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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22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22화

122화 아프리카 군단의 최후 (2)

 

 

"......그런가. 알겠네."

 

자신이 가장 신임하던 부하 장교 한스 폰 루크가 교전 중에 전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롬멜은 씁쓸한 표정으로 무전을 끊었다.

 

불쌍한 친구 같으니. 아직 나이도 젊은데 어쩌다가.......

 

지금껏 수없이 많은 전장을 누비며 동료, 부하들의 죽음을 지켜봐 온 롬멜이었지만. 이번 루크의 전사 소식은 더욱 쓰게 다가왔다.

 

틀림없이 장군감이라고 생각했던 인재였건만, 그도 결국에는 아프리카의 흙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슬픔과 여운에 잠겨 있기엔 전쟁터는 일이 너무 많은 곳이었다.

 

루크의 전사 소식을 전해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급보가 날아들었다.

 

"각하, 15기갑사단의 측면이 미군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

 

"쏘아!"

 

M3 리의 묵직한 75mm 주포가 불을 뿜자, 독일군의 오펠 블리츠가 거대한 섬광에 휩싸였다.

 

트럭 한 대가 일으킨 폭발이라곤 지나치게 거대한 폭발이었다.

틀림없이 짐칸에 탄약이나 연료를 적재했던 것이리라.

 

우군인 영국군을 돕기 위해 진격하던 미 제2기갑사단은 이동 중인 독일군 제15기갑사단의 수송부대를 발견하곤 즉시 공격을 개시했다.

 

미군의 기습을 예상하지 못했던 독일군은 대혼란에 빠졌다.

 

트럭들은 포탄과 기관총에 난사 당해 전복되거나 불덩이로 변했고, 차량에 타고 있던 병사들은 폭발에 휘말려 문자 그대로 가루가 되거나 차량에서 튕겨 나와 땅에 처박혔다.

 

"멍청한 제리 새끼들, 우리가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쌍안경으로 독일군이 처참하게 박살 나는 광경을 관전하던 패튼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독일군의 차량이 포탄에 맞아 파괴될 때마다 그는 축구 경기를 보는 것처럼 환성을 질렀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대열에 있던 3호 전차가 황급히 포탑을 돌렸지만, 그 전에 차체에 75mm 포탄을 맞고 유폭을 일으켰다.

 

허공으로 튕겨 나간 포탑은 뒤따르던 트럭 위로 떨어져 트럭을 그대로 눌러버렸다.

 

"하핫! 제리들이 완전히 납작해졌구만!"

 

어린애처럼 신이 난 패튼과 달리, 그의 참모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이마의 땀을 훔쳐댔다.

 

"각하, 위험합니다. 조금은 자세를 낮추심이......."

"위험하긴 개뿔! 자네 눈에는 이 방탄판이 장식으로 보이는가?"

 

패튼은 지프에 용접된 방탄판을 손으로 가리켰다.

 

"각하, 그래도 이곳은 너무 위험합니다. 조금은 뒤로 물러서서 관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쓸데없는 걱정일랑 집어치우게. 나는 말이야, 젊었을 적엔 멕시코와 프랑스를 맨몸으로 누비며 싸웠다고! 그때도 죽지 않고 잘만 살아남았는데, 이제와서 내가 다칠 것 같나?"

 

아니 X발, 그건 알겠는데요, 당신은 군단장이라니까? 일개 대위였던 그때와는 무게가 차원이 다르다고!

 

참모들은 목구멍 끝까지 욕이 차올랐지만 워낙 패튼의 기세가 시퍼렜던 탓에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끙끙 앓아댔다.

 

그런 참모들의 걱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패튼은 본인의 고상한 취미를 마음껏 즐겼다.

 

"자네들도 제대로 봐두게. 전쟁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이니까."

"......옙."

 

***

 

"유탄 장전!"

"장전 완료!"

 

나는 포수에게 불타오르는 잔해 사이에 낑겨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에 놓인 트럭을 가리켰다.

