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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19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19화

119화 여우, 사자를 물다 (2)

 

 

추축군 최후의 대공세가 시작됨과 동시에 후방의 연합군 기지는 동시다발적으로 공습을 받았다.

 

여태껏 평화로운 밤하늘에 익숙해져 있던 후방 병력은 아무런 징조도, 예고도 없이 이루어진 공습에 허둥거렸다.

 

덕분에 추축군의 공습은 기대 이상의 전과를 거둘 수 있었다.

 

"전차 앞으로!"

"돌격이다, 이 새끼들아!"

 

후방에 공습이 가해지는 동안, 최전선에선 DAK 최후의 기갑부대가 연합군 진지를 강타했다.

 

이곳에선 황금보다 귀한 장포신 4호 전차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장포신 3호 전차가 따랐다. 최후미에선 구형 3, 4호 전차들이 뒤를 받쳐주었다.

 

엔진이 고장 나 땅에 파묻혀 고정 포탑으로 사용되는 전차를 제외한 모든 전차가 이번 작전에 투입되었다.

 

"목표 11시 방향의 크롬웰, 거리 500! 철갑탄!"

"장전 완료!"

"쏘아!"

 

차체 측면에 포탄을 명중당한 크롬웰로부터 전차병들이 빠져나오는 사이, 공격을 가한 4호 전차는 다른 크롬웰이 쏜 포탄에 궤도가 끊어졌다.

 

그러나 4호 전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게 포탑을 돌려 적을 겨냥했다.

 

"발사!"

 

쾅!!!

 

재수 없이 탄약고에 명중한 크롬웰의 포탑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다음 표적을 찾아 포탑을 돌린 4호 전차는 연이어 날아온 철갑탄을 맞고 침묵했다.

 

그러나 4호의 뚜껑이 열리자마자 다음 전차가 나타나 주포에 불을 당겼다.

 

"X발, 이게 대체 뭔 일이야? 갑자기 왜 제리들이─!"

"단체로 훼까닥 돌아버렸나 보지! 저기 온다!"

 

독일군의 움직임을 단순히 기만이라고 치부했던 영국군은 독일군이 공세를 가해오자 당황했다.

 

최일선의 병력은 독일군의 기습에 용감하게 저항했지만, 죽을 각오로 달려드는 독일군의 대열을 멈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찰스가 당했다!"

"야, 2시 방향에 적 전차! 빨리 돌려!"

"유탄, 아니 철갑탄! 서둘러! 이쪽으로 오잖아!"

 

허겁지겁 포탄을 장전하는 6파운더가 포탄을 맞고 박살 나고, 참호의 보병들을 향해 기관포 공격이 가해졌다.

 

제대로 된 전차와의 대결이 불가능한 2호 전차지만, 보병들을 상대로는 사신에 가까운 존재로 군림했다.

 

기관포탄에 맞은 병사들이 다진 고기 조각으로 변하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병사들은 두려움에 몸이 굳어 움직이질 못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병사들이 곧바로 죽음을 맞이했다.

 

전장에선 자비도 여유도 없었다.

 

"눈에 띄는 토미들은 모조리 다 쏴버려! 포로로 잡을 여유 따윈 우리에게 없다! 저놈들 먹여줄 식량이랑 덮어줄 모포는 더더욱 없고!"

"싹 다 죽여버려!"

 

도주하는 병사는 물론이고, 사기를 잃고 투항하는 병사들을 향해서도 총격이 가해졌다.

 

롬멜이 따로 지시를 내린 게 아니다.

 

포로 잡을 시간도 그럴 여력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일선 지휘관들과 악에 받친 병사들은 자발적으로 '불필요한 인원들'을 열심히 줄여나갔다.

 

***

 

"제8기갑연대로부터 보고! 영국군 전선을 돌파하고 현재 전진 중!"

"제5기갑연대, 전선 돌파 과장에서 보유 중인 4호를 모두 잃었지만 계속 전진하겠답니다!"

"제440보병연대도 목표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좋아, 다들 잘해주고 있군. 이래야 대독일의 아들들답지!"

 

최일선에서 올라오는 보고는 하나같이 승전보뿐.

 

기대 이상의 전과는 시종일관 침착함을 유지하던 롬멜도 흥분시켰다.

 

일반 보병들과 함께 Sd.Kfz 251 반궤도 장갑차에 탑승한 그는 선두 행렬을 따라 전진하는 중이었다.

 

"이탈리아군도 나름 잘해주고 있군."

 

독일군에 배속되어 이번 공세에 함께 투입된 이탈리아군도 기대 이상으로 잘 싸우고 있었다.

 

파스타 병사들이라고 놀림 받던 이탈리아군이었지만, 수많은 전투를 치러 오며 살아남은 병사들은 독일군 못지않은 베테랑이 되었다.

