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80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80화
그렇게 말하는 셀린의 물음엔 정말로 미안함이 잔뜩 담겨,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둘 다 드레이크한테 죽을 뻔했는데 살았으면 됐지, 뭘. 그리고 나도 이곳까지 널 데리고 와서 바로 쓰러졌어. 그대로 있었으면 드레이크한테는
살았을지 몰라도 저체온증으로 위험했을 거야. 덕분에 살았어, 셀린. 고마워.”
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여성이 스스로 알몸이 되어 남성을 껴안는 일이 결코 쉬울 리 없다.
그동안 함께 지내와 서로 간에 이러한 행동은 더더욱 꺼려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전에 있었던 셀린과 내 관계를 생각하면 훨씬 더 말이다.
그런데도 셀린은 힘든 결정을 내려 주었다. 그것엔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랄 것이다.
셀린은 어둠 탓에 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모습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며 작게 말을 이었다.
“……자면서 얼마나 만져졌는지 알아? 아넬이 그렇게 변태일 줄은 몰랐어.”
“……윽.”
솔직히 몽롱한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명백히 기억이 남아, 나는 그 말에 몸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러니까……미안해…….”
“거기다 그냥 만지기만 한 것도 아니고, 야하게 더듬거리기까지 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
아마도 레아 누나와 함께한 시간의 영향이겠지.
그것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그런 식으로 만지기도 했던 것 같다.
아아! 하고 나는 이마를 부여잡고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누구는 자신의 감정도 애써 억누르며 체온 나누기라는 힘든 결정을 내려 주었는데, 누구는 잠결에 그 몸을 마구 만졌다니! 아무리 서로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지만, 변태라는 소리는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변태성을 반성하며 고개를 푹 숙이려니, 다시금 셀린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레아 언니와 그런 관계를 맺었겠지? 아넬이 유흥가를 가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못 봤으니까 말이야.”
“……어?”
여자라는 존재는 단순히 손놀림만으로도 그런 것까지 파악할 수 있는 거야?
아니 그보다 나뿐만 아니라 셀린도 그런 경험은 없으리라 생각됐는데, 어떻게 손놀림만으로 내가 레아 누나와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확신하듯 말하는
걸까?
“미안해. 아넬이 레아 언니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알아.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분명히 아넬이라면 곤란하리라 생각해…… 그러니까
오늘 있었던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마. 이건 내가 살려고 한 행동이니까, 나중에 무사히 돌아가더라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셀린.”
이 와중에도 셀린은 자신의 몸을 더듬거린 나를 나무라기보단, 혹시라도 이 일로 내가 괜히 복잡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사실 남녀 모험가들이 파티를 이루어 몬스터를 토벌하다 위기에 빠지고, 그 와중에 이렇고 저런 일을 겪어 사랑에 빠지거나 서로에게 꿰이는 일이
적잖게 일어난다고들 한다.
여성이 아무것도 없는 외딴 장소에서 마음과 몸을 기댈, 의지할 곳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남자의 욕망이 함께 버무려지면 서로 그런
사이가 아니더라도, 분위기에 휩쓸려 일을 저지르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나와 셀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세계는 유흥가가 도시에 버젓이 영업할 만큼 성에 상당히 개방적이고, 특히 모험가의 경우엔 이런저런 일을 당한 이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다 보니
성에 대해 좀 더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그런 기준으로 따져도 외간 남자가 함부로 여성의 알몸을 만진 것에 대해서 완전히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적어도 당사자끼리의 동의가 없다면, 남성이 여성을 책임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선이기 때문에, 셀린은 그 부분을 내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레아 누나라는 한 명의 여성에게 전념하려고 셀린의 마음을 거부한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셀린 자신이 잘 아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내가 셀린을 책임지느냐 아니면 모른 척 애써 넘어가느냐 수없이 고민할 것을 그녀는 알 것이다.
셀린 자신이 문제 삼지 않는다면, 이 문제가 외부로 알려질 일도 없고 또한 내가 셀린을 책임질 이유 또한 없다. 그러면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마을로 돌아가 셀린을 검은 드레이크로부터 구출한 영웅이 된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으로 괜찮을까?
나는 쓰게 웃고 말았다.
지금껏 스스로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고민한 것도 사실이다.
루시안의 충고를 들은 후에 레아 누나만을 생각하기로 마음먹었고 또한 그것으로 셀린에게 상처를 줘 놓고도 엘리시아의 말에 흔들렸던 내 모습에 한껏
자신을 비웃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일부일처제가 법적으로도 또한 상식선에서도 규제가 되었던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이 세계에서 환생했지만, 이 세계는
일부다처제를 강제하지 않을뿐더러, 법적으로도 가진 바 능력이 충분하다고면 일부다처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 긴 삶은 산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좋아한다.’라고 말할 감정을 품은 여성이 두 명 있다. 또한 ‘좋아한다.’라고 고백받은 여성이 한 명
더 있다.
그야말로 여복 터진 놈이라고 부를 이 상황에서, 일부일처제를 굳이 고집하지 않더라도 노력한다면 일부다처를 이룰 수 있다는데, 그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남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뭐, 그래도 한 번 선택했던 것에 올곧지 못하고 흔들렸다는 점에서, 여전히 내가 우유부단한 한심한 놈이라는 사실엔 전혀 변함없지만 말이다.
