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07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07화
207화 종전
1944년 3월의 마지막 날,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항복을 선언했다.
이로써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브랜슨 대령으로부터 천황의 항복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바로바로 함성이 터져 나오진 않았다.
너무 뜻밖의 소식이었기에, 다들 얼빠진 얼굴로 서로를 쳐다볼 뿐.
"천황이...... 항복을 선언했다는 말입니까?"
"그래. 상부에서 그러더군. 일본 전역에 천황의 항복 선언이 방송되고 있다고 하네. 게다가 조금 전 우리 정부에도 통보되었고."
일본의 항복.
꿈에도 그리던 종전이 드디어 실현되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일이 마침내 현실이 되었지만, 다들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멍한 채로 있었다.
그러다가 밖에서 들려온 함성에 다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아아아아아!!!"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
"이제 집에 간다!"
장교들과 달리 병사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모든 병사들이 너 나 할 거 없이 만세를 지르며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허공으로 던졌다.
병사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고 나서야 그제야 전쟁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났다.
"하, 하하, 하......!"
"드디어!"
"집에 간다!!!"
화산이 폭발하듯,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 5년간 참아왔던, 기쁨의 함성이었다.
***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서 시국을 수습하고자 충성스러운 그대 신민에게 고한다.......
아무쪼록 거국일가 자손이 서로 전하여 굳건히 신주의 불멸을 믿고,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것을 생각하여 장래의 건설에 총력을 기울여 도의를 두텁게 하고, 지조를 굳게 하여 맹세코 국체의 정화를 발양하고 세계의 진운에 뒤쳐지지 않도록 하라.
그대 신민은 이러한 짐의 뜻을 명심하여 지키도록 하라.
"드디어 끝났군."
일본 전역에서 동시에 흘러나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히로히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스즈키는 고개만 숙일 뿐 묵묵부답이었다.
"내 하나만 묻겠소."
"하문하시옵소서."
"연합국이 정말로 짐을 가만히 놔둘 것 같소이까?"
패전의 낌새가 짙어지기 시작한 이후부터, 히로히토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승전국인 연합국이 자신을 가만히 놔둘 것이냐, 아니면 어떻게든 보복하려 할 것인가.
비록 천황제 유지 조건이 받아들여졌다지만, 히로히토는 여전히 불안했다. 천황제를 유지시켜준다고만 했지, 천황인 자신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폐하. 저들은 결코 폐하를 함부로 해하려 들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 이유는?"
"폐하는 일본의 중심이자 상징이시기 때문이옵니다. 저들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터, 폐하께선 옥체를 보존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원하던 대답이 나오자 히로히토는 그제야 방긋 웃었다.
"그렇군.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오."
그렇지. 비록 패전국이긴 하나, 자신은 여전히 일본의 중심이자 상징이다.
연합국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알게 된다면, 결코 어찌하지 못 하리라.
물론 이전과 같은 권위는 두 번 다시 누리지 못할 것이고, 연합국의 의중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신세가 되겠지만, 그건 군부 놈들이 한창 소리치고 다닐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마음이 완전히 놓인 히로히토는 미소를 지으며 시종이 타온 말차를 음미했다. 창문 바깥으로 반쯤 망가진 도쿄의 풍경이 들어왔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
"축하드립니다, 각하!"
"축하드립니다!"
"모두 고맙네, 고마워."
루스벨트는 휠체어에서 당장 일어나 백악관 내부를 뛰어다니며 만세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놈의 신체가 발목을 잡았다. 그는 이 기쁜 날에도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지만, 그 상실감을 잊을 정도로 무척 기뻤다.
치욕의 날 선언으로부터 3년 만에 미국은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진주만에 가라앉은 영혼들도 분명 기뻐하고 있을 테지."
길고 고통스러웠던 전쟁은 이제 끝났다. 미국은 승리했고, 일본은 패배했다. 이제 미국이 할 일은 패전국 일본을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재편하고, 나아가 소련과 함께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이 세상에 이토록 거대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
거리마다 종전을 축하하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유니언 잭을 흔들며 승리를 축하했다. 애인, 친구, 또는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만세를 외치는 사람부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상이용사들, 곧 제대할 생각에 부푼 병사들과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기자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거리를 메웠다.
