기네 나라에 쳐들어온 독일군을 상대로 겨우 버티고 있어요. 그들이 발칸과 이탈리아까지 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베를린을 점령하면 해결될 일입니다."
루스벨트와 처칠이 프랑스냐 이탈리아냐를 두고 타두는 동안, 드골은 침묵을 유지했다.
프랑스인답게 그는 미국이 주장하는 프랑스 진공론을 편들고 싶었지만, 루스벨트 정부는 아직도 비시 정부를 프랑스 정통 정부로 인정하고 있었다.
반면, 처칠의 경우 미국과 달리 일찌감치 자유 프랑스 정부를 승인하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누구의 편을 들기 참 애매한 상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게 어떻습니까?"
오랜 논의에 지친 처칠이 먼저 중재안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이탈리아도 독일, 일본과 더불어 끝내 쓰러뜨려야 할 적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프랑스에 상륙해 곧장 독일로 진군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이탈리아도 공격해야 합니다. 베를린이 폐허가 되어도, 로마가 멀쩡하고 이탈리아가-가능성은 낮지만-항복을 거부하면 그대로 놔둘 수 없잖습니까?"
"그렇지요."
"그러니, 아프리카 전선 종결 직후 이탈리아는 시칠리아섬을 공략하는 겁니다. 적어도 이탈리아 놈들이 지중해에서 설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하니까."
"그럼, 이탈리아 본토는 그대로 놔두는 겁니까?"
루스벨트의 물음에 처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이탈리아인들은 자국이 공격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혼란에 빠질 겁니다. 우리는 저들이 알아서 붕괴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동안, 사르데냐와 코르시카를 공략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들 섬을 발판 삼아 프랑스 남부에 상륙하는 것이죠. 어떻습니까, 대통령 각하?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계획 아닙니까?"
처칠의 주장대로라면, 영국은 이탈리아를 공격하여 지중해 패권을 장악할 수 있고, 미국은 프랑스 진공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설명만 들으면 꽤 나쁘지 않은 방안이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군이 주둔하는 북프랑스와 달리, 남프랑스는 현재까지도 독일군의 거의 주둔하고 있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헌병들과 소수의 해공군 기지만 있죠. 더군다나 바다의 수온도 낮고, 파도도 잠잠합니다. 그야말로 상륙하기 안성맞춤인 지역이죠."
처칠의 계속되는 설득에, 철옹성 같던 루스벨트의 결심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허나 완전히 마음을 돌리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남프랑스는 파리와 독일 국경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허나 우리가 남프랑스에 상륙하면, 틀림없이 독일군은 북부에서 남쪽으로 이동할 겁니다. 그렇게 북프랑스의 방비는 자연스레 약화하겠죠? 적들의 방비가 약화한 틈을 타, 기습적으로 북프랑스에 상륙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독일군을 위아래에서 동시에 압박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프랑스 주둔 독일군을 포위, 섬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처칠의 말대로 프랑스 주둔 독일군을 모두 섬멸하려면, 남부와 북부에 상륙한 연합군이 그 드넓은 프랑스 영토를 최대한 빨리 가로질러 독일군이 탈출할 수 없도록 두터운 포위망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도 독일군이 독일 본토로 퇴각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그것이 실현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잘 아는 장성들은 처칠의 주장이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잠자코 있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발언을 허가한 적이 없으니.
"마셜 장군."
"예, 각하."
"장군의 생각은 어떻소?"
"제 생각으로는......."
루스벨트는 자신의 머리로는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는지, 이 분야 전문가인 마셜의 의견을 구했다.
평소 신중한 성격으로 유명한 마셜은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확신이 선 듯 입을 열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