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11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11화
“아넬이 심심할까 봐 말동무해 주려고 왔지.”
“저 뒤쪽에 루시안도 지금 혼자인데?”
“루시안이라면, 릭이 찾아갔어.”
“그래?”
릭도 그렇고 루시안도 그렇고 여전히 붙임성이 좋은 친구들이다.
하긴, 루시안은 언제나 여행을 할 때면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보단 동행하는 길드원이나,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하곤 했다.
그런 루시안과 릭은 어딘가 살짝 닮은 감이 있다.
물론 좀 더 가벼운 분위기의 릭과 달리 루시안은 붙임성이 좋으면서도 진중한 면이 있다는 게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두 사람인 만큼 그냥 여유 있게 경치를 즐기기보단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훨씬 좋아할 것이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셀린은 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만에 고향으로 가게 된 소감은 어때?”
“응? 아…… 그야, 좋지.”
“그래?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표정이 좀 미묘한데?”
웃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닌 미묘한 표정으로 셀린의 말에 대답하려니 그녀는 ‘정말?’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6년 만에 돌아가는 고향이니까. 좋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후회되는 것도 있어. 이젠 말을 탈 수도 있고,
혼자 여행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잠깐 찾아가고 돌아오는 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을 텐데, 이리저리 미루다가 이번에도 직접
찾아가는 게 아니라 의뢰 때문에 찾아가는 게 되어 버렸으니까 말이야.”
기분상의 문제라는 것이다.
안부 편지야 자주 보냈었지만, ‘한 번쯤 시간 내서 들러야지, 들러야겠다.’ 해 놓고서는 이리저리 시간을 보낸 것이 벌써 6년이다.
간만에 세룬 도시에 찾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솔직히 기쁘지만 그것이 내가 스스로 시간을 내서 여유 있게 가는 것이 아닌, 의뢰 때문에 가게 된
것에서 ‘덤으로’ 방문하는 것이 되어 버렸으니 이건 좀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시간 좀 내서 루시안과 함께 방문해 볼 것을 그랬다.
늘 의뢰 때문에, 길드가 바빠서, 나 혼자 가기엔 좀 그러니 루시안이 오면 함께, 라는 핑계로 하루 이틀 미루던 게 뒤늦게 후회된다.
그것을 솔직하게 셀린에게 털어놓자 셀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넬이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 동안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잖아? 몬스터에 의해 피해 입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한 거니까.”
“그렇기야 하지만, 아무래도 부모님에겐 죄송해서 말이야. 나야 부모님과 동생이 안전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맘 놓고 다닐 수 있었지만,
부모님은 그게 아니었잖아? 언제 내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굳이 편지에 적지는 않으셨지만 읽으면서 얼핏 그런 감정을 느낄 수는 있었으니까
말이야.”
“…….”
셀린은 뭐라고 내게 더 위로를 해 주려고 하다가 곧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내가 대강 무엇을 고민하고 마음에 걸려 하는지를 알아준 모양이었다.
‘솔직히 이렇게 셀린에게 푸념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궁상맞은 짓인데 말이야.’
그런 궁상맞은 짓을 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는 가볍게 비웃음을 한번 날려 준다.
그동안 부모님을 걱정만 하게 한 대가를 이제 치르고 있는 주제에 친구한테 푸념하면서 위로받기를 원하는 것이니 정말 여러모로 모양새가 빠진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문득 말의 고삐를 잡고 있는 내 손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옆을 돌아보자 셀린이 내 손을 잡아 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셀린?”
“아넬답지 않네, 의뢰를 수행하러 가는데 한숨만 푹푹 내쉬고 말이야.”
셀린은 이쪽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어 주었다.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길드에서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내가 하는 말이라 좀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빠는 언제나 내가 뭔가 잘못을 하거나 사고를 저지른 것에 대해서 ‘죄송해요.’라고 말하면 ‘괜찮아.’ 하고 용서해 주셨으니까. 아마 아넬의
부모님도 그럴 거라 생각해. 아넬 스스로가 부모님께 죄송하다 생각하면 부모님을 찾아뵙고 솔직히 말하면 되잖아? ‘그동안 못 찾아와서
죄송해요.’라고 말이야. 안 그래?”
귀엽게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묻는 셀린에게 나는 잠깐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볍게 웃고 말았다.
“하기야 셀린이 사고를 많이 치기는 했었지. 그때마다 뒷수습을 했던 건 대부분 나와 루시안, 그리고 마스터였지만 말이야.”
“그, 그건, 아빠한테도 너희에게도 제대로 사과했었잖아…….”
“그렇지, 그랬었지.”
손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따뜻한 온기와 셀린의 미소에 나도 미묘했던 표정을 그만두고 살짝 미소 지었다.
“고마워 셀린, 덕분에 마음이 좀 편해진 것 같아.”
“그래?”
“응, 셀린의 말대로 속으로 끙끙거리고 있어 봐야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으니까 말이야. 가서 부모님께 솔직하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
“아마, 아넬의 부모님이라면 조금 꾸짖고 아넬을 용서해 줄 거야. 한 달에 한 번씩 빼놓지 않고 안부 편지를 보낼 만큼 아넬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니까 말이야.”
“아니, 아마도 아버지라면 모를까 어머니라면 혼내지도 않으실 것 같아.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어머니께 혼나 본 기억이 없거든.”
