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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45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1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45화

 145화 이탈리아의 운명 (2)

 오랜 혈투 끝에 시러큐스는 아군의 손에 떨어졌다.

 그러나 이제 막 첫 번째 관문을 지났을 뿐,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고도 멀었다.

 아군의 최종 목적지는 시칠리아섬 끝자락에 위치한 메시나로, 이곳을 점령해야만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본토의 통행을 차단하고 섬은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거쳐야 하는 도시들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시러큐스를 점령한 다음 날.

 몽고메리가 직접 나타나 장병들 앞에서 훈시를 늘어놓았다.

 "너희들이 고생이 참 많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최종 목적지인 메시나로 가기 위해선,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미군들은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면서 진격 중이라는데, 천하의 대영제국의 아들들이 미군에게 밀려서야 되겠는가?"

 역시 본심이 나왔구만.

 한마디로 말해서 '미군한테 지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이데.

 아니, 중장이나 되는 양반이 왜 쓸데없이 경쟁심을 불태우는 거야?

 "나는 제군들을 믿고 있다! 제군들이 가장 용감하고 뛰어난 병사들임을! 내일 중으로 오거스타를 점령하고 그다음에는 카타니아를, 나아가 메시나까지 점령한다! 하루빨리 메시나를 점령하는 것이 종전으로 가는 길임을 결코 잊지 말도록. 이상!"

 "부대, 차렷! 경례!"

 욕망과 사심에 가득찬 훈시가 끝나고, 우리는 서둘러 출발할 준비를 했다.

 그때 서쪽에서 항공기들이 벌떼같이 몰려왔다.

 "제리들이다! 모두 대피!"

 처음에는 다들 아군 항공기인 줄 알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교회 첨탑에 자리 잡은 관측병이 사이렌을 울리자 적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문제는 어제 막 점령한 도시에 제대로 된 대피시설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점이었다.

 병사들부터 장교들까지, 모두가 숨을 곳을 찾아 허둥거렸다.

 "어, 어디로 피합니까?"

 보리스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마땅히 대피할 곳이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모두 전차 밑으로 들어가! 당장!"

 아무런 엄폐물도 없는 맨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있는 것보다, 전차 밑에 숨는 편이 훨씬 나았다.

 전차가 파괴될 경우 꼼짝없이 타죽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긴 하나, 맨바닥에 엎드렸다가 파편에 맞거나 폭발에 휩쓸리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이윽고 적기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적기가 기총소사를 퍼붓자 사방에서 고함과 비명 소리가 이어졌다.

 폭탄이 떨어졌는지 순간 땅이 들썩거리며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행여 고개를 들고 있다 전차에 부딪혀 뇌진탕에 걸리는 일을 피하려고 고개를 바짝 숙였다.

 "X발, 우리 공군은 어디에 있는 거야? 제리들이 여기까지 왔는데......."

 함께 전차 아래로 피신한 게이츠 원사가 불만스러운 듯이 투덜거렸다.

 그때 총탄이 전차 장갑에 부딪혀 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름끼치는 소리에 게이츠 원사도 순간 입을 다물었다.

 5분 후, 독일군은 임무를 완수하고 기수를 틀어 기지로 되돌아갔다.

 공습경보 해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우리는 겨우 전차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개판이로군."

 공습이 한 번 훑고 지나간 곳은 딱 개판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트럭 몇 대가 뒤집어져 있었고, 폭탄이 떨어진 곳에는 구덩이가 생겨 주위에 불씨를 남긴 채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겨우 수습을 끝내고 오거스타를 향해 출발했지만, 이마저도 얼마 못 가 난항에 부딪히고 말았다.

 -전방에 적 출현!

 -즉시 전투 태세로!

 예상대로 적군은 오거스타로 가는 길목을 틀어막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젠장, 제리들이다! 제리들이라고!

 심지어 이번 상대는 이탈리아군도 아닌 독일군.

 안 그래도 빡센데 설상가상으로 상대가 독일군이라는 사실이 전해지자 분위기는 더욱 얼어붙었다.

 -호들갑 떨지 마라. 상대가 제리들이라고 도망칠 건가?

 "여기는 얼룩말 1, 모두 산개해라! 뭉쳐있지 마!"

