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메일 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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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알파메일 122화
122화 개심한 왕 웨이링
“응…….”
왕 웨이링은 정신을 차렸다.
희미한 정신이 점점 또렷해지면서 낯선 풍경이 눈 안에 들어왔다.
“헉?!”
다음 순간에 그녀는 놀라서 몸을 반사적으로 일으켰다. 두려움 남은 시선으로 그녀는 주변을 살폈다. 표정에 각인된 공포가 또렷했다. 그녀의 인식 속에서 그녀는 지금도 납치되었을 당시의 현실에 있었다. 여기는 그 갇혀 있던 현실의 연장선상 같았다.
하지만 서서히 그 공포는 사그라졌다. 뇌리는 선명해졌고 사태의 기승전결이 하나하나 기억났다. 납치되고, 고통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구출됐다.
그러니까…….
“여기는…… 병원이군.”
악몽에서 탈출하는 것처럼 왕 웨이링은 한숨을 쉬었다.
아니다. 악몽에서 탈출한 게 맞았다. 적어도 그녀는 방금까지 악몽에 구속되어 있던 상태였다. 비록 현실에 몸이 있더라도.
“…….”
그 악몽의 여운을 떨치듯이 왕 웨이링은 양손으로 제 몸을 감싸고 잠시 지금 이 순간을 견뎠다. 현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악몽의 여운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그녀를 구속하던 악몽은 바로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이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심호흡해서 원래 신색을 되찾고는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지?”
“음, 일단 병문안을 온 건데.”
약간은 낯선, 그러면서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에 왕 웨이링의 냉정하던 표정이 단번에 무너졌다. 그녀는 쩔쩔매면서 붉어진 표정으로 답했다.
“드, 들어와.”
문이 열리고 꽃을 든 남성이 들어섰다.
씨익 웃으면서 몸을 일으킨 그녀를 바라보는 그 남자는 어딘가 여유가 넘쳐 보이는 호남상이었다. 바로 성태였다.
그는 왕 웨이링에게 꽃을 내밀면서 말했다.
“지난번보다 건강한 모습이군. 다행이야.”
“덕, 덕분이지.”
왕 웨이링은 성태가 내민 꽃을 받으면서 답했다.
왕 웨이링은 자신의 목소리가 크게 떨리는 것을 그때 느끼고 있었다. 목소리만 떨리는 게 아니라 가슴도 뛰었다. 어째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당황하는 왕 웨이링을 보면서 성태는 근처의 의자에 앉았다.
“다른 녀석들도 데리고 오려 했는데 별로 내키지 않아 해서 나만 왔어.”
“그래.”
“곧 퇴원할 수 있겠어?”
“의사 이야기로는…… 곧 가능할 거라고 해.”
성태의 말에 웨이링은 어렵게 답했다.
시선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최근에 성태가 문병 와서 만날 때마다 항상 그랬다.
“내가 공안한테 물어봤는데, 조사해 보고 있는데 어떤 놈들인지 잘 모르겠다는 거야. 그것참.”
성태는 넉살좋게 말했다.
물론 공안이 사건 현장에서도 왕 웨이링을 납치한 자들에 대한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하는 것은 성태 일행이 저지른 일이라는 점도 있고, 카에데의 아마츠키 그룹 쪽 공작원들이 손을 쓴 것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분열 상태라 내부적으로도 혼란한 중국에서 상대할 수 있는 수법은 아니다.
“어차피 나는 적이 많으니까…… 이상한 일은 아냐.”
“그래?”
“놀랄 필요는 없잖아? 알고 있었을 테니까.”
“뭐 솔직히 말하면 그렇긴 하지.”
권력과 돈은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적을 만든다. 그런데 왕 웨이링은 성격조차도 겸허와는 거리가 멀다. 가는 곳마다, 걸음마다 적을 만들게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어쩌면 이번 사건의 조사에 가장 큰 혼선이 되고 있는 것은 아마츠키의 공작도, 성태의 뛰어난 실력과 준비도 아닌 그녀의 평소 행동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너무 혐의를 둘 만한 곳이 많아서 누구다 할 대상을 찾기 어렵다.
