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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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51화
151화 타이거 쇼크 (2)
"겨우 전차 한 대에 이 정도 피해라니, 허 참."
말과 달리, 처칠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의 책상에는 영국으로 이송된 티거의 사진과 기술자들이 티거를 분석해서 알아낸 정보들이 적힌 서류가 놓여 있었다.
미군은 티거의 성능이 위협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기존의 전차들로 충분히 상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비록 성능에선 달려도, 수적 우위를 활용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셔먼뿐만 아니라 M10도 있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육군항공대에 지원을 요청하면 됩니다!"
그러나 처칠의 생각은 달랐다.
"그레이, 그 친구 말이 결국 사실이 됐구만."
처칠은 그레이와의 만남에서 그가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 독일이 고성능의 전차들을 뽑아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정말로 현실이 되었고.
당장 4호 전차나 3호 돌격포만 해도 크롬웰과 최소 대등하다. 그런데 88로 무장한 전차라면? 떡장갑으로 도배를 한 처칠 전차조차도 위험하다.
그러나, 영국에겐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전선에 배치된 17파운더의 수량이 얼마나 되지?"
"5대입니다."
"겨우 5대?"
처칠의 물음에 알렉산더는 잘 알지 않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기존의 6파운더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요. 이제는 아닙니다만."
알렉산더의 말대로, 3km 거리에서 107mm의 관통력을 내는 17파운더는 위력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3톤이 넘는 중량과 낮은 명중률이 발목을 잡았다.
4호 전차나 3호 돌격포를 상대하는 데에는 6파운더만으로도 충분했고, 굳이 무겁고 명중률도 떨어지는 17파운더를 쓸 이유가 없어 전장에는 극소량만 배치된 상태였다.
허나, 티거의 등장으로 사정이 달라졌다.
6파운더는 훌륭한 대전차포지만, 티거를 상대하기엔 위력이 부족했다. 반면, 무수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티거를 확실하게 격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병기로 인정받은 17파운더는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보다 더 큰 역할을 맡게 될 터였다.
"17파운더의 배치를 서둘러야겠군. 그리고 A30 챌린저도 말이오."
A30 챌린저는 크롬웰의 차체를 개량한 차체에 17파운더를 장착한 포탑을 올린 전차로, 이 역시 생산에는 들어갔지만 신뢰성이 낮고 17파운더와 같은 이유로 실전 배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금은 아무래도 좋게 되었지만.
"그리고 A34 코멧 전차는 언제쯤 배치될 것 같소?"
"기본적인 테스트는 거의 다 끝났고, 현재 마무리 단계입니다, 각하. 일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여름 안에는 실전 투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처칠이 언급한 A34 코멧은 앞서 개발된 챌린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전차였다.
17파운더는 위력이 뛰어나지만, 무게가 너무 무겁다는 단점이 있었고, 기술자들은 이러한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17파운더를 경량화한 77mm 17파운더 HV포를 만들어냈다.
이 HV포를 탑재한 신형 포탑을 크롬웰의 차체에 장착한 게 A34 코멧으로, 종합적인 성능에선 크롬웰은 물론이고 셔먼과 4호 전차를 능가할 것으로 예상되어 모든 관계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좋군. 늦어도 여름이 되기 전까지는 실전 배치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구려. 우리 병사들이 타이거를 만나 머리통이 날아간 후에야 배치되면 너무 늦을 테니까. 알겠소?"
"물론입니다, 각하."
***
"이야, 때깔 한 번 죽이네."
중대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새로 배치된 챌린저 전차들을 구경 중이었다.
최근 독일군이 실전에 배치한 티거에 관한 소식들이 전해지기 무섭게, 티거를 잡을 수 있는 17파운더를 장착한 챌린저 전차들이 일선에 배치되기 시작되었다. 참 빠르다, 빨라. 이러다 곧 파이어플라이도 나오겠군.
"저게 말로만 듣던 그 신형 전차들이군요."
일렬로 늘어서서 움직이는 챌린저 전차들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며 게이츠 원사가 말을 이어갔다.
"듣자 하니 제리들이 개발한 타이거를 한방에 골로 보내버릴 수 있다고 하던데."
"사실일 겁니다. 17파운더를 주포를 탑재했으니까, 제대로 명중만 시킨다면 격파할 수 있을 겁니다."
명중만 한다면 말이지.
"그런데 전체적으로 좀...... 뭐라고 해야 하나? 포탑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만."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멀리서도 눈에 확 띄겠네."
