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89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89화
세르피안 왕국은 왕국 영토의 적지 않은 부분을 산맥이 차지하고 있는 구조다.
그 때문에 다른 왕국에 비해서 많은 수의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다.
나라 자체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던 건국 초기 단계에선, 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몬스터의 개체 수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나라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도시가 하나 둘씩 늘어 가고 그 주위로 작은 마을들이 무수히 생겨나면서 세르피안 왕국은
본격적으로 몬스터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개체 수가 많은 만큼, 그들의 활동 범위는 넓었고 그 활동 범위 안에 인간의 마을이 생기면서 몬스터에 의한 피해가 늘어난 것이다.
지속적으로 병사를 통해 몬스터를 토벌한다고 하더라도 전력의 전부를 몬스터 퇴치에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경을 수비해야 하는 병력들도
있어야 하고, 유사시를 대비해 수도와 각 도시를 지킬 병사들도 필요한 만큼 병사들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기엔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
당시에는 모험자 길드도 지금만큼 활약을 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몬스터 퇴치에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고자 만들어진 곳이 세르피안 검술학교인 것이다.
왕국의 입장에서는 미래의 전력이 될 검사들을 키워 냄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몬스터 토벌 의뢰를 포함시켜 왕국의 일손을 덜고 학생들의 실력 향상도
덤으로 노리고자 했었다.
다행히 그 의도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세르피안 검술학교는 철저한 실력제로 우수한 검사를 키워 내는 대륙 최고의 검술학교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학교에서 저희를 초대한 건가요?”
“초대……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견제의 의미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견제요?”
우리가 학교에 무슨 짓을 했다고 학교에서 우리를 경계하고 견제한다는 말인가?
옆에서 편지를 읽으며 마스터의 대화를 듣고 있던 셀린과 루시안도 고개를 갸웃했다.
“요 몇 년간, 이상 현상 몬스터의 등장으로 왕국 전역에 다수의 강한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지. 많은 모험자들도 그 때문에 피해를
입었지만 세르피안 검술학교에서 입은 피해는 훨씬 컸단다. 토벌 의뢰를 맡았던 것이 경험이 부족한 학생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란다. 물론 학교
측에서도 학생 혼자만 의뢰를 보내지 않고, 학생들을 파티로 구성시켜 의뢰에 투입하거나 교사진과 함께 투입하는 식으로 대처했지만 아쉽게도 그다지
효과를 보진 못했다.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세르피안 검술학교는 학생들의 몬스터 퇴치 의뢰를 중지시켰지.”
“그런데, 그게 어째서…… 설마?”
대강 일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파악한 내가 어이가 없어 인상을 찌푸리자, 마스터는 ‘후우.’ 하며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르피안 학교는 학생들을 지키고자 의뢰받는 것을 중지시켰지만 그에 비해 같은 기간 동안 우리 모험자 길드는 모든 길드원들이 적극적으로
몬스터 토벌에 나서면서 의뢰를 해결해 나아갔지. 그에 따라 학교의 위상은 내려가고, 길드의 위상은 반대로 오르게 되었단다. 사실 우리는
전문적으로 몬스터 퇴치를 생업으로 삼는 모험자들로 이루어진 곳이고 학교는 학생들로 이루어진 기관인 만큼, 그 차이 때문에 학교의 위상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그다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이었지만 신성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진 거야.”
“학교 측에서 길드를 견제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거군요.”
“그렇지. 이전까지는 길드에서 활약하는 길드원들 전부가 성인 이상의 나이를 가진 베테랑들이었으니까. 우리가 다소 활약한다고 하더라도 ‘그깟 위상
때문에 학생들을 위험한 곳으로 보낼 수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성인의 나이도 되지 않은 너희들이 여러 사건들을 해결하고 왕국 전역에
‘신성’이라는 명성을 떨치면서 세르피안 검술학교는 난감해진 거야. 길드에선 인재를 키워 내고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왕국을 위해 힘쓰고 있는데,
검술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귀족의 자녀들을 보호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거지.”
“아아…… 확실히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나오면 학교 입장에서도 저희를 견제할 수밖에 없겠네요.”
딱히 노리고 한 짓은 아니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학교 쪽에 피해를 줬다는 것이다. 그게 우리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럼 이번 초대의 진짜 의미는 만남과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학교와 길드 사이의 경쟁에 가깝겠군요.”
“아마 그런 의미일 거다. 너희 세 명이 동갑이라는 사실은 워낙 유명하니까 학교 쪽에서도 알고 있을 거고, 학교에서도 열여섯 살이면 6학년으로,
몬스터 퇴치를 한참 진행하고 있을 시기지. 그 점을 이용해서 너희들을 초정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학생들과 경쟁을 시킬 의도일 거야.”
“학교의 위상을 위해서 학생들을 이용하는 건가요.”
“뭐, 꼭 그런 의미만은 아닐 거다. 이상 현상 몬스터도 점점 잠잠해지고 있으니까 이참에 학생들의 실력 증진을 위해 몬스터 토벌을 계획했다는
말은 사실이겠지. 이상 현상 몬스터가 한참 기승을 부리기 전까지 세르피안 검술학교의 전통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학교의 위상도 있고,
너희를 통해 학생들의 경쟁심을 끌어올려 더 열심히 토벌에 임하도록 하려는 목적도 있겠지.”
