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90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90화
이런 면을 보면 만드라고라에게 어느 정도의 지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시적이지만 자신의 최면을 푼 나의 존재를 느끼고 위험을 감지해, 오우거와 숲속의 동물, 몬스터들을 우리 쪽으로 움직여서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는 판단을 내렸던 녀석이다.
흔히 옛말에 아무리 싸구려 물건이라도 500년 이상 묵은 물건엔 귀신이나 정령이 붙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물며 온갖 예측 불가한 상황이 벌어지는 곳인 이 세계에서, 약 500년 이상은 족히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드라고라에 지성이 생기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역시 안 되는걸. 도저히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피식 웃으면서 하는 내 말에, 셀린 역시 빙그레 웃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좀 그렇지?”
눈 딱 감고 씹으면 그만일지도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거부감도 생기고 꺼려져, 결국 나와 셀린은 만드라고라를 먹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어찌 보면 바보 같은 결정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거부감이 좀 든다는 이유로, 이 세계 최고의 약초를 눈앞에서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다.
아마 나중에 가서는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내가 잠시 미쳤던 거라고, 만드라고라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영원의 숲을 다시
찾아가겠다고 난리를 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만드라고라를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뭐, 딱히 세상을 박살 낼 힘이 필요하지도 않으니까 말이야.’
앞으로 다시 토벌해야 할 검은 드레이크를 생각하면 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솔직히 만드라고라 그까짓거 하나 먹는다고 힘이 늘어나 봤자
얼마나 늘어나겠나 싶기도 하고 (왜냐하면, 지금도 시중엔 아주 드물게 만드라고라가 나오기는 한다. 그거 먹고 정말로 강해질 수 있었다면,
인간족의 오러 마스터가 길드 마스터 혼자일 리가 없겠지.)
기왕이면 내 실력은 여태 해 왔던 것처럼, 나 자신의 실력으로 성장시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강해지는 건 둘째 치더라도 몸보신엔 좀 미련이 가긴 하지만 말이야.’
자고로 고금을 통틀어 ‘몸보신’ 즉, ‘정력’이란 말엔 누구나 혹할 수밖에 없는지라, 그 점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좀 아쉬운 면이 있었지만,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럼 가져갈 거야?”
“들고 가기도 좀 힘들 것 같은데…… 그냥 다시 심어 주자.”
“어? 그러면 우리 숲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 아니야?”
“그렇진 않을 거야. 조금 전에 만드라고라를 이곳에서 뽑아내면서 주위에 최면향이 점차 흩어지는 것을 느꼈거든. 지금은 아직 최면향 잔재가 남아서
힘들겠지만,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에 다시 움직이면, 아마도 정화 마법이 통할 것 같아. 방향 감각만 되찾으면 숲을 빠져나가는 것엔 문제가
없으니까, 녀석을 다시 이곳에 심어 줘도 상관없을 것 같아. 다만 하루 정도 밖에서 있다고 죽을 것 같진 않으니까, 심는 것은 내일 떠나기 전에
하는 거로 하자.”
“응, 알았어.”
그리하여 나와 셀린 두 사람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그 훌륭한 기회를, 단순히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는 말로 성대하게 걷어차고야
말았다.
오늘 하루는 이곳에서 잠을 청하기로 하고, 나와 셀린은 야영을 준비함과 동시에 야영지 바로 옆에 흙더미를 만들어 만드라고라를 그 위에 올려놔
주었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만드라고라는 자신에게 딱히 해를 끼치지 않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 경계심을 풀었는지, 저녁 무렵이 되고 나선 나를 보고도
히잉! 하는 우는 듯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셀린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식물이랑 놀아 보겠냐며, 꽤 늦은 시간까지 만드라고라를 데리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로 행동을 따라 해
보는 등의 장난을 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고, 마지막엔 만드라고라를 흙더미 위에 올려놓고 나와 서로 껴안고 잠이 들었다.
***
‘흔들흔들.’
누군가가 내 몸을 살짝 미는 것을 느끼며, 나는 몸을 꿈틀거렸다.
‘흔들흔들.’
그 누군가는 내가 일어나지 않자, 나를 깨우려는지 또다시 내 몸을 열심히 흔들었으며, 나는 그 탓에 조금 정신이 들어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잘게…… 셀린.”
희미하게 떠진 눈으로 나는 아직 그리 주위가 밝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다시금 눈을 감았다.
일어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잠에서 깨어나다니! 역시 셀린은 아침형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우응…….”
그런데 내 품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느끼고, 나는 살짝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정신이 비몽사몽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자, 나는 내 품에 꼭 껴안긴 채로 새근새근 잠자는 셀린의 모습을 확인했다.
‘자는 모습도 귀엽네.’라고 생각하기도 잠시, 나는 이내 ‘어?’ 하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셀린은 어젯밤 내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그리고 셀린은 현재도 내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을 잤다.
‘그렇다면 나를 흔들어 깨운 건 누구지?’
꿈속에서 있던 일을 착각하지 않았나 생각하기엔 너무 느낌이 생생해,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화악! 하고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아……!”
“……어?”
