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메일 1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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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알파메일 188화
188화 해체되는 음모(1)
영빈은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이 나체 상태로 건물 지하실 바닥에 누워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세우며 주변을 살폈다.
어둑한 공간 속에 의자에 앉은 한 남자가 보였다.
이제 잊으려야 잊을 수 없게 된 대상, 성태였다.
“정신 차렸나.”
“이건…….”
성태의 말에 영빈은 당혹스럽게 자기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매캐한 냄새가 떠돌고 있는 이 공간을 재확인한다기보다는 자기 육체의 감촉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데몬 프린스 시절에는 단순한 오감이 아니라 몸에서 확장되는 마기가 세상으로 확장되어 그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었는데 그것이 완전히 사라졌다.
즉, 영빈은 완전히 인간의 육체로 돌아온 상태였다.
그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우, 나도 이건 힘들었다고.”
성태는 여유롭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하지만 태도와는 달리 성태도 실은 미라처럼 메마른 상태였다. 아예 인간 하나를 재탄생시키는 것과 별다름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고 강력한 탈태환골이다.
그만큼 부패물도 많이 나왔지만 그건 불로 태워버려서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이어 성태는 그동안 구해 온 옷을 영빈에게 던져 줬다.
“일단 옷부터 입어.”
“어떻게 이런 일을…….”
서둘러 옷을 입으면서 경외를 담아 영빈이 물었다.
데몬 프린스를 다시 인간으로 바꾼다니.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이론상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정도는 이해했지만 이론대로 세상이 돌아갈 수 있다면 세상은 이미 천국에 아까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대종사 이건조차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성태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말해 두지. 영업 비밀을 밝힐 수는 없지 않겠어?”
“그렇긴 하겠군.”
어차피 답을 기대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금 자기 몸을 살폈다.
허전하고 무거웠다.
사실 천상을 날던 새가 그 날개를 뜯기고 지상에 추락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기뻐하기보다는 슬퍼해야 한다.
그러나 기뻤다.
육체가 이제까지 느끼고 있던 그 가벼움보다도 훨씬 큰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맑은 정신이었다. 데몬 프린스가 되고부터, 아니 데몬 프린스가 되기 훨씬 전부터 영빈은 자신을 괴롭히는 강렬한 충동과 소음을 뇌리에서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덕분에 마음을 지배하던 그 검붉고 흉한 감정들 역시 함께 사라진 상태였다. 그것이야말로 강건하고 가벼운 육체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우선…… 감사하고 싶다.”
영빈은 성태에게 고개를 숙였다.
지금 그가 해야 하는 가장 급한 일이었다.
성태는 손을 저어 그 인사를 뿌리치고 물었다.
“감사는 됐고, 어때?”
“오래…… 악몽을 꾸던 것 같군.”
“낡은 대사지만 적합한 표현이군.”
성태는 쓰라린 표정으로 답하는 영빈을 보고 고개를 끄덕여 만족했다. 지금 대답을 통해서 영빈의 정신이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어서다. 물론 그는 자신의 실력에 확신이 있기 때문에 성공했을 거란 점에 의혹이 없었지만 혹시 원상태로 돌아와도 자기가 저지른 일이나 그동안의 경험 때문에 정신이 붕괴해 버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나는 참 나약했군.”
영빈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 말에는 그가 어째서 데몬 프린스가 되었는지가 절실하게 함축되어 있었다.
성태는 그를 위로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마음의 약점을 찔러 오는 것이 악마의 특기니까.”
“그렇다 해도…….”
영빈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의지가 좀 더 강했다면 이런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면 역시 자책을 금할 수 없었다.
“뭐, 가볍게 생각하라고. 조종당했다고.”
성태는 아마도 영빈의 저런 성실한 성격이 타락의 이유이리라 생각했다. 성실한 성격이란 당긴 줄과 같아서 강해 보이지만 실은 약하다. 한 번 무너지면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불성실한 성격이야말로 튼튼하다. 쉽게 변하지 않는 항상성을 지닌다.
‘나처럼 말이지.’
