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9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9화
남자아이는 그런 내 모습에 눈동자를 조금 크게 뜨더니 ‘아차.’하면서 머리를 긁적이고는 내게 말했다.
“미안, 검술을 연습하고 있는데 방해했구나.”
“……아니야, 어차피 마지막이었고, 곧 끝낼 생각이었어.”
먼저 사과하면서 다가오는데 겨우 마지막 찌르기 동작 하나를 방해받았다고 그걸로 뭐라 하기도 좀 그렇다.
가볍게 괜찮다고 손짓하며 목검을 땅에 두 번 톡톡 두드리는 것으로 오전 검술 단련을 끝냈다.
“그나저나, 이곳은 외부인 출입 금지야. 오는 곳에 적혀 있었을 텐데 혹시 보지 못한 거야?”
“그게, 쉭쉭하는 소리가 나기에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와 봤어. 설마 나와 같은 또래의 친구가 검술을 수련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내 질책에도, 남자아이는 ‘하하.’하고 웃으며 넉살 좋게 머리를 긁적이는 것으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참고로 뒤뜰로 나오는 길드 뒷문은 우리 집으로 올라가는 2층 계단 바로 뒤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푯말이 걸려 있다.
기본적인 길드 시설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지만, 거주 공간까지 침입받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조치가 되어 있는 것이다.
뒤뜰의 경우에는 기껏해야 마당 정도의 용도이고, 연결되어 있는 문의 위치도 위치이다 보니 길드를 방문하는 모험자가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지는
않았다.
이 녀석은 그런 점을 알고서도 몰래 들어와 놓고는 뭘 이리 넉살 좋게 대꾸한담?
어이가 없어서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응시하니, 남자아이는 내 시선을 살짝 피하면서도 내가 들고 있는 목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거, 네 목검이야?”
“……어,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해?”
노린 것은 아니었지만, 꽤나 쌀쌀맞고 퉁명스러운 대답이 튀어나왔다. 이런, 또 이 모양이다.
어째 또래의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 나도 모르게 항상 이렇게 퉁명스러운 말투가 튀어 나간다.
단순한 낯가림인가 싶어서 고치려고 꽤나 애를 써 봤지만 의식하고 일부러 억누르지 않으면 지금처럼 나도 모르게 갑자기 이런 말이 튀어 나가고는
한다.
어른이라면 모를까(사실 어른에게는 이렇게 말하지도 않지만.), 감정에 예민한 어린아이들이라면 이런 쌀쌀맞은 태도를 접하면 금세 상대방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잃고 자신이 느낀 감정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하아……, 이러니까 도통 또래 친구가 안 생기지.’
내 스스로가 봐도 정나미가 떨어지는 태도이니, 이런 내게 쉽게 다가올 또래 친구는 없다.
‘밖에 나가서 좀 놀고, 친구도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라고 걱정하시는 부모님과 레아 누나의 충고를 듣고 몇 번인가 도시 거리로 나가서 또래의
아이들과 대화를 해 보려고 애썼지만 번번이 이런 내 태도 때문에 친구 만들기는 실패했다.
‘이거 진짜 성격에 뭐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것이라면 문제없다. 리나는 충분하다 못해 과할 정도로 애정을 쏟아 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친구’라는 범위로 한정되면
태도가 바뀐다.
눈앞의 어린아이를 나와 동급인 ‘친구’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야 할까, 거부감 같은 것이 먼저 들어 버리는 것이다.
원인은 확실하다.
전생의 기억 때문이겠지.
스물세 살 삶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서승연의 기억이 아이들을 ‘친구’라고 받아들이질 않는 것이다.
고집일까, 쓸데없는 자존심 같은 것일까. 어느 쪽이건 한심한 감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인정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질 못한다.
날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은 나보다 한참 어린, 그런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친구로서 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글러 먹었네.’
내 좁쌀만큼 작은 마음과 쓸데없는 고집에 작은 환멸 같은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이 아이도 나 같은 놈에게는 정이 안 생기겠지. 나라도 그럴 것이다.
“사실, 우리 아빠도 모험자를 하고 계셔. 그래서 나도 나중에 아빠처럼 모험자 검사가 되고 싶어서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데 아빠는 ‘애가
무슨 검이야!’라고 하시면서 도통 가르쳐 주질 않으시거든. 그런데 네가 검술을 하고 있으니까 조금 부러워져서 말이야.”
“……너, 생각보다 넉살이 좋구나?”
넉살이 좋다는 말은 이 세계에 없는 말이기 때문에, 내가 말한 단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며 머리에 물음표를 띄운 채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아이를,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퉁명스러운 말을 들으면 정나미가 떨어질 법도 하건만, 내 말을 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내 태도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처음과
다름없는 웃음을 지으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못 들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자신이 왜 목검에 대해서 물어봤는지에 대해서 내게 설명해 주었으니까 아마도 내가 하는 말은 다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런 태도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 대화에 어울려 주었다. 주로 ‘어떻게 검술을 배우게 되었는가?’, ‘검술은 많이 어려운가?’, ‘나는 역시 배우기
무리일까?’ 등 검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몇 번 정도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이 아이에 대해서 총 세 가지의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첫째로, 남자아이의 이름은 ‘루시안 지어스’이다. 아버지는 로톤 지어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C급의 모험자라고 한다. 그리고 루시안은 나와
동갑인 여덟 살이었다.
