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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49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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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49화

 149화 큰 그림을 위한 준비 (1)

 메시나가 점령된 후에도 시칠리아섬 일대에선 산발적인 교전이 계속되었다.

 후퇴하지 못하고 고립된 독일군 잔당들과 골수 파시스트 이탈리아군이 항복을 거부한 채 끝까지 싸우려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숫자가 워낙 작고 무장도 변변찮아 그다지 큰 위협은 되지 못했다. 공식적으로 시칠리아 전역은 1942년 12월 26일에 종료되었다. 참고로 몰타는 우리가 카타니아를 점령했을 때 완전히 탈환했다고 한다.

 전투가 끝난 후에도,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면에선 더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쨍!

 잔이 부딪히고, 어색한 웃음소리가 양쪽에서 터져 나왔다.

 "웃어요, 웃어!"

 "자, 장군님들? 사진 한 방 박겠습니다."

 "예,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더."

 시칠리아 점령 축하 파티에서, 몽고메리와 패튼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잔을 부딪쳤다. 기자들은 그들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느라 부산을 떨었다.

 진실을 모르는 시민들이 보기엔 시칠리아 점령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둘이 건배하는구나, 정도로 보이겠지만, 진실을 아는 이들 입장에선 지금 이 광경이 얼마나 어색한지 눈 감고도 보일 지경이다.

 "고생하셨소이다, 패튼 장군."

 먼저 말을 건넨 쪽은 몽고메리였다. 입은 웃고 있지만, 관자놀이에 힘줄이 솟아난 것이 빤히 보였다.

 "흠, 물론이오. 우리가 좀 고생을 하긴 했지. 알아주셔서 고맙소이다."

 그런 몽고메리를 비웃듯이 패튼은 자신만만함을 넘어 거만해 보이기까지 한 과장된 미소를 지었다. 몽고메리의 관자놀이에 또 한 개의 힘줄이 추가되었다.

 저러다 뇌출혈 일으키는 거 아냐?

 평소의 상남자스러운 모습과 달리, 와인을 천천히 음미하던 패튼은 자신에게 질문하기 위해 모인 기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패튼 장군님? 질문 하나 괜찮겠습니까?"

 "이번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군대는 어느 군대라 생각하시나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당연히 미군이지!"

 기자의 도발적인 질문에 패튼은 엄한 표정을 지으며 기자를 꾸짖었다. 패튼의 샤우팅에 가까운 꾸짖음을 들은 기자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뒤로 움직였고.

 "물론 영국군과 캐나다군도 뛰어난 공적을 세웠지만, 그래도 승리에 쐐기를 박은 것은 우리 병사들이오. 제리들도 그걸 아는지 우리가 메시나에 도착하기 전에 도주했더군. 하하핫!"

 메시나를 먼저 점령했다는 사실 때문에 기자들의 관심사는 오직 패튼이었다. 몽고메리에게도 몇 명의 기자들이 달라붙었지만, 숫자에서 확연한 차이가 났다.

 "몽고메리 장군님, 시칠리아에서 영국군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마침 적당한 질문이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몽고메리의 입에서 장광설이 터져 나왔다. 영국군이 상대한 적들은 어떻고, 지형은 또 어땠으며, 피해는 얼마나 되는지.

 몽고메리 본인 딴에는 패튼에게 당한 굴욕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을 터지만, 정작 질문을 한 기자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영국군이, 제리들을, 마카로니 군대를, 이렇게, 저렇게, 미군보다 더 큰......"

 "흠, 흠. 자, 장군님?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종료를-"

 "무슨 소리요, 기자 양반. 아직 말할 게 더 남았는데."

 자존심 강한 두 천재가 열심히 자신의 공적에 대해서 떠벌리는 동안, 나는 조용히 그 자리에서 빠져나와 구석진 곳에서 파티를 즐겼다.

 일개 대위라 원래는 파티에 낄 자격이 없지만, 전쟁영웅 버프를 받아서 파티에 꼽사리로 낄 수 있었다. 물론 나는 딱히 바라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왕 파티에 낀 거, 평소에는 못 먹는 음식들 좀 먹어봐야지. 맨날 짬밥만 먹다가 제대로 된 음식들을 맛보게 되자 혀가 절로 춤추는 기분이다. 아이 좋아, 아이 행복해.

 "이게 '음식'이지, 진짜 음식."

 "맞는 말씀입니다, 중대장님."

 무어 소령도 신선한 생크림과 딸기잼을 바른 스콘을 입에 욱여넣으면서 지금 이 순간을 만끽했다.

