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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06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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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06화

 206화 떨어지는 태양 (7)

 일본군은 나름대로 악착같이 저항했지만, 대세를 바꾸진 못했다.

 방콕은 끝내 함락되었고, 방콕에 주둔하던 일본군 병력들은 괴멸하거나, 도주하거나, 또는 항복했다.

 같은 날, 태국 정부에서 연합군 사령부로 사절을 보냈다. 사절단 왈, 대충 우리는 저 나쁜 일본 놈들이 하는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싸운 것이니 이해해달라고.

 즉, 한 번만 살려달라 이 말이다.

 상부와 사절단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몰라도, 이날 저녁에 태국은 정식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이미 승기를 잡은 마당에 태국 하나가 추가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냐마는, 그래도 몇 안 되는 동맹국까지 잃은 일본의 충격은 제법 클 터였다.

 하지만 방콕 함락 다음 날, 태국의 전향보다 더 큰 소식이 전해져왔다.

 "참 미친놈들......."

 누가 '그 일본' 아니랄까 봐, 이놈들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데 재주가 있다.

 당장 나라가 망하기 직전인데, 쿠데타를 일으키다니. 참 징한 놈들이 아닐 수 없다.

 "대대장님, 그럼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겁니까?"

 갑작스런 쿠데타 소식에 당황한 무어 소령이 물었다. 브랜슨 대령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상부에서도 아직 정보 수집 중이네. 일단 한 가지 확실한 소식은 지금 도쿄에선 시가전이 한창이라는군. 쿠데타군과 정부군 사이에서 말일세."

 "천황과 정부 인사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 관심사는 오직 그들의 행방뿐이었다. 이들이 행여 다치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단지 이들이 죽거나 행방불명될 경우, 전쟁을 끝낼 유일한 수단이 사라지는 셈이니 전쟁이 더 길어질 터였다.

 "확인되지 않았네. 뭐, 조만간에 알게 되겠지."

 "참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군요. 당장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자기들끼리 총질이나 하고. 허참."

 무어 소령은 진심으로 어이가 없는 눈치였다. 예로부터 망국 직전인 상황에서도 밥그릇 싸움이나 하다 나라를 시원하게 말아먹은 경우는 수없이 많지만, 나름 문명의 시기라 자부하던 20세기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허나 일본이 어떤 나라던가. 기름이 부족하다면서 기름을 수출하는 나라에 선빵을 갈기고, 포로 학살을 밥 먹듯이 해대고, 육군과 해군이 협력은커녕 상대방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희대의 개막장 국가가 아니던가.

 당장 일반 시민들조차 군부와 정치권의 추태에 반기를 들기는커녕, 되려 좋다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영화 <몰락>에서 괴벨스가 이런 말을 했지. 이 모든 사태는 국민들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고. 아무도 그들에게 자신들을 뽑아달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고.

 그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무지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을 뿐이었다.

 ***

 누가 봐도 패전이 목전까지 치달았는데도, 다수의 일본인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독일, 이탈리아와 달리, 일본 본토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덕분에 공습을 제외한 다른 종류의 공격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또한 대본영의 조작된 승전 발표만 믿고 있던 국민들은 황국이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쿠데타를 일으킨 주전파 장교들의 생각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비록 전황이 불리하다지만, 일본은 아직 싸울 여력이 남아있다.

 전 국민이 총이나 하다못해 죽창을 들고, 결사항전의 기세로 저항한다면, 연합군은 1억 명이나 되는 대군과 맞서야 한다.

 결국 먼저 지쳐 협상을 타전해오는 쪽은 연합군이 될 터.

 조금만, 조금만 더 싸우면 되는데 항복이라고?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생각을, 당연하다는 듯이 주장하는 주전파들의 눈에 주화파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팔아먹고자 하는 매국노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천황 폐하를 업신여기는 매국노들을 모조리 다 죽여버려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다 쓸어버려!"

 황궁으로 향하는 쿠데타군과, 이를 막으려는 정부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지자, 도쿄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공황상태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하는 시민들을 쿠데타군의 전차와 장갑차가 그대로 치고 지나가고, 흥분한 장교들과 병사들은 급기야 눈에 띄는 모든 물체를 향해 총을 쏴댔다.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주화파 매국노들로 보였다.

 "항복을 주장하는 매국노들이 천황 폐하를 인질 삼아 적에게 항복하고자 했다. 이에 우리는 천황 폐하와 황국의 안녕을 위해 들고 일어섰다!"

 "황국의 충실한 신민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적과 싸운다! 1억 명이 총옥쇄의 각오로 싸운다면, 황국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NHK를 장악한 쿠데타군은 자신들의 이상을 시민들에게 설파하며 '거사'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그들의 생각과 달랐다.

