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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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89화
189화 붕괴의 시작 (2)
우렁찬 야포의 폭음이 푸르스름한 새벽의 침묵을 깨트렸다.
"쏴!"
"쏘아!"
25파운더의 포구에서 오렌지색 불꽃이 튀고, 하늘에선 호커 타이푼 편대가 적진으로 날아가 폭탄을 투하했다.
30분간 이어진 포격이 끝나자, 전차와 보병들의 차례가 되었다.
-전차, 전진!
-중대, 앞으로!
속도가 빠른 크롬웰 전차들이 먼저 돌격하고, 그 뒤를 센추리온들이 뒤따랐다. 원래라면 중장갑의 센추리온들이 적의 화력을 전면에서 받아내며 전진해야 하지만, 상부에선 진격이 느려진다며 속도가 빠른 크롬웰들을 앞세워 공격하는 방법을 택했다.
"우리야 느긋하게 잔챙이들이나 처리하면 되니 얼마나 편합니까?"
"맞습니다, 원래 주인공은 앞이 아니라 뒤에서 폼 잡고 있는 법이죠."
부하들은 굳이 위험한 전면에 서지 않아도 돼서 좋아했다. 노골적으로 기뻐하는 부하들을 보며 게이츠 원사는 아직 멀었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쯧쯧. 아직까지 그리 자신이 없어서야 되겠냐? 안 그렇습니까, 대위님."
"네? 아, 그렇죠.......?"
음, 사실 나도 선두에 나서지 않아서 존나 좋아했는데. 들키지 않게 표정 관리 잘해야겠군.
아군의 진격은 순조로웠다. 서부전선 공세로 병력이 대거 빠진 탓에, 헝가리의 독일군은 쭉정이나 다름없었고, 아군이 공세를 개시하자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독일군의 빠른 붕괴 덕분에, 아군은 헝가리에 발을 디딘 지 사흘 만에 페치를 점령했다. 다음 목표는 커포슈바르였고, 커포슈바르 다음이 유전이 있는 발라톤 호수 일대였다.
다급해진 독일군은 헝가리군까지 투입했지만, 헝가리군의 상태는 루마니아군과 비슷했다. 이미 전쟁에 의욕을 잃은 데다, 독일이 소련에 헝가리를 넘기기로 했다는 사실까지 퍼진 탓에 그들의 전투의지는 바닥이었다.
"대위님, 적들이 보입니다. 모두 백기를 들고 있군요."
이번에 나타난 헝가리군도 모두 투항병들이었다. 아군의 격한 포격 탓에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장교부터 병사까지 너 나 할 거 없이 너덜너덜해진 군복을 입고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된 채 처량한 모습으로 걸어와 백기를 흔들었다.
투항병들의 상당수는 헝가리군이었지만, 독일군이 투항해올 때도 있었다. 이들 역시 전쟁에 지쳐 있긴 마찬가지였다.
"하, 모처럼 신형 전차를 뽑았는데 이래서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쟁 끝나겠습니다?"
끝없이 늘어선 포로들의 행렬을 보며 보리스가 이죽거렸다.
"새끼, 센 척하기는. 속으론 싸울 일 없어서 소리 지르는 거 모를 것 같냐?"
"아이고, 눈치채셨습니까?"
현재까지 아군의 발목을 잡는 것은 오직 보급이었다. 중장갑과 화력을 기동과 맞바꾼 만큼, 센추리온은 크롬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름을 필요로 했다.
"보리스, 기름 얼마나 남았냐?"
"어...... 한 2, 3시간 뒤면 다 떨어질 것 같습니다."
"벌써? 주유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저한테 물어보셔도 제가 뭐라 답변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 참.
1시간 뒤, 중대는 연료 보급을 위해 정차했다. 우리가 멈춰 선 곳은 어느 작은 마을이었는데, 이걸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피난을 떠났는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보급차량이 올 때까지 차나 마시면서 쉬려고 하는데, 멀리서 험버 정찰차 한 대가 달려왔다.
"비상! 적이다! 제리들이야!"
제리들이라고? 느긋하게 앉아 불을 피우던 병사들의 눈빛이 제리들이란 말 한마디에 달라졌다.
"전원 승차!"
험버 정찰차의 전령이 말하길, 독일군 1개 전차중대가 보병들을 대거 거느린 채 마을 방향으로 이동 중이었다고 한다.
"씨발, 어째 너무 잠잠하다 했어."
