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38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38화
“아넬이 길드 본부에 도착하고 난 뒤, 헤어지고 나면 다시 만나면 지금보다도 훨씬 성장해 있겠죠?”
“한창 성장기이니까요. 어쩌면 레아 누나보다도 키가 훨씬 커질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조금 분할 것 같네요.”
“분한가요?”
“아넬이 성장한다는 뜻은 반대로 저는 나이를 먹는다는 소리이니까요. 여러 의미에서 슬슬 위험해지는 나이입니다.”
“그건 결혼에 대해서인가요?”
“…….”
내 질문에, 레아 누나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아무래도 정답인 모양인 듯, 살짝 시선까지 피하면서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였다.
보통 이 세계의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성인이 되는 18세에서 30세에 결혼하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레아 누나는 아슬아슬한 라인에 도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레아 누나가 못생긴 건 아닌데.’
레아 누나는 예쁘다.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예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레아 누나가 스물한 살 때에도 했었던 말이지만, 솔직히 7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피부가 안 좋아진 것도 아니고, 주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물한 살 때의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레아 누나의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레아 누나에게 대시할 만큼 용기 있는 남자가 없는 것일까.
그녀는 그 사실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조급하다고 해서 마음에 없는 남성과 교제할 수는 없으니까요. ……후우, 저는 아넬에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괜찮아요. 저는 레아 누나를 좋아하니까요. 훗날에 제가 성장하고 나서도 레아 누나에게 마땅한 남성이 없다면 제가 레아 누나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후후, 성장하고 나서인가요?”
아무래도 어린 동생의 장난 어린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레아 누나가 후훗, 하고 웃었다.
음, 나름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아무래도 몸이 몸이다 보니 그다지 진심으로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내 말이 그다지 싫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레아 누나는 다정한 미소와 함께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저는 아넬이 성장할 때까지 열심히 노력해 봐야겠네요. 만약 그때까지 정말로 제가 상대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면 아넬이 데려가
주세요.”
그 말 역시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기보단 누나가 동생에게 장난으로 하는 말 같은 것이었다.
‘뭐, 상관없으려나.’
덕분에 분위기는 좋았다.
나도, 레아 누나도 서로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이상한 징조
세룬 도시를 떠난 지 3일이 지났다.
덜커덩덜커덩 흔들리는 마차의 리듬에도 어느새인가 상당히 익숙해져, 처음엔 저릿저릿하던 엉덩이도 이젠 괜찮고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던 멀미 기운도 사라졌다.
단지, 지루하다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오늘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후우……, 뭐라도 할 것이 있으면 좋을 텐데.’
읽을 책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가져온 책이 없으니 읽을 책 또한 없었다.
그렇다고 흔들거리는 마차에서 검을 들고 검술을 단련한다는 둥, 체술을 단련한다는 둥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 번은 만화에서처럼 균형 감각을 키우겠답시고 흔들거리는 마차 안에서 자세를 잡아 봤다가 덜컥하고 마차가 크게 요동치는 바람에 벽에 머리를 박고 난 이후 그런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럴 때면 현대 문물이 그리워진다.
지루한 귀성길의 지루함을 달래 주는 라디오나 스마트폰, 게임기 등이 머릿속에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중 가장 생각나는 것은 역시 스마트폰이다. 게임을 해도 되고, 친구들과 채팅을 하거나, 음악을 들어도 되니 심심함을 달랠 수 있을 텐데.
‘아니지, 전기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니까 되는 것도 별로 없으려나?’
충전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통신망이 잡힐 리 없으니 사실 있어도 그다지 쓸모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기도 마찬가지, 라디오도 방송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하 동문이다.
결국 책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어서 현대의 문물도 별거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하아, 지루하다…….
마차 창문을 통해 구름이 천천히 이동하는 것을 감상하며 작게 한숨을 쉬자 맞은편에 앉아서 지도를 보고 있던 레아 누나가 내 모습을 힐끗 보고 후훗, 하고 웃었다.
“다음에 여행할 때는 책이라도 몇 권 사야겠네요. 아넬이 이렇게 지루해할 줄은 몰랐는걸요?”
“검술이나 체술 같은 것이라도 연습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가만히 있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소설이나 만화 같은 것을 보면 마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명상을 하며 실력을 증진시킨다든가, 꾸준히 내공을 수련하면서 잘도 성장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이미지 트레이닝 정도라면 실력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명상처럼 가상의 적과 맹공을 주고받기에는 내 경험도 부족할뿐더러, 명상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명상 정도로 실력이 증진될 그런 고강한 실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오러도 상황은 별반 다를 것이 없어서 신체를 움직이면서 오러를 소모시켜야 단련이 되는데, 마차 안에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다.
결국 신체를 이용하는 모든 활동은 강제 제한이다.
