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메일 1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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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알파메일 117화
117화 개싸가지(3)
희연이 돌아보니 팔짱을 깐 채 문에 기대고 있는 소녀가 보였다. 기분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희연도 알고 있는 그녀는 이제부터 룸메이트이기도 한 왕 웨이링이었다. 상대의 불쾌한 표정에 약간 부담감을 느끼면서 희연은 먼저 인사했다.
“아, 안녕.”
“너, 이름이 뭐지?”
인사를 받기보다 먼저 거만한 표정으로 웨이링은 말을 걸었다.
태도와 표정 모두에서 불쾌감이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에 오기 전에 있었던 성태와의 실랑이가 여전히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내막을 모르는 김희연은 그저 웨이링과 일단 친해지기 위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김희연이라고 해. 수업 때 소개했잖아?”
“아아, 그런 이름이 있긴 했었지.”
거만하게 웨이링은 고개를 끄덕였다.
희연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면서 웃었다.
“여기서는 네 룸메이트로 지내게 됐어. 앞으로 잘 부탁해.”
“룸메이트라.”
웨이링은 그녀의 손을 잡지 않고서 고개를 갸우뚱 움직였다. 희연은 무안하게 내민 손을 거두면서 물었다.
“왜?”
“나는 룸메이트 따위 두지 않아.”
“뭐?”
찌푸린 얼굴로 웨이링이 돌린 말에 희연은 한 방 얻어맞은 듯한 심정이 됐다. 여성들 간에도 기싸움이 있고 서로간의 여러 가지 경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싫은 상대를 엿 먹이는 방식은 여럿 있지만 이런 식으로 대 놓고 상대에게 면박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건 서로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나 있을 만한 것이다.
어이 없어 하는 희연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으로 웨이링은 희연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상한 일인걸. 무슨 야료를 부렸길래 너 따위 더러운 계집애가 내 룸메이트가 될 수 있었던 거지? 본래 이 방은 아무도 못 들어오는 곳인데?”
“...말이 심하지 않아?”
입술을 물면서 희연이 말했다.
그러나 희연의 말 앞에서도 웨이링은 한층 거만하고 공격적인 태도가 됐을 뿐이다.
“닥쳐.”
“너...”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희연의 몸이 굳어버릴 정도였다.
희연을 핥듯이 바라보면서 웨이링은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널 쫓아내는 건 일도 아니지만... 뭐 좋아. 쓸모는 있을 것 같군. 앞으로 내 말에 복종하겠다면 여기서 지내는 걸 용인해 줄 수는 있어.”
“네... 부하가 되라는 거야?”
떨리는 손을 다른 떨리는 손으로 잡아 억제하면서 희연은 물었다. 웨이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지 않냐는 듯이 말했다.
“그 비슷한 거지. 참고로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둘 뿐이야. 나를 따르던가, 아니면 여기서 떠나던가.”
“네가 대체 뭐길래?”
“나는 왕 웨이링이지.”
“......”
새삼 희연의 말문이 막혔다.
‘뭐 이런게...’
성격 더럽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각오도 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로 막 나가는 성격일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다.
“.......”
하지만 희연은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고 일단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계집아이에게 마주 욕설을 해 주고 방을 박차고 나오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앞으로 일이 어려워진다. 심지어 이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국가 셋이 얽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할수록 택해야 할 것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명백했다.
심호흡으로 감정으로 추스르고 희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나마 말귀를 알아먹는군. 마음에 들었어.”
웨이링은 빙긋 웃으면서 희연의 볼을 손으로 툭툭 치면서 그녀를 스치고 지나가 자신의 책상쪽으로 갔다. 희연은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짚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앞으로가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
수업이 끝나고 나서 성태 일행은 근처 학생복지관의 방을 하나 빌려서 모였다. 그곳에서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간단한 다과를 마련하고서 먼저 성태가 말꼬를 텄다.
“학교 생활은 다들 어때?”
“아, 이건 좀...”
“꽤 끔찍한데.”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우울한 반응이 터져나왔다.
“뭔가 문제 있었어?”
“예상하는 바가 있지 않아?”
성태가 묻는 말에 성남경이 뻔하지 않냐는 투로 되물었다. 성태는 쓴웃음을 지었다.
