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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66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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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66화

 166화 큰 그림을 위한 준비 (2)

 발칸반도.

 유럽의 화약고란 별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온갖 문제들이 얽혀있는 땅.

 하지만 전쟁 초반, 독일의 연이은 승전보는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처럼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국가들끼리도 뭉치게 만들었다.

 "천하의 프랑스를 단 6주 만에 무너뜨리다니, 믿을 수 없어."

 "영국도 다른 나라 신경 쓸 틈이 없는 것 같고."

 "히틀러와 동맹을 맺으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거요."

 "찬성합니다. 국민들도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본래 외교란 강한 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라는 규칙에 걸맞게 발칸의 국가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재빨리 독일과 동맹을 맺었다.

 독일의 그림자 뒤에 숨은 덕분에, 한동안 달달한 평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독일의 몰락이 가속화된 뒤로는 옛말이 되었다.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연합군은 자신들이 독일군과 목숨을 걸고 드잡이질을 하는 동안, 낭낭하게 독일 코인을 빨던 발칸 국가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런던으로부터 비밀전문입니다. 즉시 독일과의 군사협약을 파기하지 않을 경우 군사적 행동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미 소피아와 부쿠레슈티가 폭격당했소. 이곳 베오그라드도 언제 폭격을 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소."

 영국과 미국이 외교, 군사적인 모든 측면에서 이들 나라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자, 내부에서도 독일과의 동맹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이라도 편을 바꾸면 그 어떤 보복이나 제재도 가하지 않겠다고 루스벨트가 말했답니다. 어서 결단을......"

 "으으음."

 독일의 전통적인 동맹이었던 헝가리조차 슬슬 탈주각을 보던 와중에, 첫 스타트를 끊은 국가는 발칸 최남단의 그리스였다.

 "국왕 폐하의 어명이다. 현 시간부로 독일, 이탈리아와 맺은 모든 조약을 파기하고 독일에 선전포고한다."

 그리스는 본래 뼛속까지 친영 국가로, 친독파였던 메탁사스 총리의 의향으로 독일과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메탁사스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전황까지 독일에게 불리해진 지금, 그리스 입장에선 독일과의 동맹을 유지할 이유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했답니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도 얼른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그리스가 전향하자, 이웃한 불가리아와 유고슬라비아도 즉시 편을 갈아탔다.

 순식간에 동맹국 3개가 적국이 된 기막힌 상황.

 하지만 독일은 이를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프랑스와 소련에서의 싸움만으로도 한계였던 독일에게, 발칸에서의 반란은 능력 밖의 일이었다.

 ***

 전쟁 초반, 전황이 영국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 처칠은 누구보다 일찍 회의실에 도착했다. 아예 회의실에서 하루를 꼬박 새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전황이 점차 영국에게 유리하게 돌아간 뒤부터 처칠은 회의에 지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오늘도 그는 전쟁성에서 여는 회의에 3분가량 지각을 했다.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낼 날도 머지않은 것 같구려."

 지각한 것에 대한 미안함은커녕 느긋한 표정으로 자신만만한 발언을 하는 처칠에게 토를 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처칠의 말에 공감했다. 히틀러가 죽고, 신정부가 들어선 뒤부터 독일의 패망은 가속화되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SS가 알아서 길을 열어주더니, 어제는 그리스에 이어 유고와 불가리아가 독일에게 선전포고했다. 그리스는 이미 영국과 미국에게 병력의 파견까지 요청한 상태였다.

 "헝가리와 루마니아도 독일과 거리를 두려는 모양새입니다. 루마니아에선 국왕 미하이 1세가 친위 쿠데타를 준비 중이며, 헝가리의 호르티도 포르투갈을 통해 협상을 요청해왔습니다.

 핀란드도 미국에게 소련과의 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아 달라고 비밀리에 요청해왔다고 합니다."

 "아주 좋소."

 외무장관 이든의 보고에 처칠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발칸반도가 알아서 문을 열었으니, 미국도 더 이상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 거요. 그렇지 않소?"

 처칠은 일찍이 미국에 발칸반도 진공 계획을 타전해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미국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탈리아, 프랑스만으로도 충분한데 뭣하러 발칸 같은 산골짜기로 가냐?