내가 갑작스럽게 몸을 일으키자, 내 뒤에 있던 무언가가 내 몸에 툭! 하고 부딪혀 넘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넘어지면서 ‘아!’ 하는
짧은소리를 냈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몸에 부딪혀 뒤로 쓰러진 그 무언가를 확인하려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곤 아직도 내가 잠에서 제대로 깨어나지 못하고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눈앞에 보이는 한 명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으……!”
아이는 옹알이를 하듯 뜻을 알 수 없는 발성을 내뱉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셀린을 꼭 빼닮은 듯 새빨간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4살 정도쯤으로 보이는 작은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여자아이의 정수리에는 식물의 잎사귀와 열매로 보이는 것이, 내가 보는 이 모습이 꿈이 아닐까 싶게 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피어
있었다.
“……이게 대체?”
나는 두 눈을 끔뻑이면서 손으로 눈을 비볐다.
하지만 여전히 여자아이의 머리에 핀 붉은 열매와 녹색 잎사귀는 파릇파릇하게 흔들렸다. 내가 보는 이 모습들이 결코 꿈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듯
말이다.
“우……아!”
“잠깐, 잠깐! 멈춰!”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아이가 손을 내뻗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려는 모습에, 나는 우선 손을 들어 여자아이의 접근을 막았다.
딱히 뭔가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자다 깨서 갑작스럽게 보이는 이 모든 모습에, 아직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나온 반사적인 방어 행동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한 행동이 여자아이에게는 자신을 거부하는 몸짓으로 보였던 모양인지, 그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점차 일그러지더니 작게 눈물방울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으우…….”
“너, 설마?”
갑작스러운 여자아이가 울려고 하는 모습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나는 여자아이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사람의
얼굴인데도 저 히잉! 하는 표정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바로 어젯밤에 말이다.
“……혹시 만드라고라?”
“…….”
머리에 핀 붉은 열매와 녹색 잎사귀. 그리고 히잉! 하고 우는 듯한 특유의 표정.
어째서 셀린을 닮은 듯 붉은 머리카락의 외형을 가진 여자아이로 모습이 변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눈앞의 여자아이가 어젯밤 우리 옆에 있는
흙더미 위에 올려놓은 만드라고라임을 확신했다.
그야 일반적으로 사람의 머리에 식물의 잎사귀와 열매가 피어 있을 리 없으니, 별다른 통찰력이 없더라도 눈앞의 여자아이가 모습을 변이시킨 어제의
그 만드라고라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자아이가 만드라고라라는 사실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해서 사람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느냐다.
‘포, 폴리모프인가? 아니, 이 세계에 애당초 폴리모프라는 마법이 있었던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역시나 마법이었다.
시전자의 몸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마법인 ‘폴리모프’.
흔히 판타지 세계관에서는 드래곤이라는 최강의 존재가 유희를 즐기거나 자신의 거대한 몸집을 숨기려고 사용하는 최상급의 변화 마법으로 표현되곤 하는
마법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폴리모프라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환각을 통해 겉모습을 일시적으로 다르게 보이도록 꾸미는 마법인 ‘일루전’은 있지만, 그것은 마나로 이루어진 환각에 본모습을 숨길 뿐, 몸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마법은 아니다.
이 세계의 마법은 기본적으로 ‘상상력’을 기반으로 마법이 발현된다.
사람이 다른 존재로 완벽하게 변화하려면, 그 변화하려는 존재의 신체 구성과 느낌을 정확하게 상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개로 변화하려면 개가 되었을 때 어떤 느낌일지, 개의 눈에 비치는 시야는 어떤지, 몸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개는 어떻게 짖는지까지
세세하고 정확하게 상상해야 한다.
변화 대상이 만약 나무라면, 나무는 어떻게 광합성을 하고, 뿌리로 물을 빨아들이는지 상상해야 하고 말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사람이 개의 느낌이나 나무의 느낌을 알 리 없다.
그 때문에 마법으로 신체를 변화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성형 수술하듯 생긴 모습을 조금 변화시키는 것 정도는 가능해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 만드라고라가 행한 일은 말 그대로 ‘폴리모프’라고 표현할 만한 그런 종류의 변화다. 식물의 뿌리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으니까.
“대체 어떻게……?”
“……?”
내 물음에 만드라고라는 가만히 나를 응시하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 모습에서 만드라고라가 내 말의 뜻을 전혀 못 알아듣는 것을 파악했다.
“사람으로 변했다고 말까지 알아듣지는 않나?”
“……사람?”
“으잉?”
갑작스럽게 들려온 청아한 목소리에, 나는 다시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만드라고라가 변한 모습인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아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만드라고라는 이쪽을 응시하며 입을 오물오물거리고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사, 사, 사아람?”
“……갈수록 태산일세.”
사람으로 변한 것도 놀랄 일인데, 이제는 옹알이하듯 말까지 따라 하는 그 모습에,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혼자서 도통 감당되지 않는 이 상황에 지원군을 얻으려고, 옆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곤히 자는 셀린을 깨우려고 그녀의
몸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셀린, 일어나 봐. 네가 엄청 신기해할 일이 일어났어.”
“으, 으응?”
잠시 후 부스스한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난 셀린은 아니나 다를까, 하룻밤 사이에 모습이 완전히 변해 버린 만드라고라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를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