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2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2화
제1장 분노로 일어선 자 (2)
운부촌을 정리하고 마을에 불을 지르기 직전, 매화검제 육진풍은 나주환의 시체를 보았다. 나주환의 시체를 본 육진풍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강호16대고수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나주환은 그에 버금가는 고수로 알려졌다. 괜히 종남파가 내세우는 신검(神劍)이 아니었다.
‘종남신검을 일수로 죽이다니! 도대체 누가?’
구천십육마는 절대 그럴 수 없다. 마인들의 능력이 강하기는 해도 나주환을 일수에 죽일 정도는 아니다. 육진풍조차도 나주환이라면 10여 합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상상할 수는 절대고수가 등장한 것이다.
육진풍은 고민이 되었다. 그 정도의 절대고수라면 찾기도 힘들 것이다. 게다가 이미 빠져나간 자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 일의 지휘자는 육진풍이다. 살아난 자가 있다면 임무는 실패한 것이다. 그가 지금껏 이루어 놓은 명성을 고려하면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된다.
“돌아간다.”
육진풍은 찾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후일 그가 내린 이 결정이 가져올 파급은 중원의 어떤 재앙보다 무서운 재앙이 될 것이었다.
그들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인물을 건드리고 말았다. 대재앙의 시대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 * *
아버지가 마인들의 주먹에 얼굴이 박살나서 죽었다. 어머니는 누나를 보호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무력했다. 놈들은 어머니의 상의와 하의를 벗기고, 유린했다. 짐승만도 못한 놈들은 어머니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제 막 아이의 티를 벗은 누나의 순결마저 철저하게 유린했다.
소년은 무력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는 마인들의 강력한 힘 앞에서 무기력하게 나가떨어졌다. 마인들은 소년에게 절망을 선사하고, 발악하는 소년의 모습에게 쾌감을 느꼈다. 사람의 마음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울부짖어도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다. 세상은 비정하다. 약한 자에게는 소박한 삶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것이 현실이다.
“안 돼!”
어머니와 누나가 죽기 직전 소년은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악몽 같은 꿈에서 벗어난 무진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처음 보는 장소에 혼란스러웠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괴인이 도와준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이 날 이곳으로 데려왔구나!’
주르르륵!
꿈보다 현실은 더 가혹했다. 무진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부모님과 누나의 따스한 보살핌 속에 살았다. 그 모든 것이 하룻밤 꿈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또한 분노가 치솟았다.
‘왜?’
무진은 반문했다.
왜 모든 것을 잃어야만 하는 것인가!
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인다. 힘없는 사람은 이유 없이 죽어야만 하는가! 그것이 세상의 진리란 말인가!
누구도 답을 내주지 않았다. 무진은 세상에 대한 끝없는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모두 죽인다!”
“좋은 마음 자세다.”
어느새 무진의 지척까지 괴인이 다가왔다.
괴인의 드러난 모습은 잘 벼린 칼을 연상케 하였다. 굳게 다물어진 입술과, 투지가 불타오를 듯한 강인한 눈빛, 검게 그을린 피부. 강인함이 절로 느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을 불사를 듯한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었다.
무진이 반문했다.
“왜 우리 가족은 죽어야 했던 겁니까?”
“그래서 억울하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약한 것은 죄다. 약하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다.”
“약자이기에 짓밟히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까?”
무진은 절규에 가깝게 소리치며 물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소년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냉정했다.
“나약한 존재는 죽어 마땅하다.”
“힘이 없으면 쓰레기란 말씀입니까?”
“그렇다. 강자만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약자는 강자의 발앞에 수그리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도구에 불과하다. 세상은 강자의 원칙이 지배를 한다. 나약한 자가 발악을 한들 어느 누가 외침을 들어주겠느냐! 어느 세상이건 마찬가지다.”
부들! 부들!
무진은 격렬히 분노했다.
“그…것이 세상인가! 그것이 세상이 원하는 전부인가! 그렇다면 나는… 내 가족은… 나의 모든 것은?”
격분이 도를 넘어 한스런 절규가 터져 나온다.
세상이 강자를 원한다면 무진도 강자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었다. 강자가 되어 세상을 마음대로 유린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설혹 정도에 벗어난 일일지라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었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불태울 때까지, 마음속에 생긴 원한이 모두 불타오를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 제자가 되라. 그럼 강자가 되어 세상을 발아래 둘 수 있다.”
“저는 인간이 되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악마가 되어 세상을 철저하게 유린할 것입니다!”
