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118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118화
118 제갈두휘의 길(1)
산서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오태산(五台山)은 중국 불교의 4대 성산 중 하나로 지장보살의 성지로 유명하며 다섯 개의 평평한 봉우리가 있어 오태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래는 도교의 성지였으나 당대에 이르러 삼백 개가 넘는 절이 오태산으로 모여들며 불교의 전성기를 과시했던 산이다.
오태산의 구석에 있는 불영사(佛影寺)는 미륵불(彌勒佛)의 형상을 띤 미륵봉(彌勒峯)의 서쪽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조용히 불경을 공부하기 위한 스님들이 찾는 절이라 조용하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불영사의 문을 들어서면 암울한 적막 속에 잠겨 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여기저기 흩뿌려진 마른 핏자국들이 이곳에서 수많은 살행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내고 있었고 다듬어진 길을 따라 걸어가면 스님들의 독경 소리는 들리지 않고 기괴한 울음소리들만이 들려오고 있다.
“그래, 어찌 되었소.”
“비전서에 적힌 대로였소. 현류패(玄流牌)만 목에 차고 있다면 우리는 검은 안개의 영향을 받지 않소만 다른 자들의 행동은 몹시 굼떴소.”
“오오.”
불영사 대웅전의 지하에 마련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앞에는 어두운 녹색의 기운을 피워내는 거대한 무쇠솥에 얼굴을 처박고 솥의 내용물을 게걸스럽게 삼키고 있는 존재들이 보였다.
그들의 모습은 이 세상의 형상이 아니었다. 간혹 괴성을 흘리는 이들의 발목에는 새로 만든 듯한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그 외 다른 문제는 없었소?”
“흐음. 내공의 문제가 좀 있는 듯했소. 경공을 조금 길게 사용한다면 내력이 순식간에 동이 났소.”
대답을 듣고 있는 자는 손에 들고 있는 붓으로 그 내용도 기재했다.
그는 모두의 의견을 모아 ‘제단’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가져가야 했기에 그들의 말을 하나도 빠뜨릴 수 없었다. 그의 기재가 끝난 것을 본 자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능력은 대단했소. 게다가 현류 강시들은 검기에도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어 적들을 더욱 곤경에 빠트리기에 적합하였소.”
검은 로브와 유사한 옷을 입고 있는 서장의 인물이 누렇게 변한 이를 내보이며 웃자 그와 마주 보고 웃고 있던 자는 고개를 끄덕인 후 한쪽에 몰려 있는 괴물들을 보았다.
‘하지만 뭔가가 잘못되었어. 문헌에는 이자들보다 훨씬 강하다고 나와 있었는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수백 년간 소중히 보관되어 내려온 라마혈교의 비전서에는 현류 강시라 불리는 눈앞의 괴물들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화경지검에 든 자와 대등하게 싸울 능력을 지닌 강력한 강시에 대한 말도 있었고 그들은 일반 강시처럼 소환자의 말을 잘 듣는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소환되고 있는 현류 강시들은 설명과 달랐다. 안개 밖으로 나간다면 삼류의 검사에게도 난도질이 될 정도로 허약한 데다 빛 속에서는 녹아버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안개 속에서도 그다지 강하지 않다.
‘따지고만 본다면 안개 자체의 능력이 더욱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숱한 백도의 무사들과 흑도의 무사들을 실험체로 삼아 실험도 하고 그들을 제물로 하여 소환도 하였지만 비전서에 기록된 놀라운 능력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보통의 강시들보다 조금 더 강한 능력을 지닌 강시들이 간혹 나타났을 뿐이다.
‘재료가 좋지 않은 것일까?’
한쪽에 혼혈을 잡혀 쓰러져 있는 중원의 무사들을 보며 무오카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래도…….”
한동안 생각에 빠져 있던 그가 입을 열자 그의 주위에 있는 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오카의 얼굴로 향했다.
“니카라, 좀 더 강력한 자들을 포획해야겠소.”
무오카의 말에 니카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혼혈을 잡혀 정신을 잃고 있는 자들도 약한 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높은 서열을 가지고 있는 무오카의 말이니 거절하기는 힘들다.
“알겠소. 내 전력을 다해 당신이 만족할 만한 자들을 확보해 두겠소.”
“그럼 조심하시오. 난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소.”
니카라는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절의 입구에서 지켜보았다.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으로 길을 가던 제갈두휘는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자 두리번거렸다.
그가 섬서의 북쪽 마을인 유림(幽林)의 부근까지 오는 데도 얼마만 한 고생을 했는지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아무리 정사대전 중이라고 하지만 벌써 반년 가까이 그를 쫓고 있는 무림맹의 추적자들은 집요했다. 한순간이라도 마음을 놓으면 바로 들이닥칠 기세로 두휘를 몰아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을 피해 숨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중원의 북쪽까지 쫓겨 온 터였다.
그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미 공동파와 점창파에서 무림맹의 집법부 무사들이 문종후와 추청령을 끌고 갔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무림맹의 합작 분타에 그의 간세가 없었다면 두휘도 꼼짝없이 잡혀갔을 터였다.