우리 세 사람은 마스터의 말에 ‘으음.’ 하면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는 그럼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를 그냥 부른 것은 아닐 테고, 세르피안 검술학교의 초대에 응하라고 부르신 거잖아요?”
“그래. 솔직히 나는 너희 세 사람이 세르피안 검술학교로 가기를 원한단다. 아, 그렇지만 길드 마스터로서가 아니라, 셀린의 아버지로서, 또한
친구의 아버지로서 하는 권유란다. 세르피안 검술학교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만큼 대륙 각지에서 실력 있는 인재들이 모이는 장소지.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 한 번쯤 체험 삼아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단다.”
“학교라, 확실히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간만에 듣는 ‘학교’라는 단어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마스터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또한 길드 마스터의 입장으로서 말하자면, 너희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많은 의뢰를 수행해 주었다. 지금에 와서는 후회가 될 정도로 말이다. 괜한
욕심에 너희들을 열한 살의 나이로 의뢰를 시작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잘 성장해 주고, 길드의 이름을 빛내 주어서 고맙지만 늘 마음
졸이고 있었던 것은 알아주길 바란다.”
그 말에서, 우리를 향한 마스터의 애정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마스터를 향해 다 같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저희의 다음 의뢰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마스터.”
“음, 세 명 모두, 세르피안 검술학교로 향하길 바란다. 그곳에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익히고, 배워 오길 바란다. 덤으로 길드 본부가
자랑하는 ‘신성’이,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고 올 수 있도록.”
“네, 마스터.”
이로써 우리 삼인방은 세르피안 검술학교로 향하는 의뢰를 수행하게 되었다.
***
길드 마스터에게 ‘세르피안 검술학교의 초청에 응하라’는 말을 듣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자, 그럼 이제 떠나 볼까?”
“잊은 물건은 없지?”
“걱정 마, 갈아입을 옷까지 넉넉하게 챙겼으니까.”
우리 세 사람은 각자의 짐을 챙겨 들고, 길드 현관에 모였다. 세르피안 검술학교로 떠나기 전, 가지고 있는 짐을 꼼꼼히 확인했다.
여행을 떠나는 나도, 루시안도, 셀린도 모두 평상시보다 훨씬 들떠 있었다.
이렇게 세 명이서만 여행을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길드원들도 저마다 흐뭇한 표정으로 ‘잘
다녀와라.’ ‘사고치지 말고.’ ‘가서 귀족 놈들 콧대를 확 눌러 버려!’ 등의 인사를 해 준다.
그 쪼끄마했던 어린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여행을 떠나는 날도 있다니, 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 역시 나름대로 감개무량했기 때문에 길드원들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전하고, 마지막으로 우리들을 배웅해 주는 마스터와 칼린 형에게 인사했다.
“늘 길드를 떠날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조심히 다녀오너라.”
“걱정 마요, 아빠. 후딱 다녀올게요.”
“후후, 그래. 셀린을 잘 부탁한다. 아넬, 루시안.”
“네. 책임지고 보호하겠습니다.”
“잠깐, 어째 내가 사고를 칠 것 같다는 말투다?”
“하하핫. 우리 딸이 좀 사고뭉치기는 하지.”
“아이참, 아빠도!”
가벼운 농담과 함께 분위기를 전환하고 우리 세 명은 모두 빙그레 웃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너라.”
길드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각자 가방을 챙겨 들고 우리들은 길을 나섰다.
세르피안 검술학교까지 가는 길은, 말을 타고 약 3일 정도 걸리는 거리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가장 가까운 마시장에 들러 검술학교까지 타고 갈
말들을 골랐다.
평소라면 왕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말 농장의 말들을 빌리겠지만, 왕국과 관련된 의뢰가 아닌 만큼 이번엔 대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뭐, 길드에서 나중에 학교 측에 요구하면 된다고 하여 든든하게 여비를 받아 왔기 때문에 금전적으로는 충분히 여유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3일인가, 생각했던 것보단 먼걸.”
“학교 전체가 하나의 도시일 만큼 규모가 크다고 했으니까.”
세르피안 검술학교는 수도 라티움에서 말을 타고 약 3일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듣기로는 학교를 설립할 당시에 학교 자체를 유사시 제2의 수도나 요새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학교를 세우는 과정에 이것저것 규모를 넓히다 보니
아예 하나의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는 모양이다.
길드원들에게 듣기로는 어지간한 소규모 도시보다 크다는 것 같으니, 과연 왕국에서 직접 운영하는 학교답다고 해야 할까.
‘그런 곳과는 그다지 어울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약간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모험자 생활을 해 온 지난 5년 동안, 나와 루시안, 그리고 셀린은 좋든 싫든 귀족들과 엮여야 했었다.
길드가 왕국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몬스터를 토벌하면, 그냥 토벌했다고 보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 영지의 영주를 찾아가 토벌한
몬스터의 시체를 확인시켜 줌으로써 우리들이 직접 토벌을 했다는 것을 영주에게 확인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길드의 공적이 인정되어 왕국에 보고가 된다.
특히 이상 현상 몬스터의 경우에는 그 시체 자체를 왕궁으로 옮길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영주의 도움이 필수였다.
마차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몬스터라면 모를까, 덩치가 커서 일반적인 마차로는 옮기기 불편하거나 이동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 판단되는
경우에는 영주의 병사에게 운송을 맡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