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40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40화
140화 몰락의 서막 (1)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됭케르크에서 괴멸당하고, 독일군이 파리로 질주하는 모습을 본 무솔리니는 측근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이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참전하려면은 바로 지금이야! 나중에는 너무 늦어!"
무솔리니가 보기에 전쟁은 이미 독일의 승리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과가 정해진 전쟁이라면 얼른 참전해서 콩고물을 얻어먹어야 한다.
이탈리아 국민은 무솔리니의 참전 선언에 열광했고, 이에 화답하듯 독일 코인에 탑승한 무솔리니의 제국은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몰타 주둔 영국군이 항복했습니다!"
"드디어 수에즈가 우리 손에 들어왔습니다!"
몰타가 함락되고, 이집트와 수에즈까지 추축국에게 넘어가자 참전을 반대하던 이들조차 두체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기쁜 세월도 한순간이었다.
연합군의 반격이 시작되고, 추축군의 패주가 시작되자 무솔리니가 외치던 '신 로마 제국'의 위상도 덩달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군이 카이로에서 퇴각했습니다."
"두체, 차드의 프랑스군이 리비아 남부 국경을 넘었다는 보고입니다."
"연합군이 튀니지까지 진격했다고?"
전쟁을 선포한 지 겨우 2년 만에 무능한 독재자의 오만한 제국은 완전히 무너졌다.
에티오피아와 리비아는 연합국에 넘어갔고, 수도 로마를 비롯한 도시들은 연합군의 공습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장으로 떠난 가족의 사망통지서를 받고 울부짖는 수많은 유족은 덤이었고.
현재 이탈리아에 남은 자산이라곤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알바니아와 프랑스를 뒤치기해서 얻어낸 코딱지만 한 땅덩어리들이 전부. 이제까지 쏟아부은 희생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성과였다.
그런데 이제는 남아있는 것들조차 위태로운 상황.
발등에 불이 떨어진 무솔리니는 한때 자신의 별 볼 일 없는 추종자였지만 지금은 맹우를 넘어 사실상 상전이 된 히틀러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시 만나서 반갑소이다, 두체."
"나도 마찬가지요, 총통."
빈에서 열린 회담에 참석한 두체는 엉덩이를 의자에 대기 무섭게 본론을 꺼냈다.
"총통, 부디 지중해 전선에 전력을 집중해주길 바라오. 지금 이탈리아는 풍전등화 그 자체요."
무솔리니는 히틀러에게 열심히, 거의 절박한 태도로 현재 이탈리아가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식민지를 상실한 탓에 국민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데다, 이탈리아 단독으로는 연합군의 침공을 결코 막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러니 소련과는 그만 전쟁을 멈추고, 평화협상을 맺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친애하는 두체, 그건 불가능하오. 현재 국방군은 모스크바 코앞까지 진군했소. 그런데 강화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랬다간 우리 국민들부터 가만있지 않을 거요."
소련과 전쟁을 멈추고 지중해 전선에 집중해달라는 무솔리니의 요구를 히틀러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가 보기엔 동부전선은 승리 직전이었다.
승리가 코앞에 있는데 여기서 멈추라고? 누구 좋으라고?
"걱정하지 마시오, 두체. 국방군은 틀림없이 모스크바를 점령할 것이고, 내년 봄에는 스탈린이 알아서 항복해올 것이오. 소련과의 전쟁이 마무리되는 즉시 내 전군을 지중해 방면으로 보내 이탈리아를 지원하겠소."
정에 약한 히틀러는 자신의 옛 우상에게 지원을 약속했지만, 무솔리니에겐 지금 당장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소련이 백기를 걸기 전에 미군과 영국군이 로마를 점령할 것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괜히 히틀러의 심기를 건드려 안 그래도 부족한 지원을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쉬운 쪽은 무솔리니 자신이지, 히틀러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히틀러를 믿어보는 수밖에.
"......알겠소이다. 하지만,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할 것이라는 조짐이 보인다던데."
"하, 그건 전부 다 놈들의 술책이오. 적들은 틀림없이 프랑스로 올 거요."
히틀러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어이가 없어진 무솔리니가 반문했다.
"적들이 프랑스로 올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아, 그쪽은 아직 모르시겠군. 얼마 전 우리 정보부에서 적들의 기밀문서 입수에 성공했소. 문서에는 적들의 목표가 셰르부르라고 적혀 있었지. 지금쯤 런던의 돌대가리들은 자기들 계획이 우리에게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거요."