 애초에 발칸 가자는 이유가 영국의 세력권 확대를 위해서가 아니냐?

 그렇게 번번이 퇴짜를 맞았던 처칠의 제안은, 발칸 국가들의 이탈로 새로운 국면을 맡게 되었다. 알아서 문을 열고 길까지 내준 마당에, 더 이상 미국도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물론 프랑스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는 마당에 대군을 보내는 건 무리고, 1개 군단만 차출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리스와 유고, 불가리아 각국의 병력들을 규합하면 프라하나 바르샤바까지는 무리더라도, 부다페스트와 빈까지는 충분히 밀고 들어갈 수 있으리라.

 "총리 각하, 어제도 독일 측에서 협상을 타전해왔습니다."

 "아, 그 소식은 들었소. 그래, 협상안에 변화는 있소이까?"

 "예. 대표적으로 독일이 획득한 소련의 영토를 아무 조건 없이 폴란드에 그대로 양도하겠답니다. 필요하면 체포하여 구금 중인 나치 인사들의 영국 송환도 불사하겠다고 합니다만."

 신정부에선 나름 크게 양보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처칠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웃기지도 않군. 애초에 전범들의 인계와 처벌은 당연히 우리가 할 일이고, 폴란드 문제도 우리 문제인데. 아직도 현실을 못 보고 망상 속에 살고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구만.

 그들에게 다시 전하시오. 진정으로 전쟁을 끝내고 싶다면 무조건 항복하라고. 우리의 조건이 더 가혹해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오."

 "그리 전하겠습니다."

 사실 처칠은 히틀러와 나치스만 제거된다면, 독일과 협상할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예전 일이고,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누가 보더라도 영국의 승리가 확실시된 상황인데, 뭐가 아쉬워서 독일의 요구를 들어주겠는가? 물론 전쟁이 빨리 끝낼수록 영국의 아들들도 덜 죽고, 대일 전선에 전력을 투입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이유로 다 잡은 맹수를 풀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피를 더 많이 흘리는 일이 있더라도, 다시는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거세시키는 것이 처칠의 계획이었다.

 "오늘의 안건은 전후 독일의 분할안과 소련 문제요. 배포된 문서의 두 번째 페이지를 보면, 내가 직접 계획한 전후 독일 분할안이 있을 거요. 보시고 감상을 얘기해주시구려."

 처칠이 구상한 독일의 분할안은 미국의 제안과는 거리가 있었다. 루스벨트가 독일을 지역별로 갈기갈기 찢어서 독일 자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자고 주장한 것에 비하면 그나마 나았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면에서 더 막장이기도 했다.

 라인란트 지역은 독일에서 분리시킨 뒤 '라인 공화국'으로 독립시키고, 독일 본토는 마인강을 경계로 남북으로 분할,

 남부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한 데 묶어 '다뉴브 연방'으로 만들고, 합스부르크 왕가를 복원해서 통치한다......

 처칠의 기행에 어느 정도 내성이 쌓인 참석자들조차 상상을 초월하는 처칠의 계획에 혀를 내둘렀다.

 "어떻소이까, 내 계획이?"

 "총리 각하, 이 경우 헝가리인들이 반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처칠의 원대한 이상에 제동을 건 이는 이든이었다.

 "헝가리인들은 자신들이 신생 독일의 일부로 편입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독립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소련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하, 러시아 공산주의자들 말이야 무시하면 되는 일이오. 그놈들이 아직도 우크라이나에서 낑낑거리는 동안 우리는 프랑스까지 해방시켰단 말이오. 그 치들이 바르샤바에 도착하기도 전에 베를린엔 유니언 잭이 휘날릴 테지. 그러니 러시아인들의 의견 따윈 고려할 필요 없소.

 그리고 헝가리인들도, 지난 대전쟁 때까지 오스트리아인들과 같은 나라에서 지내왔으니 별문제는 없을 거요."

 동프로이센은 독일 통치에 대한 보상으로 전후 폴란드에 양도될 예정이었다. 이든 외에도 여러 각료들이 처칠의 계획안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처칠은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였다.

