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87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87화
쐐애액거리는 파공음과 함께 루시안 옆에 있던 파이어 볼트가 셀린의 검에 꿰뚫리면서 순식간에 파훼되어 사라졌다.
루시안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빈틈이 드러난 셀린에게 반격을 하려고 했지만, 셀린은 몸을 살짝 비틀며 긴 다리를 이용해 루시안에게 강한 발차기를
날렸다.
“으윽!”
과연 저게 소녀의 발차기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살벌한 소리와 함께, 셀린의 다리가 루시안을 가볍게 훑고 지나갔다.
아마도 정통으로 맞았다면 루시안은 꽤나 심한 타격을 받은 채 연무장 밖으로 튕겨 날아갔을 거다.
무슨 격투게임도 아닌데 사람이 발차기를 맞고 날아갈 수 있겠냐고 생각한다면 착각하는 것이다.
셀린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괜히 어렸을 때 나와 루시안이 셀린의 힘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이 아니다.
‘그나저나, 역시 힘에서는 루시안이 불리하네.’
그렇다고 해서 루시안이 비리비리할 정도로 힘이 없는 것은 아니고, 셀린이 그만큼 강할 뿐인 것이다.
몸의 부담을 각오하고 신체 강화 마법을 중첩시키면 일시적으로 셀린을 상대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대련에서 그렇게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저
엄청난 괴력의 셀린을 막을 방법은 마땅히 없다.
거리를 벌려 놓고 중급 마법이라도 한 다발 퍼부으면 셀린도 어쩔 수 없겠지만, 셀린도 바보가 아닌데 루시안에게 영창을 외울 틈을 주지도 않을
거다.
또한 셀린이라면 중급 마법조차 마음먹고 검을 휘두르면 어느 정도 파훼시키는 것이 가능하겠지.
여러모로 셀린에게서 밀리는 루시안이 그동안 셀린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검술의 노련함 덕분이다.
상대방의 검을 직접적으로 받아치지 않더라도, 흘려 내거나 회피하는 식으로 공격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셀린의 검을 피한 루시안은 그 즉시 검을 들어 셀린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번에 ‘윽’ 소리를 내는 쪽은 셀린이다.
발차기를 날리는 것으로 파이어 볼트를 제거하면서 생긴 빈틈을 다소 메꾸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셀린은 제대로 된 자세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 틈을 루시안이 정확하게 노린 것이다.
자신의 공격을 받아치기보단, 적절히 흘리고 회피하는 식으로 요리조리 피하면서 검을 매섭게 퍼붓기 시작하는 루시안의 공격에 셀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두 검사의 대결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더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이대로 계속 대련이 이어지면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두 사람의 체력이 먼저 바닥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우…….”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체내의 오러를 끌어올렸다.
이후 나는 땅을 박차고 단숨에 연무장 위로 올라섰다.
“어어?!”
“윽?!”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기척에, 셀린과 루시안 모두 화들짝 놀라며 본능적으로 휘두르던 검을 내 쪽으로 향했다.
그야 둘이서만 있는 장소에 느닷없이 다른 사람이 뿅 하고 나타난 형식이니 기감에 예만한 두 사람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겠지.
이렇게 된 것에는 내가 일부러 오러로 기척을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숨에 10미터가 넘는 거리를 쇄도한 탓도 있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검을 그대로 맞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양손에 각각 오러를 강하게 끌어올려 혹시라도 모를 손의 부상에 대비하고, 팔을 교차하여 내게로 쇄도하는 셀린과 루시안의 검을 그대로 잡았다.
“……!”
“어! 아, 아넬?!”
설마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형이, 자신의 검을 손으로 잡는 짓을 할 줄은 몰랐는지 두 사람은 두 눈이 크게 떠지며 이쪽을 바라보았지만 그 대상이
나라는 사실에 더 크게 놀란 모양이었다.
하기야 복귀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겠지만 내가 도착한 것은 모르고 있었겠지.
나는 반년 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셀린, 루시안.”
“정말, 언제 돌아온 거야?”
내 얼굴을 확인한 셀린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조금 전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지고 싶은 걸 참고 인사할 겸 찾아왔더니 둘이서 충격파가 울릴 정도로 검을 마주하고 있잖아? 이대로 가면
인사고 뭐고 두 사람 체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끼어들었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꼭 그런 방법으로 멈췄어야 했어? 이름을 불러도 되잖아.”
아무래도 내가 말린 방법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루시안이 ‘하아.’ 한숨을 내쉬면서 이쪽을 돌아보았다.
“한참 충돌하고 있는데 어설프게 멈추게 했다간 어느 한쪽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지. 그래도 이렇게 말리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확실하잖아?”
“그야 그렇지만…… 당하는 입장도 좀 생각해 줘. 정말로 깜짝 놀랐다고.”
“하하, 미안해. 다음부터는 좀 더 평범하게 멈출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정말…….”
루시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쪽으로 주먹을 내밀었다.
그가 내민 주먹을, 내 주먹으로 가볍게 톡 치면서 우리는 서로 반갑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그렇게 루시안과 인사를 나누고 있으려니 등 뒤로부터 상당한 볼륨의 무언가가 ‘물컹’ 하고 달라붙었다.
윽, 이건……?
“저기, 셀린…… 반가운 건 알겠는데, 막 달라붙는 건 이제 그만해 줄래?”
