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80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80화
사자나 호랑이는 검을 가지고 덤벼들면 0.001% 정도의 확률이라도 운 좋게 검을 찔러 넣어 죽일 가능성이라도 있지, 킹 스네이크의 피부는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 있다고 하더라도 박혀 들지조차 않는다. 그 0.001%의 행운조차 통하지 않는 녀석인 것이다.
나와 알렉스 형이 킹 스네이크를 상대하면서 힘겨워했던 것을 보고도 검을 들고 찾아간 것인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 정도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러 갔다는 사실에 발딘 아저씨도, 벨레타 아주머니도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주머니께 듣기로는 폴이 언제 나갔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한다.
일어나서 의기소침해하고 있을 폴을 위로하기 위해 방으로 찾아갔더니 폴은 자리에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폴의 짐을 확인해 봤는데 사라진
옷가지는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마을로 놀러 갔나 싶었지만 이야기를 들은 발딘 아저씨가 자신의 소지품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보관하고 있던 검이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다는 것 같다.
즉 폴이 집을 나간 것은 최소 두 시간 전의 이야기고 숲의 어느 구역까지 이동했는지도 모를 노릇이라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이렇게 끙끙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 녀석이 대체 어디를 싸돌아다니고 있기에…….”
발딘 아저씨는 폴이 몬스터에게 가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폴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 같이 폴을 찾아 산으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이곳에서 폴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 의논했다.
원래는 날이 밝자마자 마을을 떠날 생각이었지만, 그간 신세를 졌는데 폴의 일을 나 몰라라 내팽개치고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 역시
테이블에 앉아 폴에 대해서 생각했다.
‘폴이 제법 감정에 치우치긴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상당히 감정에 솔직하긴 했지만, 폴은 바보가 아니었다.
도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인 발딘 아저씨의 말처럼 도시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 하고 있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C급의 모험자인 알렉스 형도 처리하지 못한 킹 스네이크를 상대하겠다고 산을 올랐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킹 스네이크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건, 폴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제 발딘 아저씨랑 대화하는 것을 봐서도 죽고 싶어 하진 않았고 하루 사이에 마음이 바뀌어 자살을 꿈꿀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건 일종의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시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다른 옷가지 없이, 검만 가지고 집을 나선 이유는 사실 부모님이 자신을 걱정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심술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의외로 가까운 곳에 몸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아넬? 어디 가는 거야?”
“폴이 갈 만한 곳을 찾아보려고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폴을 찾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섰다.
어린아이의 치기로 이루어진 가출이라면 어쩌면 오기로라도 해가 질 때까지 산을 내려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부모님이 찾기라도 하는 모습을 보면 못 이기는 척 나올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의 치기를 못 이겨 다른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마을 입구를 벗어나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내가 목표로 하는 곳은 이전에 폴이 내게 안내해 주었던 산 중턱 작은 벌판이었다. 이 마을의 장소 중에서 유일하게 폴이 가장 좋아한다는 장소.
그 장소에 폴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이라면 마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으니까 말이지.’
발딘 아저씨가 자신을 찾고 있는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도중에 산길이 조금 헷갈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길치는 아니었기 때문에 기억을 더듬어 폴이 안내해 준 벌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쭈그려 앉은 채 어깨를 힘없이 늘어뜨리고 마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있었던 거야?”
“어, 아넬!”
내가 이곳을 찾아올 줄은 몰랐는지, 뒤를 돌아본 폴의 얼굴이 놀람으로 가득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나는 폴의 손에 들려 있는 한 자루의 검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저것이 발딘 아저씨가 이야기했던 그의 검이겠지.
“형이 갑자기 없어져서 발딘 아저씨가 많이 걱정하고 계셔.”
“……흥, 아버지는 나 따위는 없어지든 말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벨레타 아주머니도 우셨어.”
“…….”
발딘 아저씨에게는 아직 감정이 남아 있지만, 벨레타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자 폴의 표정이 굳었다.
역시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가출이었나.
한숨이 나왔지만, 정말로 폴이 킹 스네이크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한편으로 안도하면서 나는 폴에게 다가갔다.
“집에 안 돌아갈 거야?”
“…….”
아예 돌아가지 않을 생각은 없는 것인지 폴이 대답하기를 피했다.
쯧쯧,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건 변함이 없는 것이거늘 왜 고생을 사서 한담.
마음 같아서는 형으로서 한마디 충고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현재의 내 모습은 폴보다 어린 동생이었다.
결국 돌려 말하는 형식으로, 폴의 기분을 풀어 주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른들은 왜, 포기하려고 하는 걸까?”
“……응?”
‘이건 또 무슨 소리람.’ 하고 돌아보려다가 표정을 고쳤다.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폴은 말을 이어 갔다.