"드디어 전쟁이 완전히 끝나구려."
"경축드립니다, 폐하."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짓던 조지 6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 자리 잡은 처칠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모든 공로는 모두 경 덕분이오.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경에게 빚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과찬이십니다, 폐하. 저 같은 한낱 정치인 덕분에 전쟁에서 이긴 게 아니라, 국민들이 용감해서 이긴 것이지요."
국왕의 칭찬에 처칠은 특유의 오만한 대답 대신 겸손 가득한 말로 자신을 낮추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히틀러에 맞서 결사항전을 주장했던 자신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소련 문제로 머리가 복잡했다. 비록 참전 기간은 짧지만, 소련은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었다고 해도 무방한 국가였다. 가장 적은 피해로 드넓은 만주 땅을 손에 넣었으니 말이다.
스탈린이라면 틀림없이 이 기회를 활용해 극동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막는 임무는 미국과 영국에게 달려 있고.
전쟁은 끝났지만 그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
"축하드립니다, 장대인. 예, 예, 그럼......."
후우.
장제스와의 통화를 마친 김구는 참아왔던 한숨을 토해냈다.
길고 길었던 전쟁이 끝났다.
일본이 항복했으니 조선, 아니 한국은 이제 독립할 것이다.
이는 분명 기쁜 일이다. 경술국치 이후로 35년 동안이나 일본의 지배를 받아왔던 조국이, 마침내 바라던 독립을 맞이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하지만, 기쁨만큼이나 걱정도 컸다.
전쟁 기간 동안, 광복군은 그리 많은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한 일이 아주 없다고 할 수 없으나, 빈말로도 많다고 할 수가 없었기에 김구는 앞으로의 일들이 걱정스러웠다.
국제사회는 본래 냉혹한 법. 오직 힘의 논리만 통하는 세계에서 한국처럼 작은 약소국들은 미국이나 소련 같은 강대국들에 의해 원치 않는 운명을 맞이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겨우 이뤄낸 독립을 다시 타국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터.
김구는 창문 밖을 내려다봤다. 좁은 길목에는 승전을 축하하는 중국인들로 넘쳐났다. 곳곳에서 청천백일만지홍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눈에 익은 깃발도 보였다.
바로 대한민국의 태극기였다.
임시 정부 요인 몇 명이 가족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이 외치는 만세 소리는 중국인들의 함성과 함께 김구의 귀에 닿았다.
앞으로의 일들이 걱정이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기뻐하는 게 이치에 맞겠지.
"선생님. 장대인께서 보내신 차가 도착했습니다. 슬슬 가시지요."
"그래, 가지."
김구는 미소를 지으며 임시정부 청사의 삐꺽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
일본의 항복이 전 세계에 발표되자, 중국과 동남아 각지에서 싸우던 일본군도 하나둘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들이 모시던 살아있는 신, 천황이 직접 항복을 선언한 이상 싸울 이유가 더는 없었다.
일본군의 항복을 직접 받아내 그들을 무장 해제시키는 일도 우리의 일이었다. 비록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상부로부터 이동 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대해 불평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전쟁은 끝났으니까.
"전쟁도 끝났으니까 우리도 곧 집에 가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하지, 인마."
"이번 해는 정말로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보낼 수 있겠네."
언제쯤 돌아가게 되느냐와 돌아가서 무엇을 할지가 우리의 관심사였다.
"행보관님은 어쩌실 겁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냐. 평생을 군대에서 보냈는데, 당연히 군대에 계속 있어야지. 정년 때까지."
"수십 년 동안이나 복무하셨는데 군대가 지겹지도 않으십니까?"
"야, 야. 니들이 아직 몰라서 그러는데, 내 나이 때는 사회 나와서 반겨주는 곳이 별로 없어요. 벌 수 있을 때 열심히 벌어둬야지."
게이츠 원사는 예상대로 군대에 남는 편을 선택했다.
닉은 공부해서 대학에 가는 게 목표라고 한다.