 결국, 토의 끝에 헝가리의 전향 여부에 따라 처분을 보류하기로 합의하면서 독일 문제에 관한 안건은 끝을 맺었다. 그러나 각료들에겐 이제 겨우 첫 번째 고비를 넘겼을 뿐이었다.

 "자, 다음 안건은 전후 소련과 동유럽 문제에 관한 것이오. 우선, 전쟁 전 독립국이었던 발트 3국은 당연히 독립되어야 할 것이고, 폴란드도 전쟁 이전의 영토로 돌아가야 할 거요.

 그리고 여기서부턴 희망 사항이긴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우크라이나도 독립시켜서 폴란드와 소련 사이의 완충국으로 남겨 놓는 방법을......"

 각료들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회의가 끝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

 전선의 대붕괴로 독일군은 조직적인 저항은커녕, 퇴각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작게는 대대, 크게는 사단 단위로 적진 한복판에 고립된 독일군에게 남은 선택지는 3개였다.

 첫 번째는 얌전히 백기 올리고 항복하기, 두 번째는 문 틀어막고 존버하기, 마지막으로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기.

 우선 첫 번째의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다음이 세 번째였고. 하지만 탈출에 성공한 사례는 드물었다. 기껏해야 병사 몇 명이 모여서 한밤중에 몰래 빠져나가는 경우만 있을 뿐, 대대 규모 이상의 병력이 탈출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가장 적은 사례가 두 번째였는데, 이 경우 접근이 어려운 지형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아 진압하기가 곤란했다. 어차피 적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틀어박혀서 숨죽이고 사는 것뿐이라, 공격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포위만 하고 그대로 내버려 뒀다.

 물자가 다 떨어지면 알아서 문 열고 나올 테니, 굳이 피를 흘릴 이유가 없어서였다.

 퇴각하는 독일군을 뒤쫓고, 포위망에 갇힌 적들의 항복을 받아 내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파리가 해방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독일군은 프랑스 동부 지역으로 퇴각해 급히 방어선을 형성했고, 길어진 보급로 때문에 보급 부족에 시달리던 연합군은 독일군이 철수한 지역들을 차례차례 접수해나갔다.

 그렇게 1943년 7월 말, 프랑스는 사실상 해방되었다. 메스, 낭시 같은 동부의 도시들은 여전히 독일의 수중에 있지만, 이들도 겨울이 오기 전에는 해방될 터였다.

 역사대로라면 연합군은 아직도 시칠리아에서 독일군과 투닥거리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발칸반도조차 대부분 연합군의 수중으로 넘어왔다.

 동부전선은 그럭저럭 막아 내고 있는 모양이지만, 단순 판도로 봐도 실제 역사보다 훨씬 불리해진 상황.

 잘하면 진짜로 크리스마스 전에 끝날지도......?

 "아니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당장 보급이 부족해서 진격을 멈춘 상태인데, 무슨 수로 연말이 오기 전까지 베를린까지 간단 말인가. 게다가 상대는 독일군.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패망 전까지 연합군을 괴롭혔던 괴물들이다.

 암만 전황이 유리하다고 한들, 과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잇따른 성공에 기고만장했다가, 독일군에게 마켓가든과 아르덴을 처맞은 연합군이니까.

 "그나저나 중대장님, 오늘은 또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다들 모인 거랍니까?"

 "뻔하지 뭐. 군단장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니까 모였지."

 잠시 후 몽고메리가 나타나자 전 장교들이 기립했다. 중장에서 대장으로 바뀐 계급장 덕분인지, 안 그래도 뻣뻣하던 목이 이제는 완전한 일자였다.

 "편히 쉬게나, 제군들. 우선, 그간 전장에서 수많은 고생을 한 제군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 것 같군."

 우리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몽고메리는 커다란 지도를 펼치더니 바로 본론을 꺼냈다. 숨 쉴 틈조차 없이 말이다.

 "제군들은 한 달 동안 휴식을 취하게 될 걸세. 그리고 휴식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배를 타게 될 거야. 총리께서 제군들을 발칸으로 보내고 싶어하시거든. 아직까지 확실하게 정해지진 않았지만, 아마도 우리의 다음 목표는 부다페스트가 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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