“그래? 착한 아이였나 보네. 아넬은 말이야.”
셀린의 말에 나는 내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고는 ‘으음.’ 하고 작게 인상을 썼다.
“……그, 글쎄. 그걸 착한 아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는걸.”
그야 어렸을 때부터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고, 그다지 울지도 않고, 부모님이 편하게 나를 육아할 수 있도록(?) 나 스스로가 보조하기는 했었다.
조금 더 자라고 나서도 특별히 부모님께 야단맞을 행동은 하지 않았었고 말이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나가서 뛰어놀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것도 아니고 매일같이 뒷마당에서 검만 휘두르던 어린
시절이다.
귀염성이나 애교라고는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그걸 과연 착한 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나.
그보단 괴짜 같은 아이라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또다시 ‘끄응.’ 하고 인상을 쓰고 있는 나를 셀린은 의아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이내 인상을 풀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그녀의 말대로다.
이미 시간은 지났고, 다시 되돌릴 수도 없이 고향에 가게 되었다. 여기서 그간 집에 가지 못했던 데 대한 변명을 여러 가지 고민하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부모님께 말하고 잘못했다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는 가장 올바른 행동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고마워, 셀린. 동생에게 줄 선물도 그렇고, 많이 도움을 받네.”
“네게 도움이 되었다니 기쁜걸. 그보다는 좀 더 여행을 즐기자. 모처럼 사람이 북적북적한 여행이잖아? 고향에 가는 길이기도 하고 말이야. 곧
토벌 계획이 시작되면 이렇게 여유 부릴 시간도 없을 텐데 지금 즐겨 놔야지.”
“하하, 그렇네.”
이후 우리와 6학년 A반의 여행길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날씨도 화창하고 맑은 날들이 지속되었고 처음으로 마차 여행을 경험해 보는 학생들은 저마다 마차를 조금씩 움직여 보거나, 마차를 멈춰 세운 뒤엔
야영을 하는 방법, 장작에 불을 붙이는 방법 등을 우리에게 배우면서 저마다 새로운 경험에 눈을 반짝였다.
우리 역시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과거의 첫 여행과 야영의 추억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점점 더 익숙해져 가는 주변 풍경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우리의 눈앞으로 그 어느 성벽보다도 익숙한 형태의 도시 성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6년이라는 시간 만에, 나와 루시안은 고향인 세룬 도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세룬 도시(1)
“오랜만인걸.”
“그러게.”
세룬 도시의 성문을 통과하면서 나와 루시안은 감회에 빠져들었다.
6년 만에 돌아온 세룬 도시는 우리가 열 살 때 이곳을 떠났을 때와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었다.
하기야 이 세계가 전생처럼 재개발이니 뭐니 하면서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사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시가 파괴될 만한 일들도 없었으니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아무래도 이런 장면들을 보면 뭔가 찡했다.
마차의 앞에서 세룬 도시의 모험자 길드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면서 좌우를 둘러본다.
시장 거리, 각종 음식들을 파는 상점들, 그 외에 눈에 익은 몇몇 개의 건물들이 보이면서 점점 더 주변 지리가 익숙해진다.
세룬 도시는 라티움이나, 세르피안 검술학교 부지처럼 넓은 도시가 아니다.
동쪽 성문에서 서쪽 성문까지 전력 질주를 하면 30여 분 안에 반대쪽 성문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만큼, 우리는 성문을 통과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세룬 도시의 모험자 길드 지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크고 조금 낡은 나무 간판에 적혀 있는 ‘모험자 길드 - 세룬 지부’라는 글이 보이고, 그 밑으로 길드로 들어갈 수 있는 나무로 된 입구가 보인다.
그 익숙한 나무문을 열어 길드 내부로 들어갔다.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친숙한 종소리가 딸랑딸랑 하고 울리며 길드 로비 카운터에 있던 중년 남성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금색 머리카락에 기름을 묻혀 깔끔하게 뒤로 넘긴 올백의 헤어.
그 눈매는 6년이 지난 지금도 날카롭고, 매섭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완전히 이기지는 못했는지 얼굴에 전체적으로 작은 주름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연륜이 느껴졌다.
중년의 남성은 길드로 들어서는 내 모습을 보고는 처음엔 ‘누구지?’ 하고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내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뜨고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이어 그 놀람은 작은 미소로 변한다.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 미소에 나 역시 어색한 표정을 풀고 조금 울 것 같은 기분을 최대한 숨긴 채 밝게 미소 지었다.
“어서 와라, 아넬.”
“다녀왔습니다.”
그것은 내가 6년 만에 부모님에게 드리는 귀환 인사였다.
***
“검술학교의 교관인 맥스입니다. 반갑습니다.”
“이곳 길드의 지부장인 리안 프로스트요, 반갑소. 맥스 교관.”
아버지는 나를 반기는 것도 잠시, 이어서 들어온 세르피안 검술학교의 교관인 맥스 교관과 인사를 나누었다. 가족 간의 재회도 재회지만, 우선은 길드와 관련된 업무가 먼저였다.
아버지는 우리를 따라 들어온 검술학교의 학생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짧지 않은 거리를 이동하느라 고생이 많았겠군. 몬스터 토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먼저 학생들을 쉬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계획에 대해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테니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