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208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208화
“……이번 일이 끝나고, 세르피안 왕국으로 돌아간다면 확실히 책임질 생각이에요.”
“드디어 자백했구먼. 하핫, 축하한다! 아넬, 셀린! 이거, 오늘 저녁엔 두 사람의 생환을 축하하는 파티 겸, 두 사람이 인연 맺은 것을
축하해야겠는걸.”
그렌 씨의 말에 케르츠 씨가 냐하핫! 웃으며 찬성하였고, 루웬 씨도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일행 모두가 나와 셀린의 관계를 마냥 축하해 주지는 않았다.
내게 이미 레아 누나라는, 결혼을 약속한 여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루시안은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축하해 주면서도, 내게는
‘결국 저질렀구나.’ 하는 묘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한편 엘리시아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말없이 바라보았고, 그 옆에 앉은 세라 누나는 가볍게 한숨 쉬면서 나를
바라보더니 ‘힘내!’라는 뜻이 담긴 제스처를 보내 주었다.
내 심문을 끝으로, 일단 나와 셀린의 생환 이야기는 모두 마무리되었으며, 일행들은 저녁 식사가 준비되기 전까지 여행으로 지쳤을 나와 셀린을
배려하여 우리가 각자 휴식하도록 도와주었다.
새로운 제안
루시안, 엘리시아 그리고 세라 누나는 타르헨 씨의 배려로 손님방을 배정받아 그곳에서 머물렀다.
그렌 씨 남매는 이곳이 그들의 집이라 각자의 방이 있었고, 타르헨 씨의 집은 우리 일행들을 식객으로 받아들이고도 방이 한두 개 정도 더 여유 있을 만큼이나 넓었다.
하나 그곳은 창고방으로 사용되는 중이라, 사용하려면 짐을 비워야 할 필요가 있어 방을 빌려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타르헨 씨와 두 부인에게 드리고, 나는 루시안과 같은 방을, 셀린은 세레나와 함께 엘리시아와 세라 누나랑 같은 방을 사용했다.
좁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온종일 방에서 생활하지도 않고 잠만 같이 잘 뿐이라 그렇게 좁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방으로 들어와 얼마 되지 않는 짐을 내려놓고 바닥에 앉아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려니, 나와 함께 방으로 들어온 루시안은 작게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결국엔 저질러 버렸구나!”
“응, 결국 저질러 버렸어.”
이 상황에서는 ‘저질러 버렸다.’라는 것 외에는 마땅히 어울리는 표현을 찾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상 책임지는 것 외엔 마땅한 대책도 없어 루시안의 물음에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루시안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레아 누나가 적잖이 화내겠는걸.”
“화만 내고 끝나면 다행이겠지. 내심 레아 누나의 칼에 베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중이야.”
아마 농담으로 들렸는지, 루시안은 내 말을 듣고는 아하하! 웃었다.
나 참, 본인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웃기는.
물론 저지른 나는 입을 꽉 다물고 고개 숙여야 하는 상황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화는 낼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레아 누나가 아넬을 싫어할 일은 없을 테니까.”
“응? 그거 근거 있는 소리야?”
“근거라기보다는, 왠지 대충 이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이전부터 했거든. 아마 레아 누나도 은연중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결국, 내가 바람피울 것을 예측했다는 이야기?”
“으음, 바람피운다기보다는 어쨌든 아넬은 레아 누나와 결혼한 후에도 계속 모험가 생활을 할 생각이었잖아? 이번처럼 아넬이 셀린을 구하는 경우나 혹은 셀린이 아넬의 목숨을 구하는 경우가 언젠가 한 번쯤은 있으리라 생각했을 뿐이야. 그리고 그런 일이 생겼을 때 과연 두 사람이 이전처럼 서로를 애써 외면한 채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그런 일이 한 번이라도 일어난다면, 아넬이 먼저 셀린에게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했고.”