 황국을 수호하기 위해 일어섰다는 작자들이 수도 한복판에서 총질을 해대고, 당황한 시민들을 보호하거나 안심시키려 들기는커녕 전차로 깔아뭉개다니.

 설상가상으로 히로히토의 칙명이 발표되자 상황은 단숨에 반전되었다.

 "반란에 가담한 이들은 모두 들어라! 천황 폐하께서 지금 즉시 원대로 복귀할 것을 명령하셨다!"

 "제군들은 지금 속고 있다! 천황께서는 무사하시며, 황궁에 상주하고 계신다! 즉시 원대복귀하라!"

 급기야 히로히토의 음성까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자, 쿠데타에 동원된 병사들과 초급 장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짐의 충실한 신민들과 병졸들은 들으라. 짐이 너희들에게 명령하니 즉시 무의미한 전투를 멈추고 원대로 복귀하라. 반역자들의 사탕발림에 놀아나지 마라.

 "뭐야? 우리가 전해들은 말이랑은 다른데?"

 "우리가 속은 건가?"

 "천황 폐하께서 직접 명령하시는데 어찌......."

 쿠데타군 수뇌부를 제외한 다수의 병사들은 그저 상관의 명령에 따라 끌려 나온 이들이었다.

 난데없이 트럭에 태워 도쿄로 데려와 놓고, 눈에 띄는 모든 '반역자'들을 사살하라고 명령하기에 그렇게 따랐을 뿐.

 투항 권고 방송을 들은 병사들이 무기를 내려놓자, 단숨에 상황은 역전되었다.

 황궁 근처까지 진격했던 쿠데타군은, 역으로 그들 자신들이 포위되어 진압당하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여기서 얌전히 백기를 올릴 작자들이었다면 애초에 쿠데타를 일으키지도 않았을 터.

 "싸워! 싸우라고! 여기서 물러서면 모두 다 끝장이다!"

 "항복해봤자 우린 전부 다 총살형이다. 어차피 죽을 거,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가는 수밖에!"

 궁지에 몰린 쿠데타군은 항복을 거부한 채 농성을 벌이며 자신들을 진압하러 온 정부군과 교전을 벌였다.

 "전차가 옵니다!"

 "지금이다, 쏴!"

 1식 기동 속사포가 89식 중전차의 전면에 구멍을 뚫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수류탄이 폭발해 병사들의 다리를 날려버렸다.

 정부군과 쿠데타군 사이의 교전은 하루가 지난 다음 날에도 계속되었다.

 "아직도 반란분자들을 모두 진압하지 못했단 말이오?"

 "소, 송구하옵니다, 폐하."

 아직도 반란을 완전히 진압하지 못했다는 보고에, 히로히토는 짜증을 냈다.

 당장 집안정리도 덜 끝난 마당에, 언제 연합군과 항복 협상을 한단 말인가.

 "그래도 너무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늦어도 오늘 저녁으론 반란분자들은 모두 소탕될 것이옵니다."

 "...알겠소. 회의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소?"

 "저, 그것이......."

 "?"

 막상 항복하기로 결정을 내렸는데도, 대본영과 내각 각료들 사이에선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았다.

 "항복하는 대신 조선과 대만만큼은 계속 황국이 지배할 수 있게끔 배려해달라고? 제정신으로 하는 소립니까?"

 "안 될 거 뭐 있습니까? 애초에 조선과 대만은 황국의 일부였으니 당연하지요! 이 두 곳은 만주와 다르단 말입니다."

 "군의 무장해제와 전범재판은 황국이 알아서 처리하겠다? 연합국이 이를 받아들일 것 같소?"

 "그럼 황국에 저 귀축영미를 들이자는 말이오?"

 매를 덜 맞으려면, 잘못했다고 손을 싹싹 빌어야 한다는 사실쯤은 어린아이조차 안다.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조차 머리가 굳을 대로 굳은 대본영 인사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논쟁이나 하며 쓸데없이 시간만 잡아먹고 있을 때,

 이오지마의 활주로에서 이륙한 B-24 편대가 일본 본토 상공에 출현했다.

 ***

 "공습입니다, 폐하!"

 "서둘러 방공호로!"

 "공습이라니, 어, 어떻게......!"

 이오지마를 장악한 미군은 이오지마를 발판삼아 일본 본토 폭격에 돌입했다.

 이전에도 공습을 몇 번 당한 적 있지만, 그 빈도가 적고 피해 규모도 적어 일본인들은 공습에 큰 위기감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오지마가 넘어간 뒤부터는 얘기가 달라졌다.

 이오지마라는 안정적인 비행장을 확보한 덕분에, 미군은 더욱 원활하게 일본 본토를 폭격할 수 있었다.

