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메일 1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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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알파메일 107화
107화 개입(3)
-크아아아아!
비틀거리며 계속 버티려던 영빈의 발악도 한계에 도달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한 최저한의 힘을 유지하지 못한 데몬프린스의 몸 전체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중심으로 수축하더니 하나의 덩어리가 됐고, 주변 사물을 예리하게 뜯어가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세상이 조용해졌다.
남은 것은 데몬 프린스가 이곳에 있었다는, 그리고 싸웠다는 증거가 될 처절한 파괴의 흔적 뿐이었다.
그 정적을 감상하듯 오래도록 침묵과 함께 보내고서야 이석훈이 탄식같이 입을 열었다.
“끝났군.”
“그렇군요.”
성태도 마찬가지 피로한 목소리로 거기 긍정했다.
역시 데몬 프린스였다. 전신이 쑤시고 결리는 게 지금 당장이라도 몸 전체가 바스라질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숨겨둔 수까지는 쓰지 않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으니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다.
그 방법이라면 데몬 프린스를 상대로 홀로 상대할 수도 있겠지만, 지나친 강대함은 적을 만든다.
이석훈은 검을 수납한 다음 피로가 드러나는 얼굴로 성태를 돌아보며 이제야 물었다.
“자넨 누구지?”
“글쎄요.”
“대단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의뭉스럽게 성태가 답을 피하자 이석훈은 방향을 바꾸어 회유하기로 했다.
하기야 틀린 말은 아니다. 데몬 프린스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헌터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국가 최고의 보물이자 영웅이다. 부귀영화라는 걸 생각한다면 굳이 정체를 감출 필요는 없다.
성태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 대단한 대우란 것에 지금은 별반 흥미가 없다고 해 두죠.”
정확히는 흥미가 있다.
하지만 성태는 투자자로 치면 장기투자자다. 지금 수확하는 영광보다 장래 수확할 영광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여기서는 참아야 한다.
“지금은 이라, 달리 바라는 게 있단 말인가?”
“후후, 곧 다시 뵙게 될 겁니다.”
성태는 여유롭게 웃으면서 이석훈의 말을 흘리면서 몸을 돌렸다. 지금 성태의 태도에서 그에게 대답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느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붙였다.
“기다리도록 하지.”
“그럼, 정양하시길.”
간단히 인사한 다음 성태는 바닥을 박찼다.
그의 모습이 처음 나타났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사라졌다. 성태가 사라진 방향을 이석훈은 무뚝뚝한 시선으로 계속 쳐다봤다.
이석훈에게 다른 헌터들이 주춤거리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선두에 선 것은 혜선이었다.
“아버지...”
“너도 무사하니 다행이군.”
“아버지께서야 말로.”
짤막하게 부녀는 대답을 나누었고,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님은 양자 모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지금은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무사하십니까?”
“죄송합니다.”
혜선에 이어 장진호와 정형구가 이석훈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수고를 치하하며 이석훈이 고개를 저었다.
“데몬 프린스의 급습이었네. 자네들을 탓하긴 어렵겠지.”
“그런데 그자는?”
정형구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자란 물론 성태를 칭하는 말이었다.
“모르겠군.”
“그렇습니까...”
아쉽게 정형구는 미간을 좁혔다. 이석훈은 정형구를 놀리듯이 슬쩍 웃으며 물었다.
“내가 숨긴다고 생각하나?”
“제가 어찌 감히...”
“아니야.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화들짝 놀라는 정형구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석훈은 고개를 저었다.
이석훈은 이씨가문의 현 주인이지만 가문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만큼이나 이 가문은 크고 또한 해온 일이 많다. 그리고 이석훈이 관여한 일들 가운데서도 어둠에 묻어버려야 했던 것들이 아주 많다.
데몬 프린스 영빈의 일만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형편에 이씨 가문에 대한 의혹과 음모론이 돌지 않길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석훈에게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면 돌아가도록 할까.”
“그게 좋겠습니다.”