17파운더라는 무지막지하게 큰 포를 억지로 집어넣다 보니, 포탑이 그만큼 커진 것은 어쩔 수 없긴 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은 차체에 맞지 않는 큰 포탑을 탑재한 탓에, 조금이라도 커브를 돌면 전복될 것처럼 휘청거렸다.
저렇게 불안정해서야 실전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원.
"그나저나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요?"
"러시아 빨갱이들 말입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젖는다고, 듣자 하니 그놈들도 반격을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
시칠리아에 연합군이 상륙하고, 이탈리아가 흔들리자 독일군은 모스크바 공략을 포기하고 철군을 시작했다.
벼랑 끝 낭떠러지에 몰렸던 소련군 입장에선 반격할 절호의 기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동무들!"
"진격! 앞으로!"
독일군이 퇴각하자, 전열을 재정비한 소련군은 곧장 그들을 추격했다.
미제로부터 받아 차곡차곡 쟁여둔 랜드리스 물자가 반격에 큰 역할을 했다. 소련군 병사들은 미국의 공장에서 생산된 군화를 신고, 미제 스팸 통조림으로 배를 채우고, 미국이 제공한 미제 트럭을 타고 진격을 개시했다.
"쏘아!"
"발사!"
스탈린의 오르간, 카츄샤 다연장로켓포가 불을 뿜는 가운데 T-34들을 필두로 한 소련군이 전진을 가하자, 독일군 진영은 단숨에 혼란에 빠졌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벼락에 공들여 판 참호는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고, 포격이 끝나기 무섭게 이번에는 소련군이 개떼처럼 몰려들었다.
T-34를 탄 소련군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모습은 공포를 넘어 재앙 그 자체.
"이반들이 몰려온다!"
"도망쳐!"
"모두 위치를 사수해라! 도망치는 놈은 내-"
쾅!!!
멘탈이 나간 병사들을 어떻게든 지휘하려던 장교가 T-34의 직사포격에 날아가고, 무한궤도가 참호를 타 넘었다.
오랫동안 칼을 갈던 소련군의 회심의 반격이 시작되자, 독일군의 전선은 사방에서 붕괴하기 시작했다.
"파시스트 돼지 놈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돼지 녀석들은 싹 다 도축해버려야지, 흠!"
크렘린에서 미소짓는 스탈린과 달리,
"총통 각하, 퇴각해야 합니다."
"현 상태로는 도저히 소련군을 막을 수 없습니다."
"후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떻게든 버텨내시오. 여기서 밀리면, 다시는 우리는 진격하지 못할 거요!"
히틀러는 쏟아지는 장군들의 후퇴 요청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히틀러가 후퇴 불가를 외친다고 한들, 이미 전황은 소련군에게 기운 지 오래.
"전군, 퇴각한다. 부상병들은 우선적으로 차량에 태우고, 불필요한 물자는 모두 태워버려."
"하지만 후퇴 불가라는 총통 각하의 명령이......"
"총통 명령이고 나발이고, 이대로 가면 우린 포위된다. 시베리아로 가기 싫으면 잔말 말고 철군 준비나 하게."
일선 부대들은 상부의 명령을 무시한 채 퇴각을 시작했다. 붉은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다.
소련을 무너뜨리고, 아리안족이 천년 동안 살아갈 레벤스라움을 건설하고자 했던 히틀러의 야망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 비록 이전의 위용을 잃은 독일군이었지만, 몇 번 급소를 맞았다고 바로 백기를 들 정도로 나약하진 않았다.
그 반대로, 독일군은 소련군이 방심하기만을 기다렸다.
독일군의 예상대로, 잇단 승리에 고무된 소련군은 자신들의 능력을 과신한 채 정신없이 내달렸다.
"보고드립니다, 서기장 동지. 방금 르제프와 칼루가가 조국의 품에 돌아왔다는 소식입니다."
"이 정도 속도라면 금방 스몰렌스크까지 가겠군. 잘하면 올해 안에 독일 놈들을 소비에트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 있겠어."
스탈린은 물론이고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해야 할 장성들조차 연이은 승전보에 취하고 말았다.
크렘린의 지배자들이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승리라는 아편에 취해있을 때,
최전선의 소련군은 무리한 진격으로 물자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련군의 진격이 둔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아군이 적의 무전을 감청한 결과, 탄약과 식량, 연료 모두 바닥난 상태라고 합니다."
