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45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45화
그러고는 아래 시녀에게 무언가 지시를 하는 것으로 보아 엘리시아의 점심식사를 준비하려는 것 같았다.
시녀장과 그 밑의 시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본 엘리시아는 다시 이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행 계획에 대해선 대강 마무리되어 가는 것 같으니 조금 쉬도록 하죠. 곧 식사가 준비될 테니 함께 먹도록 해요.”
당연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그간 서로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있으려니 시녀장으로부터 홀에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다 같이 홀로 이동하자 흔히 귀족가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의 긴 테이블이 차려진 광경이 우리들을 맞이하였다.
궁의 주인인 엘리시아가 테이블 끝에 앉고 그 옆에 세라 누나가 착석한다.
처음엔 엘리시아의 맞은편 자리에 누가 앉아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어째서인지 루시안도 그렇고 셀린도 내게 자리를 양보해 주어 결과적으로
엘리시아의 맞은편 자리에는 내가, 그리고 루시안과 셀린은 각각 옆 좌석에 착석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 상태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나도 그렇고 루시안도 그렇고 셀린 역시 기본적인 귀족식 식사예절은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식사예절을 몰라 창피를 당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본부 소속의 C급 이상 모험자가 되면, 왕국에서 기사 작위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그런 만큼 의뢰를 가거나 그 지방의 영주를 방문했을 때 식사를 대접받는 일도 없진 않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본부 길드원들은 스스로가 이 귀찮고도 복잡한 귀족식 식사예절을 익히고 있다.
스스로가 무시당하는 점이 싫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길드를 싸잡아 평민집단이라고 무시당하게 하지 않기 위함이다.
처음엔 전생의 기억으로 대강이나마 식사예절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했건만 실제로 배운 식사예절엔 참 자잘하게도 지켜야 할 것이 많았기에
배우기 힘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 덕분에 이런 자리에서는 식사 예절을 몰라 아무 포크로 음식을 막 집어 먹는 행위 등을 하지 않고 나름 품위 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맛좋은 왕궁 음식에 감탄하며 천천히 식사를 시작하려니 엘리시아가 이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레아 언니는 잘 지내고 계신가요?”
“레아 누…… 응, 레아라면 잘 지내고 있어. 그러고 보니 이번에 영원의 숲에 가는 것에 대해서 너를 호위하러 간다고 전하니 안부 전해 달라고
하던걸.”
이전에 리자드맨 토벌 때 갑작스러운 고블린 난입으로 레아 누나가 학생들을 이끌어 피신할 때, 그녀를 보조하여 학생들을 통제해 주었던 것이
엘리시아라고 들었다.
이상 현상 몬스터인 검은 고블린이 나타났을 때도 레아 누나가 놈의 시선을 끄는 동안 엘리시아는 레아 누나를 대신하여 학생들을 잘 이끌어 산맥
입구까지 무사히 빠져나갔었다고 했었지.
그런 만큼 사건이 끝난 이후에 레아 누나와 엘리시아 모두 짧은 기간이지만 적지 않게 친분을 나누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엘리시아는 레아 누나가 자신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했다는 말보단, 내가 레아 누나를 부르는 호칭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것은 엘리시아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셀린 역시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며 이쪽을 바라본다.
“저기, 아넬? 뭔가 조금 레아 언니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엘리시아의 질문엔 셀린도 주목했다.
나는 그 두 사람의 모습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레아 누나와 나의 관계와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내가 레아 누나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었다.
보통 특별한 관계가 되지 않는 한 연장자에게 ‘누나’라든지 ‘형’이라는 호칭을 쉽게 제거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굳이 호칭을 바꿨다는 점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앞으로는 남들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호칭으로 그녀를 불러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고로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엘리시아와 셀린에게 세룬 도시에서 있었던 일을 아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실은, 이번 의뢰를 다녀오는 즉시 레아와 결혼하기로 했어.”
“네에?!”
“에에?!”
그 말엔 엘리시아 역시 들고 있던 포크를 바닥에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고 셀린 역시 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가 우그러질(!)정도로 놀란 모양이었다.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식당에는 작은 침묵이 감돌았다.
그저 대강 상황을 파악한 세라 누나만이 가볍게 쓴웃음을 지으며 내 결혼 소식을 축하해 주었을 뿐이다.
***
왕궁에서 길드로 복귀한 이후, 길드는 시끌벅적해졌다.
