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84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84화
184화 결전 준비
소련과의 평화조약으로 겨우 숨을 돌린 독일에게 루마니아의 반란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루마니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 탓에, 독일군은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 루마니아 곳곳에 포위된 독일군은 그대로 고립되거나, 간신히 탈출해 헝가리로 도망쳤다.
내부에선 당장 루마니아를 재공격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지만,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루마니아는 포기할 수밖에 없네. 어차피 소련한테 넘기기로 한 땅이니, 희생을 치르며 공격해봤자 결국엔 소련 차지가 될 뿐이야."
베크는 루마니아을 재점령해야 한다는 내부의견을 묵살하고, 대신 헝가리 방비를 보충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루마니아 플로이에슈티 유전을 잃은 지금, 독일이 석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헝가리의 유전뿐이었다.
독일에겐 다행히도, 연합군에겐 한동안은 공세를 펼칠 생각도, 여력도 없었다. 늘어난 전선은 필연적으로 보급의 지체를 가져왔고, 이어진 격전으로 병력과 물자의 손실 또한 심각한 수준이었다.
연합군이 진격을 멈추고 재보충에 들어가자, 독일도 이 틈에 서둘러 재정비에 나섰다. 그 결과 전선에는 1939년 겨울과 1940년 봄 사이에 있었던 기묘한 평화가 다시 재현되었다.
"소련군은 어디까지 전진했나?"
"우크라이나는 완전히 넘어갔고, 발트 3국에서도 독일군이 철수 중입니다.
그리고 헬싱키가 완전히 소련군에게 넘어갔습니다."
독일과의 전쟁이 종결되자, 소련군은 드네프르 전선에 투입되었던 병력들을 열차에 태워 북으로 올려보냈다.
열차에서 내린 병사들은 곧바로 핀란드군과의 전투에 투입되었다.
히틀러 사후 반의 반토막으로 줄어든 독일의 지원마저 끊긴데다 상대해야 할 소련군이 늘어나자, 약소국인 핀란드는 소련에 평화협정을 애걸했다. 하지만 소련의 반응은 묵묵부답이었다.
이미 핀란드를 완전히 합병하기로 마음먹은 스탈린은, 핀란드의 강화 요청을 무시하고 진군을 명령했다. 비록 무지막지한 희생이 뒤따르긴 했지만, 끝끝내 붉은 군대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입성하여 겨울전쟁의 굴욕을 갚는 데 성공했다.
"핀란드 정부는 현재 라우마로 피신했습니다. 아무래도 스탈린은 핀란드를 완전히 합병하려는 모양입니다."
"그 늙은 빨갱이 놈. 욕심이 끝이 없군."
처칠은 혀를 찼다. 다급해진 핀란드는 미국과 영국에게 중재를 요청했지만, 이미 그들의 경고조차 무시하고 독일과의 평화조약에 도장을 찍은 소련이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서방측의 경고와 애원, 타협에도 소련군은 전진을 거듭했다. 핀란드는 독일 신정부의 무장해제에 반발하여 자국에 귀순한 SS 병력들까지 자국 방어에 투입했지만, 수도의 함락을 막지 못했다.
여전히 핀란드는 소련군의 공격에 저항하고 있었지만, 결과는 사실상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러다간 정말로 러시아인들이 유럽 전역을 공산화시킬 거요. 그전까지 빨리 전쟁을 끝내야지."
핀란드 소식을 들은 처칠은 더욱 조급해졌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그에게 유럽의 공산화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루마니아를 공산화의 마수로부터 구해내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독일은 항복을 거부하며 저항할 의지를 피력했고, 군은 보급 문제로 진격을 멈췄다.
이로써 1943년이 끝나기 전에 유럽에서의 전쟁을 종결시키겠다는 원대한 계획은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차라리 그때 독일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나.'
독일이 소련과 강화조약을 맺으리라곤 꿈에도 예상 못했었기에,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는 처칠에게 일말의 후회와 쓴맛을 안겨다 줬다.
독일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주고 강화에 찬성했다면, 지금쯤 전쟁은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쩌면 루스벨트도 지금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거를 후회한다고 과거가 달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 그가 할 일은, 남은 전쟁을 끝내는 것뿐.
