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58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58화
마음 한구석이 시큼시큼했지만 루시안의 말 중에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계속해서 어정쩡한 관계를 이어 갔다면, 서로 애써 모른 채 넘어갔다면 그 감정은 어느 순간에 곪아 버려 어느 형태로든 병을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루시안의 조언 덕분에 나는 그 마음을 다잡고 셀린과의 관계를 확실히 매듭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마음의 상처는 입었을지언정 그것이 곪아 병이 되는 일을 차단할 수 있었다.
그 점을 떠올리며 나는 이전에 내게 충고를 해 주었을 때처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루시안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충고 고마워, 루시안. 하지만 역시 안 될 것 같아. 내 주제에 한 명의 여성도 아닌 두 명, 세 명 이상의 여성에게 차별 없이 똑같은 사랑을
준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인걸. 레아 누나에게만 신경 쓰는 것도 사실 벅찰 거라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엘리시아도, 또 셀린도 나와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은 결국 그녀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 될 거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 지금 제일 머리가 아픈 건 아넬, 너일 테니까. 다만 그렌 씨랑 루웬 씨, 그리고 케르츠 씨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몇 번인가 가정불화가 있었다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그들이 부모님에 대해서 말하는 모습에서 아버지에 대한 실망이나
분노 같은 감정은 없었어. 너는 가족 모두에게 공평하게 애정을 주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그것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몰라.”
“……응, 고마워, 루시안. 나머지는 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 보도록 할게.”
내 대답을 들은 루시안은 그제야 조금 안심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 해가 완전히 저물고 어둠이 내려앉아 주위는 캄캄해졌지만 침대에 몸을 뉘인 뒤로도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며
있었다.
제법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았지만 무엇 하나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아침 해가 밝았다.
영원의 숲(1)
“목적지인 뤼피올 마을까지는 이전에 말한 것처럼 빠르면 보름, 늦으면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릴 거다.”
“보름인가요?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네요?”
루시안이 그렌 씨의 말에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이 처음 이곳 프라알 도시부터 영원의 숲 중앙 부근에 있는 뤼피올 마을까지의 이동 거리를 약 한 달 정도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렌 씨가 그 기간에서 절반 이상을 확 줄여 말했으니, 우리들이 거리 계산을 잘못한 것인가 하고 의아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옆에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던 케르츠 씨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대답했다.
“일반적인 걸음으로는 대략 한 달, 그리고 운이 나쁘다면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는 걸리는 거리다냥. 그것도 괜찮은 길잡이를 고용했을 때 이야기고, 길잡이를 고용하지 않고 진입한다면 끽했다간 길 잃고 헤매다 죽기 좋다냥.”
참고로 두 달 이상이 걸리는 이유는 영원의 숲의 날씨가 변덕스럽기 때문이라고 케르츠 씨는 덧붙였다.
맑은 날씨가 이어지다가도 어느 순간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운이 나쁘다면 비가 꽤 오래 내리면서 이동을 상당히 지체하게 만든다고 한다.
거기에 숲 속은 안 그래도 길을 잃기 쉬운 지형이다.
일반 평지처럼 길이 알아보기 쉽게 나 있는 것도 아니니 사방이 온통 나무밖에 없는 그곳에서는 방향감각을 잃기 쉽다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비까지 내려 시야가 차단되는 상황이라면 길을 잃을 가능성은 더 커지고, 비 때문에 불도 제대로 못 피우는 환경에서 밤을 지새우게 되거나 마땅히 잘 곳을 찾지 못한 채 비를 맞으며 방치되면 건강상에도 안 좋고 가지고 있는 음식조차 쉽게 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들이라면 그런 환경에서도 길을 잃을 걱정이 없다냥. 나는 뤼피올 마을로 향하는 방향을 정확하게 알 수 있고, 비가 오는 것도 대강 짐작할 수 있다냥. 그래서 다른 이들보다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거다냥.”
“그렇군요.”
이번에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고, 길잡이로 고용했기 때문에 그렌 씨 일행은 우리들에게 영원의 숲 여행에 필요한 갖가지 정보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렌 씨 들과 우연히 만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일단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러 가 볼까.”
야영도구들은 기존에 사 놓은 것이 있으니, 우리들이 추가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물품은 가죽에 기름을 먹여 어느 정도 방수 기능이 있는 방수 가방과 영원의 숲 이동 중에 먹을 식량.
마지막으로 비가 내릴 때 몸을 덜 젖게 해 줄 우비였다.
우비라곤 해도, 일반적으로 모험자들이 사용하는 로브에 기름을 먹여 약간의 방수성을 더한 것뿐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해서 구매했다.
기름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물건이 쫄딱 젖어서 필요할 때 쓰기 곤란해지는 것보단 나았기에, 새로 구매한 방수 가방에 물건을 차곡차곡 나눠 담고, 마지막으로 짐을 옮겨 줄 나귀 한 마리를 구매한 뒤 우리들은 프라알 도시를 출발했다.
“이곳이 영원의 숲…….”
“진짜 넓다.”
“엄청나군요…….”
도시를 출발한 지 약 2시간 정도를 이동하자, 우리들의 눈앞으로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녹색의 물결이 나타났다.