"주전자에 찻잎을 넣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준비가 끝난 소대부터 움직이도록 한다!
가장 먼저 출발 준비를 끝낸 소대는 우리 소대였다. 마을 인근의 작은 언덕에 오르자, 전령이 말한 독일군 전차들의 행렬을 볼 수 있었다.
"찾았다! 적은 1시 방향, 거리는 약 3km!"
게이츠 원사가 포탑을 돌리자 다른 전차들도 알아서 포탑을 돌렸다. 4호 전차와 3호 돌격포가 뒤섞여 있는 데다 뒤엔 보병들이 대열을 맞춰 행군하고 있었다.
적은 아직 우릴 발견하지 못한 눈치였다. 나는 적들이 표준 사거리인 1km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적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4대의 전차포가 일제히 불을 토했다.
"발사!"
대열 맨 앞의 4호 전차는 유폭으로 포탑이 날아갔다. 유폭을 피한 전차들도 엔진에서 불꽃이 폭죽마냥 튀어 오르는 일은 피하지 못했다.
위풍당당한 전차들만 믿고 행진하던 보병들은 그 철옹성 같던 전차들이 한 방에 박살나는 광경을 보고 얼이 나가버렸다.
"차탄 장전!"
다른 소대들도 속속 도착해 적을 향해 철갑탄과 유탄을 번갈아 가며 쏘았다. 포탄에 맞을 때마다 독일군 전차들이 밥솥처럼 터져나가는 광경이 참으로 볼만했다.
독일군도 이쪽으로 공격을 가하긴 했지만, 88조차 튕겨내는 센추리온에 먹힐 턱이 없었다.
결과는 아군의 완승. 독일군 전차, 돌격포 15대 모두 완파에, 보병들은 전차들이 당하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물론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우리가 아니라서 열심히 유탄과 기관총을 갈겨줬다. 하하하.
나름 채비를 갖춰 반격을 시도하고자 했던 독일군의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전투가 끝난 뒤,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그레이 대위! 그레이 대위!"
"무슨 일이십니까, 중대장님?"
"우리가 전멸시켰던 제리들 말일세. 알고 보니 사단에 남아있던 전차들 전부라고 하네."
"......예?"
무어 소령이 말하길, 우리가 고철 더미로 만든 4호 전차와 3호 돌격포들이 독일군 제244보병사단 소속 기갑차량들의 전부라고 한다.
사단이 보유하고 있는 기갑차량이 꼴랑 15대라고? 남들이 들으면 그런 의문을 품겠지만, 전쟁 말기의 독일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 남는 일이다.
LSSAH, 다스 라이히, GD사단 같은 네임드 사단들조차 사단에 보유한 기갑차량이 10대 안팎이었을 정도로 대전 말 독일군의 기갑전력은 씨가 말랐다.
거기다 서부공세로 웬만한 전차들을 죄다 빼갔을 테니, 다른 사단들도 대부분 비슷한 처지이리라.
헝가리의 독일군은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
뫼즈강과 인접한 도시 씨네에선 연일 미군과 독일군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뫼즈강까지 코앞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힘을 내라, 제군들! 승리를 위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말 한마디가 가지는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연승으로 사기가 부쩍 오른 독일군은 기세좋게 돌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미군도 만만찮았다.
"크라우츠 놈들이 몰려온다! 사격 개시!"
"겁먹지 마라!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 모두 죽을 각오로 싸워!"
비록 방심하여 기습을 허용했지만, 미군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곤 대응에 나섰다.
작은 소도시인 씨네는 미군에 의해 철저하게 요새화되어 독일군의 진격을 가로막았다.
창문마다 배치된 기관총이 불을 뿜고, 건물 사이사이, 골목에 배치된 전차와 대전차포가 독일군을 향해 불을 내뿜었다.
"목표, 3호 돌격포! 거리 450, 철갑탄!"
"장전 끝!"
"발사!"
포격에 맞아 무너진 돌무더기는 의외로 좋은 방패가 되었다. 돌무더기 뒤에 숨어 포탑만 내놓은 채 주포를 발사하는 셔먼으로 인해 독일군은 벌써 2대의 기갑차량을 잃었다.
정면의 셔먼 때문에 길이 막히자, 독일군은 측면으로 우회했다. 하지만 이는 미군이 의도한 것이었다.
"왔다, 타이거다!"
