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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57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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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57화

 157화 서부전선 시작 (3)

 처음에는 내 눈이 잘못된 줄 알았다.

 동부전선에 있어야 할 T-34가 왜 여기 있어?

 하지만 의문도 잠시, 일단은 눈앞의 적들부터 먼저 해치우는 게 급선무였다. T-34든 뭐든 적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멍때리고 있다간 죽는다.

 "닉! 철갑탄 장전!"

 "철갑탄 장전!"

 차체 전면부와 포탑 측면에 큼지막한 철십자가 그려진 T-34가 내 쪽으로 포탑을 회전시켰다. 코멧의 방호력은 나쁜 수준이 아니지만, 그래도 차체는 조금 위험했다.

 "보리스, 좌측으로 차체를 틀어라!"

 "예!"

 보리스가 차체를 비스듬하게 트는 사이 게이츠 원사는 포탑을 움직여 T-34를 조준했다. 적도 이쪽으로 포탑을 거의 다 돌린 상태였다. 시간이 없다!

 "쏴!"

 77mm 철갑탄을 정면에서 맞은 T-34는 그대로 침묵하며 연기를 토해냈다. 포탑 해치가 열리고, 피투성이가 된 전차병들이 부들거리며 기어 나왔다.

 "좋았어, 다음!"

 우선 눈에 띄는 전차의 절반이 T-34였고, 나머지 절반은 T-26과 BT-7 같은 경전차들이었다. T-26과 BT-7는 겁낼 필요가 없지만, 문제는 T-34였다.

 방금 전과 같은 방향에서 또 한 대의 T-34가 튀어나와 포탄을 발사했다. 포탄은 포탑 전면부를 맞추곤 튕겨 나갔다.

 "조준 끝!"

 "발사!"

 HV포는 불을 뿜었지만 이번에는 각도가 영 좋지 않았다. 포탄은 T-34의 측면을 비스듬히 맞추곤 도탄 되었다.

 "재장전!"

 닉이 재장전하는 사이 다른 전차가 발포하여 T-34의 측면을 맞추었다. 하지만 놈은 엔진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면서도 끝내 포탑을 돌려 주포를 발사했다.

 -빌어먹을, 궤도 피탄! 기동 불가!

 "쏘아!"

 포탑 아래를 명중시킨 후에야 T-34는 섬광을 일으키며 완전히 유폭 되었다. 잔해가 이곳까지 날아오는 통에 포탑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겨야 했지만.

 호기롭게 기습을 가해온 독일군이었지만, 무기의 성능 차이가 너무나 큰 탓에 전황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T-34는 분명 나쁜 전차는 아니었지만, 하필이면 상대가 코멧이다 보니 전투에 너무나 불리했다.

 코멧은 T-34를 2km 거리에서도 충분히 격파할 수 있지만, T-34가 코멧의 전면장갑을 뚫으려면 못해도 600m 안으로 접근해 전면을 정확히 노려야 했다.

 T-34조차 이런데, 나머지 경전차들은 딱히 말할 필요가 없었다. T-34가 모두 격파되자, 남은 경전차들을 사냥하는 일은 너무나도 쉬웠다.

 "1시 방향에 적 전차, 쏴!"

 표적인 T-26은 장갑이 너무 얇은 탓에, 포탄 한 발에 2대가 동시에 관통되기도 했다. BT-7도 크게 다를 바 없었고.

 최초의 공격으로부터 10분 뒤, 최후의 T-26이 격파됨으로써 갑작스레 벌어졌던 전차전은 막을 내렸다.

 전차들이 모두 격파당하자, 함께 공격을 개시했던 독일군 보병들도 자리를 이탈해 도망쳤다. 아군 전차 2대가 보병들을 데리고 적들을 추격했지만, 별 성과 없이 본대로 돌아왔다.

 아군의 피해는 전차 2대 격파에 2대 손상. 브렌건 캐리어 1대가 격파당하고 보병들은 14명이 전사했다.

 "이놈들은 대체 뭡니까? 이전에 봤던 놈들과는 완전 딴판으로 생겼는데요?"

 전투가 끝나고 보리스가 한 말이었다. 비단 보리스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병사들이 소련제 전차들을 태어나서 오늘 처음 봤다.

