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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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50화
150화 타이거 쇼크 (1)
"호랑이? 유치원생도 아니고 이름 한번 예술적으로 짓는군."
"정식명칭은 '6호 전차 타이거'라고 합니다. 놈은 모스크바 전투에서 최초로 목격되었으며, 처음에는 그 형상 때문에 4호 전차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아이젠하워는 몇 개의 사진을 확대해서 참석자들에게 보여주었다. 확실히 멀리서 보면 장포신 탑재 4호 전차와 구분이 힘들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
다만, 포탑이 육각형인 4호 전차와 달리 타이거의 경우 완벽한 사각형이라 크롬웰과도 비슷해 보였다.
"마치 책을 여러 권 쌓아둔 듯한 모습이로군."
티거의 투박한 생김새를 본 마셜의 내린 평가였다. 대부분의 장갑판이 수직으로 이루어진 티거는 '아름답다'라는 말과 분명 거리가 있었다.
"그놈 참 단순하게 생겼구만. 그래, 러시아인들이 이 전차 때문에 울상이라고?"
"그렇습니다. 아직 정보가 많지 않아 좀 더 조사가 필요합니다만, 현재까지 확인된 정보로는 주포는 88mm 대공포의 개조형이며, 차체 전면장갑의 두께는 100mm에 포탑의 경우 120mm, 차체와 포탑 측후면은 모두 80mm의 두께라고 합니다. 무게도 57톤이나 되고요."
"57톤이라고?"
아이젠하워의 말에 처칠은 깜짝 놀라 반문했다. 57톤이라면, 크롬웰(28톤) 2대의 중량이 아닌가.
"허, 그렇게 무거워서야 굴러갈 수나 있나?"
"생각보다 기동성은 나름 준수한 편이라고 합니다. 다만, 무게 때문에 교량의 통행이 극도로 제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뢰성도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는 분석가들의 평가입니다."
장갑이 두꺼우면, 그만큼 방어력이 늘어나지만 동시에 중량도 늘어나는 법. 중량이 늘어난 만큼 엔진에 가해지는 부담도 커질 것이고, 이는 자연스레 신뢰성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 때문에 독일군은 이 전차의 운용을 위해 특별 정비부대까지 따로 편성해서 작전할 정도라고 합니다."
"정비부대까지 따로 편성할 정도면 나치들이 어지간히 애지중지한다는 말이군."
마셜의 말에 아이젠하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생산량이 매우 적다는 것이었다. 주력인 4호 전차보다 단가도 높고, 생산공정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에 아직까지 독일군이 투입한 타이거의 수량은 미약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은 마셜은 마음이 놓인다는 듯이 이마의 주름을 폈다.
"숫자가 적다니 다행이군. 그렇다면 그리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은데?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숫자는 이길 수 없는 법. 타이거 한 대당 셔먼이나 크롬웰 3, 4대가 달라붙으면 당해낼 수가 없을 걸세."
적의 신형 중전차가 만만찮게 위험한 놈인 것은 사실이나, 숫자로 커버가 가능하다는 것이 마셜의 입장이었다. 실제로도 틀린 말이 아니었고.
독일군의 전차가 성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것이 미합중국의 전차 생산량을 뛰어넘을 수 없다. 독일이 전차 1대를 겨우 만들어낼 때, 미국은 전차 5대를 공장에서 찍어낸다. 거기다 이미 제해권과 제공권도 모두 미국이 가지고 있다. 이러니 무엇이 두렵겠는가?
"전면장갑이 100mm면, 확실히 셔먼의 75mm 주포나 크롬웰의 6파운더로는 정면에서 관통하기 힘들겠지. 하지만 그럴 때는 M10 대전차 자주포로 하여금 상대하면 되는 일이고."
최근 배치가 시작된 M10 대전차 자주포에 탑재된 76mm 주포는 1km 거리에서 106mm의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으니, 타이거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터였다. 정 뭣하면 수적 우위를 활용해 측면이나 후면을 파고들어 연사를 날리면 되고.
그렇게 '타이거'는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는 것으로 넘어갔다.
실제로 마주치기 전까지는.
***
1943년 1월 15일,
시칠리아에 이어 연합군은 사르데냐와 코르시카섬을 공격했다. 사르데냐에는 미군과 영국군이, 코르시카에는 미군과 자유 프랑스군이 상륙했다.
예상대로, 두 섬을 지키는 병력의 숫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해전은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고, 연합군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상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연합군이 섬 내륙으로 전진해 들어간 후에야 발생했다.
나폴레옹의 출생지로 알려진 코르시카섬에는 독일군 1개 보병사단과 비시 프랑스군 소속 해군 육전대 연대가 주둔 중이었다.
양군 모두 전원이 예비역으로 구성된 2선급 부대라 무기도, 사기도 모두 떨어지는 상황.
연합군은 아주 간단하게 코르시카를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보슈 새끼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구만."
