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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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9화
제4장 준비 2 (2)
진 밖에서 한 청년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사악한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겁도 없이 지옥의 무저갱에 쳐들어온 불나방들에게 자비는 존재하지 않았다.
씨익!
“상황파악도 못하는 날파리들에게 힘 낭비는 어리석지.”
흡혼마환진은 말 그대로 혼을 흡수하는 진법이었다. 내공을 끌어 올릴수록 정(精),기(氣)신(身)이 진에 흡수되도록 만들어진 진법이다.
혼과 기운을 흡수할수록 진은 더욱더 단단해지며 견고해진다. 진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은 오감(五感)을 통제하여 기운을 밖으로 발출시키지 않은 채 앞으로 걸어오는 방법뿐이다.
무척이나 간단한 방법이지만 위무환과 무인들은 진에 갇혔다는 생각에 진법의 흐름만을 파악하려고 하고 있었다.
내공을 끌어 올리면 올릴수록 기운은 빠져나간다. 그러나 본인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흡혼진(吸魂陣)에 환영진(幻影陣)이 섞여 있어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게 만든다. 진 안에 갇힌 무인들은 환영이 현실로 보일 것이다.
흡혼마환진의 가장 무서운 점은 기운을 빼앗긴 후 실혼인이 되어 버린다는 것에 있었다. 혼을 잃어버린 육체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극악한 진법이며, 술책이 아닐 수 없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람의 마음을 교묘히 이용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천무상회주였다.
천무상회의 회주는 강무진이었다. 밀영의 수련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무진은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였으니 세상이 요동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뒤처리를 깔끔하게 해라.”
“예, 주군!”
밀영단의 수장 밀영1호 차중천이 무진의 뜻을 받들었다. 실혼인에 대한 처리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애써 잡은 녀석들에게 지옥보다 더한 삶을 살게 만들어 줄 계획이었다. 그들은 모두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도구에 불과했다.
“어디냐? 비겁하게 숨지 말고 나와라!”
위무환은 아무리 노력해도 빠져나갈 방법이 나오지 않자 애병인 혈도(血刀)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독문도법인 천도구식(天刀九式)의 전 초식이 발현되었다.
강맹한 힘이 발출되어 뻗어 나갔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허공을 가르는 공격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다가 주변의 기운에 흡입되어 흐트러졌다. 위무환의 강맹한 도기(刀氣)는 흡혼마환진에 흡수되어 사라질 뿐이었다. 점점 무진의 말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이…럴 수가!”
허억! 허억! 허억!
기운과 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300명의 무인들 전부가 숨이 차오르고 있지만 혼이 빠져나가자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둠은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했다. 불안감 속에서 무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지닌 것을 쏟아내는 것뿐이었다. 무인들은 죽음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그 시각.
요동상회는 습격을 받고 있었다. 고작 20명으로 이루어진 정체불명의 무인들이 나타나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였다. 그들의 손속은 잔인하고 정확했다.
반항이나 항복 따위는 애초에 받아주지도 않았다. 빠르고, 간결하게 사람들을 죽였다. 보이는 족족 살아 있는 생명체를 말소해 버리고 있었다.
“크아아악!”
“살려…아악!”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기천우는 기가 막혔다. 놈들은 너무 강했다.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놈들이 나타났는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상회의 무인들은 그들의 일검조차 막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놈들의 일검에 서너 명의 무인들이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이…럴 수가!”
상회를 지키는 일급호위무사조차 추풍낙엽이었다. 놈들의 쾌검에 목이 잘리고, 심장이 뚫려 차가운 바닥을 뒹굴었다.
기천우는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웠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비밀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여기 있다가 개죽음 당하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그는 수하들의 죽음에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았다. 자신만 살아난다면 요동상회는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보았다.
다급하게 방으로 들어온 기천우가 벽면의 작은 구멍에 열쇠를 넣었다. 위험한 순간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비밀장소였다. 그곳에는 이제까지 상회에서 벌인 일을 기록한 장부와 상회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막대한 재산이 보관되어 있었다. 재산과 장부만 있다면 어디서든 재기할 수 있을 것이다.