 

롬멜은 언젠가 그들의 공을 치하하기로 다짐했다.

 

주변에는 격파된 영국군 전차들과 영국군 병사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독일군은 죽은 적들의 시체에서 쓸만한 무기를 모두 수거했다.

탄약이 모자란 탓에, 여차하면 탄약이 충분한 영국제 무기로 싸우기 위해서였다.

 

"각하, 90경사단 사단장으로부터 보고입니다."

 

제90경사단은 미군 전선을 담당한 부대였다.

 

"현재 적군의 저항이 맹렬하여 진격이 둔화하고 있는 중.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답니다."

"남아있는 게 아무것도 있는데 무슨 지원? 없다고 전하게. 최대한 놈들이 어디 못 가게 발이라도 묶으라고 해."

 

의외인 것은 바로 미군이었다.

 

이전의 전투에서 형편없는 전투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던 미군은 어느새 영국군 못지않은 강적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그 영국군조차 기습에 전선 돌파를 허용했건만, 영국군보다 상대적으로 약체라고 평가받았던 미군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는 소식은 롬멜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 미군이 맞는지 의심스러운데."

"여러 번 확인했지만, 그 미군이 맞다고 합니다."

"허어, 양키 친구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독종으로 변해 버렸구만."

 

보급만 빵빵하고 군기와 전투력은 낮은 미군은 이제 기억 속에만 있었다.

 

앞으로 그들이 상대해야 할 미군은 패튼이라는 사신이 이끄는 전투광들이었다.

 

아무튼 미군 전선 돌파에 실패한 관계로 양 전선을 동시에 돌파하여 포위망을 형성한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영국군 전선에 집중할 수밖에.

 

***

 

이게 무슨.......

 

일선에서 속속 올라오는 보고에 몽고메리는 당황했다.

 

독일군의 공세가 시작되었고, 벌써 몇몇 부대는 적들에게 돌파를 허용하고 말았다.

 

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두절된 부대들도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14보병연대는 아직도 연락 두절이야?"

"계속 시도 중입니다!"

"서둘러! 35전차대대는 어떻게 됐지?"

"현재 교전 중이라고 합니다!"

 

참모들이 부리나케 뛰어다니는 동안, 몽고메리는 떨리는 눈으로 지도판을 들여다봤다.

 

상황은 개판 5분 전이었다.

 

"빌어 처먹을 제리 새끼들!"

 

기만책이 아니라 진짜였다니!

아니, 어째서? 연료도, 탄약도 얼마 없을 텐데 왜 공격해온 거야? 대체 왜?!

 

독일군의 움직임을 기만으로 생각했던 몽고메리는 독일군이 공세를 가해오자 순간적으로 뇌가 정지하고 말았다.

 

금방 제정신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이미 일선 부대들은 예기치 못한 공격에 돌파당하거나, 큰 피해를 입은 상황.

 

급한 대로 예비대를 투입해 구멍을 틀어막으려고 시도 중이지만, 독일군은 아주 작정이라도 한 듯 그 기세가 맹렬했다.

 

"아무래도 놈들은 이번 공세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모양입니다."

"내 생각도 그렇네. 젠장할, 일이 이렇게 되다니......."

 

자신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탓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몽고메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순 없는 일.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빨리 적들의 공세를 저지시키는 수밖에 없다.

 

마침 상황은 아주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곧 그렇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 군단장 명령이라고 전 부대에 전해. 군의관, 간호사, 부상병 등을 제외하고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인원은 전투에 투입하라고. 행정병, 취사병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알겠습니다."

 

***

 

"저기, 저 불빛들은 뭐야?"

"제리들 아냐?"

 

어둠 속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이자 병사들은 불안에 떨었다.

 

적의 공세가 시작되고, 전선이 돌파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후방인 이곳 또한 급히 전투 준비 태세에 돌입했다.

 

두 손 두 발 다 멀쩡하고 총을 쏠 수 있는 이라면 누구나 총을 들고 참호에 들어갔다.

 

덕분에 나도 졸지에 소총수 역할을 위해 게이츠 원사와 함께 좁은 개인호에 들어가 경계근무를 서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후방에서 불빛이 보이자 겁에 질린 병사들은 서둘러 총을 들어 불빛을 겨냥했다.

 

그때 한 멍청이가 실수인지 고의인지 몰라도 총을 쏘았다.

 

그러자 이를 공격 신호로 알아들은 다른 병사들도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했다.

 

"야이 멍청이들아! 뭣들 하는 거야?"

 

기겁한 나는 개인호를 뛰쳐나가 사격 중지를 외쳤다.

 

다행히 총격은 금방 멎었다.

내 명령이 통한 것이다.

 

"후방에서 오고 있잖아! 적이 아니라 아군이란 말이다!"

