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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타트 라이프 217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9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217화

“……아넬!”

순간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급한 세라 누나의 목소리.

그리고 내 눈으로 보이는 것은 몸은 세라 누나를 향해 돌아섰지만, 어째서인지 그 붉은 눈동자는 나를 응시하는 검은 드레이크의 모습이었다.

어째서인지 녀석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 같아 나를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속임수?’

지성이 없는 몬스터가 사람을 상대로 속임수를 쓸 리 없었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세라 누나를 쫓는 척하면서도 나를 응시했고, 그 꼬리는 매섭게 나를 향해 쇄도한다.

이미 온 힘을 다해 박차 오른 상황이라, 이 상태에서는 몸을 어떻게 피할 방법조차 없다.

‘설마 보스 몬스터에게 도리어 속을 줄이야……!’

최후의 결전에서 이렇게 당할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해, 이를 악물고 이어서 다가올 어마어마한 충격에 대비하려고 몸을 웅크리려는 찰나, 다시금 한

목소리가 내 귀에 울려 퍼졌다.

“아넬, 그대로 발을 뻗어!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방패여, 나타나라! ‘실드(Shield)!’”

발밑 허공에 무언가가 생성되었음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나는 그것을 거침없이 밟아 몸을 내뻗었다.

그와 동시에 다시금 또 한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져 들려왔다.

“패럴라이즈(Paralyse)!”

“크아아아아!”

검은 드레이크의 몸이 순식간에 굳으며, 나를 공격해 들어오는 녀석의 꼬리가 허공에서 멈췄다. 아마도 나이아스 씨가 루시안과 서로 타이밍 좋게

나를 보조해 준 모양이었다.

그 절묘한 타이밍에 감사함과 동시에 속으로 ‘나이스!’를 외치며, 나는 재차 이제는 나를 당황스러운 눈으로 응시하는 드레이크의 목을 노려 힘차게

검을 내뻗었다.

“하아앗!”

푸욱! 하는 섬뜩한 소리가 이어지고, 실버 레이는 그 긴 검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잡이만 남고 드레이크의 목에 파고들었다.

손끝에서 전해 오는 감각은 살벌했지만, 그와 동시에 녀석에게 드디어 제대로 된 피해를 주었다는 느낌이 확 전해져 왔다.

검신이 녀석의 목을 깊숙이 관통한 만큼, 제아무리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드레이크라도 이 일격에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목이 관통당하면서 흘러나오는 대량의 피 탓에 제대로 된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드레이크는 크르륵! 하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움찔거렸다.

아직 나이아스 씨가 건 패럴라이즈 마법이 효과가 남은 모양인지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는 없는 것 같았으나 그 눈동자만큼은 여전히 나를 날카롭게

직시했다.

‘억울하기야 하겠지.’

이 숲에 살면서, 녀석이 사람을 본 것은 우리가 처음일 것이다.

여태껏 금역으로 지정되었으니, 녀석의 활동 범위에 사람들이 사는 영역이 포함되지도 않을뿐더러, 어찌 보면 이 녀석은 이곳에서 그저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조용히 살았다고 보겠지.

그런데 느닷없이 처음 보는 생명체가 우르르 자신의 영역으로 몰려오더니, 앞뒤 가리지 않고 자신을 죽이려고 든다.

처음엔 어찌어찌 물리쳤지만, 이내 그 처음 보는 생명체는 다시금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였고, 이전보다도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움직임을 보이며

끝내는 자신의 목에 치명상에 가까운 상처를 만들었다.

드레이크의 처지에서만 본다면, 그야말로 억울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이쪽이 살려면 다른 무언가를 희생시켜야 한다. 그렇게 강해지지 않으면 이쪽이 도태되고, 반대로 잡아먹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약육강식의 법칙이다.

비록 지금은 이곳에 웅크리고 한가로운 생활을 보내며 조용히 살겠지만, 이내 이 근방에 동물이나 몬스터의 씨가 말라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녀석은

이곳을 떠나 다시 다른 영역으로 이동해 그 근방의 모든 생명체를 잡아먹을 것이고, 그 행동이 반복되면 언젠가는 사람이 사는 영역까지 침범해

엄청난 사상자를 낼 것이다.

그리고 그만한 시간이 흐른 뒤라면, 녀석이 지금보다 더 강해질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살짝 동정심을 가지긴 했지만, 그뿐이다.

서서히 그 커다란 몸체에 생명력이 꺼져 가는 것을 느끼며, 녀석의 목에 틀어박힌 실버 레이를 뽑으려고 할 때였다.

“……윽!”

제법 힘을 강하게 주었는데도, 실버 레이가 틀어박힌 목에서 제대로 뽑히지 않는다.

오러까지 제대로 머금어서, 근육 수축에 영향을 받더라도 이 정도의 힘으로 뽑히지 않을 리가 없는데. 뭔가 이상하다.

“……잠깐, 검이 안 뽑히는 게 아니야?”

처음엔 단순히 드레이크의 목에 틀어박힌 검이 녀석의 목 근육이나 뼈에 붙잡혀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검이 빠지지 않는 게 아니라, 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끝 하나, 발가락 끝까지 전부 굳어 버린 것처럼, 몸에 아무리 힘을 주어도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마치 구속 마법에 걸린 것과도 비슷한 현상에, 혹시 나이아스 씨가 드레이크에게 건 패럴라이즈 마법이 내게도 함께 적용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분명히 드레이크에게 검을 내지를 때만 해도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였으므로, 뒤늦게야 내게 속박 마법이 적용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내게 속박 마법이 걸렸는지,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지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목에 틀어박힌 일격 때문에 생명력이 서서히 사그라져 가는 드레이크가 나를 향해 그 커다란 덩치를 눕히려 했기 때문이다.