“루시안의 인사에는 반응해 주면서, 내 인사는 거부하기야?”
“아니, 그게, 인사 방법이 상당히 바람직, 아니지, 잘못된 것 같은데…….”
“윽…… 혹시, 큰 건 싫어?”
“……다 큰 여자아이가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아얏! 정말 이러기야?”
등 뒤로 달라붙어 엄청난 감촉(!)을 선사해 주고 있는 셀린의 손을 찰싹 때려 요령 있게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오자 셀린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본다.
아니, 아무리 그렇게 원망스러운 듯이 노려봐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야 물컹거리는 것이 없었으니 가벼운 포옹 정도는 괜찮았다 치더라도 이제는 어엿한 여성의 신체로 자라 가고 있는 몸이니 등 뒤로부터
껴안아지면 부드러운 무언가가 자꾸 등을 자극한다.
그 자극을 버티는 게 생각 이상으로 힘들다.
그러나 정작 셀린은 그것에 그다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 직접적인 단어는 언급하지 않지만 ‘그것’이 부담된다고 하는 내게 태연하게
대꾸한다.
“역시, 아넬은 작은 쪽이 좋은 건가?”
“아니, 내 친구의 취향을 말하자면 작은 쪽보다는 한 손에 꽉 잡히는 수준의 적당함이 좋다더라.”
“오호, 좋은 정보 감사.”
“별말씀을.”
“이것들이 못하는 말이 없어요…….”
음담패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는 두 친구의 모습에,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같이 성장해 온 시간이 있다 보니, 셀린은 나와 루시안에게 상당히 살갑게 군다. ―물론, 대련 때는 살가운 만큼이나 살벌하지만 말이다.
물론 나와 루시안도 셀린을 가족과도 같이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농담들도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정도로 말이다.
실제로 길드라는 이름 아래에서 한 가족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셀린에게 있어서는 난, 가족보다는 좀 더 특별한 존재인 모양이다.
레드 드레이크의 기운을 통제하게 해 줌으로써 광전사가 되는 것을 막아 준 은인,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괴력으로 한참 힘들 때 옆에서 불평불만
없이 도와준 소중한 친구, 마지막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말은 직접 하기는 좀 그렇지…….’
셀린과 함께 지내게 된 시간이 벌써 5년이다.
처음엔 ‘아니겠지.’ 싶어도, 5년 동안이나 셀린에게 덮쳐지고, 껴안아지고 어필을 당하다 보면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셀린이 무슨 이유로 내게
그러는 것인지 알 수밖에 없다.
관계가 관계이고, 셀린이 자라 온 환경이 환경이다 보니 다른 소녀들처럼 부끄러워 얼굴을 붉힌 채 ‘꺄아!’ 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람이란 굳이 얼굴을 붉히고, 수줍어하고, 꼭 좋아한다고 말해야 그 감정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더라도 셀린의 행동을 보면 자연스럽게 눈치챌 수밖에 없다.
루시안도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은근히 셀린을 응원하고 있는 모양이고, 셀린 역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을 뿐,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지만…….
‘하아, 어렵네.’
내 입장에서는 셀린의 마음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쉽게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셀린이 싫다거나 부담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현재 짝사랑하고 있는 대상이 있다.
만난 것도, 이야기한 것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간간이 편지를 주고받을 때마다 아직까지도 그녀와의 추억이 되살아나면서,
좋아한다는 감정은 쉬이 꺼지지 않고 있다.
내가 다른 여성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은 루시안도 잘 알고 있으며, 셀린도 알고 있다.
이래저래 꼬인 관계다. 셀린도 참, 왜 나 같은 놈을 선택한 건지 원…….
오늘도 미안한 마음 반, 번뇌를 떨치는 부처의 마음 반으로 셀린을 거부했다.
셀린도 이쯤 거부하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치!’ 하면서 순순히 물러났다. 참 귀여운 소녀다.
“아빠에게는 가 봤어?”
“아니, 복귀 서류도 아직 작성하지 못했어. 이번 여행은 꽤나 힘들었거든. 신디 누나가 나중에 작성하고 일단 쉬라고 말해 줘서, 이제 방에
들어가서 좀 쉬려고.”
“하긴, 반년 동안이나 의뢰를 해결하겠다고 매달려 있었으니 피곤할 만도 하겠구나.”
의뢰를 끝마치고 길드로 복귀했을 때 그 길드원이 얼마나 늘어지고 싶은지는, 두 사람 모두 그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에, 셀린과 루시안은
나를 배려해 주었다.
“그럼 올라가서 좀 더 쉬어. 우리는 이곳에서 조금 더 수련을 할 테니까 말이야.”
“대신에 나중에는 아넬도 같이 대련해 줘야 해?”
“그래, 알았어.”
아무튼 못 말려,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반년 만에 만난 것치고는 인사가 참 짧겠구나 싶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피곤하다.
아무리 오러를 발현하여 다른 이들보다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심리적인 피곤함까지는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
‘으으으…….’
간신히 버티고 있던 몸을, 방에 돌아오자마자 해방시켰다.
털썩하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포근하고 따스한 이불이 내 체중을 받아 준다. 아아…… 이런 게 천국이지 뭐.
그냥 눕기만 했을 뿐인데도 눈이 자동적으로 스스로 감긴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피곤이 쌓였던 것 같다.
나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