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94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94화
베테랑의 모험자들도 때로는 한순간의 방심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몬스터의 공격에 피해를 입는 경우가 생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 바로 실전이다.
그런데 한껏 경계를 해도 모자랄 판국에 몬스터의 위험성을 전혀 인지하고 있지 않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학생들에게 몬스터의 위험성을 깨닫게 해 줄 방법은 없습니까?”
“이전이었다면 몬스터 토벌을 해 왔던 선배들에게 실전 경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자연스럽게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만 토벌이 몇 년간 중지되면서
그런 실전 경험을 얻게 된 선배가 없어졌지. 지금에 와서는 교관이 아무리 몬스터의 위험성에 대해 강조를 하더라도 직접 와 닿지 않으니 그저 훈계
정도로만 생각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인 지경이다. 맘 같아선 실제 몬스터라도 몇 마리 포획해서 직접 그 위험성을 체험하게 해 주고 싶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아무리 세르피안 검술학교라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몬스터와의 실전을 강요한다고 강한 비판을 받겠지.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야기가 이쯤 진행되었으면 대충 학교장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저희들에게 시키실 일이 무엇인가요?”
나와 루시안, 셀린이 학교장님을 바라보며 묻자,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
“학생들과 대련을 해 주길 바란다.”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대련입니까?”
“이미 그 아이들에게 아무리 몬스터가 위험한 존재라고 이야기해 봤자 실제로 살아 있는 몬스터를 보지 못한 그 아이들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겠지.
그것은 많은 몬스터를 퇴치하고 사람들로부터 신성의 칭호를 얻은 너희들이 하는 말이라 해도 그다지 다를 바 없을 거다. 아니, 오히려 말을
귀담아듣기보다는 질투를 하겠지. 자신과 같은 또래의 아이가 그까짓 몬스터 몇 마리 잡은 것으로 ‘신성’이라는 칭호를 얻고 왕국민들에게 명성을
날리는 것에 말이야.”
‘설마 그렇게까지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아는 귀족들의 자제들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법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평민 주제에 귀족을 가르치려 든다면서 뒤로 욕지거리나 안 하면 다행일 것이다.
아무리 학생 간의 신분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세르피안 검술학교라지만, 사람의 인성이라는 것은 고작 학교의 규칙 정도로 바뀔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대련인 것인가.
“비록 학교 내부라고는 하지만, 너희 신성에 대한 이야기는 학생 전원이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학생들 말고도 몬스터 퇴치와 관련해
외부 인원들이 자주 드나드는 만큼, 왕국 각지의 몬스터들을 퇴치하면서 명성을 쌓은 너희들에 이야기가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지. 특히 다수의 이상
현상 몬스터를 처치한 은빛 검사에 대한 이야기는 일부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정도였다. 한 편의 영웅담 같은 업적들뿐이었으니까
말이다.”
“…….”
뭐랄까, 그런 말을 직접 상대방에게 듣게 되면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얼굴을 들기가 부끄럽다. 딱히 부끄러워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쑥스럽다.
그런 내 상태를 보면서, 학교장님은 빙그레 웃으시더니 곧이어 그 쑥스러움이 쏙 들어갈 만한 이야기를 이어서 해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유명해진 만큼 뒤에서 욕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란다. 아까 말했다시피 ‘그까짓 몬스터, 나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데.’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단지 학교에 있기 때문에 몬스터 토벌이 중지되어 자신이 활약할 기회가 없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지.”
가끔씩 엄청 귀가 간지러울 때가 있었는데, 그건 다 이런 녀석들 때문이었단 말인가.
칭찬을 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욕하는 사람의 숫자도 적지 않을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까짓’이라, 내 목숨을 위협했던 킹
스네이크는커녕, 트롤 한 마리만 만나도 과연 그것을 상대할 수 있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싶다.
그리고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킹 스네이크의 무서움마저 극복하고 몸을 날릴 수 있는 학생은 더더욱 없겠지.
그런 녀석들이 자신들만의 착각에 빠져, 다른 누군가를 욕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나와 루시안과 함께 몬스터를 쓰러뜨리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 왔던 셀린 역시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학교장님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즉, 이야기가 아니라 대련을 통해서 직접 그들을 자극시키는 것이 저희가 해야 할 임무겠군요.”
“맞다. 이야기만 듣고 자신들이 업신여기면서 만만하게 생각했던 신성들이 직접 학교에 찾아오고, 압도적인 실력으로 그 자신감을 짓밟아 주면
그놈들도 현실을 깨닫고 나태했던 정신을 바로잡을 거라 생각했다. 그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 오히려 너무 충격을 먹어서 자신감을 잃는 경우도 있을진
모르겠지만 어중간한 생각으로 몬스터를 대하다가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아서 말이야.”
어설픈 교육보다는 확실한 충격요법을 준비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약간 선의의 악역(?)과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되었지만 이런 의뢰라면 그다지 불만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간 귀족들에게 쌓였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아 은근히 기대도 되었다.
남에 대해 뒷말하는 녀석들은 인성도 그에 맞춰 덜떨어지는 녀석들이 많다.
그런 놈들이라면 제법 충격을 줄 필요가 있겠지.