정형구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걸 보고 이석훈은 ‘역시 묻지 않는군.’ 이라 속으로 생각했다. 본래라면 지금 싸움을 보고 물어야 할 것이 그 조력자 외에 하나 더 있었을 텐데. 아니, 오히려 그쪽이 더 중요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정형구쯤 되는 자가 결국 못 본체하고 말게 되는 이런 모습은 이씨가문이라는 것이 만들어온 오래된 폐쇄상태의 결과인 걸까, 아니면 그 자신 역시 거기 일조했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양자 모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결국은 타파되어야 한다.
“차를 부르겠습니다.”
“아니, 차는 됐네.”
정형구의 말에 고개를 젓고 그는 눈을 좁혀 자신의 저택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달려서 돌아가 보고 싶군.”
그 말과 동시에 이석훈은 몸을 날렸다. 이혜선이 서둘러 그의 뒤를 쫓았다.
*******
후일 왕자의 강림이라 불리게 된 데몬 프린스 이영빈의 습격은 그렇게 끝났다.
이 사태로 죽은 헌터의 숫자는 육백열둘. 이 가운데 30%가 일급 이상의 헌터였다. 재산 피해는 10조 이상으로 추산되었고, 민간인 사상자는 그나마 적어서 천명 안쪽으로 정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이 세간에 던진 충격은 수치적인 피해 이상의 것이었다.
그도 그럴 만했다.
데몬 프린스가 세상에 나온 것이니까.
그것도 던전공략이 실패하는 방식을 통해서가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서!
이것은 향후로도 단순히 던전을 꾸준히 잘 공략하는 것만으로 고위 몬스터와 아크 데몬의 습격을 막을 수 있는게 아니란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헌터들에게는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세상에 위험해질수록 그들의 몸값은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편이었던 헌터의 사회적 직위는 이번 참변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더욱 올라가게 됐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위 데몬이 던전 이외의 방법으로 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으로만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어둠이 질척거리는 세계였다.
마기가 모여 만들어진 이차원의 세계.
아직 형체를 갖추지 못한 이곳은 막 탄생한 한 마왕을 위한 질료였다. 그의 뜻에 따라 무엇으로든 변용되어 하나의 세계가 될 준비를 마친 상태였지만 그 마왕이 지금은 그러한 작업에 관심이 없었기에 마의 질료들은 덩어리 지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으, 으으으...
그리고 그 세계의 중심에서, 그 세계의 주인이 고통에 자신의 귀를 부여잡고 있었다. 부화조차 하지 못한 이 세계의 주인은 바로 데몬 프린스 영빈이었다.
그는 아직도 코어가 있던 귓불이 절단당한 피해를 복구하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중이었다. 부들거리며 자신의 마력을 제어하는데 여념이 없는 그의 등 뒤로 무언가가 등장했다.
그것은 이 세계의 주인인 데몬 프린스 영빈의 힘 조차도 능가하는 또 다른 데몬 프린스, 칠흑이었다.
-꼴불견이군.
-닥쳐라!
칠흑의 조롱에 분노로 눈을 번뜩이면서 영빈은 그를 돌아봤다.
그의 세계가 아우성치면서 주인의 분노에 동조했다. 검은 질료의 무리가 당장이라도 칠흑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칠흑은 전혀 동요하지 않은 모습으로 말했다.
-네가 데몬 프린스라는 직위에 있다 하나 아직은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마라.
-우스운 소릴 하는군! 너는 이미 죽은 내 조상이 무서워 직접 세상에 나서는 것 조차 하지 못한 겁쟁이가 아닌가!
이를 갈면서 영빈이 외쳤다.
-물론 그는 무서웠지. 하지만 그를 무서워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놀라울 정도로 순순히 칠흑은 그 사실을 인정했다.
인간이 두렵다.
대종사 이건이란 존재를 마주하게 된 이후 모든 데몬 프린스는 직접 인간을 상대하는 것에 대해 미묘한 불안을 품게 됐다. 이미 그들 사이에서 그건 수치가 아니라 여겨질 정도였다. 영빈은 코웃음 치며 이를 갈았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두려워 하는게 좋아.
-너는 이건이 아니다.
-닥쳐! 나는 이건을 뛰어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자기도 제어하지 못해 유혹에 몸을 던진 주제에 말인가?
분노에 포효하는 영빈을 향해 차가운 얼음 같은 말을 칠흑은 던졌다.
