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98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98화
“무슨 일 있어?”
그 공주가 이리로 오기라도 해? 하면서 우스갯소리를 내뱉으려는 것도 잠시, 나는 눈앞에 찰랑거리는 금색 머리카락을 알아차리고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이 학교의 타칭 여신님이자, 이 나라의 공주님이기도 한 그 소녀는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천천히 그 아름다운 입술을 열며 말했다.
외모만큼이나 청아한 맑고 깨끗한 음성이었다.
“당신이, 은빛 검사?”
멀리서 그녀의 얼굴을 봤을 때도 규격 외의 아름다운 외모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본, 그녀의 외모는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단순히 아름답다, 예쁘다, 뿐만 아니라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열여섯 살보다 훨씬 성숙해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앳되어 보이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적당한 키의 약간 작은 그 몸집은 그녀로 하여금 귀엽다라는 느낌까지 들게 하면서 정말 눈앞의 이 소녀가 인간이 맞나 싶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학생들이 여신님, 여신님 하면서 찬양(?)하는 것도 이해가 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질문을 받았으니 그에 대답을 해야 한다.
그 아름다운 외모에 혹해서 질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얼빠진 표정을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소녀에게
말했다.
“그런데?”
순간, 내 입으로부터 제법 싸늘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내 반응에 나 자신은 물론이고 눈앞에 소녀와 근처에 있던 릭,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의 얼굴이 동시에 멍해졌다.
설마하니 저 아름다운 공주님을 상대로 그렇게 무감정한 목소리로 대답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들이다.
‘……아차!’
뒤늦게 주변의 반응을 보면서 내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말은 내뱉어진 상태다.
상대방에게서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툭툭 감정 없는 말을 내뱉는 이 버릇이 또 한 번 사고를 저지른 것이다.
그동안 루시안과 셀린의 타박에 고친다고 꽤나 노력했었는데도, 가끔씩 상대방을 상대하는 데 껄끄럽거나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면 거침없이 튀어나오곤
한다.
아마도 이번엔 소녀의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겠답시고 좀 과하게 긴장한 것이 그 원인이 된 모양이다.
내 옆에서 루시안과 셀린은 ‘역시 아넬.’이라는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쉬고 있었고, 릭은 ‘너님 제정신인가요?’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를 추종하는 다른 학생들 역시 하나같이 나를 비난하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윽, 나도 원해서 한 게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말은 튀어 나간 지 오래다. 내 반응에 소녀는 그 아름다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내게 말했다.
“느닷없이 찾아와서 기분이 상한 모양이군요. 실례했습니다. 부담이 된다면 나중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어요.”
소녀의 딱딱한 어조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 누군가가 ‘넌 뭔데 내게 말을 걸어?’라는 분위기로 대꾸한다면 누구라도 호감이 뚝 떨어지겠지.
그 분위기를 만든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소녀를 바라보며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딱딱한 어조가 나가지 않게 최대한 신경 쓰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니, 딱히 그런 것은 아니야. 단지 처음 보는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서 잠깐 놀란 것뿐이니까. 내 이름은 아넬 프로스트. 네 이름은?”
릭으로부터 상대가 왕의 금지옥엽인 이 나라의 공주님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학교장님의 말대로 이 학교 내에서는 개인의 신분이 인정되지 않고 다
같은 학생이라는 말이 떠올라 왕족을 대하는 예를 취하기보다는 같은 나이대의 친구를 대하는 말투를 사용하였다.
다행히 소녀는 그런 내 말투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고 한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가며 대답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귀족들이 인사할 때 사용하는 인사법이었다.
“엘리시아 폰 세르피안. 6학년 A반의 학생입니다.”
“엘리시아…….”
왕족의 권위가 느껴지는 당당한 말투로 자신을 엘리시아라 소개한 소녀는 그 깊고 아름다운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엘리시아라, 외모에 어울리는 예쁜 이름이다.
하지만 소녀의 이름을 듣는 것과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학교의 여신이라고 불릴 정도의 그녀가, 왜 오늘 처음 보는 내게 갑자기 말을 건 것일까? 설마하니 오늘 처음 본 남자에게 관심이 생겼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텐데 말이지.
“갑자기 나를 찾아온 것을 보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내 말에 엘리시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맞춰, 아름다운 금발들이 허공에 살랑거렸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내일 있을 여러분들과의 대련에서, 당신에게 미리 대련을 신청하고자 찾아왔습니다.”
“대련을……?”
엘리시아의 말에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들었어? 여신님이 은빛 검사에게 대련을 신청하셨어.’ ‘과연 단번에 끝내겠다는 건가?’ ‘역시 우리 여신님!’ 등의 이야기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지만 쓸데없는 지방방송은 끄기로 하고, 나는 엘리시아를 계속 응시했다.
“오늘 교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몬스터 토벌에 참가하고 싶은 인원들은 학교에 방문한 길드의 세 ‘신성’들과 대련을 해서 그들에게 몬스터 토벌
참여를 허가받아야 한다고 말이지요. 만약 허락을 받지 못한다면 몬스터 토벌에 참가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함께 했었습니다.”