매일같이 검을 휘두르던 내가 갑자기 모든 신체 활동을 제안당하고, 그렇다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루시안이 붙임성이 좋은 것이에요.”
참고로 루시안은 마부석에 앉아 슐츠 씨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슐츠 씨도 천성 자체가 남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인 것도 있었지만, 루시안 본인도 붙임성이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한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났으니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리 없는 터라 지금도 마차 너머로는 루시안과 슐츠 씨가 간간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 심심하면 그들 사이에 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도 괜찮겠지만, 어쩐지 그런 것도 귀찮았기에 그냥 마차에 앉아 멍 때리며 하늘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귀차니즘이라도 걸린 것일까, 이거.
“그런데 아까부터 지도를 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누나?”
“수도에 도착한 이후엔 라그나 왕국으로 가야 하니까요. 카르네 영지까지 가는 길을 확인하고 있었어요.”
“라티움에서 카르네 영지까지 가려면 돈이 꽤 들지 않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세룬 도시에서 라티움까지 이동하는 데만 20은화였으니까요. 아마 라티움에서 라그나 왕국의 수도인 시트론까지 이동하는 것에 50은화 이상이 쓰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트론에서 다시 카르네 영지까지 이동하려면 추가로 10은화를 더 쓰게 되겠지요. 음, 계산해 보면 가는 데 약 60에서 70은화가 쓰이겠네요. 거리가 거리인 만큼 중간에 추가적으로 돈을 쓸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생각보다 큰 금액이네요.”
최소치인 60은화만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한화로 약 300만 원 이상을 사용하는 셈이다.
국경을 넘는 것이니까 해외여행을 간다 생각하고, 비행기 값과 호텔 값, 그리고 식비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비싼 금액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생의 기준이고 이 세계의 평민 기준으로는 10은화로 4인 가족이 한 달은 굶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
60은화면 4인 가족이 반년을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금액이니, 레아 누나 혼자라면 그 돈으로 반년 동안 매일 고기를 먹으며 사치품도 좀 사고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 다시 라그나 왕국에서 세룬 도시까지 돌아와야 하니 왕복 비용으로 사용되는 돈의 총합이 약 160은화.
한화로 계산하면 800만 원.
적은 돈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계산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레아 누나가 빙그레 웃는다.
“그래도 그동안 벌어 둔 돈이 꽤 되니까요. 다녀오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사실 다녀오는 것에 드는 비용은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가요?”
이만한 돈을 사용하고도 여유가 있다는 소리는 그만큼 레아 누나 본인이 능력이 있다는 것이겠지.
우리 집에서야 일의 양을 감안해 한 달에 약 15은화 정도를 받지만, 본부에서 일할 때는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사치품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돈 쓰기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니 여유가 있는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레아 누나와 함께 지도를 살펴보며 라그나 왕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였다.
‘덜컹’ 소리와 함께 움직이던 마차가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창밖을 내다보자, 슐츠 씨와 루시안이 마부석에서 내려 무언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일까요?”
“저희도 내려서 확인해 보죠.”
아무 이유 없이 마차가 멈췄을 리는 없으니 나와 레아 누나는 서로를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여, 마차에서 내려 슐츠 씨와 루시안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건?”
“……으윽.”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레아 누나와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길가를 틀어막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길가 바로 옆 들판에 흉측한 몰골의 시체 세 구가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마차를 멈춘 것인 듯, 슐츠 씨와 루시안도 좋지 않은 표정으로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언가의 습격을 받은 것 같군. 행상인 같은데…… 이게 무슨 일인지.”
슐츠 씨의 말에 시신 근처를 돌아보자, 꽤나 큰 부피의 짐 몇 개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떨어진 곳을 보니 나귀나 망아지로 보이는 것의 사체가 세 구의 시신과 마찬가지로 들판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의 말대로, 나귀에 짐을 싣고 이동하던 행상인들인 모양이었다.
불을 피운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들판에서 야영을 했던 모양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여기서 죽임을 당한 것일까.
‘윽.’
조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애써 참고 있었지만, 시체의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자, 비위가 상해 속이 울렁거렸다.
시체의 상태는 괴기했다.
옷은 찢어발겨져 있었고, 살점이 너덜너덜하다.
눈알이나 내장 같은 부위도 거의 없어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게 살점과 내장을 뜯어 먹힌 듯한 행색이었다.
“읍…….”
사람의 시체를 보는 것은 루시안도 나와 마찬가지로 처음인 모양인지, 시체의 모습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 역시 잘못하면 구토할 것 같았지만 애써 참고 루시안과 똑같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거, 심하군.”
우리 두 사람과는 다르게 슐츠 씨나 레아 누나는 사람의 시체를 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 인상을 찌푸리고는 있었지만 혐오감이 아닌, 측은함의 시선으로 죽은 시신의 상태를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