게다가 사업적으로 납치를 하는 놈들도 중국에는 너무 많을 정도니까.
“그러면 몸조리 잘해.”
성태는 거기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이 시건방진 아가씨가 자신에게 심리적으로 많이 기대게 됐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안다. 애완동물처럼 길들이기 위해서는 애태울 필요가 있고, 그러려면 만나는 시간을 아쉽게 만들어야 했다.
성태가 몸을 일으키자, 역시나 다급하게 왕 웨이링이 그를 막아섰다.
“저, 저기……!”
“응?”
모르는 척 성태는 그녀를 바라봤다. 왕 웨이링은 간절함이라 할까, 의문이라 할까 싶은 것은 눈 안에 담고서 성태에게 물었다.
“왜 날 구해준 거야?”
“왜 구해주다니?”
“이야긴 다 들었을 텐데?”
조금 차가운 표정이 되어서 왕 웨이링이 되물었다.
성태는 그제야 알아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선 말했다.
“아, 그거 말이군.”
“그래.”
그거.
왕 웨이링이 말하는 것은 그녀가 학교에서 저지른 여러 가지 악업을 뜻하는 것이다. 성태 본인에게는 물론이고 그녀의 친구들에게까지. 그런데 그런 꼴을 겪고서도 왜 자신을 구해줬는가에 대해 그녀는 물었다.
성태는 지금 질문이 왕 웨이링에게 있어 일종의 장벽이리란 것을 느끼면서 답했다.
“꽤 곤란하긴 했어. 그래도 역시 어떤 꼴이 될지 뻔히 보이는데…… 동기를 두고 모르는 척하는 것도 뭔가 좀, 아니잖아?”
“거짓말.”
“음?”
성태의 답에 웨이링은 눈을 좁혔다.
적의까지 느껴지는 말이었다.
“어차피 너도 중화 그룹의 보상을 바라는 거지?”
“중화 그룹의 보상이라…… 매력적인 이야기이긴 하군.”
날카롭게 웨이링이 하는 말에 성태는 올 것이 왔다, 라고 느꼈다. 성태는 그녀를 구해줬고 그 덕분에 웨이링은 그에 대해 매우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게 됐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은 그 자체로 관성을 가진다.
때문에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게다가 웨이링의 경우 그녀의 성격은 그녀의 삶 전반과 완전히 밀착되어 있던 것이다. 큰 계기가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 그녀의 모든 것이 바뀌길 기대하기 어렵다.
“금액을 말해. 지불 할 테니까.”
“음, 다짜고짜 백지수표라…….”
성태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움직였다.
“너 말이야.”
성태는 싸늘한 표정으로 웨이링을 바라봤다.
웨이링은 자신을 향하는 그의 표정에서 심장을 조이는 듯한 쓰라림을 느끼면서 자신의 원래 그러한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성태는 입을 열었다.
“친구 없지?”
성태의 질문에 웨이링이 크게 당황했다.
상상도 못 한 말이 터져 나온 탓이기도 하지만, 도저히 당당하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측면이 역시 더 컸다.
웨이링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답했다.
“그, 그런 것 필요하지 않아.”
“흠, 뭐 너무 당연한 걸 물었나.”
성태는 웨이링의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에 즐거워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단순히 그녀를 놀리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이어 그는 웨이링에게 다가가며 얼굴을 마주하듯이 들이댔다. 웨이링은 흠칫 놀라면서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이봐, 사람을 너무 얕보지 마.”
으르렁대는 짐승처럼 성태는 말했다.
“백지수표? 보상? 우릴 어떻게 보고 그런 개소리를 하는 거야! 그때 너를 도운 사람 중에는 아마츠키의 후계자도 있었어. 백지수표 따위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으음…….”
웨이링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성태의 말대로라면 보상 따위를 운운하는 건…… 확실히 우스운 소리다.
아마츠키 그룹은 중화 그룹에 비견해 더 크고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다. 부에서는 아마츠키에 밀린다고 해도 무와 명예라면 월등한 이씨 가문도 있다. 그들이 포함된 이들에 대해 보상으로 백지수표를 내민다는 건 기실 천박한 일이다.
