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29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29화
무언가에 긁힌 듯한 흔적은 약간 남았지만, 고블린의 가슴은 피 한 방울 나지 않은 채 멀쩡했다.
‘최소 B등급 이상……!’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설마 하던 최악의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검은 고블린은 나 혼자서 상대하기엔 상당히 버거운 B급 개체였다.
몬스터 중에 B급에 해당하는 몬스터는 오러 익스퍼트와 마나 익스퍼트의 실력자가 아니면 상대하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
빠른 스피드와 강한 근력으로 어지간한 오러 유저의 검사들은 상대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특유의 단단한
피부로 인해 오러 소드나 상위 마법이 아니라면 그들의 단단한 피부와 가죽, 비늘을 뚫고 공격할 수단이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가죽이나 비늘로 보호받지 못하는 눈이나 입, 또는 그나마 강도가 약한 목이나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을 노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하지만 눈이나 입은 공격 범위가 매우 좁고, 몬스터들도 본능적으로 그곳을 보호하려 들기 때문에 노리기가 여간 어려운 곳이 아니다.
또한 목이나 겨드랑이, 사타구니와 같은 급소도 위치가 위치고 다른 곳에 비해 살갗이 얕다 뿐이지 아까와 같은 전력을 다한 일격으로 겨우 뚫릴까
말까 한 강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다수의 인원과 함께 협공을 하여 공격하면 시간은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약점을 노리며 공략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일대일의 상황에서는
그러기도 어려웠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조금 전의 충돌로 고블린의 신체 능력을 감안해 봤을 때, 어떻게든 오러가 바닥나기 전까지 시간을 벌 수 있겠지만 오러가 바닥나는 즉시 검은
고블린을 막을 수단은 없어진다.
방법은 오러가 바닥나기 전에 검은 고블린의 약점에 공격을 성공시키는 것과 오러를 이용해 전력으로 도주를 하는 것뿐이지만, 아마 나라면 몰라도
학생들은 검은 고블린의 추격을 따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조용히 숨을 고르면서 눈앞의 검은 고블린을 응시한 채 나는 학생들에게 조용히 말을 이었다.
“여러분, 방금까지 걸었던 방향으로 계속 이동하세요. 그 상태로 어느 정도 이동하다 보면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익숙한 풍경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조금 헤매겠지만 방향감각이 좋은 학생이라면 금방 우리들이 올라왔던 산맥 입구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자, 잠깐만요! 우리들끼리 가라는 이야기신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검은 고블린을 막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최대한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 주세요.”
“협공을 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요? 저 녀석은 고작 한 마리인데……!”
내 말을 들은 어느 학생이 돌연 그렇게 소리쳤지만 나는 검은 고블린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학생들이 최소 오러 유저 중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의 말대로 협공을 노려볼 만도 했지만, 그들은 오러 유저 중급의 실력이 아니었고 설령
중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는 고블린의 일격조차 제대로 반응하여 막아 내거나 회피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이 상황에서는 어설프게 협공을 해 봤자 희생자만 생길 뿐이다.
“검은 고블린은 여러분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조금 전 제 공격조차 통하지 않는 모습을 보셨겠지요. 지금은 잠깐 이쪽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가만히 있는 것이지 제 공격이 먹혔기 때문에 저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두르세요.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여러분들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합니다……!”
케르르륵!
“……으읏!”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 고블린은 날카로운 이빨이 듬성듬성 나 있는 커다란 입을 벌리고 나무 몽둥이를 세차게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고블린의 공격을 회피하겠다고 뒤로 물러나면 자칫 잘못하면 학생들에게까지 검은 고블린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한 번 오러를 끌어올려 검은 고블린과 정면으로 맞붙었다.
케케케!
“후! 큭!!”
검술과 같은 요령이라곤 전혀 없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휘두름이었지만 고블린이 휘두르는 나무 몽둥이는 ‘후우웅!’ ‘후웅!’ 하는 매서운 바람
소리와 함께 내 몸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그것을 일일이 받아치기보단 피할 수 있는 일격은 아슬아슬하게 회피하고, 피하기 어렵다 싶은 일격은 최대한 오러로 손목을 보호하면서 검술의 요령을
통해 흘려보냈다.
하지만 워낙 나무 몽둥이에 실린 힘이 강했기에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오른손이 시큼시큼 저리고 떨렸다.
간신히 검은 고블린이 이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 나는 틈을 봐서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작은 힐링포션을 꺼내 뒤로 던지고
다시금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엘리시아, 어서 친구들과 함께 움직이세요!”
“으윽, 네!”
“일직선입니다. 똑바로, 쭉 걸어가세요!”
“우, 우으으윽 …… 크으으, 아, 아파……!”
“조, 조금만 참아! 여기, 포션이야!”
다행히 고블린을 상대하면서 재빠르게 뒤로 던지느라 어쩌면 학생들이 포션병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제대로 포션병을 본
모양인지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을 달래며 다른 학생들이 팔이 뭉개진 학생을 데리고 가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학생들이 다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검은 고블린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고블린의 시선을 끌 필요가 있었다.
