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88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88화
새로운 의뢰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늦은 오후였다.
‘어디 보자, 잠들었을 때가 얼추 11시니까. 6시간 정도 잔 건가?’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무거웠던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개운한 것을 보니 달콤한 숙면을 취한 것 같았다.
하기야 야외에서는 언제 몬스터나 야생동물로부터 공격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니 아무리 경계마법을 쳐 놨다 하더라도 신경이 예민해진다.
그런 만큼 숙면을 취하는 것도 거의 힘들지.
그런데 이곳은 그런 위협을 고민할 필요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으니 그야말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잘 잤어, 아넬?”
“그래, 푹 잤어.”
고개를 돌려 옆 침대를 바라보자, 루시안이 책을 펼쳐 든 채 이쪽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개인 수련을 마치고 몸을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머리카락이 살짝 젖어 있었다.
읽고 있는 것은 중급 마법서인가?
수련이 끝나고도 쉬지 않고 이어서 마법 수련이라니 나 참, 예나 지금이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대단한 친구다.
“곧 저녁시간이니까, 슬슬 깨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고마워. 금방 준비할게.”
침대에서 일어나 자리를 정돈했다.
그 이후엔 욕실로 들어가 물을 받고 간단하게 몸을 씻었다.
더러워진 옷들은 세탁을 위해 따로 모아 두고, 옷장에서 깨끗한 옷들을 꺼내 갈아입었다.
대충 빨고, 말리고, 흙먼지 달라붙은 옷에서 해방된다는 감각은 언제나 상쾌한 것이다.
전부 갈아입고 루시안을 바라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이제 좀 깔끔해졌다.’ 하고 농담을 한 번, 읽고 있던 마법서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려가자. 셀린도 같이 저녁 먹기로 했으니까 아마도 1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알았어.”
방을 벗어나, 1층으로 내려가니 루시안의 말대로 평상복 차림으로 갈아입은 셀린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가자! 배고파!”
히힛, 하고 웃으면서 나와 루시안의 팔을 잡은 셀린에게 이끌려, 우리들은 식당으로 이동했다.
간만에 길드의 소년소녀 세 명이 전부 모인 것을 본 식당 아주머니들은 빙그레 웃으시며 언제나처럼 각자의 식판에 듬뿍 음식을 담아 주었고, 수프나
건량에 질려 있었던 나는 사양하지 않고 그 음식들을 전부 받아 맛있게 배를 채웠다.
“하아, 건량으로도 이렇게 맛좋은 음식들을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은 수프와 건량에 확 질려 버려, 내 스스로 요리를 배워 맛있는 야외 요리를 해 볼까도 싶었지만 곧장 포기해 버렸다.
시장에서 파는 가장 싱싱한 채소들을 구입한다고 하더라도, 보관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오래가 봐야 이틀, 삼일 정도면 전부 상해 버리고 그것은
고기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짧아야 삼사일 길면 보름 가까이도 떨어져 있는 경우가 있는 이 세계에서는 도통 신선한 식재료를 가지고
여행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존식으로만 음식을 만들자니 메뉴가 마땅치 않다.
보존식이라고 해도 수프 가루와 건빵 같은 딱딱한 밀빵, 그리고 육포 같은 것이 전부이니 그것으로 요리를 해 봤자 뭐가 되겠는가?
예전에 세룬 도시에 있을 땐, 도시를 방문하는 모험자가 왜 씻고 자는 것보다는 우선적으로 식당을 찾아가나 싶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그
누구보다도 실감하고 있다.
아무거나 건량만 아니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그 음식이 평소에 먹어도 맛있을 정도의 음식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접시를 싹싹 비운 뒤, 나는 배를 가득 채운 포만감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루시안과 셀린 역시 각자의 접시를 비운 뒤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정리하기 쉽게 그릇을 서로 포개면서 루시안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얼마나 오래 머물 거야?”
“응?”
“의뢰 말이야. 요 몇 년간은 제대로 길드에 붙어 있었던 적이 없었잖아. 간신히 복귀해도 길어야 일주일 내지 이 주일 만에 바로 떠났으니까
말이야. 이번엔 얼마나 길드에 머물 거냐고.”
“글쎄…….”
킹 스네이크 사건 이후로, 왕국 전역에서 들끓고 있는 몬스터들을 퇴치하고 아무리 강력한 몬스터가 출현한다고 하더라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을
기르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는 마치 그런 각오를 다짐한 내게 ‘할 수 있으면 해 봐라!’라는 식으로 왕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몬스터가 다양하게 사건 사고를
저지르는 바람에, 그것들을 해결하겠답시고 꽤 노력을 했었다.
루시안의 말대로 길드에 간신히 복귀하고도 또 의뢰를 나갈 만큼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여유가 있다.
최근에 나와 루시안, 셀린이 각자 굵직한 퇴치 의뢰들을 전부 처리한데다, 우리들에게 밀릴 수 없다고 펠튼 아저씨를 비롯한 알렉스 형 들이 더
적극적으로 의뢰에 임하고 있어서 이제는 몬스터 개체 수도 많이 줄어들어 상당히 여유로운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얼마나 쉴까?’ 하고 고민하고 있으려니, ‘아차!’ 하고 셀린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잠깐 잊고 있었는데, 아빠가 네게 할 말이 있다고 깨어나면 좀 보자고 하셨어.”
“마스터가?”
“응, 그냥 부르신 건 아닌 것 같아. 나와 루시안도 가능하면 함께 오라고 하셨거든.”
“어? 나까지?”
