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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타트 라이프 209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0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209화

까놓고 말해서 말이 하렘이지, 레아 누나만을 바라보겠다는 말을 완벽히 어기고 나를 믿는 그녀를 배신한 꼴이니만큼, 내가 할 말은 수많은

변명보다는 가자마자 무릎 꿇고 땅에다 머리를 처박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등에 칼 들어오면 그대로 배드 엔딩이려나?’

가능하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여신께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루시안과는 계속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 있을 일을 적잖이 의견 교환하려니, 갑자기 방문에서 작은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엘리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넬, 루시안 혹시 방에 계신가요?”

“어, 응. 아넬이라면 나와 함께 방에 있는데. 무슨 일이야?”

루시안이 방문을 열고 엘리시아를 바라보며 묻자, 엘리시아는 그 문 틈새 사이로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보더니 루시안에게 살짝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 아넬이랑 둘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혹시 아넬을 빌려 가도 되나 싶어서요.”

“음…….”

그러자 루시안은 엘리시아의 말을 듣고는 나를 바라보더니 눈짓으로 ‘올 게 왔네.’라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곤, 방문을 더 열면서 말했다.

“딱히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긴 자리가 마땅찮잖아? 내가 잠깐 자리를 비켜 줄게, 둘이서 이야기 나눠, 엘리시아!”

“그래 주시면 더 감사하죠. 고마워요, 루시안!”

“나는 그렌 씨 방에 놀러 갈 테니까. 이야기가 끝나면 불러 줘.”

“네.”

“자, 잠깐! 루시안!”

루시안은 그대로 내게 ‘행운을 빌어 친구.’라고 말하는 듯한 제스처와 함께 엘리시아를 지나 복도 저편으로 걸어가고 말았다.

“그럼, 실례할게요! 아넬!”

루시안의 자리를 차지하며, 엘리시아는 우아하게 자리에 앉았다.

물론, 방문을 꼭 걸어 잠그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딱히 내가 엘리시아에게 찔릴 이유는 그 어느 것 하나 없을 텐데도, 나는 내 쪽을 입으로는 살며시 미소 지으면서도 전혀 웃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는 엘리시아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자아, 그러면, 오늘 돌아온 만큼 피곤한 것은 알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찾아왔으니 이해해 주세요, 아넬! 그리고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네.”

“우선은, 셀린과 이어진 것은 축하드려요, 아넬!”

“어, 응. 고마워…….”

“하지만 ‘난 여성 여러 명과 인연 맺을 생각이 없어.’라고 이야기해 놓고선 잘도 셀린을 덮치셨네요.”

“덮치다니……!”

변화구도 아닌 직구로 내리꽂힌 그녀의 발언에 쿨럭! 하고 헛기침을 한 번, 저게 공주님 입에서 나와도 되는 소린가 싶어서 그녀를 바라보자,

엘리시아는 오히려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셀린의 위치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저마저도 정중히 거부했던 아넬을 셀린 자신이 먼저 다가갔을 것 같지는 않네요. 셀린이 아넬을 빼앗으려고

각오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셀린보다는 아넬이 스스로 마음잡고 셀린을 받아들였다고 봐야겠죠. 틀리나요?”

“……틀리지 않았습니다.”

루시안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째서 엘리시아까지 이렇게 정확하게 꼬집어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나 정말로 알기 쉬운 남자이려나?

실제로 엘리시아가 했던 말은, 내가 이곳으로 오면서 엘리시아에게 했던 말 일부였다.

대충 기간으로 따지자면, 그 말 한 지 이제 겨우 두 달이 조금 안 되어 가는 셈인데, 다르게 말하면 고작 두 달 사이에 그 각오가 무너진

꼴이었으므로, 나는 엘리시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시선을 피했다.

