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46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46화
“셀린…….”
“나…… 조금 한심하지? 다른 사람들은 전부 축하해 주고 있는데, 나는 여기서 이러고만 있으니까…….”
“……셀린.”
자조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가슴 한구석이 꾸욱 하고 아파 왔다.
평소의 기운찬 셀린의 목소리라고는 할 수 없는, 정말로 활기를 잃은 듯한 우울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하면서도 나는 어느새 셀린의 물음에 나지막이 대답하고 있었다.
“……한심하기는. 셀린이 왜 한심해.”
“미안…… 지금은, 아넬을 볼 자신이 없어…….”
셀린은 힘없는 목소리로 내게 방에서 나가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이대로 방을 나서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실은, 이전부터 계속 알고 있었어. 셀린이…… 나를 좋아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
그 말에 셀린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그러나 그저 그뿐, 대답은 없었고 또한 고개를 드는 일도 없었다.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하면서 재차 말했다.
“처음엔…… 아마도 단순한 호기심이 아닐까 싶었어. 셀린에게 있어서 또래의 이성친구가 생긴 것은 처음이었고, 거기에 나는 셀린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문제를 우연히 고쳐 주었으니까 아마도 호기심과 친근감을 가지게 된 것이 조금 더 살갑게 표현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었어.”
“…….”
“……하지만 계속 함께 성장하면서 셀린이 내게 가지는 감정이 그런 단순한 호기심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 계속 생각했었어.
셀린의 마음을 거절해야 한다고…… 나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어정쩡하게 지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끝내 셀린의 마음을 거절하지는 못했어. 그래서 이렇게 셀린에게 상처 주고 말았어. 셀린이 한심한 게 아니야…… 어정쩡한 태도로 네게
상처를 입힌 거야. 내가 말이야.”
셀린은 그 말을 듣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았다.
붉은색의 머리카락이 살짝 일렁이면서, 눈물이 일렁이고 있는 두 눈망울이 나를 응시했다.
“……아냐, 아넬은 잘못한 거 없어. 어렸을 때부터 줄곧 내게 말했었으니까……. 자신은 좋아하는 사람이 이미 있다고. 고향에 레아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내가 멋대로 좋아했을 뿐인걸. 2년 전에는 아넬이 레아라는 그 언니와 사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도, 또
언젠간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도…… 바보같이 포기하지 못하고…… 흐윽…….”
그렇게 말하는 셀린은 기어코 두 눈망울에서 눈물방울을 떨구고 말았다.
그녀는 두 손을 들어 흐르는 눈물을 틀어막았다.
그 모습에 가슴이 또다시 욱신욱신 아파 왔다.
그동안 셀린과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우는 모습은 그다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사람이 언제나 웃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 셀린도 울었던 적이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할 만큼, 셀린은 언제나 밝은 모습만을 우리에게 보여
주려 했었다.
그런 셀린이 울음을 터트렸다.
또한 그 울음을 터트린 원인이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에 다시금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 셀린…….”
참으로 궁상맞은 말이었지만 그 말밖에는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간 우유부단했던 내 태도 탓에 상처 입고 눈물을 흘리는 소녀를 무슨 말로 달래 줄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녀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것도, 또한 위로해 줄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궁상맞은 ‘미안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넬은…… 어째서, 그동안…… 내 마음을 거부하지 않았던 거야? ……귀찮았을 텐데도, 짜증났을지도 모르는데도 어째서 그동안 그렇게 웃어 주었던
거야?”
울음으로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셀린은 눈물방울이 흐르는 얼굴로 내게 그렇게 물어 왔다.
그리고 그 물음은 이전에 내가 내 스스로에게 했었던 물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쭉 레아 누나를 좋아했었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도 마찬가지였고, 수도에서 레아 누나와 헤어지던 날에도 그랬었고 또한 이곳에서 성장하면서도 레아 누나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계속 변하지 않았던 마음이었다.
당연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셀린의 행동은 어쩌면 귀찮고 짜증나는 행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어째서 그녀의 행동에 항상 당황하면서도 웃어 주었고, 8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거절하지 못해 결국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일까.
대답은 간단했다.
이전에 레아 누나에게도 했었던 대답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셀린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 말은 결국 끝까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현재 그동안 우유부단하게 미루어 놨던, 셀린이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확실히 거절하기 위해 여기에 찾아왔다.
그런 만큼 그녀를 향해서 ‘사실은 나도 널 좋아했어.’라는 식의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해서도 안 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기에 끝내 셀린의 물음에는 명확히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셀린은 눈물 글썽이는 그 눈동자로 나를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상당히 일그러져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내 표정을 보며 과연 셀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다른 여성을 선택할 것이면서도 그간 제대로 된 거절을 하지 않았던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아니면 아까와 마찬가지로 먼저 마음을 접지 못한
자기 자신을 탓하고 있을까.
