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02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02화
아무래도 아무런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지방방송들과 달리, 본 방송인 엘리시아는 내가 일부러 검을 사용하지 않고 그녀의 공격을 회피만 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당신이 내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대련에 임해 주시죠.”
그녀의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말을 마친 엘리시아의 기도가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그저 탐색전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검술을 펼치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검을 고쳐 쥐며 자세를 다시금 바로잡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엘리시아는 꽉 틀어막힌 성격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대련 시작 전에 내가 그녀에게 일부러 도발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을 내뱉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회피만 하는 모습에서 콩깍지가 씐 다른 이들과 달리 내가 그녀에게 일종의 시위 같은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단순히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넘칠 뿐, 자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마인드를 가진 꽉 틀어막힌 공주님은 아닐지도 모르겠는걸.’
어쨌든 상대방이 진지하게 대련에 임하기 시작했는데 이쪽에서 계속 장난 식으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 역시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후우우
작게 숨을 내쉬며, 공격을 위한 자세로 움직였다.
“……!”
내가 대련에 임하는 자세가 바뀌었음을 눈치챈 엘리시아가 자세를 좀 더 낮추며 몸을 긴장시킨다.
나는 땅을 박차, 그대로 엘리시아에게 쇄도했다.
오른쪽 상체를 살짝 비틀면서 검에 힘을 실었다.
단순한 휘두르기에 불과하지만, 휘두르는 속도는 일반적인 휘두르기 속도가 아니다.
“윽!”
카앙 하고 그녀의 검과 내 검이 처음으로 제대로 맞붙었다.
처음엔 회피할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예상했던 것보다 내가 휘두르는 검의 속도가 빨랐기 때문인지 급히 수비로 전환한 것 같다.
검을 비틀듯이 하여 그녀의 검을 떨쳐 내고 이어서 빠르게 검을 회수, 엘리시아가 자세를 잡고 공격을 하기 전에 흐름을 끊을 목적으로 재빠르게
검을 그녀에게로 내질렀다.
“……읏!”
이번에도 내가 검을 회수하자마자 힘을 모으지 않고 빠르게 검을 내지른 것에 살짝 당황하며 엘리시아는 몸을 급하게 뒤로 빼며 내 검을 피했다.
하지만 이것은 가벼운 속임수. 찌르기 자체에 공격의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상대방의 자세를 흩트리는 것에 의미가 있는 찌르기다.
엘리시아의 무게중심이 뒤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한 즉시, 나는 찌르던 검을 회수해 다시 한 번 엘리시아에게로 땅을 박차 접근했다.
“크읏……!”
그녀가 제대로 자세를 잡지 않은 틈을 노려 공격을 이어 갈 생각이었으나, 엘리시아 역시 그대로 당할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조금 더 뒤로 몸을 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급하게 뒤로 빼던 몸을 바로잡고 내게 검을 휘두른다.
그 때문에 공격할 타이밍을 놓친 나는 휘두르려던 검을 멈추고 우선적으로 그녀의 검을 회피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나와 엘리시아의 공방이다.
두 명의 검사가 서로의 접근을 허용했다.
회피보다는 서로 검격을 나누고, 받아치는 연격이 이어진다.
까앙, 챙! 캉! 하는 쇳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지면서, 순식간에 5회가 넘는 공방이 나와 엘리시아 사이에 오갔다.
타이밍에 맞춰 내가 적절하게 몸을 뒤로 빼자, 엘리시아 역시 나를 추격하기보다는 살짝 몸을 뒤로 빼면서 다시금 자세를 가다듬고 검을 굳게 쥐어
잡았다.
“…….”
“…….”
나와 엘리시아의 공방을 본 주변의 학생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설마하니 이 정도 수준의 공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또한 내 상대인 엘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엘리시아는 내 실력이 생각했던 것 훨씬 이상으로 자신과 대등하다는 사실에 놀란 것 같았고, 나는 반면에 엘리시아의 재빠른 대응 능력에 살짝 놀란
것이다.
조금 전의 공격은 엘리시아를 쓰러뜨릴 생각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상당히 당황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 상황에서도 적절한
대처를 통해 내 흐름을 끊어 버렸다.
“당신, 강하군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는 그 얼굴이 어쩐지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아 진짜, 자꾸 여자 얼굴을 보고 웃으니까 내가 변태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워낙 예쁜 얼굴이어야지?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으려고 해도 남자의 본능이 자꾸 꿈틀꿈틀거린다.
물론 아래쪽의 본능이 아니라, 미녀가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로 돌아가는 그런 본능을 말하는 것이다. 착각하지 말도록 하자.
어쩐지 이쪽을 바라보는 셀린의 눈초리가 매서워진 것 같아 나는 급히 웃는 것을 멈추고 엘리시아에게 말을 이었다.
“말했잖아. 전력으로 덤벼야 할 거라고.”