"러시아인들이 노르웨이와 이탈리아까지 손에 넣기 전에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야만 하오. 여기서 전쟁을 더 끌었다간, 필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거요."
처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지만, 당장 전쟁을 끝낼 수 없는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아군은 언제쯤 다시 공세에 나설 수 있소이까, 장군."
"계획대로라면 내년 1월쯤에 독일 본토 진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이젠하워가 대답했다. 허나 아이젠하워가 우려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문제는 독일군도 현재 지크프리트선 축조에 집중하고 있는 중입니다. 공습과 물자 부족으로 축조 자체는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는 중입니다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내년 1월에 완전히 준비가 끝난 상태에서 공세를 나선다고 해도, 방어선 돌파에 상당한 희생이 따르리라고 예상됩니다."
"흐음."
소련군만큼이나 연합군 수뇌부가 우려하는 대상은 바로 지크프리트선이었다. 매일같이 공습을 퍼부어 공사를 방해하곤 있지만, 독일은 악착같이 복구를 거듭했다.
현재 지크프리트선은 약 40%가 완료된 상황으로, 진행 상황을 보건대 내년 1월에는 80%가 완공될 것으로 예정되었다.
물론 연합군이 작정하고 돌파를 감행한다면 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크프리트선 돌파에 소요될 병력과 물자, 시간을 생각한다면 정면 돌파는 무척이나 꺼려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재선을 노리는 처칠과 전후 미합중국 대통령 출마를 노리는 아이젠하워에게 대규모 인명피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이탈리아를 통한 독일 본토 진공은...... 사실상 힘들 것 같고."
머리를 굴리던 처칠은 지도 한구석을 가리켰다.
"덴마크는 어떻소? 우리가 상륙한다면, 덴마크인들은 틀림없이-"
"무리입니다."
처칠의 장광설이 시작되기도 전에 아이젠하워가 칼을 빼 들었다.
"독일군은 이미 덴마크 해변 일대에 강력한 방어시설을 구축했습니다. 오히려 덴마크 상륙을 시도하면 우리 측 병력이 분산되어 독일 본토 진공에 더더욱 차질이 생길 겁니다."
"끄응."
졸지에 말문이 막힌 처칠은 아이젠하워를 매섭게 노려봤지만, 아이젠하워의 설명이 옳았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정면공격. 피해가 크겠지만 지크프리트선 돌파에 성공한다면 곧바로 독일 공업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루르 공업지대를 칠 수 있게 된다.
루르를 점령하면, 독일은 더 이상 전쟁에 필요한 전쟁병기들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루마니아를 잃은 독일은 헝가리의 유전에서 필요한 기름을 충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헝가리까지 손에 넣는다면, 독일은 더 이상 기름을 구할 수 없을 겁니다. 러시아인들이 제공해주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연합군의 공격 목표는 지크프리트선 돌파와 헝가리 점령, 이 두 가지로 최종적으로 결론지어졌다.
***
"이게 바로 우리의 신형 전차로군."
지크프리트선 돌파와 헝가리 공격을 최종 결정한 다음 날, 처칠은 극비 보고를 받았다.
바로 영국의 신형 전차 개발이 완료되었다는 보고였다.
독일 본토 공략을 앞둔 상황에서, 영국군은 기존에 사용되던 크롬웰, 셔먼보다 더 강력한 전차를 요구했다. 앞의 두 전차와 현재 전선 각지에서 쓰이고 있는 코멧은 분명 훌륭한 전차였지만, 독일의 티거, 판터를 상대로는 여전히 불리했다.
영국군의 조건은 단 하나. 오직 티거, 판터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전차였다.
그리고 그 전차가 지금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놈 참 튼튼하게도 생겼구만."
처칠이 시선을 돌리자, 대기하던 기술자가 전차의 제원에 대해 설명했다.
