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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120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04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120화

120 제갈두휘의 길(3)

 

 

 

 

 

다시 안개가 잦아들며 나타난 높은 제단의 모습은 참혹했다. 줄에 묶여 있던 소녀들은 모두 배가 찢어진 상태로 쓰러져 있었고 제단에 흩어진 육편은 내장의 조각들이었다.

 

안개가 완전히 사라지자 옆에서 대기하던 라마승들이 항아리의 뚜껑을 덮은 후 부적을 붙여 옆으로 옮겼다.

 

항아리가 옮겨진 곳은 낮은 제단의 옆쪽에 혼절한 사내들의 앞이었다. 낮은 제단에 묶여진 사내들은 혈도를 제압당한 상태인지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으로 중원의 무사임을 알 수 있었을 뿐이다.

 

항아리를 들고 있는 라마승들은 사내들이 묶인 아래에 항아리를 놓은 후 뚜껑을 열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항아리에서는 검은 안개와 함께 두휘가 보았던 눈빛이 다시 나타났다. 먼저 나타난 검은 안개는 중원의 무사를 연하게 감쌌고 눈빛은 무사의 가슴 부분으로 이동하더니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우아아아악.”

 

어떠한 고통이기에 저리도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것일까?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동조차 없던 무사가 지금은 악을 쓰듯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리고 학질에 걸린 듯 온몸을 부르르 떨며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소녀들이 있던 높은 제단과는 달리 낮은 제단에서는 안개가 연했기에 모든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

 

두휘가 눈살을 찌푸리며 보는 동안 피부 껍질이 부글거리며 혈선이 여기저기 나타났고 신체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사의 매끈했던 얼굴은 녹아내리듯 어깨와 붙는다. 아니. 목이 사라지며 머리가 내려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몸과 머리가 직접 붙는 동안 왼쪽의 어깨가 부풀어 오르며 높아지는 것이 눈에 보이도록 빠르게 진행된다.

 

이미 몸은 혈선(血腺)으로 뒤덮여 있었고 이미 사람의 형태를 벗어나고 있던 그 무사는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르기 힘들었다.

 

옆으로 쭉 찢어진 입술 사이에서 회색의 거품이 뿜어져 나왔으며 이성을 잃은 듯한 눈동자에서는 교활하고 포악한 눈빛이 흐르고 있다. 두휘는 그가 인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챘다.

 

아직 검은 안개에 휩싸여 있는 괴물들은 서장의 승려에게 이끌려 신상의 뒤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강시?’

 

하지만 강시와는 달랐다. 어떠한 강시도 조금 전의 그 모습을 가지고 있진 않을 터였다.

 

“저자들은 대체 뭘까?”

 

제갈두휘는 눈앞의 광경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있었다.

 

많은 사술을 가문의 어른들에게 듣고 서적을 통해서 많은 것을 기억했지만 신상의 주위에 둘러싼 많은 기호조차 처음 보는 것이다.

 

서장과의 대결을 대비하여 서장의 많은 것을 공부했던 제갈두휘에게도 눈앞의 모든 것이 생소한 것밖에 없었다.

 

제갈두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움직여 몸을 더욱 깊숙이 숨겼다.

 

두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중원에 득이 될 자들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저 검은 안개와 중원의 무사들이 변해 된 괴물은 그의 감각에 몹시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제갈두휘에게 다행이라고 한다면 몽골에서 오랜 시간을 헤맬 것을 대비해 건량을 넉넉히 마련해두었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건량은 벌써 동이 났을 것이다. 지금 남은 건량만으로도 며칠 더 숨어 있기에는 충분했다.

 

이곳이 서장의 소뢰음사와 같은 곳이었다면 제갈두휘로서도 숨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상과 제단만 성대하게 만들어진 것일 뿐 주위에는 외적에 대한 방비는 허술한 편이다.

 

‘저들이 그 기묘한 진식을 믿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제갈두휘는 자신이 왔던 길을 몇 번이고 되새겨보았다. 그래야만 만약의 경우 빠르게 도망갈 수 있다.

 

그리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유심히 보았다.

 

제단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하늘 아래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지만, 그의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그 모습은 제갈두휘를 전율에 떨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까.

 

 

 

 

 

이틀을 꼼짝하지 않고 지내던 제갈두휘는 이제 무림맹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는 이자들에 대해서 충분히 볼 만큼 봤다.

 

어디선가 잡혀 오는 소녀들과 한눈에도 고수로 보이는 중원의 무사들 중 의식을 지내는 라마승에게 지적당한 사람들은 하루에 한 번 지내는 의식에 희생이 되었다.

 

이곳에 있는 라마승들은 흑도와 백도를 떠나 중원에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무리인 것이다.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어둠이 깔리기를 기다리던 두휘는 의식을 선두지휘하던 늙은 라마승이 많은 수하들을 이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어딘가에 중요한 일이 있어 가는 듯했고 이곳과 관련이 크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 이곳에 올 때의 라마승들과는 다르게 지금 그가 이끌고 있는 라마승 중에는 강력한 무공을 지닌 자들이 많다는 것이 느껴졌고 그들이 멀지 않은 곳을 지나갈 때 두휘는 숨소리를 죽이며 기척까지 지워야 했다.