 

이 똥멍청이들은 이제 전방과 후방도 구분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내 말대로 불빛들의 정체는 바로 아군이었다. 그들은 일선 부대의 구원 요청을 받고 서둘러 전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이 기지의 최선임자가 누구입니까?"

"현재는 날세."

 

내게 휴가 소식을 전해줬던 군의관 중령이 나서서 부대의 지휘관인 대위와 얘기를 나눴다.

 

대위는 중령에게 군단장의 명령으로 군의관과 간호사, 부상병을 제외한 모든 전투 가능한 인원은 전선으로 이동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말했다.

 

곧바로 현장에서 '강제징집(?)'이 이루어졌다.

 

경계근무 중이던 보급병과 행정병들은 난데없이 소총수로 보직이 변경되어 전선으로 가는 트럭에 태워졌다.

 

여태껏 안전한 후방에서 전투 한 번 겪지 않고 꿀을 빨던 이들은 나라가 망한 것처럼 절규했다.

 

"나, 난 한 번도 싸워본 적 없는데......."

"총 쏘는 법은 알잖아? 잔말 말고 빨리 타."

"이럴 순 없어! 난 취사병이라고! 내가 들어야 할 건 총이 아니라 칼이란 말이야!"

"그럼 총검 들면 되겠네!"

 

아비규환의 혼란 속에서 나는 조용히 개인호로 돌아왔다.

 

그런데 개인호에 있을 줄 알았던 게이츠 원사는 자리에 없었다. 어디 갔지?

 

"대위님! 여깁니다!"

 

게이츠 원사는 이미 트럭에 올라타 스텐을 들고 주변을 경계 중이었다.

 

"원사, 어쩌려구요?"

"어쩌긴요. 바로 부대로 복귀해야지! 이 친구한테 물어봤는데, 마침 저희 부대가 있는 곳까지 간답니다!"

"이미 전투 중일 텐데요?"

"그래도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순 없죠. 가서 소총수 노릇이라도 하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어? 가만, 당신은......."

 

중령과 얘기를 나누던 대위가 내 얼굴을 알아보곤 다가왔다.

 

"맙소사, 당신이 그레이 대위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 아, 반갑습니다."

 

대위는 해맑게 웃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영문도 모르고 그와 악수한 나는 잠시 후 청천벽력 같은 말을 전해 들었다.

 

"마침 잘됐습니다. 얼른 타시죠.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네, 예? 뭐라고요?"

"아, 중간에 생략된 말이 많군요. 저희가 원대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얼른 타세요! 1초가 급한 상황이니 말입니다!"

 

아니 X발. 이건 또 뭔소리야. 원대라니? 나는 부상병인데?

부상병을 제외한 인원만 전투 투입하라는 거 아니었어?

 

나는 부상병이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왜냐고?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나는 전쟁영웅이 아닌가.

 

총리와 만나서 밥도 같이 먹고, 훈장도 받고, 신문에도 이름까지 난 전쟁영웅이 부상병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전선으로 가자는 말을 사양한다고? 사람들이 무슨 눈으로 보겠냐?

 

덕분에 나는 어어 하는 사이에 트럭에 태워져 전선으로 향하게 되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트럭은 전선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야, 쫄았냐?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두워?"

"그, 그게 전투는 이번이 처음이라......."

"새끼, 벌써부터 겁먹기는. 그래봤자 제리들도 우리랑 똑같은 인간이야. 총 쏘면 맞고 뒈지는 건 똑같다고. 그러니 쫄지 마, 알았어?"

"예, 옙."

 

게이츠 원사는 짐칸에 탄 초짜 병사들에게 말을 걸며 그들의 기운을 북돋고 있었다.

 

베테랑인 게이츠 원사와 달리, 여기 이 친구들은 훈련소에서 총 쏴본 게 전부인 비전투병들.

갑자기 최전선 투입이 결정된 터라 멘탈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나 역시 그들과 비슷한 신세였다.

 

전투 자체는 여러 번 치렀으니 그들과 같은 처지라곤 할 순 없지만, 난 부상병이라고!

게다가 이틀 뒤엔 휴가를 갈 예정이었단 말이야!

 

이런 내 생각을 전혀 모르는지, 게이츠 원사는 나를 가리키며 자랑스레 선언했다.

 

"여기 이 사람이 누군지 아냐? 바로 그 유명한 아서 그레이 대위님이시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는 아무것도 없다고! 안 그렇습니까, 대위님?"

"그, 그렇죠?"

"전쟁영웅이 함께하는데 설마 죽기라도 하겠냐? 그러니 쫄지 마라, 새끼들아!"

"예엡!"

 

전쟁영웅과 함께한다는 말에 도축장에 끌려가는 횡성 한우처럼 퀭했던 눈들이 조금이라나 생기를 되찾았다.

 

게이츠 원사는 뿌듯한 듯 가슴을 당당하게 폈지만, 나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X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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