가히 수해(樹海), 나무의 바다라고 표현해도 전혀 모자람 없을 정도의 그 장황한 모습에 일행들은 저마다 작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영원의 숲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이러한 장면은 TV 다큐멘터리 같은 것에서만 봤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눈을 크게 뜨고 숲의 모습을 바라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케르츠 씨는 ‘냐핫.’ 하고 웃으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냥냥, 지금은 이렇게 멋져 보일지 모르겠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것이 온통 나무뿐이라 지겨울 거다냥. 벌레도 많고냥.”
“케르츠 씨 덕분에 방금까지 벅찼던 감정이 싹 사그라들었네요.”
“그렇냥? 하하, 미안하다냥. 하지만 벌레가 많다는 건 정말이다냥. 그리고 숲길은 평지보다 이동하기도 힘들어서 체력 소모도 꽤 많이 되고 여러모로 힘들고 말이다냥.”
케르츠 씨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멋쩍게 웃었다.
이곳에 가만히 서서, 바람이 한번 불 때마다 녹색의 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감상하는 것도 제법 운치 있고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이곳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들은 천천히 영원의 숲으로 진입했다.
숲으로 진입하고 첫 감상은 일반 숲과는 그다지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그야, 엄청 넓은 숲일 뿐이지 이곳이 엄청나게 특별하거나 그런 장소는 아니니.
그냥 숲과 다를 바가 없겠지만 아무래도 ‘영원의 숲’이니 뭐니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는 곳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뭔가 기대감 같은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든 것도 초반뿐이었다.
처음엔 일반 숲과 비슷했지만, 대략 3시간 정도 이동하자 나무 넝쿨이 우거진 풍경으로 바뀌면서 전체적으로 아마존 정글과도 같은 느낌으로 숲의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길을 막고 있는 나무 넝쿨을 칼로 베어 내고, 묵묵히 앞으로 전진만 하는 것이니 조금 지루한 여행이 될 뻔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렌 씨는 요령 좋게 영원의 숲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나무나 흔히 보기 힘든 약초, 풀이나 버섯 등이 눈에 띄면 그것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알려 주면서 지루함을 덜어 주었다.
기후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보니 이곳은 세르피안 왕국에서는 보기 힘들거나 아예 못 보는 식물들도 상당히 많았다.
이번 일이 끝나고 나서도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러한 지식들은 재미용으로 알아 두어도 괜찮고 또한 잡지식으로나마 습득해서 나쁠 것은 없었기에 그렌 씨와 케르츠 씨, 루웬 씨의 설명을 들으면서 전진하려니 루웬 씨는 때때로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어느 한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잠깐만. 어디선가 달콤한 향이 나는걸.”
덥고 습한 날씨에 목이 마를 때면, 엘프인 루웬 씨는 대체 어떻게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싶은 거리에서 먹음직스럽게 익은 과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과일나무를 찾아 주었다.
그 과일나무들을 찾아 야생 상태의 과일 열매를 하나씩 따 보는 것도 재미있는 체험이었다.
그러다 한번은 운이 좋았는지 루웬 씨가 보기 힘든 과일나무를 찾았다면서 우리들에게 그 과일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했다.
“이건 ‘로루트’라고 하는 과일이에요. 과즙은 거의 없지만 과육이 상당히 달고 부드럽기 때문에 대륙에서는 귀족들이 비싼 돈을 주고 모험자들에게 의뢰를 맡겨 얻으려고 하는 과일이죠. 따로 재배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직접 구하러 돌아다니면서 얻어야 하는 과일인데 이곳에서 발견하다니. 운이 좋았는걸요?”
루웬 씨와 루시안이 마법을 솜씨 좋게 활용하여 높이 매달려 있는 ‘로루트’라고 하는 과일을 따 우리들에게 주었다.
생긴 것은 약간 코코넛과도 비슷하게 생겼는데, 반으로 쪼개어 보니 속은 누렇고 달콤한 냄새가 풍기는 과육으로 꽉 차 있었다.
살짝 잘라서 먹어 보자 바나나와 멜론을 섞은 듯한 재미있는 맛이 났다.
“맛있어요!”
“달콤해라!”
“후후, 보기엔 그냥 과일이지만 제법 영양가가 많아서 이곳에서는 비상식량으로 사용하기도 해요. 발견하기가 영 쉽지 않은 과일인데 이참에 몇 개 더 따서 가도록 하죠.”
이후에도 그렌 씨 남매 덕분에 여행이라기보다는, 가이드를 고용하여 영원의 숲을 탐방하는 느낌으로 계속해서 숲을 전진하였다.
일반인이라면 이러한 정글과도 같은 환경에서 이동하는 데에만 체력을 잔뜩 소비할 것이었지만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나와 세라 누나, 그리고 엘리시아는 오러의 회복력 덕분에 이런 환경에서도 그다지 많은 체력을 소모하지 않을 수 있었고, 루시안과 셀린의 경우에도 워낙 기초 체력이 튼실하게 다져져 있었기에 전체적으로 일행의 이동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에 속했으며 체력이 있는 만큼 영원의 숲의 다양한 모습을 즐길 수도 있었다.
오히려 짐을 지고 우리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나귀가 숨이 거칠어져 힘들어할 정도로 말이다.
지친 나귀에게는 루시안이 간간이 힐링 마법을 걸어 주면서 이동하였고 그렇게 얼마간 더 이동하자 서서히 해가 저물며 숲 속의 모습이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바라보며 태양의 기운 정도로 시간을 파악하려 했으나, 나무가 워낙 우거져 있었기에 태양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그렌 씨는 나와 같이 하늘을 바라보고 해가 저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들고 있던 짐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우리들에게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