 

이윽고 포탄이 발사되어 트럭의 뒷바퀴를 날려버렸다. 운전병은 문을 열고 나오다 기관총을 맞아 푹 쓰러졌고.

 

독일군은 덫에 걸린 사슴처럼 저항은커녕 날아드는 공격을 피해 도망치기 바빴다.

 

이쪽은 너무나도 평온해서 전차에서 내려 오줌까지 싸고 다시 올라와도 될 정도였다.

 

"사격 중지. 이쯤 하면 됐어."

 

움직이는 표적의 거의 다 사라졌을 무렵, 나는 공격 중지를 지시했다.

 

이제 남은 적들은 한 줌도 안 되는 보병들 뿐.

여기서 더 쏴 봤자 아까운 탄약만 낭비하는 꼴이었다.

 

"후우, 여기가 아주 제리들의 무덤이 되어버렸군요."

 

어느새 해치를 열고 나온 게이츠 원사가 휘파람을 불었다.

 

수십 대나 되는 차량과 수백 명의 병사가 기습에 당해 사방에 널려 있었다.

 

그야말로 무덤이라는 말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광경이다.

 

"그나저나 저희,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그냥 그 자리에 남아 본대와 합류를 기다려야 했지 않습니까?"

 

게이츠 원사는 나중에 상부로부터 쓸데없는 행동을 했다고 질책받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쯤 무어 소령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비록 타군이긴 해도, 자그마치 군단장이 내린 명령인데. 상부에서도 이해해 주지 않겠어요?"

 

게다가 우리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명령한 이는 다름 아니라 그 유명한 패튼이다.

 

끝까지 뻐팅겼으면 농땡이 피운다고 욕이나 한 바가지 처먹었을 게 분명하다.

 

패튼의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충분히 남을 인간이니.

 

공격을 마친 미군은 독일군의 잔해를 지나 그대로 전진했다.

 

전진하면서 독일군과 서너 번은 더 마주쳤는데, 대부분 별 위협도 되지 않는 소규모 수송대였기에 마주치는 족족 가뿐하게 박살 냈다.

 

그렇게 진격하기를 한 시간.

어느새 우리는 독일군 제15기갑사단의 본대와 마주치게 되었다.

 

한창 영국군 진지를 두들기고 있던 독일군은 측면에서 돌격해온 미군에게 속수무책이었다.

 

다급히 방어하려고 해도, 앞에는 영국군이 있는 탓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참사였다.

 

"돌격! 다 쓸어버려!"

 

수십 대의 전차들이 일제히 돌격을 감행.

주포와 기관총으로 눈에 띄는 모든 독일군을 쓸어버렸다.

 

우선 맨 가장자리에 있던 3호 전차부터 측면에 구멍을 만들어줬다.

 

유폭은 피했지만, 전차병들은 해치를 열고 나오기도 전에 기관총을 맞고 죄다 널브러졌다.

 

"다음! 철갑탄 장전!"

"장전!"

 

게이츠 원사가 장전하는 사이 내 눈은 빠른 속도로 사냥감을 찾아냈다.

 

보병들을 잔뜩 태우고 있는 하노마크.

 

마침 놈은 전면의 아군 진지를 향해 기관총을 쏘아대느라 여념이 없었다.

 

"장전 완료!"

"목표는 1시 방향의 적 장갑차다!"

"조준 완료!"

"쏴!"

 

철갑탄을 맞은 하노마크가 기동을 멈추고, 온몸에 불이 붙은 병사들이 괴성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탈출하는 적들을 무한궤도로 짓밟으며 전진하던 M3 리가 코앞의 2호 전차에 75mm 포탄을 날렸다.

 

근거리에서 75mm 포탄을 맞은 2호 전차는 포탑이 날아가며 완파.

 

75mm 포가 정면의 적들을 상대하는 동안, 포탑에 달린 37mm 주포는 열심히 보병들을 사냥했다.