“있긴 한데.”
“뭐 니가 생각하는 바로 그거일 거다.”
“왕 웨이링 그년이지 뭐겠어.”
“다들 당한 모양이군.”
“그렇지.”
성태가 사정을 알만하다 싶어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에게서 깊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성태는 거기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여자를 패고 싶다고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일 정도이긴 했어.”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카에데가 새초롬하게 성태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자신과 대련하면서 거침없이 때렸던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성태는 그 점에 대해서는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태도로 당당하게 답했다.
“그건 헌터끼리 마주했을 때고. 헌터의 세계에 남녀가 어딨어!”
“그건 마음에 드는 말이네.”
카에데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든 듯이 웃었다.
희연과 혜선도 지금 굳이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진 않았지만 지금 성태의 말에는 꽤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헌터는 남자가 많고 남성들이 좀 더 두각을 드러내 보이긴 하지만 마나를 다루는 영역인 만큼 남녀간의 본질적인 전투력 차이는 없다.
그런 점을 이해하고 남녀간의 벽을 두지 않고 성태가 헌터 대 헌터라는 입장으로 대한다는 것이 기뻤던 것이다.
성태가 혀를 차면서 설명을 이었다.
“상대를 여성으로 봤을 때도 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건 그 계집년이 처음일 정도였다는 거야. 헌터로서가 아니라.”
“나도 이해해. 강간범으로 몰릴 뻔했을 정도니까.”
성남경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성태를 위로했다.
“들었어. 소문이 돌더라고. 그런데 좀 묘하게 변형이 됐던데.”
“어떻게?”
카에데가 말하자 성태가 인상을 쓰면서 물었다.
그런 사건이다. 별로 인원수가 많은 곳도 아니니 금세 소문이 퍼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묘하다고 하면 역시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그 웨이링이라는 계집애를 네가 끈질기게 유혹했는데 실패했다고...”
“뭐야, 강간범 대신 스토커야?!”
“그렇게 된 셈이지.”
짜증내는 성태에게 카에데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태는 이를 갈았다.
“와, 교활한 년. 증거도 있는데!”
“증거 있어봐야 여긴 중국이니까.”
“날짜도 좀 지나서 그거 별로 효력도 없을 테고.”
좁은 사회고 상대는 학교 자체에 영향력이 있다. 그리고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외지인에 대해 별로 친절하지 않은 나라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묘한 열등감과 자부심이 겹쳐 있다. 저깟 조그만 나라라는 생각에 깔보는 동시에, 저깟 조그만 나라가! 라는 생각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작한 거라는 소리가 떠돌 정도니.”
“아오...”
성태는 진실은 묻히지 않는다는 말이 이런 상황에서는 무력하다고 느끼면서 분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청춘 로맨스 찍을 일도 없으니 그런 소문 정도야 그냥 버티면 된다.
“뭐, 일단 나는 그 정도라고 치고 너희들은?”
“나는... 시녀 취급당하게 됐어.”
슬쩍 손을 든 희연이 곤혹스런 얼굴로 사정을 설명했다.
“시녀 취급이라...”
“어이가 없네.”
“거참.”
다들 희연의 이야기를 다 듣고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막장스런 행적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그걸 생각하면 희연이 겪은 경우도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긴 하지만... 정말로 그게 현실이 되어 바로 옆에서 벌어졌다고 하니 그저 황당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불만스런 표정으로 카에데가 끼어들었다.
“차라리 잘 된 거 아냐?”
“남의 일이라고...!”
희연이 버럭 화냈다. 누구라도 화낼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대접을 겪고 하녀 취급을 당하는 생활을 겪게 됐는데 그걸 두고 잘 됐다니! 폭언이 아닌가!
하지만 카에데는 태연하게 자신의 진의를 설명했다.
“남의 일이라서가 아니라 이쪽에서 한 사람 붙여둘 수 있으면 차라리 그게 대응엔 더 편할 수 있잖아.”
“윽, 그렇긴 한데...”
희연도 화가 수그러든 모습이었다.
기실 희연이 웨이링의 그런 황당한 짓거리에 넘어간 것은 그 계집애의 권력과 힘에 압도된게 아니라 향후 임무 수행을 위해 당장의 굴욕을 참는게 더 낫지 않겠나 싶어서였으니까.