성태는 뻔뻔한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히죽 웃었다.
한데 영빈에게 성태의 말은 별반 위로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울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조종당했다고 해서 내가 저지른 일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빈은 성태의 힘 덕분에 원래의 성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간 해 온 일에 대한 기억도 남아 있는 상태다.
당연히 이어질 반응이었다.
일단 성태는 위로했다.
“물론 그렇긴 한데…… 다행히 피해는 적은 편이니까 말이야.”
“적다고? 서울을 그 꼴로 만들고서?”
영빈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성태를 보면서 반문했다.
그의 데뷔전은 칠흑의 도움을 얻어 몬스터의 대군과 함께 서울에 강림해 이석훈을 상대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나름 대비했다곤 하지만 민간과 헌터, 양쪽 모두에 큰 재앙이었던 일이다.
사실은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도 이 일로 꽤 고역을 치렀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입장에서는 부패기득권을 성태가 쓸어버리게 됐으니 이득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어떻게 봐도 작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데몬 프린스라는 지위가 지닌 힘에 비하면 그렇다는 거야.”
성태가 쓴웃음과 함께 말했다.
데몬 프린스 강림이었다.
데몬 프린스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도시 하나를 지워버린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압도적인 악마다. 거기에 비하면 영빈은 다행히 별로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한 편이다. 데몬 프린스로서는 상당한 굴욕으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 성태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미스터 로드를 중태에 빠뜨린 것은 엄청난 일이다.
“별로 위안은 되지 않는군.”
“그보다, 너를 유혹한 악마는 누구지?”
성태를 화제를 바꾸어 물었다.
영빈은 쓰라린 표정으로 답했다.
“나를 유혹한 것은…… 칠흑이었다.”
“역시 그런가.”
성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칠흑 외에는 그럴 만한 악마가 없었다.
무엇보다 인간을 데몬 프린스로 변모시킬 정도로 강대한 마력과 마법적 역량을 갖춘 데몬 프린스는 그들 가운데서도 칠흑을 제외하면 없다.
게다가 칠흑이야말로 기실…….
성태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지금 칠흑은 칠흑이다.
영빈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칠흑은 아주 오랫동안 나를 노렸다. 나는 예전 명상을 할 때마다 불현듯 들려오는 속삭임이나…… 마음에서 일던 이해할 수 없던 충동을 느꼈는데 그건 틀림없이 마기의 개입이었으니까.”
“칠흑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동기도 있고.”
“동기?”
알 만하다는 듯 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영빈이 의아하게 되물었다.
칠흑에게 달리 동기가 있단 말인가? 단순히 인류를 지배하기 위한 말을 구하기 위해 그런 짓을 한 게 아니라?
“너희 조상하고 싸워서 크게 곤욕을 치렀잖아.”
“대종사 이건 말인가?”
“그래.”
대종사 이건.
이백 년 전에 나타났던 불세출의 천재.
그의 존재야말로 인류에게는 희망이고 악마들에게는 악몽이었다.
많은 데몬 프린스가 그에 의해 패퇴당했고, 심지어 소멸당한 경우까지 있었다. 그런 이건에 의해 패배를 겪은 데몬 프린스의 목록 가운데 바로 칠흑이 있었다.
그 패배로 인해 칠흑은 이후 직접 지구에 나서는 것을 피하게 됐다. 어쩌면 인류가 수백 년에 달하는 시간을 얻은 것이 바로 이건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 복수를 했다는 건가.”
“그것도 있겠고, 네 재질도 마음에 들었던 거겠지. 끌어들이면 끝내 주는 복수가 되는 동시에 쓸 만한 아군이 된다고 말이야.”
칠흑과 같이 교활한 악마가 한 가지만을 노리고 움직였을 리 없다. 그는 영빈이 실제로 마음에 들었음과 동시에 그의 타락을 통해 오래 묵은 원한을 갚고자 했던 것이다.
영빈은 이를 악물었다.
“더러운……!”
“너 하나로 끝낸 걸로 다행이라 생각하라고.”
성태가 혀를 차면서 충고했다.