“그렇지만 그런 괴물이 곧 마을을 습격할지 모른다는데도 마을에 남겠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도시가 아무리 살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그곳도
결국은 사람이 사는 곳이잖아? 같이 살려고 노력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적어도 뱀에게 끔찍하게 잡아먹히는 것보단 말이야.”
“……그럴지도.”
솔직히, 이 의견에 대해서는 발딘 아저씨가 했던 말이 옳다, 폴이 하는 말이 옳다,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발딘 아저씨의 말도 이해가 갔고, 폴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이해는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노력만으로 덤벼들기엔 세상은 매정하다.
혹시라도 폴의 말처럼 도시에서 오르덴 마을 사람들을 받아 준다면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발딘 아저씨의 말처럼 도시와 영주 모두 오르덴 마을 사람을 버리기로 결정하는 순간, 차라리 뱀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이 시작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을 폴에게 설명해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딱히 폴을 비난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폴은 이 마을에서만 자라났으니 도시에서 굶어 죽어 가는 자를, 고통에 겨워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고통에 대해서도 모를 것이다.
설령 그에 대해 설명해 준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폴에겐 그다지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그런 폴에게 이런 말을 해 줘 봤자 의미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주머니께 말도 없이 집을 나간 것은 심했어. 아주머니는 폴 형이 혹시 킹 스네이크를 잡으러 간 것이 아닌가 하시면서
우셨거든.”
“……그래?”
폴은 내 말을 듣고 시무룩해졌다.
순간의 혈기로 집을 박차고 나온 것까지는 좋은데 막상 나오니 갈 곳도 마땅히 없고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자니 창피한 것이겠지.
하지만 이럴 때가 더 중요한 것이다.
어설프게 설득하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마음을 돌려놓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아주머니가, 폴 형을 찾으면 꼭 데리고 와 달라고 했어. 돌아가자.”
“……싫어.”
“아주머니를 계속 울게 하려고?”
“…….”
폴은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으로 저항했다.
아아, 정말이지……, 왜 이런 꼬맹이를 달래고 있담.
그렇다고 의기소침해하고 있는 폴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먼저 입을 연 것은 폴이었다.
“……딱히 도시로 가고 싶어서 그런 말을 했었던 건 아냐.”
“알고 있어.”
당시 폴은 도시에 대한 환상으로 그런 말을 꺼낸 것이 아니었다.
직접 킹 스네이크의 모습을 목격한 자로서, 그 무서움을 알고 마을 사람들에게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겠지.
단, 몇 마디 말로 그 의미가 완전히 전달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돌아가면 아버지랑 엄마가 화낼까?”
“아마도…… 무진장 혼날 거야. 특히 아주머니한테.”
“……나 안 돌아가면 안 돼?”
그게 동생뻘에게 할 말이냐.
한마디 쏘아 주려다가 어쩐지 피식 웃음이 나왔기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내 귀에 쉬이익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감각을 느낌과 동시에 나는 모든 생각을 포기하고 폴을 덮쳤다.
“뭐, 뭐야?!”
갑자기 자신을 누르는 내 모습에 폴이 깜짝 놀란 듯했지만, 뒤이어 들리는 소리에 폴의 소리는 가볍게 묻혔다.
콰득 소리와 함께 우리 근처에 있던 나무 한 그루가 쩌저적, 하며 쓰러졌다.
‘엎어지지 않았으면 죽었다……!’
삶과 죽음이 갈린 선택의 순간, 의문의 소리에 등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 앞으로 엎어지는 걸 선택한 나는 삶을 얻을 수 있었다.
셀린을 통해 다져진 이 어처구니없는 감지 능력이, 나와 폴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나와 폴은 천천히 등 뒤를 돌아보았다.
벌판으로 검은 비늘을 반짝거리며 두 개의 노란 눈동자가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킹 스네이크?”
쉬이익.
특유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소리가 벌판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나 검을 뽑아 들었다.
뒤이어 오러를 끌어올린 뒤 바닥에 엎어져 있는 폴을 그대로 잡아 들어 구석으로 집어 던졌다.
“으악?!”
폴의 비명소리를 들을 시간도 없었다.
대체 왜?
이곳에 킹 스네이크가 있는 거지?
‘설마…….’
이 녀석, 우리의 흔적을 따라 이곳으로 온 건가?
그러나 킹 스네이크가 어떻게 해서 은신처로 사용하는 동굴로부터 약 3시간 이상 떨어진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은
내게는 없었다.
킹 스네이크는 입을 쩍 벌리고 내게로 쇄도했다.
나는 있는 힘껏 오러를 끌어올려 킹 스네이크의 공격을 회피했다.
부웅 하고 눈앞으로 킹 스네이크의 머리가 스쳐 지나가며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허억……!”
간발의 차이로 반응해서 망정이지, 이번엔 정말로 먹힐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