"멍청아, 저게 어딜 봐서 타이거냐? 저건 4호 전차야!"
"잡담은 그만둬. 명심해라, 놈이 모퉁이를 돈 후에 쏴라."
"알겠습니다, 상사님."
잔해 뒤에 숨어있던 미군들은 4호 전차가 나타나자 그들만의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지금이다, 쏴!"
-쾅!
원통형의 대전차무기, 바주카가 불을 뿜자 4호 전차의 측면에 구멍이 뚫리면서 화염이 터져나왔다. 잠시 뒤 전차병들이 해치를 열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거나 먹어라!"
탈출하는 전차병들을 기다리는 것은 톰슨 기관단총의 일제사격이었다. 전차를 뒤따르던 독일 보병들은 전차가 당하자 그대로 엎드렸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수류탄이 폭발하자 독일군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아직까지 점령을 못 했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죄송합니다만, 미군의 저항이 너무 거셉니다! 적들이 도시를 완전히 요새화한 탓에 진입이 어렵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뚫게! 오늘 저녁까지는 씨네를 점령해야 뫼즈강까지 진격할 수 있단 말일세!
미군의 결사 항전으로 피해가 커지자, 초조해진 독일군은 예비병력들까지 모조리 투입했다. 독일군의 계속된 공세에, 여태껏 잘 버티던 미군도 점차 한계에 봉착했다.
"이게 마지막 철갑탄입니다!"
"탄약도 얼마 안 남았어!"
"박격포탄 더 없어?"
"화염병을 준비해!"
오전부터 쉬지 않고 쏘아댄 탓에, 전차와 대전차포 모두 탄약이 바닥을 드러냈다. 병사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벨기에 민간인들의 도움을 받아 만든 화염병을 들고 대기했다.
"씨발, 판터다. 하필이면 가장 까다로운 새끼가 왔어."
"왜 우린 저런 전차가 없냐고."
독일군의 판터가 나타나자, 미군들 사이에서 절망 어린 한탄이 퍼졌다. 영국제 6파운더를 복제한 57mm 대전차포가 먼저 사격을 가했지만, 판터는 거뜬하게 튕겨냈다.
"정면에 대전차포다!"
"사격!"
판터의 75mm 주포에서 불꽃이 튀자, 대전차포는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보병들은 판터와 함께 전진했고, 탄약이 부족한 미군은 독일군이 다가오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셔먼도 한 발밖에 남지 않은 철갑탄을 발사했지만, 이 역시 허무하게 튕겨 나갈 뿐이었다. 판터가 재차 발포하자, 이번엔 셔먼의 포탑이 갈라지면서 화염이 흘렀다. 고온의 화염이 전차 내부를 휩쓸자 전차병들은 탈출도 못 하고 녹아버렸다.
모든 미군 병사들이 죽음을 각오한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위풍당당하게 다가오던 판터가 별안간 폭발하며 멈추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런 상황에 얼이 나간 미군들은 곧 판터를 격파한 장본인을 발견하곤 환성을 질렀다.
"머스탱이다!"
"이제 살았어!"
창공의 신사, P-51 머스탱이 나타나 로켓포와 기관총을 퍼붓자 독일군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머스탱 편대가 가장 먼저 전장에 도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패튼이 이끄는 지원군도 씨네에 도착하여 독일군을 몰아붙였다.
"돌격! 다 쓸어버려!"
"여기가 제리들의 무덤이다!"
M4 셔먼과 M10 울버린이 일제히 포격을 퍼붓고, M1 개런드와 M3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보병들이 퇴각하던 독일군의 등을 향해 총탄을 쏘아댔다. 승리를 믿고 있던 독일군은 단숨에 전의를 잃고 도망쳤다.
"독일군이 퇴각하고 있습니다!"
"쫓아. 다시는 놈들이 우릴 업신여기지 못하게 제대로 혼구녕을 내주라고."
방탄판을 단 지프차에 탑승한 패튼은 전장에서 들려오는 전차의 포성과 독일군의 비명을 들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독일군을 몰아냈다는 사실보다 그를 더욱 기쁘게 만든 것은 숙적인 몽고메리가 아직도 교통 문제로 전선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는 소식이었다. 이걸로 한동안 그 밥맛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닐 수 있겠군.
"아이젠하워, 그 친구도 이 현장을 직접 봤어야 했는데. 우리가 독일 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광경을 말이야. 안 그런가?"
"그, 그렇습니다......."
연합군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