“그놈들을 선택한 것이 악수였을까? 아니야. 제갈세가를 위한 선택이었어.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분명 망인곡으로 넣으면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했는데 남궁장천을 비롯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빠져나왔다는 것은 그를 당황하게 만들고 궁지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제갈두휘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천기를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자신도 도제처럼 천기를 거슬렀기에 이렇게 된 것일까?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한동안 그 자리에서 고민을 하던 제갈두휘는 고개를 북쪽으로 향했다. 중원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잡혀 죽을 것이 뻔했다.
이왕 중원의 북쪽까지 온 이상 몽고 쪽으로 넘어가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들이 비록 야만족이기는 하지만 마교의 영역에서도, 무림맹이 차지하고 있는 곳에서도 머물 수 없는 처지에는 몸을 숨길만 한 곳은 오직 몽골뿐이다.
그나마 오랜 평온의 시간이었기에 최근 큰 충돌이 없어 몽골인들이 무림인들에게 나쁜 감정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북해를 넘어 머나먼 동토의 땅까지 가야 했을 것이다.
“몇 해만 몸을 숨기고 있으면 추적도 잠잠해질 터이니 그때 돌아오자,”
그는 유림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행색을 보면 이미 반년 전의 제갈두휘를 연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봉두난발을 하고 때에 절은 낡은 옷으로 몸을 감싼 그에게서 제갈세가 공자의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그를 뒤쫓고 있는 자들은 무림맹의 집법부에서 오랜 시간 많은 무림인들을 뒤쫓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제갈두휘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눈에 띄는 즉시 빠르게 쫓아올 것이다.
‘오늘도 마을에서 머물기는 글렀는가?’
중원의 북방 끝에 가까운 유림은 크지 않은 마을에 객잔도 작은 편이다.
몇 개의 방만 있는 이곳에서 머물게 된다면 자는 동안 무림맹의 추적자들에게 붙잡힐 가능성이 크다.
잠시 객잔을 보던 그는 고개를 흔들고서 건량을 구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마을에서 머물기 힘들다면 건량이라도 마련해야 했다.
몽골로 넘어갈 생각을 했기에 건량을 넉넉하게 구입했다. 이곳에서 몽골까지는 제대로 된 마을을 만나기 어렵다.
게다가 몽골로 넘어가면 마을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 이곳에서 구하는 건량이 마지막이라고 봐야 할 듯했다.
건량을 품에 안고 유림을 나온 그는 유림주위의 산들을 훑어보았다. 날씨가 우중충한 것이 동굴을 발견하지 못하면 겨울의 차가운 날씨에 얼어 죽을 가능성도 컸다.
몸을 숨길 산을 정한 후 대로를 약간 걷다 숲속으로 들어간 제갈두휘는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산속을 한 시진 정도 헤매었을 때 그는 만족스러운 동굴을 발견했다.
‘이미 사냥당한 곰의 동굴일까?’
굴의 흔적을 보니 입구를 파낸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삽으로서 판 흔적이 보였기에 그 속으로 들어가니 이미 메마른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가득한 자리가 보인다.
손을 대 온기를 느껴보고자 했으나 먼지가 쌓인 나뭇가지는 차갑게 식어 있다. 여러 날 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동굴이라는 것을 확인한 제갈두휘는 동굴의 입구를 나무들로 가린 후 진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바로 추성자의 이목을 가리는 진법이었다. 그가 아는 추성자는 누이동생인 제갈운혜와 도안 두 명뿐이다.
그 두 사람이 자신을 잡기 위해 추적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추성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별의 기운을 흩트리는 진법을 펼치고서 밤을 보낸다.
‘몽골로 넘어가서 어찌해야 할까.’
그의 능력이라면 몽골에서 굶어 죽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중원에서는 내세울 만한 실력이 아니었더라도 몽골의 무사들에 비해 높은 무공실력을 지녔고 몽골에는 없는 지식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든 두휘는 새벽녘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던 탓이다.
쫓기고 있는 생활을 하는 그로서 언제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기에 들을 수 있었다.
제갈두휘는 동굴의 입구로 다가가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보았다. 아직 별이 초롱초롱한 것을 보니 동이 터오기에는 먼 시간일 터. 그는 조용히 짐을 챙기고 동굴을 빠져나갔다.
추적자들보다 그가 먼저 상대방을 발견한다면 몸을 피하기가 한결 쉽기에 우선 몇 명이나 있는지 확인하고자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가가는 동안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그들이 나누는 말이 중원의 말이 아닌 서장의 말이라는 점이다. 서장의 적들을 대비하여 익혀둔 서장어가 지금 귀에서 생생하게 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 산서에서 서장의 언어를 듣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제갈두휘가 고개를 살짝 내밀어 나무 사이로 보니 삿갓을 쓴 사내들이 숲속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인다.
큰 경계심이 없는 것을 보면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처음은 아닌 모양이다.
‘서장인들이 이곳에서 뭘 하는 것이지?’
“더 이상 특이한 점은 없나?”
“예.”
가장 상석인 듯한 위치에서 열심히 글을 적던 서장인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새로운 명령이 내려왔다. 명문이라 불리는 문파들과 그 문파 고수들의 인상착의와 이름 등을 최대한 많이 알아 오라고 했다.”
그의 말에 주위의 남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무엇 때문에 요구하는지 몰라도 명령이 내려온 이상 그들은 수행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