나와 루시안, 그리고 셀린은 각자 서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학교장님에게 말했다.
“의뢰, 수행하겠습니다.”
“후후후, 기세가 마음에 드는구나. 대련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면 내가 적당히 처리해 주겠다. 뼈가 아작 나도 학교에 있는 신관과 치유
마법사들이 순식간에 고칠 수 있으니 걱정 말고 두드려 패서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구나. 죽이지만 않는다면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히끅.”
순간, 학교장님의 과격한 단어와 ‘죽이지만 않는다면’이라는 말에 묘하게 셀린이 반응했지만 다행히 학교장님은 셀린의 괴력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 앞으로 있을 계획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해 주셨다.
계획이라곤 하더라도 엄청 거창한 것은 아니고 생각보다 간단하다.
오늘은 이미 늦기도 했고, 이곳으로 오면서 쌓인 피로도 있을 테니 학교의 내부 구조를 안내받고, 기숙사로 이동해서 푹 쉰다.
그리고 내일, 몬스터 토벌이 계획되어 있는 학년인 6학년 A반으로 이동하여 우리들을 소개하고 대련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한다.
대강 내용은, 우리들과 대련을 해서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몬스터를 토벌할 기초 실력에조차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해 토벌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너도 나도 우리에게 대련을 신청할 것이고, 우리는 그 대련에서 상대방을 무참히 박살내 주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6학년 중에서도 가장 좋은 실력을 가진 에이스들만 모아 둔 반이기 때문에 그 나이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이 좋은 학생들도 몇 명
있는 모양이지만, 우리들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실전 경험이라면 이쪽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고, 실력 역시 또래의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C급의 모험자와 B급의 모험자 등급을 따낸 것이 아니다.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승급 시험을 봐줄 만큼 길드 본부와 길드원 아저씨들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럼, 잘 부탁한다. 아넬, 루시안, 셀린.”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학교장님.”
“의뢰인 만큼, 의뢰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을 땐,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지급할 것이다. 또한 세르피안 검술학교는 왕궁에서 직접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기관인 만큼, 이에 대한 성과를 왕궁에 계신 국왕 폐하께도 전달해야겠지. 훌륭한 성과를 보인다면 길드의 위상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과연,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학교의 위상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당당하게 발언하신 분답게 보상을 이야기함에 있어서도 전혀 거침이 없었다.
생긴 것은 참한 여성인데 하는 행동은 사내대장부 같은 호쾌함이 있는 분이셨다.
마지막으로 학교장님은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세라 씨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이 아이들에게 학교 내부를 안내해 주고 지정된 기숙사를 알려 주어라.”
“알겠습니다, 학교장님.”
“너희들이 이 학교에 머무는 동안 이 아이가 너희들을 도와줄 거다. 필요한 것이 있거나 궁금한 것, 또는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나보다는 이
아이에게 말을 하는 것이 나을 게야. 오늘은 다행히 별다른 일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만, 평소에는 꽤나
바쁘거든.”
하기야 학교를 총괄하는 학교장이라는 위치가 결코 가벼운 자리는 아닐 것이다. 거기에 이 도시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영주의 위치까지 가지고 있으니
그녀가 처리해야 할 업무는 본부에서 오늘도 서류와 전쟁을 치르고 있을 길드 마스터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겠지.
세라 씨를 따라 방을 나서는 우리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면서 학교장님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마음껏 패 주려무나.”
‘……쿨럭.’
참으로 간극이 크다고 해야 할까, 청순해 보이는 젊은 외모와는 다르게 상당히 입과 행동이 거친 학교장님이다.
왕족이란 다 저런 성격일까……. 아니, 저분만 성격이 특이한 것이겠지.
학교장님의 집무실에서 벗어난 우리들은 세라 씨의 안내를 받아 학교 이곳저곳을 간단히 둘러볼 수 있었다.
시간은 대강 오후 4시다.
학교에 부착된 게시물을 잠깐 보니, 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라는 모양이다.
“세라 씨.”
“세라로 불러도 충분합니다.”
“그럼, 세라 누나라고 불러도 되나요?”
“누나인가요…… 부르기 편하다면 그렇게 부르셔도 됩니다.”
우리는 세라 씨에세 각각 ‘누나’와 ‘언니’로 부르는 것을 허락받았다. 하지만 세라 누나는 우리들에게 존대하는 것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들 역시 세라 누나에게 말을 편하게 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우리들이야 학교장님으로부터 세라 누나에게 안내를 받으라고 한 손님들이지만, 세라 누나는 학교장님의 명으로 손님을 안내하는 공적인 입장에 있다.
그런 만큼 우리들이 말을 편하게 해 달라고 해 봤자, 곤란한 것은 세라 누나 쪽이다.
나중에 사적인 자리에서 말을 편하게 해 달라고 말하기로 하고, 우리들은 세라 누나의 안내를 받아 기숙사 쪽으로 이동하였다.
“우와…… 엄청 넓네.”
“성 전체가 학교라니, 그 규모가 엄청난 게 느껴져.”
본관 건물을 빠져나와 기숙사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으려니 이곳이 얼마나 큰 학교인지를 다시 새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