 나는 마요네즈 비스무리한 하얀 소스에 버무린 마카로니에 훈제 연어 조각을 올려서 입으로 가져갔다. 우유를 한 컵 들이키는 것 같은 농후한 크림맛, 거기에 짭조름한 연어의 감칠맛과 살캉거리는 식감까지.

 이게 섹...... 아니, 이게 맛이지.

 그러나, 좋은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흠, 그레이 대위?"

 "아, 대대장님."

 "식사 중에 미안한데, 군단장님께서 자네를 찾고 계신다네."

 몽고메리가 나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군단장이 부르면 당장 튀어가야지. 내가 도착하자 몽고메리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기자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 친구가 바로 그 유명한 우리 대영제국의 전차 에이스, 아서 그레이 대위요. 이번 시칠리아 전투에서도 크나큰 공을 세웠지."

 몽고메리가 나를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메시나에 먼저 입성한 일로 공이 죄다 패튼과 미군에게 가자, 어떻게든 우리 영국도 한 건 했다고 기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허 참.

 "말해보게, 그레이 대위. 이번에 전차를 얼마나 격파했지?"

 "14대입니다."

 "그렇군. 그럼 이제까지의 전적들과 다 합치면?"

 "예? 어......"

 필사적으로 짱구를 굴려서 생각해낸 수치는 70대였다. 전차와 돌격포, 장갑차만 카운터한 거고 화포나 일반 차량까지 합치면 그보다 더 많겠지만.

 "대략 70대 정도 됩니다."

 "70대! 들었소? 70대요, 70! 이보다 더 많은 전차를 격파한 전차병은 그 어디에도 없소. 미군에 아서 그레이와 견줄만한 전차병이 있습니까? 내가 알기론 없는 걸로 아는데."

 몽고메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자 옆에서 아직까지도 기자들에게 열심히 지 자랑을 늘어놓던 패튼의 얼굴이 불독처럼 변했다.

 저기요, 장군님? 짜증 나는 건 알겠는데, 왜 저까지 노려봐요.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네.

 패튼이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지-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알고 있는 눈치였다-몽고메리는 연신 본인 자랑을 떠벌렸다. 그리고 나는 트로피마냥 그 옆에 착 붙어있어야만 했고.

 "아시다시피 우리 영국이 세계 최초로 전차를 만들지 않았소. 전차 에이스가 영국인인 것도 당연한 이치지. 우리보다 늦게 전차를 만든 미국에서 에이스가 나오려면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

 아,

 집 가고 싶다, 진짜.

 ***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자식들아."

 "소대장님도 많이 받으십쇼."

 다사다난했던 1942년이 지나고 1943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해 소원으론 뭘 빌었냐?"

 "크리스마스 전까지 전쟁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냐."

 안타깝게도 네 소망은 이뤄지지 않을 거란다, 보리스야. 내가 아는 역사만 해도 1945년이 되어야 끝나는데, 1943년은 암만 생각해도 무리다. 그래도, 역사가 많이 달라졌으니 1944년이라면 가능할지도......?

 "소대장님은 뭐라고 비셨습니까?"

 "나야 뭐 바랄 게 있겠냐. 그냥 이번 해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지."

 "소원치곤 너무 소박한 거 아닙니까?"

 "너무 욕심부리면 탈 나는 거 몰라?"

 시칠리아는 점령했지만, 이탈리아 본토는 여전히 독일의 손아귀에 있는 상황.

 심지어 나치가 무솔리니를 구출하는 것을 넘어 국왕과 바돌리오까지 생포해버리는 바람에, 실제 역사처럼 이탈리아 남부를 꽁으로 얻어먹을 수 있는 길은 증발하고 말았다.

 또 어떤 개고생을 해야 할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한숨만 나오는군.

 그래도 얼마 전에 전투가 끝났으니, 한동안은 상층부도 몸을 사릴 것이다. 정확히는 몸을 사린다기보다 다음에 있을 빅 매치를 위해 재정비하는 것에 가깝지만.

 시칠리아를 점령했으니, 다음 목표는 어디가 될까?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에서 겨우 몇 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탈리아 남부 끝자락은 이미 독일군이 해안포로 도배를 한 지 오래다.

 따라서 예상되는 침공 지역은 나폴리, 살레르노 같은 해안 도시들.

 하지만 내 예상을 비웃듯이, 아군이 공격한 곳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

 "시칠리아 점령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몰타도 되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각하."

 동시에 진행된 몰타, 시칠리아 침공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다소 피해가 크긴 했지만, 이로써 지중해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안전해졌다. 동시에 몰타 함락으로 실추당했던 자존심도 회복했고.