 "이 녀석들, 메이드 인 러시아야. 소련에서 만든 놈들이지."

 "아니, 소련 놈들이 만든 전차를 왜 제리들이 굴리는 겁니까?"

 "너 바보냐? 당연히 노획한 거겠지, 그럼 뭐겠어?"

 그건 그렇고, 독일군이 노획한 소련제 전차들을 프랑스까지 끌고 올 줄은 몰랐는데. 나는 궤도가 날아간 채 방치된 T-34로 다가가 녀석을 살폈다. 불은 꺼졌지만 전차에 남아있는 열기 때문에 조금은 거리를 둬야 했다.

 T-34/85는 전쟁기념관에서 실물로 본 적이 있지만, T-34/76은 처음이었다. 가만 보니 격파된 T-34들 모두 형식이 제각각이었는데, 눈앞의 녀석은 1941년형이지만, 다른 녀석들은 포탑이 미키마우스를 닮은 1942년형이었다.

 "몇 번인가 신문에서 녀석을 본 적은 있는데, 실물로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것도 직접 싸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어느샌가 옆에 다가온 게이츠 원사가 말했다.

 "그나저나 도통 이해가 안 되는군요. 뭣하러 이놈들을 굳이 여기까지 끌고 왔을까요?"

 "음, 아무래도 훈련용으로 배치된 놈들을 상황이 급하니까 실전에 투입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아무튼 우리야 다행이죠. 전차의 성능으로 따지자면 잘 쳐도 4호랑 동급, 나머지는 모두 독일제보다 뒤떨어지는 녀석들이니까."

 기동성과 방호력만 빼면, 라이벌인 4호 전차에게 밀리는 게 T-34다. 전차장이 포수를 겸하기 때문에 상황 판단이 늦고, 조준경의 성능도 독일제와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 주포의 관통력도 75mm보다 뒤떨어진다.

 T-34도 이 모양인데, 그보다 몇 단계 아래인 T-26, BT라면? 티라노와 사자의 싸움 수준이다.

 격파된 아군 전차 2대도 조종수용 관측창이 열려있던 탓에 그대로 포탄을 맞고 격파된 것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관측창만 닫고 있었어도 살 수 있었다는 말이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레이 대위!"

 전차 구경을 끝내고 뒤돌아서는데 마침 무어 소령의 외침이 들렸다.

 "구경 다 끝났으면 승차하게. 서둘러서 전진하라는 연대장님의 명령이야. 몽텔리마흐까지는 아직 멀다네."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수많은 전차들의 잔해와 희생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

 연합군의 빠른 진격 속도는 느긋하던 독일군 수뇌부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연합군이 니스를 점령했다고?"

 "벌써 거기까지?"

 "급보입니다! 나르본에 연합군 상륙!"

 사기도 낮고, 무장도 형편없던 비시군은 중무장한 연합군의 상대가 되질 못 했다.

 대다수의 부대들은 연합군이 오기 전에 도망치거나, 얌전히 백기를 올리거나, 아예 연합군에 합류하여 총부리를 돌렸다. 항복이나 도주 대신 싸움을 택한 극소수의 부대들도 얼마 못 가 괴멸되었다.

 그제야 독일군은 연합군의 남프랑스 상륙이 교란책이 아니라 진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틀림없이 적들의 교란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장군들의 말만 믿고 안심하고 있던 히틀러는 뚜껑이 열려버리고 말았다.

 "나에게 뭐라고 했나. 적들의 상륙은 우리의 눈을 속이기 위한 것이고, 진짜는 북부로 온다고?

 그럼 지금 이 사태는 대체 뭔가? 설명을 좀 해보게!"

 "......"

 "이 무능한 놈들! 쓰레기 같은 놈들! 네놈들보다 차라리 페탱, 그 늙은이가 훨씬 더 믿음직하겠어! 적어도 그자는 너희들처럼 기고만장하지 않으니까!"

 한바탕 욕을 퍼부은 후에야 히틀러는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아무리 화내고 욕해봐야 전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적들은 어디까지 진격했지?"

 "서쪽으론 카르카손, 동쪽으론 프랑스-이탈리아 국경까지 진격했습니다. 몽텔리마흐도 위험합니다."