“강한 것은 인정하겠지만, 아직 승부가 결정된 것은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는 엘리시아의 얼굴엔 묘한 기대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하면 내 착각일까.
모처럼 자신을 제대로 상대해 줄 상대방을 찾았다는 느낌의, 그런 기대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엘리시아는 이 대련이 점점 재미있어지는 모양이다.
‘이 이상 어울려 주지는 못할 것 같지만 말이지.’
나 역시도 생각했던 것 이상의 실력을 보여 주는 엘리시아와 제대로 대련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쉽게도 이쪽은 의뢰를 수행하고
있는 입장이다.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엘리시아의 모습을 본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천천히 검을 회수하면서 엘리시아에게 말했다.
“불합격이야. 엘리시아.”
“……네?”
내 말을 듣고는 엘리시아는 순간적으로 멍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나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엘리시아에게, 다시 한 번 작은 미소와 함께 방금 했던 말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 엘리시아 폰 세르피안. 불합격이야.”
“뭐라고오오오?!”
내 말에 반응하는 것은 엘리시아뿐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학생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오로지 현재의 상황을 진득이 지켜보고 있는 교관과 세라 누나, 그리고 루시안과 셀린만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자식, 웃기지 마라! 뭐가 불합격이라는 거냐!”
“질 것 같으니까, 불합격으로 대련을 끝낼 생각인 거지!”
“그러고도 네가 길드의 신성, 은빛 검사인가?!”
예상대로 내가 한 말에 적지 않은 학생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하기야 별다른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대련이 이제 막 제대로 시작되려는 판국에 느닷없이 불합격 판정을 내려 버렸으니 불만이 없을 수가 없겠지.
하물며 그 불합격의 대상이 그들의 우상인 엘리시아인 만큼, 효과는 더 클 것이다.
그것을 노리고 일부러 이런 행동을 한 것이니 이 정도의 반응이 나와 주지 않으면 이쪽에서 곤란하다.
“저는 분명 당신이 했던 모든 공격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불합격이라니, 판단의 기준이 대체 무엇이죠?”
의외로 엘리시아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불합격이라는 말을 들은 것치고는 상당히 차분한 모습으로 내게 불합격의 이유에 대해 물어 왔다.
물론 그 속에는 화가 어느 정도 나 있는 것 같지만 확실히 이런 면을 보면 꽉 막힌 귀족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아니지, 굳이 귀족의 사고방식이 아니더라도 내가 엘리시아의 입장에서 느닷없이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면 상당히 열이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엘리시아는 먼저 화를 내기보다는 차분하게 이유를 묻는다. 그 점은 다소 의외였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불합격 판정을 바꿀 수는
없다.
나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면서 엘리시아의 물음에 대답했다.
“판단의 기준은 세라 누나… 아니, 세라 씨가 한 말에 포함되어 있었을 텐데?”
“여러분들의 판단하에 몬스터를 토벌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인받는 것을 말하는 건가요? 하지만 저는 당신과 동등한 공방을 주고받았습니다. 당신은
왕국에서 은빛 검사로 적지 않은 위험한 몬스터들을 토벌한 모험자라고 들었어요. 그런 만큼 제가 몬스터를 토벌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상황에서도 바득바득 우기기보단 논리정연하게 이유를 대면서 반박하는 그녀에게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럼, 대체 무엇 때문에 제게 불합격 판정을 내린 것인지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네 말이 옳다고도 하지 않았어.”
“……지금 저와 말장난을 하자는 건가요?”
내 애매모호한 대답을 들은 그녀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눈빛이 서서히 매섭게 변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이유를 대면서 반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납득이 가는 대답을 하지 않는 것에 슬며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모양이었다.
이 타이밍에서 그녀가 화를 내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나는 엘리시아의 말에 이번엔 고개를 저으면서 차분하게 대답했다.
“네 말이 틀린 것은 아니야. 나와 동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학교에서 주는 몬스터 토벌 의뢰 따위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전제 조건이 틀렸어. 너는 나와 동급의 실력이 아니야, 엘리시아.”
“……설마, 이 상황에서 자신이 더 강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요?”
“그 반대야, 제 실력을 낼 필요도 없을 만큼 네가 약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제가 필승을 자신했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닌가요?”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겠지. 어차피 네가 대련 상대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학생들한테 불합격 판정을 줄 생각이었으니까.”
“뭐라고요……?”
설마하니 내가 이런 대답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는지 엘리시아의 눈동자가 다시금 커졌다. 또한 주변 학생들 역시 ‘뭐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지껄이는 거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한다.
어이없어하는 엘리시아와 학생들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솔직히 학교장님에게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까지 상황이 심각한 줄은 몰랐었어. 몬스터 토벌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 정작
몬스터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전혀 경각심을 갖고 있지 않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너희들을 만나고
보니까 학교장님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지. 너희들, 긴장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구나?”
“그게 무슨 소리죠? 저는 분명 대련에 진지한 태도로 임했습니다.”
내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엘리시아는 발끈하면서 대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