우연한 행운으로 입수한 적의 기밀문서가 사실은 적들이 파놓은 매우 정밀한 함정임을 히틀러는 알지 못했다.
***
느닷없이 아프리카행 수송선에 올랐던 것처럼, 이번에도 느닷없이 출발 명령이 내려졌다.
"1시간 내로 준비를 끝낸다! 멀뚱거리는 놈은 내가 엉덩이를 걷어찰 줄 알아라!"
"공구 상자 결속 잘해! 느슨하게 했다간 큰일 난다."
"이쪽으로, 천천히. 좋아."
딱히 명령은 없었지만, 다들 실전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챘는지 움직임이 분주했다.
전투를 앞둔 병사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긴장과 초조함이 가득했다.
"중대장님, 3소대는 모두 준비 끝냈습니다."
"음, 알겠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점검 잘해두고."
무어 소령에게 보고를 끝마친 나는 소대로 돌아와 소대원들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다들 눈에 띌 정도로 얼어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말로만 들었던 진짜 전투에 나간다는 생각에 살짝 흥분한 상태였다.
저마다 모여서 독일군이 어떻다느니, 이탈리아군은 껌이라느니 등등의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면 사기는 딱히 문제없을 것 같다.
"드디어 다시 대위님이 날뛰시는 모습을 보겠군요. 저 녀석들한테도 좋은 자극이 될 겁니다."
공구 상자 위에 앉아 홍차를 홀짝이던 게이츠 원사가 씩 웃으며 말했다.
"과한 칭찬은 자제하세요. 낯 뜨거우니까."
"에이, 훈장까지 받으신 분이 왜 그러십니까? 자부심을 가지십쇼. 사람이 너무 겸손하면 오히려 안 좋게 보인다니까요?"
"맞습니다, 소대장님. 소대장님은 전설의 에이스가 아니십니까?"
붙임성 좋은 보리스도 게이츠 원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손을 비볐다.
새로 떠오르는 소대 에이스 아니랄까 봐 추임새 넣는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
"제레미, 기관총 점검 다 끝냈냐?"
"옙, 방금 끝냈습니다."
기관총 사수인 제레미 요크 상병은 냉큼 전차 위로 올라와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두 모금을 빨기도 전에 출발 명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녀석은 장초를 밖에 던져버려야 했다.
"소대장님,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이제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던 닉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어, 해봐."
"저희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겁니까?"
"몰라서 묻냐? 당연히 전쟁터지."
포수석에 앉은 게이츠 원사가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나 대신 대답했다.
하지만 닉은 다른 답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 전쟁터가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시칠리아나 몰타 둘 중 하나겠지. 우리가 이곳 아프리카까지 온 이유가 뭐겠냐?"
오늘은 1942년 11월 29일이다.
역사대로라면 연합군이 튀니지에서 추축군과 아웅다웅거리고 있을 때지만, 이 세계에서 튀니지는 진작에 정리되었다.
아프리카를 정리했으니, 이제 지중해에서 남은 목표물은 시칠리아와 몰타, 이 두 곳뿐이다.
우리가 향하는 곳이 몰타가 될지, 시칠리아가 될지는 나조차 쉽게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두 곳 모두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라서 말이지.
수송선들은 이미 입을 열린 채 우리가 탑승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유도병의 신호에 따라 보리스가 전차를 모는데, 창공에서 소음이 들렸다.
하늘을 보자 한 무리의 폭격기들이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
"10분 후 도착이다! 모두 마음 단단히 먹어!"
"여기까지 와놓고 돌아가고 싶다는 인원은 없겠지?"
부소대장의 가벼운 농담 덕분에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공수부대원들을 태운 수송기는 이제 곧 몰타 상공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각각의 수송기에 탑승한 부대마다 부여된 임무는 비행장 점령과 적 포대 파괴, 보급로 차단 등등 제각기 달랐다.
병사들은 강하 전 마지막으로 임무를 숙지한 후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부디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기를.
못해도 땅만큼은 밟아보고 죽을 수 있기를.
"계류삭에 후크 걸어! 강하 준비!"
"모두 지상에서 보자!"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적군의 대공포화가 빗발쳤다.
밤하늘을 가르는 예광탄 줄기에 병사들은 겁을 집어먹었지만, 이제와서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뛰어!"