"우리가 온다고 죄다 도망친 게 틀림없어."
코르시카 상륙과 진격의 선두는 자유 프랑스군이 맡았다.
이는 드골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프랑스의 영토를 해방하는 일에는 프랑스군이 최초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의지 때문이었다.
비록 본토는 아니지만, 유럽에 위치한 프랑스의 영토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유 프랑스군의 사기는 매우 왕성한 편이었다. 섬에 있는 적군의 숫자가 소수인 데다 전투력도 형편없는 2선급 부대라는 소식도 사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대로라면 3일 안으로 코르시카를 완전히 해방시킬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각하."
필리프 르클레르는 자신의 주장대로 지프를 타고 최전선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코르시카에 상륙한 지 2시간이 지났지만, 여태껏 전투다운 전투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이미 승산이 없으니 의미 없는 개죽음 대신 명예로운 항복을 택하는 편이 신상에 좋을 것이다.
-지금 항복하면 그 어떤 죄도 묻지 않겠다. 그대들도 같은 프랑스인 아닌가? 침략자들에게 순응하느니 조국의 품에 안겨 속죄해라.
대형 확성기를 장착한 스튜어트 전차가 선두에서 움직이며 투항을 권고하는 방송을 내보내자, 공격을 피해 숨어있던 비시 프랑스군 병사들이 슬며시 백기를 들고 나타나 투항했다.
항복 대신 전투를 벌이는 자들도 있었지만, 소수인 데다 중화기는커녕 기껏해야 소총과 수류탄이 전부라 피해다운 피해조차 주지 못했다.
"현재까지 마주친 적들은 모두 비시군 소속 해군 육전대 병력들이었습니다. 독일군은 아직 조우하지 못했습니다."
"흠, 겁먹고 내뺐나 보지. 별 신경 쓸 필요는 없네."
어차피 보고에 따르면 코르시카에 주둔한 독일군은 예비역으로 구성된 별 볼 일 없는 보병사단에 불과하다. 반면 이쪽은 미제 무기로 중무장한 기갑사단. 게다가 무전만 치면 언제든지 날아와 타격해줄 공군까지 있다.
빨리 코르시카를 해방하고, 주민들에게 어떤 연설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던 르클레르의 앞에서 행군하던 보병들이 폭발에 휩쓸렸다. 폭음이 고막을 때리고 날아든 파편에 유리창이 깨졌다.
"이게 무슨-!"
"적습이다!"
"전원 산개!"
훈련처럼 느긋하게 행군하고 있던 프랑스군은 갑자기 날아든 포탄 한 발에 혼란에 빠졌다.
"각하, 독일군입니다!"
"젠장, 나도 알아!"
갑작스레 벌어진 전투에 모두가 당황하는 사이, 운전병이 서둘러 차를 후진시켰다. 정신을 차린 프랑스군 병사들도 바닥에 엎드려 포탄이 날아온 방향으로 대응 사격을 했다.
"조준, 쏴!"
스튜어트 전차의 37mm 주포가 불을 뿜자, 수풀이 우거진 숲에서 폭발이 일었다. 전차장이 목표물을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포탄이 날아와 스튜어트를 포탑째로 날려 보냈다.
"소대장이 당했다!"
"이 무슨!"
"대전차포가 아냐, 전차다!"
그제야 상대가 대전차포가 아니라 전차임을 확인한 프랑스군 전차들은 유탄 대신 철갑탄을 장전해 일제 사격했다. 그러나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포탄이 튕겨 나가는 섬뜩한 소리뿐이었다.
세 번째로 가해진 공격에 이번에는 2대의 스튜어트가 동시에 격파당했다. 하필이면 장갑의 얇은 측면에 명중한 포탄이 그대로 관통하여 뒤에 있던 전차까지 맞춘 것이었다.
"미친, 두 대가 동시에 당했어!"
"후퇴해!"
패닉에 빠진 프랑스군을 구원하기 위해 셔먼 소대가 달려와 숲에 포격을 가했다. 잠시 후, 화염에 휩싸인 숲에서 한 대의 전차가 궤도를 굴리며 나타났다.
"적 전차 출현! 2시 방향이다!"
"4호 전차인가?"
프랑스군 전차병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티거를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티거라는 전차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기에, 그들은 눈앞의 전차가 흔한 4호 전차인 줄 알았다.
"철갑탄 장전!"
"쏴!"
철갑탄 3발이 명중했지만, 티거는 모두 튕겨냈다. 75mm 포탄 3발이 연이어 튕겨 나가는 광경을 본 전차병들의 눈이 커졌다.
"아니, 이 거리에서 포탄을 튕겨 냈다고?"
"이게 말이 돼?"
보통의 4호 전차였다면 격파였겠지만, 티거에겐 끄떡도 없었다. 이젠 티거가 공격할 가할 차례였다.