“……루시안, 너 혹시 점쟁이 해 볼 생각 없어?”
“그런 소리 하는 것 보니 예상이 맞았구나?”
단순히 맞았을 뿐만 아니라, 상황까지 정확했다.
내가 셀린에게 결국 마음이 움직였던 이유는, 자기 자신도 껄끄러운 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옷을 벗어 서로 체온을 나눈 뒤. 다시금 내게는 이번 일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애써 말하던 셀린의 모습에, 결국 힘들게 지어 놓은 마음의 벽이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이다.
루시안의 정확한 예측에 살짝 소름이 돋음을 느낌과 동시에, 내가 그렇게 알기 쉬운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작게 한숨을 내쉬자, 루시안은 가볍게 웃고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뭐, 어쨌든 셀린과 이어진 것은 축하해. 셀린도 이전처럼 다시 웃는 모양이고, 아넬 너도 레아 누나 일이 걱정되겠지만, 그래도 한결 편해 보이는걸.”
루시안의 축하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대답했다.
“결국, 루시안의 충고 덕분이었지. 아마 루시안의 충고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우유부단하게 있었을지도 몰라.”
“충고해 주었더라도, 그것을 솔직히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긴 것은 아넬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셀린은 그렇다 치더라도, 세레나는 아직 문제가 많은걸. 우리야 세레나의 정체가 사실은 두 사람의 아이가 아니라 만드라고라라는 점을 알지만, 앞으로 아넬과 셀린은 가능하면 저 아이를 데리고 함께 세르피안 왕국으로 갈 생각이잖아? 그 뒤 일은 어떻게 할지 좀 생각해 봤어?”
세레나의 존재를 날카롭게 짚어 가는 루시안에게는 솔직히 고개를 저으며 아직 별다른 대책이 없음을 말했다.
“일단 세레나의 외모가 셀린과 판박이니까, 적어도 셀린의 동생이라든지 하는 핑계는 통할 것 같지 않아서, 나와 셀린 사이 자식으로 할 생각이었는데. 솔직히 앞으로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지는 게 사실이야. 일단 레아 누나에게는 물론이고, 부모님과 마스터에게도 세레나의 정체를 사실대로 이야기해야겠지만, 과연 그분들이 모두 세레나의 존재를 받아들여 줄지는 잘 모르겠어. 그래도 지켜 주겠다고 마음먹은 만큼, 어떻게든 우리 힘으로 그 아이를 보호해 주고 싶지만 말이야.”
“하지만 아넬, 네가 세레나에게 어떠한 감정을 느껴 그 아이를 보호하려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 아이를, 그것도 자기 자신의 아이도 아닌 4살 아이를 보호하기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야.”
작은 한숨을 한 번 내쉬며 숨을 돌린 뒤에, 루시안은 다시 차분히 말을 이었다.
“특히 레아 누나와 아넬 부모님 그리고 마스터도 너와 셀린의 관계라면 그래도 남녀 간 문제니 이해해 주실지 모르겠지만, 세레나의 존재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도 있어. 아넬과 셀린이 자신의 아이처럼 받아들인다고 해도, 세레나가 결국 너희 두 사람의 친 아이는 아니니까 말이야. 굳이 아넬과 셀린이 세레나를 맡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레아 누나와 부모님 그리고 마스터의 이해를 받으면서 그리고 그 부분을 감당하면서 레아 누나와 관계를 잇고 또한 엘리시아와의 관계도 남은 점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또 걱정되는 점이 있어. 그래서 하는 충고인데, 세레나를 아넬이 책임지려면 셀린과 관계 맺은 것 이상으로 각오가 필요해.”
루시안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세레나를 데리고 세르피안 왕국에 함께 가겠다고 생각할 때부터 끊임없이 고민해 온 문제였기 때문이다.
“네게는 두 번째로 걱정을 끼치고 또 충고 받게 되어 버렸네.”