"드가자!"
요란한 대공포화 속에서 수백 개의 낙하산이 피어올랐다.
***
몰타섬에 연합군 공수부대가 강하하고 10분 뒤, 시칠리아섬 상공에도 연합군의 공격이 가해졌다.
"비상! 비사앙!"
"적의 기습이다! 모두 위치로!"
"빨리 움직여!"
설마설마했던 적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시칠리아 주둔 이탈리아군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기습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무장한 병력이 막사에서 쏟아져 나와 지정된 방어구역으로 뛰어갔다.
리비아의 상실 이후로, 이곳 시칠리아는 사실상 최전선이나 다름없었다.
시칠리아 바로 밑에 몰타가 있긴 하지만, 연합군이 몰타를 건너뛰고 곧바로 시칠리아로 올 가능성도 있었기에 이탈리아군은 없는 물자를 쥐어짜 섬 곳곳에 방어기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몰타 방어를 위해 병력과 물자가 차출된데다, 연합군의 상륙 지점이 프랑스라고 확신한 독일군 때문에 방어선 구축 계획은 지지부진했다.
그 결과, 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시칠리아섬의 방어기지는 원래 계획의 40% 정도밖에 완성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탈리아군의 준비만큼은 달랐다.
시칠리아 주둔 이탈리아군 상당수가 이곳 태생이었기 때문에, 전투에 임하는 그들의 정신상태는 이전의 이탈리아군과 차원이 달랐다.
"모두 잘 들어라. 나도 그렇고 너희들도 그렇고 모두 이곳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자랐다. 로마의 영광이니, 조국을 위한 충성심은 잠시 잊어라. 그저 가족들과 고향을 생각해라."
"우리가 무너지면 사랑하는 고향과 가족, 친척들은 모두 끝이다! 죽을 각오로 싸워라!"
섬 내부의 병력이 강하한 연합군과 교전을 치르는 동안, 해안가 방어를 맡은 부대들은 현 위치에 고정된 채 다가올 전투에 대비했다.
예상대로, 적들은 바다에서 공격을 가해왔다. 1942년 11월 30일의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
같은 시각, 자칭 '신 로마의 지도자'는 자신의 집무실에 있는 소파에 누워있었다.
전황이 악화하기 시작한 뒤부터 무솔리니는 모르핀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이제는 중독이 된 상태였다.
이틀에 한 번 이상은 모르핀을 맞지 않으면 다른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오늘도 그는 업무의 스트레스와 불리한 전황이 가져다주는 공포를 잊기 위해 모르핀을 맞았다.
주사기와 약통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방에서 그는 히틀러와의 회담을 떠올렸다.
빌어 처먹을. 자존심까지 굽혀가면서 지원을 애걸했건만 뭐? 모스크바 공략이 우선이라고? 우리는 어떻게 되도 좋다는 건가?
히틀러가 이뤄낸 업적에 감탄하면서도 내심 그를 품위라곤 하나도 없는 게르만 촌놈으로 얕잡아 보고 있던 무솔리니는 자신의 요청을 거절한 히틀러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고작 하사 나부랭이 따위가! 가, 감히 나를 능멸해! 병신 같은 독일 놈들!"
모르핀이 가져다주는 환각까지 더해지자 이성을 상실한 그는 손에 잡는 물건들을 모두 내던지기 시작했다.
집무실에 멀쩡한 물건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정도가 되자 겨우 분노가 잠잠해지면서 평온이 찾아왔다.
그래, 그 독일 놈들이 비록 역겹기는 해도 그들이 강력하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모스크바는 지금 함락되기 일보 직전이라지?
소련이 무너지면 독일은 틀림없이 자신을 도우러 원병을 파견할 것이다.
이탈리아가 무너지면 자신들의 위치도 위태로울 테니, 좋든 싫든 간에 이탈리아를 도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의 힘을 빌려 연합국을 격퇴하면 자신의 권좌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힘을 길러야지.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나면 리비아에 대함대를 보내──.
"두체! 두체! 급보입니다!"
부관의 급박한 목소리에 망상을 방해받은 무솔리니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젠장, 이번엔 또 뭐야?!
"두체, 큰일 났습니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방문을 연 부하를 향해 호통을 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무솔리니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또 무슨 일인가?"
"시칠리아가 공격받았다는 소식입니다. 적의 대함대가 지금 시칠리아 앞바다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실낱같은 희망마저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