"차체 전면의 76mm 경사장갑은 실질적으로 140mm 두께의 장갑판과 동일한 방호력을 내며, 포탑 정면은 130mm에 달합니다. 표준거리에서라면 독일군의 4호 전차의 공격을 방호해낼 수 있으며, 17파운더를 탑재하여 모든 독일군 전차를 한 방에 격파할 수 있습니다."
"아주 좋군."
크롬웰과 셔먼은 말할 필요도 없고, 코멧조차 방호력 문제로 4호 전차를 상대로 완전한 우위를 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신형 전차라면 4호를 상대로 완전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물론, 그동안 연합군 전차병들의 악몽으로 군림해온 티거, 판터를 상대로도 대등하게 싸우는 게 가능했다.
그야말로 꿈에서나 그리던 전차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방어력이 늘어난 대신, 단점도 있습니다. 우선, 무게가 46톤으로 늘어나 교량의 통과에 다소 제약이 따릅니다. 그리고 속도도 39km/h가 최대입니다."
크롬웰의 중량이 28톤, 코멧이 33톤인 것을 감안하면 무거워도 너무 무거웠다. 명색이 순항전차임에도 최고속도가 40km/h도 되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늘어난 중량은 확실히 단점이었지만, 처칠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원래 얻는 게 있으면 그만큼 잃는 법 아닌가? 어찌되었든 그놈의 타이거만 확실하게 잡을 수 있으면 상관없는 문제네."
처칠은 이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전차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참. 그걸 안 물어봤군. 이 전차의 이름은 뭔가?"
"A41 센추리온(Centurion, 백부장)입니다, 각하."
***
헝가리 트란실바니아로 퇴각한 독일군은 우려와 달리 재공격하지 않고 그대로 눌러앉는 편을 택했다.
언제라도 독일군이 부쿠레슈티로 쳐들어올지 모른다며 부산을 떨던 루마니아인들은 독일군이 쳐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평온을 되찾았다.
이쪽도 재편성과 보급 문제로 한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그래도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뛰어다니는 것보다 나았기에 불평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빅 뉴스.
우리 대대에 신형 전차가 지급되었다. 지급된 전차는 모두 6대로, 실전에서의 시험을 위해 경험이 풍부한 우리 대대에 배치된 것이었다.
새로 지급받은 신형 전차의 정체는 바로 센추리온이었다. 본래 나치의 중전차를 잡기 위해 개발되었다가 정작 한국전쟁에 처음 투입되어 빨갱이들을 도륙하며 명성을 떨친 명전차.
이후 중동전쟁과 베트남전쟁, 인도-파키스탄 전쟁 등 세계 각지의 분쟁에 투입되어 활약한 놈이다. 그런 녀석이 마침내 우리 대대에 도착한 것이다.
"기술자들이 말하길 이 센추리온 전차는 제리들의 타이거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군."
"척 보기에도 강력해 보입니다."
브랜슨 대령과 무어 소령 둘 다 신형 전차의 위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벌써 병사들은 생일날 선물을 받은 아이들처럼 들떠 육군의 새로운 선물을 요리조리 살피고 있었다.
"확실히 우리 부대가 에이스 부대인가 봅니다. 신형이 나왔다 하면 바로 이곳으로 배달되니까요."
게이츠 원사도 들뜬 모습이다. 나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놓인 센추리온은 분명 내가 알던 센추리온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내부는 조금 달랐다.
우선, 승무원이 4명(전차장, 포수, 탄약수, 조종수)이 아니라 5명(전차장, 포수, 탄약수, 조종수, 부조종수) 그대로라는 점이 달랐는데, 본래라면 탄약고였을 공간이 부조종수 자리가 되어 있었다.
굳이 이렇게 설계한 이유가 있는 건가? 차체에 기관총도 달려 있지 않은데 굳이 부조종수 자리를 만들어 넣은 건 암만 생각해도 뻘짓 같은데.
그나마 차체 장갑은 내가 알던 76mm 그대로라서 마음이 다소 놓였다. 이걸로 4호 전차나 3호 돌격포는 물론이고, 거리만 충분하다면 88mm까지 막을 수 있다. 4호 전차에게 선빵을 당하면 격파당하던 코멧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였다.
이 전차와 마주한 독일군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궁금해 죽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