끼이이익!
돌로 된 석문이 열렸다. 석문은 한번 잠기면 안에서 열어주지 않는 이상 열리지 않도록 기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기천우는 석문이 열리자마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기필코 복수해 주겠다!”
복수의 각오를 다진 기천우가 통로를 따라 비밀장소를 향해 천천히 걸어들어 갔다.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안전한 장소라는 것을 알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먼저 어떤 놈들이 요동상회를 급습한 것인지 알아내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설마! 천무상회!”
때마침, 섬광처럼 스쳐가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천무상회는 지금 공격을 받고 있을 것이었다. 위무환과 300명의 무인들을 막아낼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런 기천우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다.”
기천우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과는 다르게 등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언제부터 뒤에 있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여길?”
“멍청하군. 너 따위가 도망치는 것을 우리가 그냥 두고 볼 줄 알았나.”
밀영2호 갈중혁이 기천우의 행동을 조롱했다.
“그럼 설마! 네놈이 이곳으로 온 것은?”
“네가 그동안 벌인 일을 모아 놓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기천우는 이가 갈렸다. 놈은 자신의 행동을 파악하고, 이곳으로 올 줄 알고 있었다. 결국 놈들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기천우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받았다.
“이놈! 죽어라!”
무공을 할 줄 모른다고 알려진 기천우의 소매에서 날카로운 단검이 뻗어 나와 갈중혁의 심장을 노렸다.
갈중혁은 한 발을 떼는 것으로 기천우의 기습을 손쉽게 피해버렸다. 그는 곧바로 안으로 파고 들어가 기천우의 팔을 잡고 역으로 꺾어 버렸다.
우드드득!
“크아아아아악!”
“지금까지 네가 한 행위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는 줄 아느냐? 결코 편하게 죽여주지는 않겠다!”
갈중혁의 원래 이름은 타지르였다.
노예사냥꾼을 피해 도주를 주도했던 아이가 이제는 사냥꾼이 되어 기천우를 공포에 젖게 만들고 있었다. 지옥 같은 나날들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런 놈들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을지도 몰랐다.
덜! 덜! 덜!
평생 겪어 보지 않은 생소한 고통에 기천우는 이가 부러지도록 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중혁의 엄청난 살기에 절로 위축이 되어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기천우의 바짓가랑이는 축축하게 젖어오고 있었다.
기천우의 버러지 같은 모습에 갈중혁은 좀 전보다 진한 살기를 띠었다.
‘고작 이런 놈 때문에!’
쓰레기 같은 놈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모진 시련을 겪었다는 것이 분했다.
갈중혁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빠른 시간 안에 정해진 임무를 끝내라고 명령을 받았다. 밀영에게 무진의 명령을 절대적이었다.
“정확히 일각이다! 그 안에 네놈은 죽고 싶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소리가 일각 동안 계속되었다. 결국 기천우는 갈중혁의 말대로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되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었다. 갈중혁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의 바람대로 심장에 검을 박아 주었다.
기천우를 죽인 후 갈중혁은 서둘러 비밀방에 들어갔다. 방 안에는 그동안 모아 놓은 재산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벌여 놓은 일들을 세세히 기록한 장부가 존재했다. 이번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장부였다.
갈중혁은 장부의 내용을 확인했다. 요동상회의 거래내역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증거를 확보한 갈중혁은 방에서 빠져나왔다.
* * *
부들! 부들!
전신의 힘이 모두 빠져 버렸다. 혼까지도 무언가에 의해 타격을 받은 것처럼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위무환은 현재의 상태를 믿기 힘들었다. 내공이 고강하기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위무환의 수하들은 육체까지도 말라가고 있었다. 생명력을 잃은 고목처럼 변해갔다.
위무환은 그제야 보통의 진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도 이제 얼마 버티지 못한다. 이가 갈리도록 분노가 치솟았다. 이제까지 수많은 목숨을 빼앗았지만 이런 잔인한 수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철퍼덕! 철퍼덕!