“잠깐, 아넬! 뭐 하는 거야……?”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아마도 내 옆에 누워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셀린의 몸을 더듬었다.
셀린이 갑작스러운 내 손길에 몸을 움찔거렸지만, 나는 더듬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 천천히 그녀의 몸을 타고 올라가 (절대 야하게 만진 것이
아니다.) 셀린의 얼굴을 찾았다.
손바닥에서 그녀의 뺨이 느껴졌다.
제법 어둠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제대로 된 빛이 없는 이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오러 익스퍼드의 안력이라고 하더라도 셀린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나는 부족한 부분은 분위기로 메우기로 하고 셀린에게 말을 이었다.
“셀린, 나랑 결혼해 줄래?”
“뭐……?”
처음 내뱉어진 셀린의 대답은, 당황스러움.
그리고 곧 셀린은 내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 몸을 살짝 떨었다.
셀린은 자신의 손으로 그녀의 뺨에 댄 내 손을 밀쳐 내고는, 조금 화가 난 어조로 내게 소리쳤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말했잖아. 이번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 주겠다고.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어떻게든 책임져야겠다고 하는
말이야? 그런 거야, 아넬?”
아무래도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 그녀 자신은 이번 일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했는데도, 나 자신이 셀린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발언으로 들렸는지, 내게 소리치는 셀린의 목소리는 상당히 거칠었다.
“그런 거라면 정말 괜찮아! 아넬은 내가 드레이크에게 죽을 뻔한 것을 살려 줬어. 그렇기 때문에 나도 아넬을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한 거야. 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도 죽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한 행동이야. 아넬이 책임질 필요 없어. 그리고 설령 억지로라도
책임지겠다고 하더라도 내가 싫어.”
그리고 이어진 셀린으로부터의 거부.
나는 다시금 손을 뻗어 셀린의 얼굴을 매만졌다. 셀린은 또다시 몸을 크게 움찔거렸지만, 화를 낸 것 치고는 딱히 내 손을 뿌리치거나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 말을 들을 의사가 있다고 여겨, 나는 천천히 차분한 목소리로 셀린에게 말했다.
“셀린을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억지로 책임지려고 하는 것은 아니야. 그랬다면 결혼해 줄래? 하고 묻지 않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했겠지. 안 그래, 셀린?”
“…….”
내 성격을 잘 아는 셀린이기에, 셀린은 내가 하는 말에 거짓이 없음을 깨닫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보이진 않지만, 나는 아마도 셀린의 눈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지점을 지긋이 바라보며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결혼해 달라고 이야기해 놓고 이런 말 하는 것도 그렇긴 하지만, 난 레아 누나를 좋아해.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어. 이번 일을 끝마치거든
수도에서 결혼식을 올릴 생각으로 가득해. 하지만 레아 누나를 좋아하는 그 마음 그대로 셀린도 좋아해. 오래전부터 말이야.”
다른 여성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또 이 여자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전생에서는 드라마 속의 허황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시청자들에게 뺨을 연타로 맞고, 능지처참을 당한 뒤에 부관참시까지 당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짓거리였지만, 셀린은 내 성격을 레아 누나만큼이나 잘 알기에, 어중간하게 돌려 말하기보단 내 마음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셀린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계속 침묵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셀린은 나를 잘 알 것 같았지만, 나는 여자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 같은 것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위기가 시키는 대로 이야기는 계속 이어 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지금도 머릿속으로는 고민해. 이게 정말로 올바른 행동일까, 내 욕심 때문에 어느 한쪽의 여성이 또는 두 명의 여성 모두가
결국 상처만 가지는 선택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나는 이전에 루시안에게 그런 충고를 받고 결국 레아 누나를 선택했어. 그리고 셀린 네게는
상처를 주었고. 그랬던 결정을 이제 와서 간단히 뒤바꾼다는 것은 나 자신도 웃기는 일이고 또 한심하다고 생각해. 그래도 지금은 셀린과 결혼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 이번 일도 일이지만, 지난번에 내 선택으로 상처를 준 것을 용서받고 보듬어 주고 싶어.”
셀린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몸보다는 나를 더욱 걱정해 주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을 짝사랑해 왔던 그 마음을 정면으로 거부당해 상처다 싶을 텐데도, 아직도 그 상처 탓에 여행하는 내내 제대로 웃지 못하고
얼굴 한편으로 그림자를 드리운 상태에서 나를 나무라기보다도, 우선으로 내가 이번 일로 어떤 생각을 가질지 또한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대할지를
생각하고 힘들게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었다.
그 배려에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까? 또한 내가 그녀에게 준 상처를 감안하면 더더욱 미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10년 동안 좋아해 준 데 감사하고, 마음을 받아들이지는 못할망정 가슴을 헤집어 놓고는, 정작 나는 이런 때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게
보듬어졌으니 말이다.
이런 여성을 놓친다면, 그것이야말로 남자 실격이 아닌가 싶다.
비록 한순간의 판단이고, 나중에 이 일 때문에 어떠한 사달이 벌어질지 예상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여태껏 내가 셀린에게 받은 사랑과 배려
그리고 내가 입힌 상처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떻게든 내가 감당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