‘남은 오러의 양이…….’
‘후우, 후우.’ 살짝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체내의 남은 오러의 양을 체크해 보았다.
리자드맨 토벌은 대부분 학생들이 처리하였고, 이곳으로 이동하면서도 고블린을 상대하는 데 그리 많은 오러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기에 오러의 잔량엔
꽤나 여유가 있었지만 조금 전 검은 고블린을 상대하면서 적지 않은 오러를 소모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오러는 평소의 절반에 살짝 못 미치는 양이었다.
지금 상태로 무리해서 오러를 사용하면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이 자리를 빠져나가기 전까지 버티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아앗!”
“키에엑!”
일부러 고블린의 시선을 더 이곳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또한 혹시나 고블린의 급소를 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가능성을 믿고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몇 번인가 눈과 입을 노리고 그것이 무리라면 목을 노리고 검을 내질렀지만 검은 고블린은 그때마다 눈치 빠르게 몸을 돌리거나 나무 몽둥이를 매섭게
휘두르는 등의 대처로 내 공격을 막아 내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공방이 이어졌다.
고블린은 비록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지는 못하였지만 계속해서 틈만 나면 자신의 급소를 노리고 검을 내지르는 내게 집중하느라 엘리시아 양을 비롯한
다른 학생들이 서서히 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학생들을 무사히 피신시킨 것에는 성공했지만 반대로 내게 문제가 생겼다.
공방을 무리하게 이어 가느라 오러가 빠르게 소모되어 버린 것이다.
몸이 조금씩 무거워지고 피로감이 점점 엄습해 오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 후우, 후우……!”
어느새 호흡도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솔직히 좋은 상황은 아니다.
그리 쉽게 당해 줄 생각은 없었지만, 과연 어느 정도를 더 버텨 낼 수 있을지.
이 검은 고블린의 순발력이라면 학생들과 거리가 제법 멀리 떨어지더라도 빠른 속도로 그들을 추격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은 가능성은 내가 쓰러지기 전에 리자드맨 부락에 남아 있던 맥스 교관이 이곳에 도착하는 것과, 적어도 30분 정도를 버텨 내고 학생들이 경사가
완만해지는 구간에 도달하여 좀 더 빠르게 검은 고블린의 추격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오래 버텨야겠는걸.’
현재의 내 실력으로는 아무래도 검은 고블린의 약점을 공략하기엔 무리인 듯싶었다.
그렇다면 남은 오러를 최대한 아끼고 그간 익힌 검술을 가능한 활용하여 1분이라도 오래 버티는 쪽이 정답이다.
케르르륵! 하면서 게걸스럽게 입을 벌리고 울부짖는 검은색의 고블린을 바라보았다.
“후우!”
캬악! 하고 달려드는 검은 고블린을 보며 이를 으득 악물고 몸을 움직여 대응했다.
아까 전까지는 학생들에게 시선이 향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과하게 대응했었지만 지금은 움직이는 것도 자유롭고 최대한 오래
버텨야 했기에 가능한 움직임은 최소화, 또한 공격도 고블린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나머지는 오로지 검은 고블린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과 회피가 어렵다면 받아 흘리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러가 적지 않게 소모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후아……! 하아! 후!!”
눈에 띄게 지쳐 가는 나와 달리 검은 고블린은 그다지 숨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여전히 팔팔한 모습으로 ‘케륵, 케륵.’ 마치 이쪽을
비웃듯 울음소리를 낸다.
“비웃지 말아 주시죠……!”
어쩐지 그것에 조금 욱해서 말해 본 것이었지만 검은 고블린은 다시금 ‘케륵, 케륵.’ 하면서 입을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과시할 뿐이었다.
‘이제 겨우 10분 정도를 버텼을 뿐인데…….’
물론 시계가 없으니 정확하게 10분 정도가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 더 오래 버티고 싶었지만 이미 오러는 상당수 소모되어 찰랑찰랑, 하고 물통에 조금 남은 물처럼 아슬아슬한 수준에 불과했다.
‘짜내듯이 오러를 사용하면 5분은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죽음의 위기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조금 위로가 되는 점이 있다면 길드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였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생겼다는 점이다.
물론 그 자부심이 내 목숨을 지켜 주는 것은 아니었다.
지쳐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탓인지, 오른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지만 다시금 검을 굳세게 쥐었다.
마지막 저항을 각오하며 최후의 오러를 끌어올렸다.
케케케케!
처음보다 기세가 확연히 줄어들어, 끝이라는 것을 눈치챈 검은 고블린 역시 비웃듯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자신의 나무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이내 고블린이 땅을 박차며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숨을 내쉬며 나는 마지막 전력을 담은 일격을 고블린을 향해 내질렀다.
검은 마지막으로 쥐어짠 오러의 힘을 받아 검은 고블린의 목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모든 쥐어짠 힘이 담긴 일격이라 해도 그렇게 쉬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