엘리시아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어떤 면에서는 셀린이 무척이나 부럽네요.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고, 세르피안 왕국으로 돌아가면 이것저것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 머리는 좀 복잡하겠지만, 셀린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았어요. 그런 점에서 아넬은 그녀를 확실히 책임질 필요가 있어요. 알죠?”

“물론이야.”

적어도 도중에 힘들다고 그녀를 내팽개치거나 외면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 점에 관해서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시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더니, 다시금 내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언제쯤 아넬에게 선택받을까요?”

또다시 이어지는 엘리시아의 폭탄 발언에는 쿨럭! 하고 헛기침했다.

“정떨어지지 않아?”

한 여성을 사랑한 뒤에, 결혼 약속까지 잡아 놓은 상태에서 ‘다른 여성을 함께 사랑할 생각은 없다.’니 뭐니 이야기했던 것이 고작 두 달 전

이야기다.

한데 적당한 계기 하나가 마련되었을 뿐인 이유로, 기존 선언은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는 자신이 아닌 다른 여성에게 사랑을 주었다.

현재로서는, 당장엔 알콩달콩하며 깨를 볶을지 몰라도, 일이 마무리되어 세르피안 왕국으로 간다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나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고,

최악의 경우엔 관계 자체가 파탄 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이전이라면 모를까, 현재 내게 남성으로서의 매력은 없을 것이다. 바람둥이라고 욕할지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엘리시아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젓더니, 무슨 소리 하냐는 듯이 도리어 따지듯이 말을 이었다.

“아넬, 벌써 잊으셨나요? 저는 아넬에게 마음을 고백한 시점부터 이미 아넬을 독차지할 생각은 없었어요. 단지 나눌 상대가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어났을 뿐이죠. 더군다나 그 한 명이 셀린이라면, 저도 딱히 불만은 없어요. 아넬은 레아 언니와 셀린을 제외하고는 다른 여성에겐 그다지 관심도

없는 것 같았고, 만약 여기서 저를 제외하고 아넬과 인연이 맺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셀린이리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셀린과 인연을

맺었으니, 사실상 아넬이 이 이상으로 다른 여성을 마음에 두는 일은 없다고 봐야겠죠. 그 정도라면 그럭저럭 만족해요.”

“뭐랄까, 일국의 공주님이 남편감을 다른 여성과 나누는 것에 너무 관대하지 않아?”

엘리시아는 짐짓, 내 말에 정말 모르겠냐는 듯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넬의 처지에서 보면, 제가 조금 이상해 보일 수도 있어요. 저는 일국의 공주이고, 그 신분은 왕족입니다. 사실, 신분만으로 놓고 보자면,

제가 아넬을 선택할 이유는 없을 테고, 마음만 먹는다면 타국 왕자와 혼인해 일국의 왕비가 되어 살 거예요. 자랑이 아니라 세르피안 왕국을 제외한

4개국 전부 저와 혼인하고 싶다고 요청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엘리시아의 표정은 일말의 자랑이나 과장이 섞이지 않은 담담한 모습 그대로였다.

일국의 왕비가 될 수 있으리라는 그녀의 말은 거짓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재차 말하는 점이지만, 엘리시아는 세르피안 왕국을 통틀어, 아니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그 미모를 견줄 여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외모가

아름다웠다.

세르피안 검술 학교 때부터 한동안 얼굴을 맞대며 대련해 오고, 그 후로도 여행하며 익숙해진 상태지만, 지금도 때때로 엘리시아의 얼굴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남자의 본심이 마구 흔들리면서 심장이 콩닥콩닥 뛸 때가 있다.

엘리시아가 검사의 길을 추구해서 그다지 꾸미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그렇지, 마음먹고 꾸민다면 그 옛날 아름다운 외모로 나라를 기울어지게

했다는 경국지색의 미녀인 달기와 서시의 역사를 이곳에서 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만큼, 그녀가 원한다면 세르피안 왕국을 포함해 대륙

어디서든 그녀를 신부로 맞이하고픈 사내는 넘쳐날 것이다.