 

목고자라고 놀림받던 M3 리지만, 75mm라는 화력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여태까지 독일군에게 두들겨 맞고 있던 아군도 이에 호응해, 대전차포와 기관총으로 열심히 지원사격을 가했다.

 

순식간에 공격하는 입장에서 얻어터지는 신세가 된 독일군은 황급히 퇴각을 시도했다.

 

하지만, 독일군이 퇴각하도록 곱게 지켜만 보고 있을 패튼이 아니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이 제리 새끼들아!"

 

어느새 독일군의 끝자락으로 이동한 패튼은 전차들을 총동원해 독일군을 압박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탈출구는커녕 은신처도 없는 막다른 골목.

 

쏟아지는 포화에 독일군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주의! 슈투카다!"

"모두 물러나!"

 

전멸 위기에 놓인 독일군을 구하기 위해 슈투카 편대가 달려들었다.

 

하늘에 나타난 슈투카는 단 3대였지만, 슈투카의 위력을 잘 아는 병사들은 슈투카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겁을 집어먹었다.

 

"조종수, 뒤로 후진!"

"아, 알겠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아무리 나라고 한들, 저 괴물들 앞에선 지나가는 킬마크 1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애초에 대공전차도 아니고, 일반 전차로 어떻게 공중에서 가해지는 공격을 막아?

 

이럴 땐 그저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쾅!

 

커다란 덩치답게 속도도 느린 M3 리는 그대로 표적이 되어, 슈투카가 투하한 폭탄에 맞아 완전히 박살 났다.

 

상부 전체가 통째로 뜯겨 나가고, 궤도와 기동륜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크앗!"

 

폭발이 엄청났던 탓에 이쪽까지 파편이 튀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 옷깃과 손등에는 날카로운 톱니 모양의 파편이 박혀 있었다.

같은 경험만 대체 몇 번째인지.

 

"얼른 안으로 들어오십쇼, 대위님!"

 

게이츠 원사의 말에 서둘러 해치를 닫으려는 찰나, 슈투카 한 대가 곧장 이쪽으로 날아드는 것이 시야에 잡혔다.

 

"후진! 전속력으로! 당장!"

 

순간적인 판단과 본능이 생사를 갈랐다.

 

슈투카가 투하한 폭탄은 전차로부터 10m 앞에 떨어졌다.

 

폭발의 충격으로 전차 앞부분이 붕 떴다가 다시 추락했는데, 그 탓에 뒤통수를 벽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일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일었다.

 

"우웨에에엑."

 

포수는 어딜 잘못 맞았는지 코뼈가 박살이 나고 말았다. 거기다 구토까지.

 

안 그래도 매캐한 화약 냄새와 찌든 냄새로 가득 찬 내부에 시큼한 토사물 냄새가 더해지자 욕지기가 치밀었다.

 

"우웨에에엑."

"아오 썅!"

 

결국, 참지 못하고 올려버리고 말았다.

 

게이츠 원사가 입에서 쌍욕을 내뱉었지만, 이놈의 구토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위에 든 내용물이 하나도 빠짐없이 텅 빈 후에야 구토를 멈출 수 있었다.

 

토사물로 더러워진 군복이 피부에 들러붙어서 기분은 문자 그대로 최악이었다.

 

다행히 아군의 스핏파이어 편대가 나타나 슈투카들을 공격했다.

 

"살았다! 스핏파이어야!"

"다 조져버려!"

 

보병들과 전차들에겐 사신으로 군림하던 슈투카였지만, 스핏파이어 앞에선 맥을 추리지 못했다.

단 3분 만에, 모든 슈투카가 격추되어 추락했다.

 

이 전투로 아군도 스핏파이어 2대를 잃었지만, 하늘에서의 방해가 없어진 덕분에 지상의 병사들은 다시 본래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원하러 온 슈투카들까지 격추되자 독일군은 사기가 완전히 꺾였다.

 

"대위님, 제리들이 투항하고 있습니다!"

 

독일 병사들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얌전히 무기를 내려놓고 손을 들었다.