-유혹에 진 것이 아니야!
-유혹에 진 것이지.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칠흑은 심장에 송곳을 찌르듯이 말했다.
영빈은 항변했다.
-이쪽이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효과적인 방법을 아버지에게 자랑하는 것 조차 너는 실패하지 않았나?
지금 칠흑의 말에 처음으로 영빈은 분노보다 당혹감과 수치심을 드러냈다. 그는 데몬 프린스라는 존재의 위엄에 걸맞지 않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다가 겨우 말했다.
-그건 방해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데몬 프린스가 기껏 인간의 방해자 하나가 나타난 것 때문에 뜻한 바를 이루는 데 실패하고서 그걸 변명으로 내세운단 말인가?
-그것은...
데몬 프린스는 신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다.
그들의 힘은 세상을 찢고, 그들의 의지는 만상을 오염시킨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심지어 자기 자신을 위한 하나의 세계를 부여받으며, 그 세계를 뜻대로 지배할 수 있기까지 하다. 차원을 넘어설 때 온갖 괴물들이 세상에 있다. 하지만 그것들 가운데 감히 데몬프린스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 데몬 프린스가 인간을 핑계로 자신의 뜻을 실현하지 못했다고 말한다는 것은...
너무 구차하다.
칠흑이 고개를 저으며 질책했다.
-어리석고 나약하구나. 너는 데몬 프린스이되 아직 인간의 껍질을 벗지 못했다. 아니, 본질에 있어선 여전히 인간인지도 모르지.
-개소리를...!
영빈은 여전히 이를 악물며 항변했지만 그 위세가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어쨌든 좋다. 잊지 마라. 너는 이번에 내게 큰 빚을 졌다.
-알고 있다. 언제든... 갚을 것이다.
칠흑이 이번에 영빈이 한국으로 가는 통로를 열기 위해 치른 비용은 정말 크다. 그의 아끼는 부하들 중 몇몇이 소멸당했고, 인간들과 쌓아 올렸던 관계 역시 희생해야 했다. 영빈은 그만한 댓가를 치워야 할 것이다.
-기대되는군.
그리고 칠흑은 몸을 돌려 영빈의 세계를 떠났다.
-하지만 아직 미숙하다 하나 데몬 프린스를 방해할 수 있었던 인간이라...
면전에서는 영빈을 깔보는 말을 했지만 칠흑은 저 신생 데몬 프린스를 그리 낮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높게 사고 있다. 그는 인간이며 그것도 그들의 가장 무서운 적이었던 자의 후손이며 그의 뒤를 이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겨지는 천재였다.
그런데 그런 자가 데몬 프린스가 되어 나타난 것을 일개 인간이 방해해 그가 뜻을 성취하는 걸 막아낼 수 있다?
-역시 묘한 것들이군. 그러하기에...
무언가 특이한 것이 인간들의 세상에 다시금 나타났음에 틀림없었다.
어쩌면 진정한 주가 영빈을 데몬 프린스로 만든 것은, 그리고 그를 데몬 프린스로 이 세계에 맞아들인 것은 그의 힘과 가능성을 다른 방향으로 높게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를 인간으로 계속 놓아두었다면 정말 대종사 이건의 영역에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한데...
칠흑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며 고개를 갸우뚱 움직였다.
얼마 전 들었던 묘한 소식이 떠올라서였다. 면식이 없던 데몬 프린스 하나가 갑자기 처참하게 박살 나 죽어버리고 말았다던가.
지구에 진출하기 위해 꽤 여러모로 공을 들이던 놈이라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는데... 데몬 프린스쯤 되는 존재가 그토록 허무하게 가 버리다니. 역시 아무리 오래 살았다 하나 세상이란 알 수 없는 구석이 많다.
그러하기에 칠흑은 음모를 통해 세계에 개입하는 지금 방식을 선호한다.
알파메일 1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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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출간일 | 2021.01.15
지은이 | 정희웅
펴낸이 | 박지현
펴낸곳 | 에필로그
주 소 | [14052]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학의로 146, 207-1505
전 화 | 070-8861-6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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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600-245-8
정가: 1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