무인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온몸의 피와 살이 빨려 나간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졌다. 육체가 말라버린 무인들은 한이 너무 컸던지 눈조차 제대로 감지 못했다.
위무환은 억울했다. 차라리 시원하게 도(刀)라도 휘둘렀다면 이렇게 분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무엇인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온몸의 피와 살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위무환의 몸도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이…놈! 네놈이 사람이냐!”
“훗!”
진을 뚫고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에 펼쳐진 어둠의 환영조차 빠져나가지 못한 위무환이었다. 웃음소리가 가볍게 진을 뚫고 들어와 위무환의 심령을 흔들어 버렸다. 웃음소리에 실린 경력(勁力)이 위무환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순간 움츠러들고 말았다.
“모습을 드러내라!”
“그렇게 소원이라면 들어주지.”
지옥의 철벽처럼 위무환을 막고 있던 진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위무환은 허탈감과 상실감을 느꼈다. 진이 사라지자 젊은 청년이 서 있었다. 천무상회의 회주 강무진이었다.
강무진의 무심한 눈이 위무환의 눈동자를 투영했다.
위무환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육체와 정신이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정상적인 몸이라고 해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런 압도적인 기운은 생전처음이었다. 모용세가의 가주를 봤을 때도 이 정도로 엄청난 압박감은 받지 않았다. 살아생전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절망이 가로막고 있었다.
‘뭐…냐! 이…괴물은?’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불쑥 나타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위무환의 몸은 쓰러지기 직전으로 삼류검객조차 이길 수 없는 지경이었다. 바로 앞에 강무진이 서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든다. 무인에게 무력감은 죽음보다 더한 수치였다.
“억울한가.”
강무진은 가혹했다. 위무환의 심령을 마구 흔들고 있었다.
“그…렇다, 내가 정상이라면…….”
“진심인가.”
너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사실이라는 것을 알기에 위무환은 비참했다. 비참한 마음이 들자 오기가 치솟았다. 그래서 위무환은 강무진을 향해 소리쳤다.
“난…천살도 위무환이다!”
“변방의 작은 성에서 얻은 쥐꼬리만한 명성이 그렇게 대단한가.”
죽어 가는 위무환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잔인하게 짓밟아 버렸다. 위무환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그의 혼도 흡혼마환진에 대부분 빼앗겨 버린 상태였다.
“네…놈은…악마…다!”
“크하하하하하하!”
강무진은 웃음이 나와 참을 수 없는 것 같았다. 터져 나오는 웃음이 천무상회 전체를 거세게 진동했다.
“악마라… 좋군!”
오싹!
무진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무환은 겁이 났다. 위무환은 비틀거리는 몸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강무진은 위무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죽어 가는 자의 머리통에 가벼운 지풍을 날렸다. 지풍은 위무환의 머리통을 손쉽게 부셨다. 부서진 뼈들과 피, 뇌수가 뒤범벅되어 바닥을 더럽혔다. 요동성의 5대고수치고는 너무나 허망한 죽음이었다.
“이제 시작이군.”
요동상회를 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무진의 욕망을 끝이 없었다.
* * *
요동성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요동성 상계의 대상회인 요동상회가 무너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요동상회가 그동안 벌인 일이 낱낱이 밝혀진 것이 문제였다.
특히, 요동상회가 노예사업을 벌이면서 행한 잔혹한 수단은 요동성의 모든 백성들이 손가락질하게 만들었다.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그와 연관된 무림세력이 있다는 것으로 인해 무림인들에 대한 지탄이 알게 모르게 이루어졌다.
요동무림이 벌통을 쑤셔 놓은 것처럼 어수선했다. 특별하게 문파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에 대한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중원무림이야 요동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기에 그다지 큰 충격을 받지 않겠지만, 모용세가와 철혈세가는 달랐다. 요동무림의 패권세력이기에 소문의 중심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또한 요동상회에서 한 모든 일에 관여한 것으로 오해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