“음, 솔직히 충고는 이전에도 꽤 많이 해 준 것 같은데,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 흐름이 흘러간 적은 셀린 때 이후로 처음이니까, 아마 두 번째로 생각해야겠지?”
“셀린 문제를 말할 때도 그랬지만, 충고 고마워, 루시안. 하지만 세레나를 데려가려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 두 사람이 세레나와 우연히 만나서 세레나가 셀린과 똑 닮은 모습으로 변화했기 때문이 아니야. 비록 그 정체는 만드라고라라도, 이제 세레나는 한 명의 인격이 존재하는 사람이야. 숲에서 계속 지내오던 그 아이를 그곳에서 데려온 책임도 있을뿐더러 결과적으로는 세레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 이곳까지 우리가 무사히 생환한 데는 세레나의 도움이 크니까 말이야.”
세레나를 만나 열매로 한 단계 더 강한 경지로 올라서지 않았다면, 또한 그 상태 그대로 우리에게로 달려들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하며 금역을 이동했다면, 솔직히 말해 생존 확률은 반 반 혹은 그 이하였을 것이다.
정말 운이 좋아 금역을 빠져나왔더라도, 기존의 실력으로는 재차 검은 드레이크를 상대할 방법이 사실 마땅히 없었다.
하나 지금은 더 강해진 오러와 높아진 경지로 이 힘을 충분히 내 것으로 소화해 낸다면, 셀린과 세라 누나 그리고 그렌 씨와 같이 협공함으로써 검은 드레이크를 이길 가능성이 생겼다.
단순히 검은 드레이크를 상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 앞으로의 미래를 보더라도 한층 더 높은 경지를 더욱 수월하게 올라갈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그러한 도움을 받았으나 반면 세레나는 우리 두 사람에게 얻은 것이라곤 사람으로서의 교감 그리고 약간의 언어가 전부일 뿐이다. 생활의 터전은 잃었으며, 세레나의 정체가 알려지면, 그녀를 노리는 사람이 없으리라 단정 지을 수도 없다.
당장 마스터 경지에 오른 나이아스 씨조차 우리에게 마스터의 인연과 그 힘을 사용하는 부탁을 대가로 만드라고라를 원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마도 나이아스 씨가 우리와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또한 세레나가 인간 모습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또 모를 일이다.
적어도 그 아이를 원래 사는 곳에서 데려온 이상 어디에 안전히 가둬 두지 않고 더 넓은 세계를 보여 주고 더 많은 교감을 나누며 그 아이를 행복하게 또한 안전하게 지내도록 책임지고 싶었다.
단순히 내 욕심이라고 말하면 할 말 없는 부분이지만.
루시안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그럼 그렇지.’ 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응, 아넬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충고는 여기까지. 친구로서 너를 응원해 줄게. 그렇게 의지가 확고한 아넬을 설득하기는 거의 불가능함을 아니까 말이야. 만약, 묻고 싶거나 의견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줘. 적어도 나는 아넬 너와 셀린 편이니까.”
“응, 고마워! 루시안!”
내 솔직한 감사 인사에, 루시안은 아! 하더니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레아 누나에겐 나도 어쩔 수 없어. 난 아넬과 셀린 편이지만, 레아 누나 편이기도 하니까. 자고로 하렘은 단순히 양손의 꽃이 아니라, 때론 그 꽃을 지켜 내려고 수많은 벌과 곤충에게 위협받을 때도 있지. 힘내, 아넬!”
“아니, 오히려 벌과 곤충들보단 그 꽃이 더 무서운데.”
아직도 레아 누나만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세룬 도시를 떠날 때, 돌아오면 결혼하자는 말에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하던 그녀. 또한 부끄러워하면서도 그 속에는 기대감이 강했다.
비록 레아 누나는 나와 셀린 사이의 관계 또한 엘리시아와의 묘한 분위기도 먼저 눈치채고 그것을 경계했지만, 단순히 경계하는 것과 실제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