 독일군의 출현 소식에 혼란에 빠진 무전망에 무어 소령의 일침이 전해지고, 나는 휘하 전차에 산개를 명령했다.

 평소처럼 크롬웰의 기동성을 이용해 적의 측면을 타격할 계획이었다.

 "모두 전진! 닉, 유탄 장전!"

 "유탄 장전!"

 야생의 독일군이 나타났다는 말에 얼어있던 부하들도, 내가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자 조금은 자신감이 차올랐는지 힘차게 명령에 복창했다.

 좋아, 이래야 대영제국 육군이지.

 위장막을 덮은 대전차포가 발포하는 광경을 본 나는 즉시 전차를 정지시켰다.

 "보리스, 정지!"

 돌격하던 아군 보병 서너 명이 폭발에 휘말려 조각났다. 폭발의 위력으로 봤을 때 75mm급이 분명했다.

 "목표는 2시 방향의 적 대전차포, 거리 500, 조준!"

 "조준 완료!"

 "발사!"

 안타깝게도 첫 발은 간발의 차이로 빗나갔다.

 하지만 대전차포병들은 자신들이 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주포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대전차포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중량이 1톤이 넘는 쇳덩어리를 고작 병사 몇 명이 달라붙는다고 쉽게 옮길 수 없는 노릇.

 적들도 부질없는 짓임을 깨달았는지 금방 포기하고 달아났다.

 "제리들이 도망치고 있습니다!"

 대전차포의 운용 인원들이 도주했으니, 대전차포는 전투력이 상실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혹시 또 모를 일.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나는 대전차포를 확실하게 격파하기로 했다.

 "그대로 쏘세요."

 "알겠습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대전차포를 유탄으로 박살 낸 뒤, 그다음은 적의 기관총 진지를 날려버렸다.

 그뒤엔 참호에서 머리를 치켜드는 적 보병들을 기관총으로 청소하는데, 눈에 익숙한 전투차량이 나타나 아군 전차를 날려버리는 게 아닌가.

 "11시 방향에 돌격포! 차체 돌려!"

 독일 기갑부대의 기둥이자 가상비 원탑인 3호 돌격포였다.

 특이하게도 놈은 이제까지 봤던 놈들과는 달리 차체는 A형이다. 주포는 장포신인 변종이었다.

 보아하니 기존의 주포를 들어내고 장포신을 탑재하는 개조를 한 녀석 같았다.

 "닉, 철갑탄으로! 게이츠 원사, 조준했습니까?"

 "방금 끝냈습니다!"

 돌격포 녀석도 이쪽으로 차체를 회전시켰다.

 하지만 놈이 차체를 다 돌리기도 전에 이쪽의 주포가 먼저 불을 토했다.

 "궤도에 명중!"

 "한 발 더!"

 궤도가 날아갔으니 이제 저놈은 움직이질 못한다.

 움직일 수 없는 돌격포는 사격용 표적 1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차체 하부에 2타가 더해지자 돌격포병들이 차량 밖으로 기어나왔다.

 "다음-!"

 이런 식으로 우리가 독일군과 피터지게 싸우고 있을 때, 로마에서는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

 "두체, 폐하께서 두체를 찾으십니다."

 "폐, 폐하께서?"

 평소처럼 모르핀과 메스암페타민에 취해있던 두체는 국왕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몸을 일으켰다.

 세상일에 관심을 끊은 채 술과 여자에 탐닉하던 그였지만, 최소한의 정신머리 정도는 남아있었다.

 "폐하께서 무슨 일로 나를 찾으시는 건가?"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폐하께서 속히 두체를 데리고 오라는 어명을 내리셨습니다."

 "알겠네. 내 당장 가도록 하지."

 국왕이 무슨 이유로 자신을 부른 것인지 알지 못하는 무솔리니였지만, 아무튼 어명은 어명.

 그는 서둘러 궁으로 갈 채비를 했다.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지 못한 채.

 ***

 "왔구만."

 "예, 폐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마주한 무솔리니는 예를 갖추어 고개를 숙였지만, 비토리오는 그런 그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오늘 자네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일세."

 더할나위 없이 차갑고 딱딱한 국왕의 말투에 무솔리니는 그제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깨달았다.