"오른쪽에 있는 놈부터 차례로 해치운다. 조준!"
"조준 완료!"
"쏴!"
티거의 88mm 주포가 불을 뿜자, 셔먼은 밥솥처럼 폭발했다. 포탄에 맞아 해치에서 불꽃을 내뿜는 셔먼을 본 르클레르는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었다.
"맙소사, 저 괴물은 대체......"
충격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광경에, 그는 말을 끝맺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유언이 되었다.
"발사!"
티거의 주포에 명중당한 셔먼이 폭발하면서, 그 충격으로 르클레르가 탄 지프도 옆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지프에서 튕겨 나간 르클레르는 바닥에 처박혔다. 군복이 찢어지면서 노출된 살갗이 지면에 쓸려 피가 났다.
"후진, 후진해!"
패닉에 빠진 셔먼 전차장은 등 뒤에 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조종수에게 후진을 명령했다. 전차가 후진하자, 무한궤도가 땅에 쓰러져 있던 르클레르를 덮쳤다.
그러나 셔먼이 도주하기도 전에 포탄이 날아와 포탑을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
코르시카에 상륙한 자유 프랑스군이 티거와 조우해 개박살이 난 소식은 곧장 연합군 수뇌부에게 전해졌다.
"타이거와 마주쳤다고?"
"겨우 한 대랑 마주쳤는데도 이 정도 피해가 나오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자유 프랑스군이 마주친 티거는 단 한 대.
비장의 카드로 취급받는 적의 신형 중전차가 어째서 코르시카에 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겨우 한 대로 인해 어마무시한 피해가 났다는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전차 9대 격파에 보병 수백 명 사상.
설상가상으로 르클레르 장군은 행방불명.
사실 이 모든 전과가 다 티거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고, 보병 1개 중대와 합동으로 이뤄낸 전과지만 아무튼 티거의 지분이 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비록 망신을 당하긴 했지만, 작전 자체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미군과 프랑스군은 코르시카 내부로 진격해 들어갔고, 독일군은 저항했지만 병력과 사기 면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났다.
결국, 코르시카는 일주일 만에 연합군의 손에 완전히 떨어졌다.
"야, 이것 좀 봐라!"
"이 전차는 뭐지? 처음 보는 놈인데."
"4호 전차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이게 그 타이거라는 신형 전차인가?"
코르시카가 완전히 해방되던 날, 섬 구석탱이에서 미군은 티거를 발견했다.
다만, 발견된 티거는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미군에게 항복하기 전, 전차병들은 티거가 온전한 채로 노획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티거 내부에 수류탄과 지뢰 등의 폭탄을 있는 대로 박아넣은 뒤 기폭시켜 티거의 포탑을 날려버렸다.
아무튼 타이거를 발견한 미군은 괴물의 사체를 배에 실어 영국으로 보냈다.
엉망진창이 된 티거가 미군과 영국군 관계자들에게 해체되어 능욕당하는 동안, 미군은 포로들을 심문해 어째서 그 귀중하다는 티거가 코르시카에 있는지 알아냈다.
티거가 코르시카에 배치된 내막은 한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시칠리아가 함락되던 날 남프랑스에서 티거 1대를 배차받아 훈련 중이던 전차중대는 상부로부터 코르시카섬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연합군의 상륙으로부터 코르시카를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중대는 우선 전차병들과 티거를 수송선 편으로 코르시카에 보낸 뒤, 본대도 코르시카로 이동할 준비를 하던 중에 그만 공습으로 간부진 상당수가 전사, 부상당하는 바람에 코르시카행이 미뤄지고 말았다.
겨우 새 간부진이 충원되어 다시 코르시카로 가려는 찰나, 이번에는 새 명령이 떨어졌다. 코르시카로 가는 대신 현 위치에서 대기하라고.
암만 생각해도 코르시카 방위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상부가 내린 합리적인 결정이었으나, 이미 티거는 코르시카에 있는 상황.
그 귀중하다는 티거를 다시 프랑스로 데려오기 위해 수송선을 보냈지만, 공습으로 수송선은 지중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그렇게 티거는 코르시카에 고립되고 말았다.
불운의 연속으로 코르시카에 남겨진 티거는 프랑스군에게 불벼락을 선사하며 밥값을 했지만 이미 전황은 뒤집을 수 없었고, 결국 자폭으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기술자들이 티거를 해부하는 동안, 미군 수뇌부에선 티거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형상 독일군이 기습을 가하기 적절한 위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번 전투는 전차 자체의 성능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지형상 이점을 살려 방심한 병력을 기습해 얻어낸 성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음, 그렇겠지......?
사람은 보고 싶은 방향대로 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티거가 낸 전과는 어쩌다 일어난 재수 없는 일 정도로 치부되었다. 아직까지는 셔먼으로 충분하다는 자신감과 여차하면 육군항공대의 지원을 받으면 된다는 안일함이 불러온 결과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