제레미는 호주에 사는 친척의 농장에서 일할지,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자전거 수리점을 이을지 고민했다.
보리스는 군대에서의 경험을 살려 트럭 운전수로 일할 계획이었다.
"소대장님은요?"
"응? 나?"
"예. 소대장님은 어쩌실 겁니까? 행보관님처럼 군대에 계속 있으실 겁니까?"
"음, 특별한 일이 없다면 당장은 군대에 계속 남아있을지도?"
소대장, 그것도 대위씩이나 달고서 다소 부끄러운 얘기지만, 아직 나는 뭘 할지 정하지 못했다.
내가 우유부단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뭘 먼저 선택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다.
그동안 내가 세운 공적을 생각하면 군대에서 정년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허나, 내가 아는 역사에서처럼 이 세계에서도 수많은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군대에 남아있는 게 다소 꺼려지기도 했다. 또 전쟁터에서 구르는 일만큼은 반드시 사양하고 싶으니까.
제대해서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가 어떻게 하려나? 바로 자신의 후계자 교육을 시작하려나? 아니면 대다수의 귀족들이 그러하듯 정치에 입문시키려나?
-여기는 들소. 정면에 일본군이 보인다.
상념에 젖어있던 나는 무전을 듣곤 정면을 바라봤다.
우리가 향하는 길 맨 끝에 일본군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것을 아는데도, 적을 보자 자연스레 긴장감이 느껴졌다. 바로 직전까지 열심히 떠들던 부하들도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적이 아직 항복 소식을 받지 못했거나, 이를 무시하려 들 경우에 대비하여 전 차량 모두 언제든지 발포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일본군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싸우려 들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다가오자, 그들은 우리가 지나갈 수 있게끔 길에서 비켜섰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가 자신들을 향해 발포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자,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
"저는 아직도 안 믿겨집니다."
아군 병사들의 감시하에, 얌전히 무기를 반납하는 일본군들을 보며 닉이 말했다.
"쟤네들이 며칠 전까지 우리와 싸웠던 그놈들이 맞긴 한 건지."
사무라이 정신이니 뭐니 하면서 싸울 때는 광견병 걸린 투견처럼 싸우다가도, 오야붕이 머리 숙이면 뒤따라 머리 숙이는 게 일본인들의 전통이었다.
전후 일본의 게릴라 활동을 우려해 일본 본토에 50만 대군을 주둔시켰던 맥아더조차 일본인들의 굴종에 깜짝 놀랐다고 하지.
21세기에서 살아서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아는 나조차도 실제로 보니 놀랍기 짝이 없는데, 얘네들은 오죽할까.
"얼마 전까지 미친놈들처럼 죽자고 달려들 땐 언제고, 전쟁 끝나기 무섭게 저렇게 얌전해 지다니. 대체 뭐야, 저놈들?"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저게 저놈들 전통이니까. 보스가 대가리 박으면 아랫놈들도 대가리 박는 거."
"아니, 저렇게 얌전하게 지낼 수 있으면서 전쟁은 대체 왜 일으켰답니까?"
"그러니까 전쟁은 일으킨 거지. 위에서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복종하는 그 습성 때문에 말이야."
주군의 명령이라면 그 어떤 부당한 명령이라도 항명 대신 철저히 복종하는 것을 일본인들은 역사 대대로 미덕으로 삼았다.
이는 서로 간의 분쟁을 억누르고, 사회의 질서 확립 유지라는 대의명분 때문이었지만, 오히려 이 철저한 복종문화로 인해 일본은 전쟁을 일으켰고,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렸다.
스스로의 평화를 위해 만든 규칙이, 종국에는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가게 한 지름길이었다는 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천황의 옥음방송 후, 동남아와 중국 각지의 일본군은 항복했지만, 만주에선 여전히 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관동군 수뇌부가 소련군에 투항하면서 끝을 맺었다.
4월 16일, 도쿄만에 정박한 미 해군 전함 미주리호에서 항복 조인식이 열렸다.
수천, 수만 명에 달하는 미 해군 수병들과 연합군 대표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 대표단은 일본 정부를 대표해 항복 문서에 사인했다.
이로써 2차 세계대전은 완전히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