 "지금 이 나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네. 경제, 민심, 군대 모두 처참하게 박살났지. 어디 그뿐인가? 이제는 시칠리아까지 전쟁터가 되었네. 국민은 빵 한 덩어리를 구하기 위해 암시장을 기웃거리는 형편이고......."

 "......."

 국왕이 얘기를 계속하는 동안, 무솔리니는 잠자코 있었다.

 이미 그의 두 손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제 파시스트당 회의에서 자네의 탄핵안이 통과되었네. 모두가 자네한테서 등을 돌렸어. 국민도, 병사도, 짐도, 그리고 자네의 사위까지도."

 자신이 신임하던 사위 치아노 백작까지 자신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말에 무솔리니는 현기증까지 느꼈다.

 하지만 아직 국왕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

 "물론 자네가 자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내 모르지 않네. 하지만...... 세상일은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모두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네."

 "......폐하, 중요한 결정이라도 내리셨습니까?"

 무솔리니는 최대한 담담한 얼굴로 말했지만, 이미 표정에 그늘이 드리웠다는 것을 국왕에게 숨기지 못했다.

 비토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는 지도자로서 완전히 실격이야. 실망이 무척 크네....... 이제 그만 물러나는 것이 어떤가?"

 자신에게 거부권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안 무솔리니는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후임자의 행운을 빕니다, 폐하.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무솔리니는 조용히 궁전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부관과 운전기사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중무장한 헌병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들은?"

 "두체, 당신을 '안전한 곳'으로 모시라는 폐하의 어명이십니다."

 완벽한 제복을 차려입은 헌병 대위가 칼같이 경례하며 말했다.

 그의 절도 있는 자세는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지만, 눈빛만큼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안전한 곳이라면 어디를 말하는 건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헌병 대위를 조용히 응시하던 무솔리니는 이내 한숨을 쉬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하지만 내 발로 걸어서 타겠네."

 여차하면 그를 포박해 차량에 강제로 태우려던 헌병들은 무솔리니가 저항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자 안도했다.

 아무리 권좌에서 쫓겨낸 퇴물이라고 하나,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왕 다음으로 강한 권력을 가졌던 자와의 불필요한 충돌만큼은 그들도 피하고 싶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저희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

 "대위님, 대위님!"

 전투가 끝나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데, 게이츠 원사가 요란을 떨며 나를 깨웠다.

 "대위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무...... 무슨 일인데요, 원사?"

 평소 진지하고 무게감 있던 그였기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양반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라면 무슨 큰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으니까.

 "방금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인데요?"

 "무솔리니가 실각했답니다!"

 "예에?"

 무솔리니의 실각 소식이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자, 아군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게이츠 원사의 재촉에 할 수 없이 텐트 밖으로 나오자 라디오를 둘러싸고 흥분에 겨워 날뛰는 병사들이 보였다.

 "무솔리니가 실각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끝이야! 끝!"

 아직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닌데, 병사들은 이미 베를린이 함락된 것마냥 기뻐하고 있었다.

 비단 병사들뿐만이 아니라 장교들조차 기쁨에 겨운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이토록 기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히틀러를 따라 전쟁을 일으켰던 무솔리니가 실각당했으니, 이탈리아도 얼마 못 가 항복하리라고 짐작한 것이었다.

 실제로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뒤에 이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결코 웃을 일이 아니었다.

 "마치 생일도 아닌데 선물을 받은 기분이군요. 안 그렇습니까, 대위님?"

 게이츠 원사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들뜬 모습으로 환호하며 기뻐하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전쟁 때도 동맹국들이 죄다 항복하니까, 독일에서도 반란이 일어나 카이저가 쫓겨났죠. 무솔리니가 쫓겨났으니, 히틀러 놈도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하하...... 그렇죠......?"

 그러나 미래를 아는 내게는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린 격이었다.

 들뜬 분위기에 초를 치는 것 같아 얘기하지 않았다만, 히틀러도 아니고 겨우 무솔리니가 실각당한 것으론 전쟁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1차대전과 달리, 지금의 독일은 여러 면에서 막장일지언정 결코 허술한 체제가 아니거든.

 무솔리니의 실각도, 그리고 언젠가 벌어질 이탈리아의 동맹 이탈도 모두 베를린의 전략가들에겐 계획 안의 일일 것이다.

 어쩌면, 이미 독일은 사태 수습을 위해 행동을 개시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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