달아나는 병사들에겐 가차 없이 총알이 날아갔다.

 

"항복, 항복!"

"쏘지 마라, 양키! 항복한다!"

 

어설픈 영어로 손짓, 발짓을 하며 항복하겠다고 소리치는 독일군을 보니 어째 측은하면서도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자인 미군은 항복하는 독일군 사이로 유유자적하게 다가가 쓰러진 독일 병사들을 뒤졌다.

 

"야, 이게 바로 루거구나! 고놈 참 멋지게도 생겼네!"

"제임스! 그놈들 잘 뒤져! 분명 한 놈쯤은 루거를 가지고 있을 거야!"

"맡겨두셔!"

"......."

 

무슨 짓을 하는가 했더니, 시체를 뒤져 전리품을 찾는 중이었다.

 

저들이 노리는 것은 철십자훈장과 루거 P08.

 

운 좋은 몇 명은 벌써 원하던 물건들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고, 다른 병사들은 행여 전리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더욱 열성적으로 시체를 뒤졌다.

 

실제 역사에서도 미군의 노획품 수집은 가히 병적인 수준이라고 들었는데, 과연 사실이었다.

 

전투하다 말고 도중에 시체를 뒤지는 일도 있었다던데, 이 광경을 보니 사실인 듯했다.

 

나와 함께 이 광경을 지켜보던 게이츠 원사조차 어이가 없는지 혀를 찼다.

 

"이래서 양키들은...... 지금 소풍 나온 줄 아나? 갑자기 보물찾기라니, 참나."

"이 새끼들이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

 

장교부터 병사까지 모두가 노획품 수집에 열을 내고 있을 때, 참모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패튼이 샤우팅을 질렀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미군들 사이에서 멍한 얼굴로 손을 들고 있던 포로들조차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릴 정도였다.

 

"지금 당장 재정비하고 진격해도 모자란 마당에 보물찾기나 하고 있다니. 너희들이 그러고도 자랑스런 미합중국 육군이냐? 빨랑 차에 타! 꾸물거리거나 아직도 시체 뒤지는 놈이 있으면 내가 직접 엉덩이를 걷어차 주겠다!"

 

눈에서 레이저가 튀어나올 것 같은 패튼의 시선에 미군들은 우물쭈물하면서 차량으로 돌아갔다.

 

못내 미련이 남은 표정으로 시체들을 보다가 패튼의 서슬 퍼런 시선을 느끼곤 후다닥 뛰어가는 모습이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초딩들처럼 보여 헛웃음이 나왔다.

 

"아 참, 그래. 자네들도 있었군."

 

패튼은 날 발견하고 곧장 다가왔다.

 

가는 길에 처참하게 으깨진 독일군의 시체가 있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체를 즈려밟았다.

 

"수고했네, 영국인 친구. 꽤 하더구만. 자네 이름이 뭐지?"

"아서 그레이 대위입니다.!

"아서 그레이라고? 흠,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그때 옆에 있던 부관이 귀에 대고 뭐라고 말하자, 패튼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그 친구? 하핫, 이거 미안하네. 영웅을 몰라봤구만."

"아닙니다, 각하!"

"우리 애들 사이에 섞여서 열심히 싸우더군. 자네가 우리 미군, 특히 내 부하였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참 아쉬운 일이야. 자네 이참에 미군으로 전속할 생각은 없나?"

"하, 하하하하."

 

......이건 또 뭔 소리야?

 

농담으로 한 소리겠지?

그래, 농담으로 한 걸 거야, 아마.

 

"왜 웃나? 내가 웃기게 말했나?"

 

......어?

 

농담한 줄 알고 그냥 웃었는데, 패튼은 갑자기 정색했다.

 

X발, 방금 그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고?

그럼 나 군단장이 한 말에 눈치 없이 웃은 건가?

 

"어, 그, 그게...... 죄송합니다!"

"농담일세. 쫄기는. 담력을 조금 더 길러야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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