"좋아. 이제 우리가 한 방 먹여줄 차례군."
공세종말점에 도달한 소련군은 독일군이 파놓은 함정에 보기 좋게 걸리고 말았다.
"전진! 다 쓸어버려!"
독일군의 반격이 시작되자, 소련군은 이전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방에서 패주했다.
"3시 방향에 T-34다!"
"조준 완료!"
"쏴아!"
끝없이 펼쳐진 러시아의 초원을 질주하던 T-34가 티거의 일격을 받곤 불덩이로 화했다.
뒤따르던 T-34들이 곧장 반격을 가했지만, 결과는 모두 도탄.
여유롭게 적의 공격을 튕겨낸 호랑이는 사냥을 시작했다.
"볼, 오른쪽에 있는 놈부터 간다."
"알겠습니다!"
중장갑의 티거가 창끝처럼 선두에서 돌격하고, 4호 전차와 돌격포들이 티거를 호위하는 방식으로 공격을 개시하자, 소련군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빌어처먹을, 소대장이 당했다!"
"미샤, 얼른 쏴버려!"
공포에 빠진 소련군 전차병들이 악을 써가며 포탄을 날려댔지만, 티거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왔다.
간혹 궤도에 맞아 멈춰서는 차량도 있었지만, 곧장 포탑을 돌려 포탄을 쏜 전차들을 날려버렸다.
"튀, 튕겼습니다!"
"씨발, 저 괴물은 도대체가-"
88mm 철갑탄이 전면에 명중하자, 강렬한 화염이 전차의 내부를 휩쓸었다.
이것으로 또 한 대의 T-34가 불타는 강철 관으로 변했다.
피를 피로 씻는 처절한 싸움은 소련군의 퇴각으로 마무리되었다. 붉은 대군의 물결은 나치 침략자들의 강력한 저항과 포위망에 분쇄되었고, 그렇게 전선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침략자들의 반격에 붉은 군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은 스탈린을 분노시키기에 충분했지만, 그는 분노를 삭였다. 애당초 보급을 무시한 채 무조건 진격을 외쳤던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장군들에게 화를 내봤자 사기만 떨어뜨릴 뿐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과거는 결코 바꿀 수 없기 때문이었다.
희생양으로 발탁된 사단장과 연대장 몇 명을 처형하고 그들의 가족들을 굴라그로 보내는 선에서 처리한 스탈린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이 티거라는 놈이 그렇게 강하단 말인가?"
"......"
전투보고서를 읽어내려간 스탈린의 물음에, 장군들은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순순히 인정하면 패배주의자로 낙인찍혀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다들 누가 먼저 말하기만을 기다리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결국, 먼저 입을 연 이는 스탈린의 신임이 두터운 주코프였다.
"파시스트 놈들이 이런 고성능의 전차를 개발해낼 동안 우리 기술자들은 뭘 한 거요?"
소련이 자랑하던 T-34가 티거 앞에서 맥없이 나가떨어진다는 사실은 스탈린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T-34는 물론이고 중장갑의 KV조차 티거 앞에선 맥을 추리지 못하다니.
수적 우위를 통한 포위 공격이나 대전차포의 일제 사격으로 몇 대의 티거를 격파하는 데 성공했지만,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지금까지의 손실을 통해 계산하자면 티거 한 대를 잡기 위해선 못해도 5대 이상의 T-34가 파괴될 각오를 해야 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우리에겐 티거를 능가할 전차가 없소? 아니, 가만...... 그래, 하나 있었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스탈린의 두 눈이 반짝였다.
"주코프 동지, T-43은 어떻게 되었소? 내가 알기론 완성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스탈린이 떠올린 것은 T-43이었다. 기존의 T-34보다 더 강력한 중형전차를 만들어내라는 스탈린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전차로, 얼마 전에 완성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던 것을 스탈린은 기억해냈다.
"예, 서기장 동지. T-43은 올해 초에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진들의 의견에 따르자면 여러 단점이-"
"됐고, 내가 묻고 싶은 건 다른 게 아니오. 전차의 성능만 두고 보자면, 이 T-43이 티거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울 수 있소이까?"
".....완전히 대등하다곤 말할 수 없겠지만, 기존의 T-34와 KV보다는 더 유리한 싸움이 가능할 겁니다."
"그러면 된 거요. 이 T-43을 당장 생산해 전선에 내보내도록 하시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티거와 싸울 수 있는 전차요. 단점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소. 알겠소?"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