루시안도 처음 듣는 소리인지, 셀린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셋을 전부다라…… 그냥 얼굴 보자고 부르시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바로 찾아가 볼까?”
“그러자.”
빈 식판을 반납하고, 나와 루시안 그리고 셀린은 바로 3층에 있는 길드 마스터의 집무실로 올라갔다.
똑똑똑, 하고 우리들이 방문했음을 집무실 내부에 알리자, 곧이어 ‘들어와라.’ 하는 마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의 허가를 받고, 집무실로 들어서자 역시나 많은 양의 서류들이 가득한 서류의 산이 가장 먼저 모습을 보였다.
최근 왕국과 길드의 활약으로 난동 부리는 몬스터의 숫자도 상당히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의뢰량도 꽤 많이 줄어들었다고 들었는데도 이 정도인가.
아마도 의뢰에 관한 서류 말고도 그 외에 왕국과 관련된 업무 역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전히 사람을 질리게 만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저라면, 이런 서류 더미 속에선 하루도 못 살 거예요.”
진심으로 질린 표정으로 나와 루시안, 셀린까지 고개를 끄덕이자 우리를 바라보는 마스터와 칼린 형의 표정이 울상으로 바뀌었다.
“이젠 내가 검사인지, 아니면 서류 처리 담당인지도 헛갈릴 지경이지.”
“후우…… 저 역시 마법서를 들여다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
그렇게 말하는 두 사람의 얼굴 표정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말하는 모양새나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서류 때문에 집무실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 지 꽤
된 것 같았다.
인간 유일의 오러 마스터라는 사람이 서류에 묶여서 하루하루를 한숨으로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좀 묘하다.
하지만 마스터가 저렇게 서류 업무에 열중인 것도, 몬스터에 의해 피해를 받는 왕국민과, 우리들 같은 모험자들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속으로는 마스터께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저와 루시안, 그리고 셀린까지 함께 오라고 하셨다 들었습니다.”
“맞다. 오늘 아침에 의뢰에서 복귀한 네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셋에게 의뢰를 하나 맡기려고 불렀단다.”
“네? 의뢰를요? 그것도 셋 모두?”
옆에 있던 셀린이 마스터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여태껏 적지 않은 의뢰들을 수행해 왔지만, 우리 세 명이 같은 의뢰를 수행한 것은 몇 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몇 번 있었던 의뢰들도 대규모 몬스터 토벌 의뢰였기 때문에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길드원들도 함께한 파티였었다.
애당초 경험이 적은 아이들끼리 파티를 만들어 의뢰에 내보낼 만큼 길드 본부는 녹록한 곳이 아니다.
실력 여부를 떠나서 사회 경험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의뢰를
보내더라도 항상 베테랑 길드원을 보조하는 형식으로 우리를 의뢰에 보냈다.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셋 모두를 한 의뢰에 함께?
무슨 의뢰일까 궁금증이 생겼다.
“혹시 이번에도 대규모 토벌 의뢰가 있나요?”
궁금한 마음에 마스터에게 질문했지만, 마스터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내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아니, 이번에 너희들에게 부탁할 의뢰는 여태껏 해 왔던 의뢰와는 조금 다른 의뢰다.”
“다른 의뢰요?”
“일단 이걸 보거라.”
마스터의 말에 그의 옆에 서 있던 칼린 형이 들고 있던 편지 한 장을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칼린 형으로부터 편지를 받아 그 안에 적힌
내용을 읽어 보았다.
아무래도 제법 높은 작위를 가진 귀족에게서 온 편지인 듯, 편지엔 온갖 미사여구가 달라붙어 있어서 문장을 읽기 불편할 정도로 문맥이 어수선했지만
나는 최대한 편지의 미사여구를 제거하고 내용을 읽어 갔다.
친애하는 세르피안 왕국 모험자 길드, 길드 마스터에게.
우선 사전에 연락 없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편지로 소식을 전하는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이쪽에서도 갑작스럽게 마련된 계획이라 미리 연락을 드릴 시간이 부족했음을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길드 마스터에게 부탁을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에 저희 ‘세르피안 검술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몬스터 토벌 계획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본 계획의 목적은 형식적인 대련과 개인 수련에서 벗어나 직접 몬스터를 상대하고 실전 경험을 쌓음으로써 학생 개인의 성장과 실력 향상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다소 위험성이 있는 만큼, 엄선된 평가를 통과한 실력 있는 학생만 토벌 계획에 참여시킬 생각입니다. 그 자리에 귀하의 길드원인 세 명의 신성들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본 학교의 학생들은 앞으로 각 왕국과 대륙을 이끌어 갈 차세대의 인재들입니다.
귀 길드 세 명의 신성들은 앞으로 모험자 길드를 대표하는 실력자가 될 것이라고 명성이 자자한 만큼, 서로가 만남의 기회를 가지고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좋은 관계를 맺을 기회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부디 이 의견에 대해 고려하여 좋은 답변을 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세르피안 검술학교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편지에 적혀 있었기에 의아한 표정으로 마스터를 돌아보았다. 옆에서 편지를 달라고 하는 루시안과 셀린에게 편지를
넘겨주고, 마스터는 나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왕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세르피안 검술학교에서 온 편지다. 내용은 보다시피 이번에 학교에서 준비하고 있는 토벌 계획에 너희 세 명을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다.”
세르피안 검술학교.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다.
세르피안 왕국뿐만 아니라 대륙에서도 꽤나 유명한 시설로 원래의 설립 목표는 실력 있는 검사를 양성하고, 왕국 전역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몬스터를
퇴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육 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