“역시 알려 주셨던 건가.”
학교장님 성격이라면, 굳이 오늘 말하지 않더라도 내일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테니 그냥 내버려 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학생들이 이
사실을 미리 알 수 있게 수업시간을 통해 공지를 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학교장님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솔직히 학교장님께서 어떠한 생각으로 이와 같은 조건을 거셨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대련을 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습니다. 대련은
내일부터라고 하셨지만 상대방과 미리 대련 약속을 잡으면 안 된다는 말은 없었으니까요.”
과연, 어차피 통과해야 할 과제라면 어서 해치우고 싶다는 것이다.
릭에게 듣자하니 엘리시아는 아름다운 외모와 더불어 검술 실력 역시 같은 학년 내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하는 것 같다.
내일 우리들과 몬스터 토벌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는 6학년 A반 사이에 대련이 시작되면, 아마 너 나 할 것 없이 A반의 학생들은 우리들에게
대련을 신청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이 학교의 귀족 학생들은 우리들 세 명의 신성이 몬스터 몇 마리를 우연히 잡고 그 사실을 과하게 부풀려서 명성을 얻은 운
좋은 놈들 정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출처는 옆에서 멍한 표정으로 나와 엘리시아의 대화를 듣고 있는 릭이었다.
그러니 그런 학생들 탓에 자신의 차례가 늦춰지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이 시간에 나를 찾아온 것이라는 거다.
어차피 해야 하는 대련이라면 빨리 끝내고 몬스터 토벌 참여를 확정 짓기 위해서 말이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눈동자에서는 자신이 질 것이라는 의심 따위는 추호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 당당한 자신감에 호기심을 느끼며 나는
엘리시아에게 질문했다.
“내가 아니더라도 루시안과 셀린도 있는데 내게 대련을 신청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은빛 검사는 신성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이왕 대련을 한다면 강한 사람과 대련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자신이 질 것이라는 전제는 그녀에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 정도로 실력을 무시당한다면 이쪽도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받아 줄 수밖에
없다.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면서 엘리시아에게 말했다.
“알았어. 내일 대련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너와 대련을 하도록 할게.”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대련 때 보도록 하죠.”
그렇게 말한 엘리시아는 몸을 돌려,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수많은 인파가 우르르 이동했다.
그야말로 이 세계의 팬클럽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모습이었다.
“이야, 인기 좋은걸, 아넬? 오자마자 여신님에게 대련 신청을 받고 말이야.”
엘리시아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헛.’ 하고 제정신을 차린 릭이 내게 능글맞게 말했다. 루시안과 셀린 역시 뭔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이길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러게, 주위 사람들도 전부 여신님이 반드시 이길 거라는 둥, 여신님에게 첫 승리의 영광을 드려야 한다는 둥 전부 아넬이 질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어.”
“그도 그럴 게, 여신님은 학년 중에서 최고, 그 이상의 학년들이라고 하더라도 상위권 학생들이 아니면 상대하기가 벅찰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거든.”
릭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돌려 릭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에게 모여든 시선에 ‘엣헴.’ 하고 헛기침을 한번 한 뒤, 학교생활을 하는 엘리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엘리시아는 이 나라의 왕녀이자, 학교장의 조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평민, 귀족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존대를 사용하는 숙녀이다.
원래라면 왕녀라는 신분상, 누군가에게 하대를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터이지만 그녀 스스로 이 학교에서는 왕녀라는 신분을 벗어던지고 한 명의
학생이라는 생각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학교장님이 있었다.
“여신님, 아니지, 엘리시아 왕녀님은 여성의 몸으로 왕국기사단장님과도 대등한 검의 경지를 이룬 학교장님을 존경하고 있어. 그녀가 검을 배운
이유도, 또한 이 학교에 입학한 이유도 그녀의 고모와 같은 강한 여성 검사가 되고 싶다는 목표 때문이라고 하니까 말이지.”
“그 학교장님이 목표라…….”
내 머릿속으로 외모에 맞지 않게 상당히 털털하고도 강한 기세를 내뿜으면서 우리를 단숨에 압도했던 학교장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분을
목표로라……. 상당히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항상 근면성실. 학년 1위의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수업에 참여하고 있어. 물론 수업이라곤 해도 사실상 6학년 A반은 개인
단련이나 학생들끼리의 대련이 주된 수업 내용이지만 말이야. 늘 하루도 빠짐없이 검을 휘두르고, 자신보다 강한 상대가 있으면 대련을 신청하는
공주님이시지. 그 나이에 벌써 오러를 발현해서 오러 유저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오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순수 검술로만 교관님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야.”
“그래?”
과연, 자신이 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법했다.
학년 1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고,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상급생과 대련을 해도 밀리지 않으며 거기에 순수 검술로는 교관과 붙어도 그다지 밀리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나라도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