 

다행히 진식을 빠져나간 그들이 중원인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듯 천천히 이동한 덕분에 두휘는 간신히 쫓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서쪽으로 며칠을 따라갔을 때 그는 주위의 풍경이 점점 익숙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 풍경이 왜 익숙한지 곧 기억을 해냈다. 이곳은 두휘가 무혼과 남궁장천을 망인곡으로 몰아넣기 위해서 머물던 곳이었다.

 

“그들이 이곳에 무슨 일이지?”

 

그들이 가고 있는 길은 두휘가 잘 아는 길이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가 무림맹에 쫓기게 된 이유인데.

 

제갈두휘는 눈앞의 계곡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가 쫓아온 라마승들은 망인곡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망인곡은 이들이 만든 진식이었던가?’

 

서장의 승려들은 이곳이 익숙한지 가볍게 들어서고 있었으며 누가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계곡의 중심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의 길 또한 제단이 있는 곳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나무와 바위를 통과하며 걸어가는 그들을 따라 들어가던 제갈두휘가 계곡의 중앙으로 가니 두휘가 쫓던 자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그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은 바위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된 구조물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하늘로 연결된 검은 줄기는 검은 안개가 틀림이 없다.

 

이곳에는 제단이 없는 것으로 생각해 보건대 검은 안개가 이곳에서 뿜어져 나와 제단으로 보내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안개는 하늘을 통해 제단과 연결이 된 것일까?’

 

숲속에 몸을 숨긴 제갈두휘가 정신없이 앞을 보고 있는데 그들이 원형으로 된 넓은 탁자와 비슷한 것을 가지고 온다. 돌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그것의 지름은 1장 남짓하였고 두께는 반 장 정도 되어 보였다.

 

아주 소중한 물건인지 그들은 정성스럽게 다루며 대형원반을 공터에 옮겨두었다. 그리고 한 라마승이 그 앞에서 기나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발음을 가진 말이었기에 제갈두휘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굳이 알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주문이 무엇을 하는 주문인지 곧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단과 같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검은 안개가 그 원반을 감싸더니 곧 그 주위에 검은 안개가 확 밀려들었다.

 

주문을 외울수록 원반을 중심으로 안개가 차지하는 지역이 넓어지고 안개가 밀려오자 두휘는 자신의 몸을 뒤로 물렸다.

 

비틀어진 몸을 가진 괴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한순간 밀려들었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른 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뒤로 물러나던 그의 눈을 이끄는 것이 있었다.

 

밀려오는 옅은 안개였기에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그런데 안개 속의 사람들이 갑자기 행동이 느려졌다.

 

아니 느려진 정도가 아니다. 거의 평소의 십 분의 일 정도의 속도를 보이고 있었다.

 

‘검은 안개 속에서는 행동이 느려지나?’

 

안개에 휘말려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그들에게 한 라마승이 상자를 가슴에 품고 다가서고 있었다.

 

‘저자는 영향을 받지 않는데? 어째서?’

 

두휘가 유심히 보고 있는 라마승은 상자 안에서 검은색으로 된 원형의 작은 패를 꺼낸 후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자들의 목에 걸었다.

 

패가 목에 걸린 자들은 다시 평소의 움직임을 보인다. 그것을 확인한 두휘는 중얼거렸다.

 

“검은 안개는 사람의 동작을 느리게 하고, 검은 패를 착용한 사람은 안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실에 가까운 추론을 해낸 그였다. 그리고 무림맹에 알리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검은 패를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검은 패를 가지고 이곳을 탈출해야 하리라.’

 

이러한 생각을 하며 탈출할 방법을 구상하던 제갈두휘는 이곳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그들은 어떻게 이곳을 탈출할 수 있었을까?

 

이곳의 진식은 제갈두휘로서도 처음 보는 진식이다. 진식에 능통한 그조차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서 겨우 통과하지 않았는가?

 

당시 망인곡에 빠져든 사람들이 두휘만큼의 진식에 대한 지식도 없던 자들이라는 생각을 해볼 때 그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혈랑환검이 깬 것일까?’

 

도제를 꺾을 정도의 환술을 구사하는 그라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서장의 세력과 결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분명 라마승들에게 잡혀가던 제갈운혜를 도와주었고 치료까지 해주었다.

 

게다가 혈랑환검의 위치를 물었을 때 그녀가 보여준 태도와 눈빛,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제갈상휘의 얼굴로 보아 그가 서장의 세력과 결탁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저 패를 혈랑환검의 손에 들어가게 한다면 서장의 세력이 중원을 좀먹고 있는 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혈랑환검이 그것을 악용한다면 백도의 문파들은 힘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단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던 소녀들을 머리에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기괴하게 변하던 무인들의 모습이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들을 막지 않는다면 그 의식은 계속될 것이다. 적어도 혈랑환검이 그러한 짓을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두휘는 계속 기회를 엿보았다. 지금 그에게서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은 검은 안개 안에서 여러 가지를 수련하고 있는 듯했다.

 

‘무림맹으로 돌아간다면 살 수 있을까?’

 

관련되었던 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에게도 당연히 죽음의 선고가 내려질 것을 안다. 하지만 제갈세가가 멸문당했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은 제갈두휘는 검은 패를 빼돌릴 기회만을 노렸다. 그들 중 일부만이 목에 패를 걸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패의 수가 많은 것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그들도 항상 몸에 걸고 다니는 것이 아닌 필요에 따라 패를 목에 걸고 다녔기에 기회를 보아 패를 보관하는 상자에서 빼돌리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으리라고 믿으며 그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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