둘째, 최근 세룬 도시 근방에서 몬스터 퇴치 의뢰가 많아졌기에 일거리를 찾아 아버지와 함께 가족들이 전부 세룬 도시로 이사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셋째, 검술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고, 무엇보다 비위가 엄청 좋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도 모르게 루시안의 검술에 대한 투덜거림에 쓴소리가 세 번 이상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루시안은 단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웃음을 잃는 일 없이 계속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뻔뻔한 건지, 단순히 넉살 좋은 성격인 것인지 모르겠다. 단지, 이렇게까지 내게 달라붙는 아이는 동생인 리나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내가 당황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왜 자꾸 달라붙는 거지?’
한눈에 보기에도 ‘이제 그만하자?’라는 티를 팍팍 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루시안은 내게 이것저것 검술에 대한 질문을 쉴 새 없이 퍼부었다.
그리고 그걸 또 일일이 대답해 주고 있는 나도 웃기지만, 어느새 루시안과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 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또 무슨 경우람?’
억지로 다가가고자 할 때는 그리도 안 되더니, 남이 먼저 다가와 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이야기를 이어 가는 내 태도에 스스로 어안이
벙벙하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루시안은 또다시 특유의 매력 있는 웃음을 지으며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누구건 상대방의 얼굴이 내 얼굴에 가까워지면 몸을 자연스럽게 뒤로 빼게 되어 있다.
‘윽.’하고 깜짝 놀라 몸을 살짝 뒤로 빼자, 루시안은 반짝거리는 푸른 눈을 내게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부탁이야, 아넬. 나도 검술을 배울 수 있게 해 줘!”
“……뭐?”
얘는 갑자기 또 무슨 말을 꺼내는 거야?
검술을 배우는 것을 왜 내게 부탁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자연스럽게 눈이 찌푸려졌다.
아 이런,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 일어나면 눈이 찌푸려지는 것이 버릇이 되어 버렸다. 손가락으로 미간을 쭉 누르면서 인상을 펴고 ‘후우.’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안 돼.”
“……어째서?”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축 늘어지는 루시안의 모습이 조금 불쌍해 보였지만, 내게 루시안을 가르치는 것은 무리다. 애당초 내 스스로가 수련하기
바쁘고, 남에게 가르쳐 줄 만한 실력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설명하자, 루시안은 다시금 눈을 반짝이며 내게 다가왔다.
“그럼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되니까 옆에서 지켜볼 수 있게 해 줘. 아넬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을게!”
“너……, 옆에서 누가 지켜보고 있는데 신경 쓰이지 않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이게 처음 만나자마자 할 부탁이냐?”
“역시 안 돼?”
또다시 축 늘어진다.
아, 정말……. 왜 오늘 처음 보는 아이에게, 그것도 남자아이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건데. 또다시 인상이 찌푸려지려는 것을 간신히
막고, ‘후우.’ 심호흡을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난 누굴 가르칠 실력도 안 되고, 누군가가 내 수련을 방해하는 것도 원하지 않아. 그러니까 널 가르치는 것은 무리야.
알았어?”
“……응.”
“하지만 수련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구경하는 것까진 괜찮아.”
“……정말?”
“단, 이곳에 올 땐 부모님께 늘 말씀드리고 올 것. 딱히 검술을 위해서라고 말하진 않더라도 친구 집에 놀러 간다는 정도로 말하고 와.
알았어?”
“알았어! 정말 고마워, 아넬!”
“……그렇게 좋아할 필요는 없어. 방해된다고 생각되면 바로 취소할 거니까.”
“그래도, 고마워.”
“…….”
사실은, 루시안이 불쌍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한 번쯤은 부모님에게 아들이 친구를 데리고 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루시안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놀러 오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시안에게 친구로서의 무언가를 느낀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내 몸과 또래의 아이라고 생각될 뿐, 친구가 될 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정말 꼬였어.’
그래도 이런 내게 지치지 않고 말을 걸어 준 것은 루시안이 처음이었으니까 적어도 그에게 검술의 기초 자세가 무엇인지 정도만 알려 주는 것은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이 세계에선 검술이라는 것을 남에게 알려 주면 안 된다든가, 금기라든가 그런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루시안이 정말로 검술을 배우고 싶어 한다면 내가 2년 동안 연습한 찌르기와 베기 동작 정도만 알려 줘도 될 것이고, 만약 어린아이의 한순간의
호기심이었다면 그 전에 나가떨어져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상한 애야.’
루시안의 아버지는 맡을 만한 의뢰가 있나 잠깐 길드에 들른 것이고, 루시안은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온 모양이었으므로, 곧이어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안녕, 또 만나!’라고 손을 흔들며 길드를 향해 달려갔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주 손을 흔들어 주며 나는 또다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이것이 훗날 내가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친구라고 여기게 되는 남자와의 만남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