 "해안 방어를 위해 배치한 기갑부대를 전부 남쪽으로 내려보내. 더 이상 놈들이 치고 올라오게 냅둬선 안 돼. 알아들었나?"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히틀러는 회의에 참석한 힘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힘러는 자신이 이끄는 SS와 날을 세우던 국방군 장성들이 총통에게 깨지는 모습을 보며 조용히 조소하고 있었다.

 "힘러, 프랑스로 보냈던 무장친위대 사단들의 재정비는 모두 끝났는가?"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언제든지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저희 SS가 반드시 적들을 지중해로 몰아내겠습니다."

 "자신감 있어서 좋군. 지금 투입할 수 있는 사단들이 모두 얼마나 되지?"

 "모두 6개입니다."

 훈련 및 재정비 차원에서 프랑스로 보낸 무장친위대 사단들은 11개, 그중에서 재편이 끝나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사단은 6개.

 이 6개 사단 모두 기갑사단 및 기갑척탄병사단으로 새로 재편한 최정예 사단들이었다.

 "그렇군. 모두 투입하게. 가서 놈들을 다 쓸어버리라고 전해. 알겠나?"

 "믿고 맡겨주십시오, 총통 각하."

 "총통 각하. 헤르만 괴링 기갑사단도 언제든지 전투 투입이 가능합니다."

 힘러에게 지기 싫었던 괴링도 나서서 총통에게 아첨했다. 괴링이 말하지 않았어도, 히틀러는 공군도 투입할 생각이었다.

 "투입할 수 있는 부대는 모두 투입하게. 공수부대도, 공군 야전사단도 전부 다. 그간 훈련이라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했을 테니, 성과를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겠지."

 회의가 끝나기 전, 힘러는 히틀러를 기쁘게 하기 위해 파리 소식을 들려주었다.

 "파리에 있는 하이드리히로부터의 전보입니다. 파리에 준동하던 레지스탕스들을 소탕하고 불온세력들을 모두 검거했다고 합니다. 파리는 SS에 의해 완벽하게 통치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역시 하이드리히야. 일처리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는군. 계속 믿고 맡겨도 되겠어."

 힘러는 하이드리히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그의 존재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이미 다른 마음을 품은 지 오래라는 것을 힘러는 알지 못했다.

 ***

 "장교들은 모두 집합!"

 "지금부터 사단장님의 훈시가 있겠다!"

 제1SS기갑사단의 사단장인 요제프 디트리히 SS 대장은 느리지만 힘찬 발걸음으로 나타나 연단에 올랐다.

 "모두들, 남프랑스에 연합군이 상륙했다는 소식쯤은 들었을 거다. 놈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이미 남프랑스 소식을 모르는 장교는 없었다. 그리고 적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격하고 있다는 것도.

 "러시아 여행은 취소다. 크리스마스를 모스크바에서 보내지 못하게 된 것은 내 유감을 표하지."

 "하하하하하!"

 전투 때는 매우 진지하고 엄한 디트리히였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이렇듯 가벼운 농담으로 모두를 곧잘 웃기곤 했다.

 "방금 베를린에서 연락이 왔다. 적들을 모두 지중해로 처넣으라는 총통 각하의 지시다. 이 순간만을 위해 모두들 피나는 훈련을 거듭해왔으니, 이제 그 훈련의 진가를 보여줄 차례다. 내 말이 맞나?!"

 "맞습니다!"

 "그래야지! 제군들이 나를 믿듯이, 나 또한 제군들을 믿고 있다. 반드시 승전보를 울려서 총통 각하의 은혜에 보답하도록 한다. 이상,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SS 소위 미하엘 비트만도 남들처럼 오른팔을 번쩍 들어 올려 경례했다.

 ***

 "비트만 SS 소위님, 저희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겁니까?"

 "또 러시아입니까?"

 소대로 돌아온 비트만에게 소대원들이 득달같이 달라붙어 물었다. 비트만은 고개를 저었다.

 "러시아행은 취소다."

 "그러면?"

 "우리는 남쪽으로 간다. 남부에 상륙한 연합군을 몰아내는 게 우리의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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