녀석의 크기는 기존보다도 1.5배가 더 커져, 크기만 따지면 높이가 7m가 훌쩍 넘고, 몸길이가 17m는 더 넘어 보이는 크기다. 그 몸무게는

제대로 측정해 보지 않는 한 정확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못 해도 5t 이상은 더 넘어갈 것이다.

그 무게에 짓눌린다면, 아무리 오러로 몸을 보호하고 나이아스 씨의 보조 마법에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쓰러지는 드레이크로부터 몸을 빼내려고 발버둥 쳤지만, 여전히 몸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석상처럼 굳었다.

“아넬, 위험해! 어서 떨어져!”

“……!”

내가 드레이크의 목에 검을 박아 넣은 자세 그대로 검을 붙잡는 그 모습에, 일행들이 드레이크가 넘어지기 전에 그곳에서 떨어지라고 충고해 왔다.

아마도 일행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내가 녀석의 목에서 검을 빼내지 못해 그것을 잡아당기는 중이라 움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 모양이다.

‘나도 알지만……!’

크윽! 하고 온몸의 힘을 바짝 주어도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이지 않는 그 상황에서, 누구보다 이 자리를 박차고 싶은 것은 나 자신이었다.

검은 드레이크가 커억! 하고 입에서 피를 토해 내며 그 커다란 몸체가 기울어지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그 몸에 딱 달라붙은 모습을 일행들이 봤을

때.

그제야 그들은 무언가 내게 이상이 생겼음을 눈치챘는지 ‘아넬!’ 하고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향해 박차고 달려왔지만, 일행들이 이곳에 도달하는

속도보다 드레이크가 몸을 쓰러뜨리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것도 하필이면 내 쪽을 향해 쓰러진다.

운도 더럽게 없지, 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아차’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 내가 이쪽에 달라붙으니, 무게가 이쪽으로 쏠리나?’

그 검은색 커다란 몸뚱어리가 무섭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쿵! 하고 내 몸을 짓누르는 거대한 충격에 커헉! 하고, 폐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

 

 

‘……윽!’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강렬한 두통과 약간의 구토감 그리고 극심한 어지럼증이었다.

마치 전날 밤 술을 떡이 되도록 마시고 들어와 물조차 마시지 않고 바로 퍼질러 잔 뒤에 다음 날 아침 일어난 것 같은, 그런 죽을 맛에 가까운

불쾌감이었다.

물론 이 세계에 온 뒤로 이 세계의 술은 그다지 맛이 좋은 편도 아니고, 평소에도 술을 그다지 즐겨 마시는 편이 아니라서 숙취에 시달린 적은

없었지만, 이 감각만큼은 분명히 기억하기에 잠깐 전생에서의 추억이 떠올랐지만, 그것도 잠시뿐.

목을 타고 올라오는 구토감에,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으에에엑! 하며 속을 게워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속에서 올라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닥에 한 장의 빈대떡이 환상적인 모습으로 부쳐질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새하얗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하얀색 바닥이었다.

“……?”

내가 지금 숙취 때문에 꿈을 꾸나?

아니, 애당초 술을 마신 적도 없을뿐더러 내가 왜 여태까지 기절했는지 기억 역시 말짱해, 나는 의아함에 고개가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분명히 검은 드레이크의 목에 결정적인 공격을 성공시키고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이 굳어 버려 그대로 바닥을 향해 쓰러지는 놈의 몸에 깔려

의식을 잃었다.

그렇다면 눈을 떴을 때 보이는 풍경은 최소한 검은 드레이크의 몸에서 내 몸을 꺼내는 일행들의 모습이나 혹은 신전 또는 바닥에 누워 있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고 온통 새하얀 공간뿐이다.

신전 바닥처럼 새하얀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무(無)라고 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

그 특이함에 나는 순간 얼이 빠져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고는, 순간적으로 퍼뜩 드는 생각에 기겁했다.

“뭐야, 설마 그거에 죽은 거야?”

요리 보고 조리 봐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봐도 이게 꿈은 아닐까 하고 뺨을 꼬집고 다시 봐도 온통 새하얀 공간뿐이다.

하늘을 올려다봐도 태양이나 구름 같은 것은 고사하고, 하얀색 외에 다른 색은 보이지조차 않는다.

이러한 공간이 사람 사는 세계에 존재하리라곤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필연적으로 내 머릿속에는 이곳이 이 세계가 아니라 천국이나 혹은 지옥.

그것도 아니라면 그곳으로 향하는 황천길 같은 중간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나 설마 죽은 거야? 그런 거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0t은 넘게 나갈 그 몸무게에 깔렸다고 해도 내 몸뚱어리에 걸렸던 오러 양이며 각종 보조 마법이 얼마인데 고작 그 정도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푹 찍혀 압사당했단 말인가?

아니 물론, 인간의 몸으로 10t이 넘을 그 큰 드레이크의 몸에 깔렸으면 당연히 죽어 마땅하겠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열심히 단련도 하고, 오러의

힘도 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해, 나는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욕설을 난무……하지는 않았다.

단지 어이없음에 흰 도화지를 보는 것처럼 새하얗기 그지없는 공간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그렇게 10분, 20여 분 가까이 내게 주어진 이 상황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사용했지만, 당연히 주위가 변화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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