이유는 다름 아닌 내 결혼 소식이 길드원 전부에게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레아 누나는 과거 길드 본부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었으나 레아 누나가 이곳에 있을 적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 온 길드원들의 숫자도 그다지 적진 않은 것이다.
대표적으로 펠튼 아저씨나 칼린 형, 마스터가 그러했다.
그런 만큼 내 결혼 소식에 그들은 하나같이 축복을 해 주면서도 설마하니 내가 레아 누나와 그렇고 그런 관계까지 발전했음에 다 같이 놀라워했다.
뭐, 역시나 그 나이 차이가 문제인 것이다. 전생에서도 기겁할 만한 정도지만 이곳에서도 열여덟 살의 나이 차이는 어지간해서 없다.
인간과 이종족이 결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레아 누나는 인간이고, 나 역시 인간이다.
레아 누나가 세룬 도시로 향했었을 때 내 나이가 세 살에 레아 누나가 스물한 살이었으니 당연히 기존의 레아 누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 결혼
소식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결론적으로 길드원들은 다 같이 내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또한 자신들은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짝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데,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결혼을 한다면서 가볍게 타박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축하를 받으면서도 내 마음은 한편으로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어제 레아 누나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면서 대다수의 길드원들이 내게 결혼을 축하해 주었지만 아직까지 단 한 사람, 축하를 받지 못한 길드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축하를 받지도 못했을뿐더러 어제 이후로는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있다.
그 길드원이란 다름 아닌 셀린이었다.
‘하아…….’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은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실제로 상황이 들이닥치니 마음이 무겁다.
내 결혼 소식이 어지간히도 충격이었는지 셀린은 엘리시아와의 식사 이후 눈에 띄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길드에 복귀하더니 어제저녁부터 자신의
방에서 전혀 나오질 않고 있었다.
루시안의 말로는 아침도 먹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이제 점심때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셀린은 여전히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감감무소식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아무리 결혼에 대한 축하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순수하게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아넬…….”
옆에 있던 루시안이 조금 걱정되는 듯한 표정으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 표정에서 루시안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고 있어.”
“서로 힘들겠지만, 힘내길 바라.”
“그래. 고마워.”
루시안에게 격려를 받고 나는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2층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굳게 닫혀 있는 셀린의 방이다.
이전에 마스터에게 휴가를 받고, 세룬 도시로 향하면서 루시안에게 충고를 들은 이후부터 꾸준히 생각하고 있었던 그 문제를 이제 확실히 끝마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각오하고 있었던 만큼 가슴도 머리도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셀린의 방문을 노크했다.
대답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잠시, 방 안에서 조용히 셀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나야. 셀린.”
그 목소리는 평소에 활기찬 셀린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힘없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 점에 다시 한 번 마음 한구석이 상당히 쓰렸지만 애써 침착하며 나는 셀린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이후에 내 목소리를 듣고도 딱히 방 안에서는 이렇다 할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나 방문을 거절당한 것일까 생각하는 것도 잠시, 방문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려보자 방문이 잠겨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다시 한 번 방 너머에 있을 셀린에게 말을 이었다.
“……들어갈게.”
역시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 거리에서 셀린이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할 이유는 없을 테니 무언의 허락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천천히 방문을 열어 셀린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제법 어두웠다.
정오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지만 셀린이 창문의 일부를 커튼으로 가려 놨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창문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는 침대에 셀린은 베개를 품에 껴안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불이 제법 흐트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조금 전까지는 누워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내가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을 눈치챘을 테지만 셀린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이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방문을 조용히 닫고 셀린이 있는 침대 근처로 걸어갔다.
걸음걸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셀린의 몸이 살짝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지만, 내가 그녀의 옆에 다가갈 동안에도 셀린은 베개에 파묻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
“…….”
방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이번에 나를 위해서도 또한 셀린을 위해서도 그리고 레아 누나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도 확실히 셀린의 마음을 거절하고 지금껏 미적지근하게 대응했던
것에 대해 솔직하게 사과하면서 정리하자고 마음먹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이렇게 둘만 있게 되고 셀린은 나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말을, 어떤 식으로 시작해야 할까.
그런 생각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단어들은 없었다.
그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말을 꺼내더라도 지금의 셀린에게는 상처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
“…….”
계속되는 침묵과 서로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고요함.
나는 두 주먹을 살짝 쥐었다.
말을 꺼내기는 힘들었지만, 그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찾아온 주제에 셀린이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리고 있는 이 행동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단 무슨 말을 꺼내든 먼저 말을 하자는 생각에 셀린의 이름을 부를 바로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