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21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21화
‘슉’, ‘샥’, ‘후웅’ 하는 소리도 아니고, 정확히 포인트를 꿰뚫었을 때 나는 그 깔끔한 소리를 들으면서 루시안이 내지르는 10번의 찌르기를
모두 감상했다.
총 10번의 찌르기 중에 합격점에 가까운 파공음이 들린 것이 무려 6번이다.
나머지 4번은 6번에 비해 조금 삐뚤어진 움직임이었지만, 그마저도 처음 검을 내질러 본 사람이 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맑은 소리였다.
내가 그 정도의 소리를 낼 수 있게 된 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3개월이다.
그뿐일까, ‘시익’, ‘식’ 하는 깨끗한 파공음을 연달아 성공시킬 수 있게 된 것도 6개월의 시간이 걸려서 2, 3번 정도를 연속 성공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어떻게 되어먹은 녀석인 거야?’
지치지도 않는지 찌르기 10번을 모두 펼치고 나서는, 베기 자세까지 스스로 교정에 들어간 여덟 살의 동갑 남자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내 몸 이곳저곳에 소름이 돋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재……라는 건가?’
아무래도 너무나 터무니없는 아이를 만난 모양이다, 라고 생각하며 나는 루시안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출 때까지 얼빠진 표정으로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길드의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찌릉찌릉’ 울린다.
카운터에 있던 레아 누나가 고개를 돌려 길드로 들어온 손님의 얼굴을 확인한다.
“레아 누나, 안녕하세요.”
“그래, 루시안 왔구나? 아넬 만나러 온 거니?”
“네, 아넬은 집에 있나요?”
“저쪽에서 책 읽고 있어.”
레아 누나가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가리키자, 루시안이 이쪽을 바라본다.
‘안녕’이라는 의미가 담긴 그의 손이 살짝 흔들린다. 나 역시 루시안의 인사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오늘도 검술 수련하려고?”
“네, 아넬이 가능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것이 좋다고 했었으니까요. 최근에 탄력도 붙었고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응용 동작도 가능할 것
같아요.”
“그, 그래? 엄청나구나…….”
루시안의 대답을 들은 레아 누나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옆에서 표정을 읽자니 ‘이걸 친구끼리 논다고 봐야 하나?’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긴, 이것도 정상적인 관계는 절대 아니지…….’
보통의 아이들이면 당연히 친구끼리 만나면 거두절미하고 밖으로 뛰어나가서 해가 질 때까지 거리를 쏘다니며 한바탕 뛰놀고 오는 것이 그녀가 아는
일반적인 상식상의 아이들이 노는 방법일 것이다.
한데 나와 루시안은 그런 일반적인 놀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서로 소통하고, 또한 대화하며 논다. 바로 검술이었다.
루시안이 우리 집으로 놀러 오면, 그때까지 책을 읽거나 리나와 놀고 있던 내가 루시안을 맞이하고 함께 목검을 가지고 뒤뜰로 간다.
이어서 2시간가량 서로 목검을 휘두르며 검술을 단련하고, 나는 우리 집으로, 루시안은 본인의 집으로 가 점심을 먹는다.
식사를 마친 뒤에 바로 운동을 하면 몸에 무리가 가니, 2시간 정도는 휴식이다.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함께 책을 읽거나, 리나와 놀거나, 검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다시 오후 3시부터
저녁 5시까지 검을 휘두른다.
최근 나와 루시안이 꾸준히 보내고 있는 일상의 모습이다. 서로 가족 간에 일이 있거나, 루시안의 부모님이 ‘너무 자주 놀러 가는 게
아니니?’하며 걱정하실 때를 제외한 대부분은 이렇게 보내고 있다.
주말이라고 예외는 없어서 최근 우리 집 뒤뜰은 나와 루시안의 전용 수련장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와 레아 누나도 시간이 있을 때마다 검을 수련하긴 하지만, 최근 길드 업무가 바쁜 관계로 나와 루시안만큼 검술에 시간을 투자하지는 못한다.
이래저래 결국 뒤뜰은 오늘도 나와 루시안의 차지인 것이다.
목검을 챙기면서도 레아 누나는 카운터에서 머리를 감싸며 ‘아아, 내가 아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닌데…….’ 라며 고민하고 있다.
‘저도 설마 이런 친구가 생길 줄 몰랐으니까 말이죠.’
레아 누나에겐 마음속으로 사과하고, 루시안과 함께 뒤뜰로 향했다.
루시안에게 검술의 기초 자세를 알려 준 그날로부터 벌써 3개월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루시안은 내가 봐도 ‘노력의 노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검술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옆에서 같이 수련하던 내가 폭주하는 루시안을 한 대 때려 ‘그 이상 하면 몸 망쳐!’라고 제재하지 않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검을 수련하는
통에, 괜히 멀쩡한 애한테 검술을 알려 줬다가 애 인생이고 몸이고 전부 망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루시안 노이로제라는 별 희한한 증세까지 겪었을
정도였다.
3개월이 지난 지금은 루시안도 스스로 검술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흥분이 가라앉은 상태이고, 덕분에 나 역시 훨씬 편하게 검술을 수련할
수 있게 되었다.
“자, 그럼 오늘도 기초 단련부터 시작할까?”
“알았어.”
나와 루시안은 최대한 옷차림을 가볍게 한 뒤, 서로 일정거리에 떨어져서 천천히 찌르기와 베기 동작의 기본자세를 취하고 목검을 휘둘렀다.