셀린은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내 옷자락을 잡아 나를 살짝 잡아당겼다.
비록 ‘살짝’ 잡아당겼을 뿐이지만, 나는 적지 않은 힘을 느끼고 끌려가듯 셀린과 밀착하게 되었다.
곧이어 내 옷자락을 잡은 그 손에 매달리듯 셀린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를 붙잡고 있는 그 손이, 또한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있음을 느끼고 나는 셀렌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는 그 움직임을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울먹이는 목소리로 셀린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바로 그때였다.
“사실 우유부단했던 것은 오히려 나야. 조금 더 노력했었다면,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면…… 어쩌면 지금처럼 후회하면서 울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야……. 나는 정말로 바보야. 그렇지? 아넬…….”
“……셀린.”
그것은 나를 원망하는 말이 아니었다.
셀린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그런 말이었다.
셀린이 내가 레아 누나와 이어지기 전에 용기 내어 내게 고백했다면 과연 나는 흔들리지 않고 레아 누나를 계속 좋아할 수 있었을까.
지금에 와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겠지만, 아마도 그런 일이 있었더라면 지금과는 또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미안해, 아넬. 미안해…… 괴롭게 해서 미안해…….”
셀린은 이후에도 제법 오랜 시간을 눈물 흘리며 내게 기대어 있었다.
사과를 하러 온 주제에 도리어 사과를 받는 이 상황에서, 어쩐지 나 역시 그녀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더 이상해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말없이 셀린이 진정될 때까지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뿐이었다.
한참 뒤에야 셀린은 계속 흐느끼다가 심적으로 지친 것인지 잠이 들었다.
그녀를 침대에 눕혀 주고 이불을 덮어 준 뒤에 나는 조용히 그녀의 방을 빠져나왔다.
방문을 닫으면서 그간 미뤄 놓았었던 숙제를 단번에 해결한 듯한 한숨이 터져 나오기도 잠시, 또 다른 의미의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나 역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기보단 발걸음을 돌려 내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 쉬는 것으로 그날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셀린은 어제 있었던 일이 꿈이라도 되는 것처럼 밝은 모습으로 나와 루시안에게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 아넬, 루시안!”
“어…… 응, 안녕, 셀린.”
“어젠 미안했어.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은 기분이어서 진짜로 잠만 잤거든. 걱정했었어?”
“그야 밥도 먹으러 내려오지 않았으니까 걱정했었지. 지금은…… 괜찮아?”
“응, 이젠 괜찮아.”
루시안의 물음에 밝게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의 슬픔이나 갈등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셀린의 모습에 다행이라고 안심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표정을 지어야 할지 조금 갈팡질팡하고 있으려니, 셀린은 나를 보면서
살짝 미소 지어 주었다.
그것은 평소의 셀린이 짓는 웃음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살짝 다른, 조금 쓸쓸해 보이는 미소였다.
“아넬은 어쩐지 조금 수척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걸.”
“응? 아…… 잠을 좀 설쳤거든.”
내 대답에 다시금 빙그레 웃으며 셀린은 작게 미소 지었다.
“가끔 그런 날도 있지만, 그러면 안 돼. 이제 곧 결혼도 할 사람이니까 건강관리를 잘해야지. 그러니까 어서 아침 먹으러가자. 배고파 죽겠어!”
“……그래. 그러자.”
그리고 그날 이후로 셀린이 내게 달라붙는 일은 없어졌다.
덤으로 이전처럼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미소 짓는 일도 이후로는 볼 수 없었다.
이젠 결혼하게 된 나를 배려하는 것임과 동시에, 셀린 자신도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평소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이번 일로 우리의 친구 사이를 깨고 싶지 않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그날 셀린이 보여 주었던, 우는 그 모습이 생각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리는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우리들이 영원의 숲으로 출발할 날이 다가왔다.
여행의 출발
이번엔 여행에 필요한 짐은 정말 최소한으로 꾸렸다.
현재 챙긴 것이라고는 우리들이 입고 있는 옷과 보호구, 그리고 검과 같은 기초 장비와 돈주머니뿐이다.
텔레포트 게이트 사용 시에 많은 짐을 가지고 있으면 이동에 방해가 될뿐더러 이동하는 곳이 서쪽 디아스 왕국의 수도인 만큼 그곳에서 현지 조달을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마스터를 비롯한 길드원들에게는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 뒤에 우리들은 다시금 왕궁으로 향했다.
그냥 임무도 아니고 왕의 명을 받은 공주를 호위하는 임무이니만큼 출발 전에 왕을 배알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성에 입궁하자 우리들은 엘리시아가 머무는 별궁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엔 여행 준비를 끝마친 엘리시아와 세라 누나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오셨나요?”
“그래, 잘 어울리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