카에데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너는 그나마 나은 거야. 나하고 혜선은 진짜 짜증나는 꼴이 됐어.”
“어떻게?”
“아... 뭐 솔직히 넌 안 듣는게 좋을 거라 본다만.”
카에데가 말하는 것에 대해 다소 아는 바가 있는 듯 성남경이 말했다.
물론 성태의 입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더 듣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
아니, 사람이라면 다 그럴 것이다.
“얘기해 봐.”
“하루에도 온 북경대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는 처지가 됐지.”
어깨를 으쓱이면서 카에데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퍼뜩 떠오르는 바가 있어 성태는 되물었다.
“흐음? 전번하고 사진을 뿌렸다는 거야?”
“그래. 나하고 이 여자애가 남자라면 누구한테든 벌려 준다는 걸레라는 설명과 함께.”
“허.”
카에데가 덧붙인 설명을 듣자마자 성태는 속에서 불길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개인정보를 뿌리면서 그런 설명을 붙인다는 건 단순히 일상생활이 귀찮아진다는 정도로 끝날만한 일이 아니다.
“뭐 덕분에 새로 폰을 바꿔야 했지.”
“바꿔도 얼굴 팔린 덕에 추근덕대는 놈들 숫자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혜선과 카에데가 차례로 곤혹스럽게 말했다.
“와, 진짜 악질이네.”
“내가 연약한 보통 아가씨였다면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것도 꺼려야 했을 정도일걸.”
개인정보가 뿌려지고 남자란 누구든지 환영한다는 설명이 붙여진다면 실질적으로 강간의 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된다는 말이다.
설마 그런 걸 진짜로 믿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은 법이라서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놈도 얼마든지 있고, 그렇지 않은 놈이라 해도 그걸 핑계 삼아 들러붙어 기회를 노리게 되는 법이다.
그나마 혜선과 카에게는 헌터, 그것도 강력한 헌터이기 때문에 몸을 보호하는 정도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육체적으로 위협에 처하는 건 물론 심리적으로 엄청난 공황 상태에 몰렸을 것이다.
‘이거 보게...’
성태의 마음속에서 열기는 더욱 크고 뜨겁게 익어갔다.
성태는 이어 성남경과 박수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는 뭐 없어?”
“우리야 남자다 보니 그리 험한 꼴은 안 보는데...”
“그냥 좀 고립된 정도.”
“한국으로 치면 은따신세지.”
“그나마 준수하네.”
왕따 신세가 된 걸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한다는 게 어처구니 없지만, 확실히 더 나은 상황이긴 하다. 성태만 해도 강간범이 될 뻔하다가 실패해서 지금은 스토커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우리가 걔를 지키러 왔는데 말이지.”
“이거 할 짓이 아니다.”
“솔직히 임무고 뭐고 들이받고 돌아가고 싶을 정도야.”
“친분을 쌓고 뭐 어떻게든 해 봐야 한다는데 이거 너무 엉망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견적이 안 나와.”
“그러게. 이건 진짜 문젠데. 시간도 별로 없는데 말이야.”
다들 탄식하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게 진짜 문제였다.
그들에게는 해야 될 일이 있고, 그것은 웨이링의 근처에 그들이 있어서만 가능하다. 심지어 핵심 임무 중에 하나는 그녀와 ‘친해’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웨이링과 친해진다고?
저런 쌍년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쪽에서 설령 애를 쓴다 해도 구둣발이라도 핥는 시늉을 해서 노예처럼 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임무가 중요하다지만 그런 짓까지 한다는 건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카에데가 물었다.
진지한 물음이었다.
“......”
성태도 얼굴을 찌푸린 채 방안을 생각했다.
쉽사리 상황의 타개책은 나오지 않았다. 정말 묘한 곳에서 일이 고약하게 꼬여버렸다고 그는 생각하면서 그저 속으로 혀를 찼다.
알파메일 1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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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출간일 | 2021.01.15
지은이 | 정희웅
펴낸이 | 박지현
펴낸곳 | 에필로그
주 소 | [14052]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학의로 146, 207-1505
전 화 | 070-8861-6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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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웅,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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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600-245-8
정가: 1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