“훗! 좋다. 네가 강자가 되든 악마가 되든 그건 상관하지 않는다. 나의 제자가 된 이상 누구보다 강해져야 한다. 내가 원하는 수준이 되지 못한다면 너는 약자에 불과하다. 나는 약자를 두고 보지 않는다. 죽기 싫으면 강해지는 게 좋을 거다.”
괴인은 무진에게 강자의 법칙만을 강조했다.
강자란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강자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던 이기면 되는 것이다.
“제자가 사부님께 인사드립니다.”
“허례의식 따위는 필요 없다. 절을 한다고 해서 없던 정이 생기지 않는다. 너는 그저 나에게 본문의 절기를 배우면 되는 것이다. 우선은 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투선문의 15대 문주인 관마혁이라고 한다.”
“투선문.”
무진은 투선문(鬪仙門)이라는 문파를 들어보지 못했다. 무진의 어리둥절한 반응을 관마혁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관마혁은 무진의 말에 개의치 않고 투선문의 내력을 설명해 주었다.
투선문의 역사는 자그마치 천 년이 넘었다. 투선문은 투쟁의 문파다. 정(精), 기(氣), 신(神)을 수련하고, 세상과 조화를 이루어 우화등선(羽化登仙)을 목적으로 하는 도가의 신선과는 다르게 전투와 투쟁을 지상 과제로 여기는 투선(鬪仙)의 문파다.
“너는 내 뒤를 이어 16대 문주가 되는 것이다.”
“천 년 동안 이어진 문파치고는 문주의 수가 적군요.”
천 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 동안 투선문은 15명의 무인만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한 세대와 세대의 차이를 30년으로 잡으면 적어도 30명의 무인이 있었어야 했다. 15명은 너무 적은 수였다.
“문파의 보존을 위한다는 생각은 없다. 투선문의 절기를 잇는 데 부족하다면 두말하지 않고 제자를 죽인다. 이것이 투선문의 율법이다.”
문파 보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절기를 전수하는 여타의 문파와는 규율 자체가 다르다. 투선문은 철저히 강자지존이다. 자질과 능력이 부족한 제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전수기간이 얼마가 되든 원하는 수준에 올라서야 한다는 말이다.
역대 투선문의 문주들이 대부분 200년 이상을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초극의 무인은 수명조차 비껴나간다. 다른 말로 하면 투선문의 문주들의 강함이 초극을 넘어섰다는 뜻이 된다.
소름 돋는 문파의 계율이었다. 한 사람만이 진전을 이을 수 있는 일인비전(一人秘傳) 문파의 경우, 절기가 분실되거나 소실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동안 유지되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이토록 혹독한 방식을 사용하면서 천 년을 전해져 내려오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너는 자질을 갖췄다. 투선문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자의 뒤를 이을 재목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너의 몸은 6대 문주와 같은 투신지체를 타고났다.”
“투신지체요?”
“천무지체, 금강지체라는 것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체질이지. 이것은 몸보다 정신에 관계가 있다. 끝없는 투쟁본능과 야수 같은 광폭함을 가지고 있다. 무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몸이 아니라 극한의 시련을 버텨낼 수 있는 정신력이다.”
“6대 문주님은 강하셨나 보군요.”
“물론, 하지만 지금은 내가 더 강하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투선문의 6대 문주가 가장 강하다는 식으로 말해 놓고서 관마혁은 자신이 더 강하다고 하고 있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의 연속이었다.
“그게 무슨?”
“투선문은 투쟁의 문파다! 당연히 안주하지 않는다! 전대 문주보다 강해지지 않으면 절대 다음 대 문주가 될 수 없다. 수많은 실전과 투쟁으로 인해 투선문의 무공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발전을 이룩했다. 절기를 이어받은 문주는 항상 전대 문주보다 강했다는 뜻이다. 당시의 투신지체를 타고난 6대 문주가 지금 나의 제자가 된다면 더욱 강해졌을 것이라는 말을 하려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왜 6대 문주님에게 존칭을 사용하지 않죠?”
“상대에 대한 배려, 그런 것 따위는 없다. 이미 죽고 사라진 자를 향해 굽히지 않는다. 또한 투선문의 문주는 자신 이외의 것들은 모두 아래다. 세상 만물이 모두 내 아래라는 뜻이다.”
허황되다 못해 광오했다. 관마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패력(敗力)이 없었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잡소리는 이 정도면 되었다. 내일부터 수련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하고 자 두는 게 좋을 거다.”
“예.”
무진은 그의 뜻에 따랐다.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반드시 견뎌내어 원하던 것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을 향해 끝없는 분노를 간직한 이가 드디어 발을 내디뎠다. 원인을 제공한 이들은 더 이상 두 발을 뻗고 잘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