하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엘리시아는 자기 외모의 위력을 알면서도 그것에 그다지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고, 도리어 자신에게는 아무런

메리트가 없을 내게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아넬, 자신이 내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고 말해 드릴게요.”

“……나 혹시, 생각하는 게 막 겉으로 드러나고 그래?”

“그렇진 않지만, 아넬은 의외로 생각하는 게 정직해서, 아넬이라는 사람을 알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겠거니 알게 돼요.”

“칭찬일까, 그거?”

“나름은요.”

하지만 엘리시아는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에요.’라고 고개를 저었다.

“아넬은 자신을 굉장히 낮게 평가해요. 이전에도 말했죠? 아넬에게는 큰 가능성이 존재한다고요. 18살 나이로 오러 익스퍼드 경지에 오를 만한

검사가 대륙에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넬? 애당초, 일반인이라면 간신히 오러를 발현하거나 설령 천재라고 부르는 부류의 사람들조차도 그

나이에 오러 유저 중급에서 상급이 한계예요. 세르피안 검술 학교를 잠깐이나마 봤으니 알겠지만, 현재 알려진 바로는 그 나이에 오러 익스퍼드의

경지에 오른 인물은 아넬이 유일해요. 대륙은 넓으니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인재들도 있겠지만, 그 숫자를 고려하더라도 대단한 것을 넘어 거의

불가능한 성취라고 볼 수 있죠.”

사실은 이번 사건으로, 셀린도 나와 같은 오러 익스퍼드급 유저가 되었지만, 이전에 이야기할 때 세레나와 우리의 생환 소식 이야기를 먼저

주고받느라, 셀린의 오러 발현에 대해서는 소식만 알리고 셀린의 정확한 실력까진 일행들에게 말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넬이 이번에 세레나에게서 얻은 힘으로, 오러 익스퍼드 중급 경지에 올랐어요. 빨라도 30대 이전에 중급 경지에 오르면 엄청난

것이고, 50대 이전에 오러 익스퍼드 상급 경지에 오른다면, 오러 마스터 경지까지도 가능하지 않겠냐고 했던 기존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곧장

중급 경지에 도달했죠. 18살 나이로 오러 익스퍼드 중급 경지. 그건 ‘혹시나’ 하던 마스터 경지에 도달할 가능성이 정말 보이는 것과

다름없어요. 설령 오러 마스터가 되지 못하더라도 익스퍼드 최상급 경지엔 확실하게 도달하리라 생각되는 만큼, 아넬에 대한 기대치는 아넬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높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엘리시아는 단순히 나를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인재를 평가하는 왕족의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오러 익스퍼드 최상급 경지는, 각 왕국을 통틀어도, 나라마다 많아야 세 명에 적으면 한 명뿐인 곳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제 고모님이나

왕국 기사단장직을 맡으신 클라크 경과 같이 한 나라의 중요 요직을 맡죠. 최상급 경지가 가지는 무력에서 나오는 막강한 힘과 그 힘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여러 가지 억제력과 신뢰의 힘은 가치를 따지기 힘든 귀중한 전력입니다.”

길게 이어진 말에, 엘리시아는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한 뒤에 재차 말을 이어 갔다.

“생각해 보세요, 아넬! 비록 단신으로 왕국 절반에 해당하는 힘을 가진 오러 마스터만큼은 아니라지만, 익스퍼드 최상급 유저가 가진 무력의 힘도

결코 얕볼 수는 없습니다. 최상급 유저의 무력 앞에선 귀족들 역시 마음대로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없을 것이고, 그러한 유저를 보유한 왕가라면,

그건 자연스럽게 왕권 강화로 이어집니다. 세르피안 왕국의 최상급 유저 두 분이 군사 요직에 위치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죠. 그런 최상급 유저로

성장할 가능성이 확실한 아넬을 혹은 그것조차 넘어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를 인재가 과연 공주의 짝이 될 메리트가 없는 인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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