루시안이 오기 이전에는 ‘쉭’ 하는 파공음이 한 번 울려 퍼지던 뒤뜰에서 이제는 리듬을 맞추듯 ‘쉭쉭’ 하는 두 번의 파공음이 들린다.
나와 루시안은 서로 누가 더 완벽한 자세로 더 좋은 파공음을 내나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 몸에 힘을 주면서 목검의 끝을 응시하고 최대한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검을 휘둘렀다.
‘최근에 검술 실력의 진보가 훨씬 빨라졌어.’
힐끗, 루시안이 검을 휘두르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을 곁눈질로 훑어보고 난 뒤, 나는 스스로 깜짝 놀랄 만큼 발전된 내 자세를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사실 2년간의 노력이 있었지만 내가 취하는 기본자세는 어디까지나 ‘딱히 흠잡을 곳 없다’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간 것이지, 아버지가 지적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더 세세하게 지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본인 실력 자체는 그다지 높아진 것이 아니었다.
오러 익스퍼드 하급의 아버지조차 ‘내 자세가 그렇다고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기본기에 있어서 ‘완벽’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다.
보다 빠르고 정확한 동작이 가능하도록 몸이 단련되고 자세가 수정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완벽을 추구하며 완벽에 보다 가까워지는 것일 뿐이다.
말이 길었지만, 요는 기본기라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거다.
루시안과 함께 검술을 수련하게 된 이후, 내게 찾아온 변화는 나 스스로가 자세의 허점을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람은 안목에 따라 보이는 것도 볼 수 없고, 또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동안은 스스로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기본자세들이 루시안의 자세 교정을 보면서 ‘조금씩 고쳐야 할 부분들이 있구나.’하고
생각이 변하게 된 것이다.
말 그대로 안목이 늘어난 것이다.
2년 동안 수련해 오며 몸에 익힌 자세를 검술을 고작 3개월도 수련하지 않은 친구의 자세를 보고 바꾼다는 것이 상식적으로는 이상한 일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소신에 따라 자세를 교정한 이후 내 검술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서 지금은 아버지조차 깜짝 놀랄 만큼 발전을 이루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라고 하면서 목검을 통한 대련 과정에서 내게 생각지도 못한 반격을 받은 아버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셨던 말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인정받고 싶은 상대에게 인정받았다는 그런 기쁨이랄까.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어 낸 것에 오는 기쁨이랄까. 그런 말로 표현하기 힘든 성취감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루시안 덕분이라니.’
벌써 찌르기 자세를 수련하기 시작한 지 1시간째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도합 100번이 넘게 찌르기 자세를 취한 만큼, 나와 루시안의 입에서는
‘후욱, 후욱.’하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이마에선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뺨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분명 힘들고 고됨에도 불구하고 나와 루시안은 그 어느 쪽도 불평불만 없이 그저 묵묵히 목검 끝에 시선을 고정하며 검을 내질렀다.
특히 루시안의 집중력은 정말로 놀라운 수준이다.
네 살 때부터 체술을 단련하기 시작해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체력이 뛰어나다고 장담하는 나다.
그런 나도 100번 이상 찌르기나 베기의 동작이 이어지면 슬슬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마음속으로 ‘조금 쉴까?’하는 잡생각이 든다.
200번까지는 어떻게든 참아 내지만 아직까지도 그 이상 하면 집중력이 유지되지 않는다. 몸이 한계까지 지치고 피곤해지니 그에 따라 집중력도
버티지 못하는 탓이었다.
전생에서 수험생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집중력보다도 튼튼한 체력이다, 라고 했던 것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루시안은 나보다도 뒤늦게 검술을 수련하기 시작해 체력이 훨씬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100번이건, 200번이건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보지
못한다.
목검을 휘두르는 기계라고 표현해도 정말 그럴싸하게 들릴 만큼 한번 빠져들면 누가 옆에서 머리라도 때리지 않는 한(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짜 머리를
후려갈긴 것은 아니다!) 검술 수련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음 저 괴물 같은 집중력을 파악하지 못해서 거의 탈진 직전까지 검을 휘둘러 바닥에 털썩 쓰러진 루시안을 살려 내고자 얼굴에 물도 뿌리고 생전
해 보지도 않은 심폐소생술까지 도전하며 온갖 생쇼를 다 했던 것을 감안하면 아직도 루시안 노이로제가 도지려고 한다.
‘정도껏이라는 걸 알리는 데만 솔직히 3개월이 걸렸지.’
다행히 그동안의 교육(?)으로 이제 루시안은 스스로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몸이 슬슬 한계점에 도달할 듯싶으면 검을 멈춘다.
그늘에서 쉬면서 뜨겁게 달아오른 열도 식히고, 찬물로 수분도 보충한다.
친구를 가르치기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리나에게 ‘이건 지지예요, 지지!’라고 알려 줄 때와 같은 느낌이라 좀 오묘하긴 했지만, 덕분에 노이로제는
물론이고 루시안 역시 탈진으로 쓰러지는 일 같은 것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친구라고 부르기엔 조금 부족한걸.’
어느 순간 검을 내지르는 것을 우뚝하고 멈춘 루시안을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몸에 한계가 찾아온 것 같다. 루시안은 계속해서 검을 내지르고 있는 나를 몇 번 힐끗힐끗 바라보며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이다, 나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는지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물을 떠 오기 위해서일 것이다.
루시안이야 나를 친구로 여기고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내게는 루시안이 ‘친구’로 느껴지지 않았다.
비록 부모님과 레아 누나에겐 루시안을 ‘친구’라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친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루시안의 행동이나 모습들을 교정해 주다 보면 친구에게 충고를 해 주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동생인 리나를 돌보는 것에 더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