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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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0화
새로운 가족(2)
엄마의 출산은 으슥한 새벽녘에 이루어졌다.
저녁 무렵부터 진통을 느끼기 시작한 엄마의 말에, 아빠가 급히 에레나 신전으로 달려가 아이를 받아 본 경험이 풍부한 중년의 여신관님을 모셔
왔다.
여사제님은 엄마의 진통을 보고, 언제 출산이 이루어질지 모르니 우리 집에서 상태를 지켜보시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여사제님을 모신 상태로
새벽녘이 되자 엄마의 양수가 터지고 본격적인 출산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세계에서 출산은 대부분 에레나 여신의 여신관이 직접 참여한다는 모양이다.
신전이 없을 만큼 외진 곳에서 이루어지는 출산까지는 전부 관여하지 못하지만, 어지간한 도시와 마을에는 에레나 여신을 모시는 신관들이 있는 터라
그들에게 미리 출산에 대해서 말해 놓는다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여신관이 직접 임산부에게 와서 출산을 돕는다고 한다.
만약 인근 마을이나 도시에 여신관이 없다면, 옆 도시에서라도 파견을 올 정도라고 한다.
이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종족의 공통된 문화라고 하는데, 이유를 들어 보니 신관이 참여하지 않는 출산은 출산을 하는 산모도 그렇고, 아기도
그렇고 병에 걸려 위험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출산 시에 신관을 통한 축복이 필수라고 한다.
산모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신성력을 통한 축복이 있으면 둘 모두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다는 것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꽤나 깜짝 놀랐다.
‘이 세계에도 병균이라는 것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그런 것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이 세계에서 생각하기로는, 에레나 여신에게 받은 신체에는 누구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명력이 존재하는데 산모와 아기는 출산의 과정에서
아기가 산모의 생명력을 절반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는 것 같았다.
즉, 출산 바로 직후의 산모와 아기는 건강한 일반인에 비해 생명력이 절반이라 병에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그 부족한 생명력을 신관의 축복을 통해 보충하여 산모, 아기 둘 모두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신관이 출산 때 꼭 필요한 이유라고 한다.
단지, 외간남자가 여성의 몸을 보는 것은 이 세계에선 무척 큰 수치로 여기기 때문에 서로의 합의하가 아니면 대부분 남성 신관보다는 여성 신관이
출산에 관여한다고 한다.
여신관의 숫자가 적은 것도 아니고, 신관이라는 특성상 남성 신관과 여성 신관의 비율도 절반씩이라 여신관이 부족할 일은 없다나?
특히 우리 엄마를 찾아온 여신관은 세룬 도시에서도 출산에 도움을 준 경험이 매우 많은 베테랑 여신관이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상당히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레아 누나를 보조로, 방 안에서 엄마의 출산을 돕고 있는 중이시다.
과연, 경험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엄마의 출산이 시작되자마자 내 출산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짝 당황한 아빠를 차분히 진정시키며 끓는 물과 함께 태어날 아기를 덮을 깨끗한
천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여사제님은 이후 레아 누나에게 보조를 요청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셨다.
차분하고도 정확한 지시로 가족들에게 확고한 믿음을 준 여사제님의 모습이 어찌나 듬직하던지, 옆에 있던 나도 ‘오오, 여사제님!’하고 감탄할
정도였다.
지금은 아빠와 함께 거실 테이블에 앉아 엄마가 무사히 출산하길 기도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방문 너머로는 엄마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부디, 아무 이상 없이 무사히 출산이 끝나길…….’
고개를 살짝 들어 보니, 아빠 역시 간절한 표정으로 에레나 여신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평소의 근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영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꽤나 볼품없었다. 긴장되어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옆에서
보고 있는 내가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엄마의 고통스러운 소리를 듣고 있자니, 몸이 오들오들 떨린다.
엄마의 출산을 보조해 주시는 여신관님은 수십 번의 출산을 모두 성공적으로 이끈 베테랑이고, 또한 방 안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순조로운
출발이다.’라고 이야기하시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만에 하나라도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이 정도인데, 아빠의 마음은 오죽할까.
“……아넬?”
나는 이럴 때 해 줄 수 있는 위로의 말 같은 것은 잘 모른다. 그런 걸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해 봤자 그다지 도움도 될 것 같지 않고 말이지.
말없이 아빠의 곁으로 가 살짝 떨리는 그의 손을 잡아 주는 것으로 내 감정을 아빠에게 전했다.
그의 손을 잡고 나서 느낀 것인데, 나 역시 손을 조금 떨고 있었다.
이런, 누가 누구를 위로한다는 것인지, 나 참.
하지만 내 감정은 전해진 것인지, 아빠는 작은 미소와 함께 나를 꼬옥 끌어안아 주셨다.
엄마의 품만큼 부드럽지는 않고, 오히려 근육이 느껴지는 참으로 탄탄한(?) 품이었지만 엄마의 품 못지않게 따뜻한 그의 품 안에서 나는 엄마의
출산이 무사히 끝나길 다시 기도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시간 뒤, 프로스트가의 집에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태어난 것은 건강한 여자아이였다.
아빠와 엄마의 피를 정확하게 절반씩 이은 것일까? 비록 많지는 않지만, 백금발의 머리카락이 무척이나 인상 깊은 아이었다.