 수도 도쿄를 비롯하여, 오사카, 고베, 나고야 등 수많은 도시들이 하나둘씩 불바다로 변했다. 독일인들이 전쟁 초반부터 당하던 공습을 전쟁 후반부에, 그것도 한꺼번에 당하게 된 일본인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한, 만주에서는 소련군의 전진이 계속되었다.

 "목표, 3시 방향의 벙커! 철갑탄 장전!"

 "발사!"

 전차에 먹히지도 않는 총탄을 열심히 쏘아대고 있던 일본군의 벙커는 85mm 철갑탄 한 발에 의해 완전히 박살 났다.

 T-43의 전차장은 이것만으로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벙커의 잔해를 향해 기관총까지 퍼부은 후에야 진격을 명령했다.

 "돌격! 돌격!"

 "우라!"

 전차가 나서서 적의 방어선에 구멍을 내고, 보병들이 방어선으로 침투해 잔적들을 처리했다.

 무기도 빈약한데다, 무기보다 더 빈약한 배급으로 기초적인 체력조차 바닥난 일본군은 원활한 보급으로 기력이 충분한 소련군을 상대로 백병전에서조차 필패했다.

 칼로 대나무를 쪼개듯 일본군을 토막 내며 거침없이 진격한 결과, 소련군은 단숨에 하얼빈을 목전에 둘 수 있었다.

 만주뿐만 아니라 사할린에서도 소련군은 전진하여 일본군을 박살 냈다.

 일본에게 남은 희망은 아무것도 없었다.

 ***

 편을 바꿔 연합국 코인에 탑승한 태국이 전쟁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고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의외로 이 친구들, 생각보다 쓸모가 있었다.

 일본에게 정식으로 선전포고하자마자 일본군의 이동로 역할을 하던 국경의 다리들을 모조리 끊어버림으로써 일본군의 이동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일본군 포로들을 수용할 수용소의 부지 제공과 건축 모두 자신들이 부담하겠다고 나온 것이었다.

 보나 마나 이제라도 열심히 눈도장 찍어서 전후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속셈이겠지만, 나쁘지 않다.

 원래라면 우리가 했어야 할 일들을 태국이 전부 떠맡겠다고 자처한 덕분에, 아군은 느긋하게 본래 임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태국을 손에 넣었으니, 일본이 장악한 프랑스령 인도차니아를 해방시킬 차례였다.

 "상부의 다음 목표는 사이공으로 정해졌네. 프놈펜을 거쳐 사이공까지 진격하는 게 우리의 임무일세."

 푹푹 찌는 더위를 참으며 우리는 작전회의에 집중했다. 어렵사리 구한 선풍기 3대가 열심히 날개를 돌리고 있지만, 이놈의 더위를 완벽하게 몰아내는 데 실패했다.

 차가운 콜라 한 잔이 간절하지만, 지금은 회의 중이었으므로 꾹 참고 브랜슨 대령이 하는 말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날파리와 더위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하지만 그전에 파타야 인근에 고립된 일본군부터 먼저 청소해야 하네. 1개 사단 정도의 인원들이 남아 항복을 거부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나서서 처리해야 할 것 같아."

 "적들의 무장은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대대장님?"

 "전차 서른 대에 화포는 50문 가량. 마냥 무시할 수 없기는 하나, 이미 제리들의 타이거와 싸워본 적 있는 자네들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믿네. 내 말이 틀린가?"

 "아닙니다, 대대장님."

 적의 정확한 규모와 배치, 마지막으로 이동 시기에 관한 논의가 오갈 무렵, 브랜슨 대령의 당번병이 회의실에 들어와 본부에서 무전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달했다.

 브랜슨 대령이 당번병을 따라 나가자, 우리는 짧은 휴식을 취했다. 무어 소령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또 귀찮게 됐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 또 출동이라니. 정예라는 이유로 너무 부려먹히는 것 같습니다."

 "내 말이. 노조라도 만들어야겠어. 과로사하기 싫다면 말이네."

 비록 20세기라곤 하나, 그래도 관광지로 유명한 방콕까지 왔는데 며칠 정도는 편안하게 쉬면서 관광이나 다니고 싶었다. 비록 전투로 도시 곳곳에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유명한 유적지는 별다른 손상 없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전쟁터에 무슨 놈의 관광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군말 없이 열심히 싸워왔으니 이 정도 보상은 솔직히 좀 줘야 하지 않냐고 묻고 싶다.

 하지만 택도 없겠지. 상부의 관심사는 우리의 휴식 따위가 아니라 빨리 일본군을 때려잡고 전진하는 것뿐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는데, 브랜슨 대령이 돌아왔다.

 "제군들, 방금 들어온 소식일세."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이내 결단을 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방금 일본의 천황이 항복을 선언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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