 하지만 처칠은 만족을 모르는 남자였다. 목표로 했던 몰타, 시칠리아 점령이 성공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2% 부족하다고 느꼈다.

 "내 하나 제안할 게 있는데 말이오."

 "말씀하시지요."

 "지중해 동쪽에 위치한 크레타를 공격하면, 발칸-"

 "절대 안됩니다."

 "그건 힘듭니다, 각하."

 처칠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마셜은 결사반대를 외쳤다. 자리에 동석한 유럽 주둔 미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소."

 자신의 제안을 칼같이 거절한 것에 기분이 상한 처칠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마셜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마이페이스의 대가 FDR조차 두 손 두 발 다 정도로 쇠고집인 마셜은 이미 처칠을 상대하는 법을 터득한 지 오래였다.

 "각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아니, 어째서요?"

 "크레타를 공격하게 되면, 예정된 프랑스 본토 상륙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이미 독일군도 크레타에 병력과 물자를 파견해 섬을 요새화시키는 작업 중입니다."

 "그러니까, 독일 놈들이 크레타를 불침항모로 만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점령해야 하지 않겠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크레타 침공을 감행하게 되면 프랑스 상륙에 차질이 빚어집니다, 각하. 이미 저희 미합중국은 발칸반도 공략을 계획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병력과 물자가 뚝 하고 떨어지는 일은 없다. 크레타를 공격할 경우, 그만큼 프랑스 상륙에 동원될 예정인 병력과 물자를 빼야 한다는 소리인데, 프랑스 본토 상륙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국이 이를 허락할 리가 없었다.

 영국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신세인 자유 프랑스 정부도 프랑스 해방이 늦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발칸반도 공략을 결사반대하고 있었다. 처칠이 주장하는 발칸반도 공략에 찬성하는 정부라곤 오직 호주, 캐나다 같은 영연방 국가들과 폴란드 망명정부뿐이었다.

 처칠은 이후에도 어째서 크레타를 공략해야 하는지, 발칸반도로 진출할 경우 독일의 연료 수입을 차단하여 독일군의 발목을 잘라버릴 수 있다고 열심히 떠들어댔지만, 마셜과 아이젠하워는 요지부동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미국인이지 영국인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백기를 든 쪽은 처칠이었다.

 처칠의 항복 후, 회의는 다시 원래 방향대로 진행되었다.

 "5월에 예정된 남프랑스 침공을 위해선 우선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이 두 섬을 장악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젠하워가 일어서서 직접 지휘봉을 들고 열심히 작전을 설명하는 가운데, 처칠은 뚱한 표정으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크레타 침공과 발칸 진출이라는 매혹적인 과실이 눈에 아른거렸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이번 전쟁의 물주는 단연코 미국. 미국의 지원 덕분에 겨우겨우 버틸 수 있었던 영국 입장에선 미국과 척을 지면서까지 발칸 진공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발칸 진출은 뒤로 미루고 당장은 미국의 계획에 협조하는 수밖에.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사르데냐와 코르시카에 주둔 중인 병력의 수는 겨우 보병사단 3개에 전차 등의 중장비는 소수라고 합니다."

 "흠, 섬이라서 보급이 힘드니 사실상 포기한 셈이로구만?"

 "예, 독일군도 사실상 이 두 곳의 방어는 일찌감치 포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르데냐를 지키는 병력은 독일군과 이탈리아군 각 1개 보병사단, 코르시카의 경우 프랑스군 해군 육전대 연대와 독일군 1개 보병사단이 전부. 이 정도면 형식상 병력만 박아두고 버리는 카드로 간주한 것이나 다름없다.

 코르시카와 사르데냐섬 침공에 있어서 이 점은 분명 희소식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아하기에도 뭣한 게 남프랑스 방어가 그만큼 견고해질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소련에서 들려온 소식입니다."

 소련 얘기가 나오자 처칠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아무리 같은 적을 두고 싸우는 입장이라지만, 케임브리지 간첩단 사건으로 처칠은 그 누구보다도 소련을 극도로 혐오하고 있었다.

 처칠의 눈빛이 얼마나 매서웠는지, 아이젠하워도 잠시 몸을 움찔거렸을 정도였다.

 "정확히는 소련 전선에서 목격된 독일군의 신형 전차에 관한 보고입니다."

 "신형 전차라고?"

 "예. 파견무관으로 나가 있는 인원들이 수집한 정보인데, '타이거'라 불리는 이 신형 중전차 때문에 소련군의 피해가 막대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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