그 말에 영빈이 흠칫 놀라는 표정이 됐다.
“내 동생도 노리고 있단 말인가?”
“네가 잘 풀렸다면 아마 그랬겠지?”
성태가 알던 미래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혜선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 이로 인해 혜선은 크게 성장할 것이고 칠흑이 노리기에 적합한 상대가 될 것이다.
“…….”
영빈은 성태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느낀 듯 쓰라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어 그는 한숨을 쉬며 고해하듯 말했다.
“정말 많은 이들에게 잘못을 범하고 말았군.”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갚아야겠지?”
성태가 말하자 그 의미를 읽고 쓴웃음과 함께 영빈은 반문했다.
“내게 다시 인류를 위해 싸우라고 말하는 건가?”
“물론이지. 그 외에 할 수 있는 게 있나?”
“그러나…….”
영빈은 고개를 저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따진다면 그 말이 옳다는 걸 안다. 하지만 영빈은 자신이 저질러 온 것들을 기억한다. 이제 와서 인류의 편으로 돌아간다니. 과연 얼마나 되는 이들이 거기 동조해 줄 것인가.
“받아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나?”
“받아줄 거라 생각하나?”
“이런 상황에서 천재 이영빈의 힘을 반기지 않을 리가!”
성태는 과장된 포즈로 양팔을 벌리며 환영하는 모습을 취해 보였다.
그러나 영빈은 역시 고개를 저었다.
“이미 나로 인해 고통을 겪은 이가 너무 많다.”
“그걸 위해 나서야 하는 거잖아. 아니면 이대로 있을 생각이야?”
“설령 그렇다 해도 무슨 면목으로 나가야 할지 모르겠군. 차라리…….”
영빈은 고개를 푹 숙였다.
수려한 그의 옆모습이 죄책감에 깊게 물들어 있었다. 성태는 그 모습에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자살하려는 것이다.
“어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그래. 빚을 지고서…… 그걸 갚지도 않고 사라지겠다는 건 무책임한 짓이겠지.”
영빈은 성태가 단호하게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그러나 쓰라려 보이는 표정은 그대로였다. 이대로라면 기껏 살려 놨더니 잘해 봐야 폐인 꼴이겠다 싶어 성태는 조금 더 그를 북돋워 보기로 했다.
“면목이 없다면 더욱 나서야 하는 거 아냐? 나섰을 때 겪게 될 비난과 질책은 스스로 그렇게 말한 죗값의 일부라고 생각해 버리면 되는 거고.”
“직면하게 될 비난도 죗값의 일부…….”
면목이 없다면 그걸 감수하고 나서서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조차 죗값을 치르는 방법에 포함된다는 성태의 말은 제법 설득력 있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건, 다시 말하면 세상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영빈에게 얼마나 큰 고통으로 여겨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 쓸데없는 생각으로 도피하는 것이야말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짓이겠지.”
“…….”
고민하는 듯 영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태는 더 강하게 나가지 않고 유화적으로 권유했다.
“뭐, 당장 같이 가서 싸우자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야. 힘을 회복하고 마음을 추스르는 데만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렇겠지.”
영빈도 일단 동의했다.
성태의 말이 옳았다.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되든 당장은 몸을 회복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게 급했다. 데몬 프린스 상태에서 해방됐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영빈은 힘의 근원을 잃어 매우 약해졌다는 것이다.
마나를 다 잃다시피 했을 테니 그걸 다시 채우는 것만 해도 적잖은 던전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전투 감각도 되찾아야 할 것이고.
성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세상이 다 네 적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기억해 둬.”
“별로 믿기지 않는군. 나는 이미…….”
“아니야. 내가 왜 굳이 이런 노력을 들여서 남자를 구한 줄 알아? 솔직히 말하면 저지른 일도 있겠다, 내 입장에서는 그냥 죽여 버리는 게 훨씬 속 편하지.”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알파메일 1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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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출간일 | 2021.01.15
지은이 | 정희웅
펴낸이 | 박지현
펴낸곳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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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600-245-8
정가: 1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