노한 표정으로 성태는 웨이링을 가리키며 일갈했다.
“도운 것은 단지 사람을 돕는 것이 옳았기 때문이지. 설령 그게 다소 성격이 나쁜 아가씨라고 해도 말이야!”
“…….”
그 외침 앞에 웨이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이 그녀를 관통한 참이었다. 정말로 대가 없이 자신이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그런 삶을 모른다. 그녀가 아는 세상은 오직 이기심과 욕망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때문에 가진 자에게 가지지 못한 자는 복종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데 아니라고?
“……가겠어. 병문안이랍시고 왔다가 기분만 잡치고 가는군.”
놀란 웨이링의 표정을 보고서 먹혔다고 확신한 성태는 획 몸을 돌렸다. 이제 적당히 마무리만 잘하면 이 계집애는 완전히 자기 손아귀에 넘어온다.
“자, 잠깐!”
“왜? 또 백지수표를 내미시려 그러나?”
“그, 그런 건 아니야.”
다급하게 웨이링은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성태는 몸을 천천히 돌리면서 조금 누그러진 표정을 했다. 전적으로 연출된 표정과 자세다.
“그럼?”
“사람을 정말로 아무 대가도 생각하지 않고 돕는다고?”
“그럼. 사람 돕는데 이유가 필요해?”
사실 성태는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상의 선의 같은 건 그는 믿지 않는다. 선의가 싸구려가 되면 도움받는 놈들이 기고만장해져서 보따리 내놓으라고 염병을 떨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도움을 준 자는 반드시 감사받고 보상받아야만 하고, 그것이 선의라는 것이 세상에 뿌리내리는 진정한 방법이라고 성태는 여긴다.
물론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니다.
머뭇머뭇거리면서 웨이링은 말했다.
“나는……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아무도 그런 걸 생각하지 않을걸.”
“그럴 리가. 만일 그렇다면 그 사람은 매우 불행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거겠지.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면 대체 무슨 재미로 살겠어.”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웨이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태가 지금 한 말처럼 그녀는 재미없는 인생을 살았다.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인생이긴 했지만 진정한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사람 사이의 따스한 유대 같은 것도 없었다. 있는 것은 권력과 이해관계에 기초한 지배와 복종이었다.
물론 웨이링은 지배하는 측에 서 있었지만 그 지배는 쾌락이되 그것만으로는 고통스럽다. 속내를 나눌 다른 사람이 없고, 함께 무언가를 할 친구도 없어 고독해야만 했으니까. 그 고독이 그녀의 성품이 오늘날과 같이 삐뚤어지게 만든 것이다.
“흠? 이건 또 의외의 답을 듣는군.”
성태가 놀랍다는 표정을 보였다.
웨이링은 각오를 다진 얼굴로 성태를 보면서 말했다.
“사, 사과하고 싶어.”
“정말이야?”
“응.”
성태가 되묻는데 웨이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태는 속으로 이만하면 됐다고 만족했다. 이보다 더 웨이링을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아 굴복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너무 궁지에 몰아 정신적으로 종속시켜 두면 사람으로서 별 쓸모가 없어질 위험도 있기 때문에 이 정도가 딱 좋다.
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어 말했다.
“하지만 나한테만 하는 건 별로 소용없어. 나 혼자 너를 구한 것도 아니고, 너한테 더러운 꼴을 당한 것도 나 혼자만이 아니니까.”
“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매우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성태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아니, 기다리던 말이다! 이걸로 제대로 이 여자를 자기 팀에 끌어들이고 남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알겠어. 힘써 보지.”
“그리고…… 너도 고마워.”
“천만의 말씀.”
성태는 웨이링의 말에 빙긋 웃으며 답했다.
정말 천만의 말씀이었다. 이걸로 저 계집애의 마음이 자신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거기에 대면 이 정도 수고 따위야 대체 뭐가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알파메일 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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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출간일 | 2021.01.15
지은이 | 정희웅
펴낸이 | 박지현
펴낸곳 | 에필로그
주 소 | [14052]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학의로 146, 207-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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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600-245-8
정가: 1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