깨끗한 천에 싸여 엄마의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내가 상상하던 그런 포동포동한 볼살을 가진 아기가 아닌, 갓 태어나서 쭈글쭈글한 피부에 눈조차 뜨지 못하는 생명체가 그곳에 있었다.
엄마는 방 안으로 들어온 나와 아빠의 얼굴을 차례대로 둘러보고는, 힘겹게 미소 지으며 아빠에게 아이를 넘겨주었다.
“예쁜 여자아이예요.”
“어, 어…… 음. 그러네……. 아주 예뻐…….”
엄마에게 아이를 넘겨받을 땐 조금 불안정했지만 역시 나를 키웠던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아빠는 곧바로 아이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게 목을 받쳐
주며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아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약간은 울먹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하지만 울지는 않고 행복한 미소와 함께 아빠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수고했어, 정말로 고마워.”
“고맙긴요, 우리의 아이인걸요.”
“산모도, 아이에게도 모두 축복을 걸었습니다. 이후 몸조리만 잘한다면 병이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아이도 건강하고요.”
아빠와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여신관님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동생이 무사히 태어나게 도와주신 고마운 분이었기에, 우리 가족들은 모두 여신관님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아내와 아이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을 지켜 준 것은 제가 아니라 여신님이십니다. 한낱 그분의 종에 불과한 제게, 새 생명을 지킬 힘을 허락하여 주신 것도 그분이시지요.
가족 모두에게 에레나 여신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여신관님은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방에서 쉬고 가라는 부모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것을 여신님께 알리고자 신전에서 기도를
올리고 싶으시다며 바로 집을 떠나셨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집을 떠나는 여신관님의 뒤로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후, 엄마는 동생을 안아 보라며 내 품에 동생을 넘겨주었다. 물론, 서서 받기엔 아직 무리였기 때문에 바닥에 앉아서 조심스럽게 받았다.
‘생각보다는 훨씬 크고 무겁네.’
처음으로 안아 보는 신생아는, 내 생각보다 훨씬 크고, 무게도 조금 무거웠다. 보통은 이것과 반대로 너무나 작고, 가벼워서 이게 정말 사람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아직 내가 어리기 때문일까.
하지만 내 품에 안겨 있는 동생은 그 작은 몸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숨 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안의 무언가도 울컥 솟아오른다.
“반가워, 동생아.”
아마도 알아듣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 목소리를 듣고, 어쩐지 동생이 내게 대답하듯 강하게 몸을 움직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세계에서 처음 만나는 새 생명, 그리고 내 동생이다.
우리는 그날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
***
아이의 이름은 고민 끝에 리나로 정해졌다.
리나 프로스트.
여자아이다운 예쁜 이름이다.
참고로 이름을 정한 사람은 레아 누나였다.
루아라든지, 아린이라든지, 엘리아라든지 이것저것 다양한 여자아이 이름들이 후보로 올랐지만 딱 이거다 결정하지 못한 우리 가족들은, 결국 종이에
각자의 이름을 적고 바닥에 무작위로 흩뿌려 놓아 그중 종이에 적힌 사람이 아이의 이름을 결정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선택된 것이 레아 누나다.
여신관님을 도와 엄마의 출산을 도운 레아 누나인 만큼, 가족 어느 누구도 레아 누나가 아이의 이름을 결정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처음에 레아 누나는 한 아이의 이름을 자기 멋대로 결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우리 가족들의 뜻에 한 시간가량을 끙끙 앓으며
고민하다 ‘리나’라는 이름을 정해 주었다.
레아 누나로부터 리나라는 이름을 받은 내 동생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서, 태어난 지 세 달이 된 지금은, 눈도 뜨고 쪼글쪼글했던 피부도
탱글탱글하게 변하였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빨간 피부에 쪼글쪼글한 것이 천 속에서 꿈틀거리는 모습에, 이게 귀여운 건가? 싶었는데 이제는 피부색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몸집도 제법 커져 얼굴 윤곽이 제대로 나오기 시작하니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비록 지금의 얼굴로 미래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엄마의 외모를 물려받았다면 장래성은 충분하다.
머리카락 색도 빛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금빛과 은빛이 조화롭게 섞여 빛나는 백금발이니, 거기에 외모까지 받쳐 준다면 상당한 미인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미모의 여동생이 ‘오빠!’라고 불러 주는 모습을 상상하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으아아앙!”
“어여차, 이번엔 또 왜 그러니, 동생아?”
무엇이 불편한지 우렁차게 울기 시작한 동생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어 달랬다.
내 아기 때와는 달리, 리나는 기운이 넘쳤다.
배고프면 운다. 기저귀가 축축해지면 울고, 때로는 그것들이 아니더라도 안아 달라고 운다. 그러다 졸리면 또 운다. 참으로 아이다운 행동이다.
우는 것으로밖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단이 없으니 시도 때도 없이 우렁차게 운다.
그런데 내 아기 때의 모습만을 생각하던 아빠와 처음으로 아기를 대하는 레아 누나의 입장에선 매일매일 우는 리나의 울음소리가 상당히 견디기 힘든
모양이었다.
하루하루 다르게 다크서클이 진해지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아이에게 ‘너, 울지 마!’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참는 것 같다.
“후우……, 네가 아기였을 때는 이렇게까지 울진 않았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