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225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225화
“그럼, 이제 돌아갈까요?”
일행들은 내 말에 동의하며, 마지막으로 신전 모습을 돌아본 뒤에, 발걸음을 옮겨 뤼피올 마을로 향했다.
***
모든 일이 좋게 끝나, 일행들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뤼피올 마을로 향하는 4일의 시간 동안은 일행들과 웃고 떠들며,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여행을 즐기는 분위기로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에 도착한 뒤에는, 프롤린 신관님과 시미르 촌장님께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일을 무사히 해결하도록 도와준 데 감사의 인사를 나누었다.
타르헨 씨는 두 부인과 함께 또다시 거나한 축하 파티를 열어 주었고, 그날 하루만큼은 우리 모두 타르헨 씨가 준비한 비장의 술을 질펀하게
들이붓는 바람에, 일행 모두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숙취를 겪어 고생해야 했다.
총 이틀에 걸쳐, 우리는 타르헨 씨 집에서 신세 지며 몸에 쌓인 여독을 완전히 풀어내고, 세르피안 왕국으로 복귀할 준비를 모두 마무리했다.
“그동안 신세 졌습니다.”
“신세는 무슨, 프롤린 신관님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자칫 잘못하면 대륙 전체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는 큰일을 해결해 주었다고 들었네. 집에
빈방과 식사를 조금 대접한 것 가지고 생색내기엔 한참 모자라지. 더군다나 딸아이와 아들놈이 목숨을 빚졌는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맛있게 얻어먹었어요.”
“흐음, 맘 같아선 며칠 정도 더 붙잡고 질펀하게 술판을 벌이고 싶지만, 더는 기간을 미룰 수 없을 만큼 급한 일이라지?”
“네, 아쉽지만 이미 복귀 기간을 한참 넘긴 터라,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타르헨 씨의 말에 셀린과 루시안은 안색을 시커멓게 물들였고, 엘리시아는 저도 모르게 우욱! 하고 나지막이 헛구역질했다. 그나마 세라
누나만이 평온한 얼굴을 유지할 뿐이지만, 타르헨 씨에게서 ‘술’이라는 말이 나올 때, 나만이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움찔거리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하핫, 그나저나 자네 생긴 것과 다르게 꽤 술이 세더군! 아들놈을 제외하고 그만큼 들이부었는데 속에 있는 것을 쏟아내지 않은 것은 자네가
처음이야!”
‘그야, 오러로 필사적으로 꾹꾹 눌렀으니까요.’
이틀 전에 벌어졌던 축하 파티 겸 지옥의 술잔치를 떠올리곤, 나 역시 입가를 살짝 씰룩거렸다. 그것은 그야말로 인세에 펼쳐진 ‘지옥도’ 아니,
‘주옥도(酒獄道)’라고 부를 일이었다.
타르헨 씨는 드워프 특유의 그 건장한 체격도 체격이지만, 체질상 술에 매우 강한 편인지, 어지간한 어른조차도 한 병 마시곤 뻗을 수밖에 없는
강한 도수의 술도 세 병 이상을 물처럼 꿀꺽꿀꺽 삼켜도 멀쩡했다.
타르헨 씨는 축하 파티를 빌미로 삼아 모처럼 술을 대량 구해 와, 자신의 자식들을 비롯하여 일행 모두에게 자신과 한 잔씩만 하자며 서로 술을
주고받았다.
처음엔 그다지 술 생각이 없던 일행들도 ‘딱 한 잔만!’이라는 그의 목소리에 잔을 들었지만, 알게 모르게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석 잔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눈치챘을 땐 이미 각자가 한 병 이상씩을 비웠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남성진에겐 ‘남자라면 응당 깡이 있어야지!’라고 술을 밀어붙이고, 여성진에겐 ‘남편과 술을 나누는 여성은 오래도록
사랑받지.’ 등의 이야기로 절묘하게 구슬려, 우리에게 한 병 이상씩을 더 퍼 먹인 타르헨 씨 덕분에, 일행들은 물론이고 그렌 씨와 케르츠 씨,
루웬 씨마저도 결국엔 질펀한 빈대떡을 여러 장 만들러 화장실로 달려가고 말았다.
나와 세라 누나의 경우엔, 오러 익스퍼드 중급에 달하는 그 오러를 오로지 위장에 쏟아부어 화산처럼 폭발하려는 그 기세를 간신히 꾹꾹 눌러 담아
봉변당하는 것을 막긴 했지만, 다음날 지독한 숙취에 시달려야만 했다.
물론, 우리보다 사정이 좋지 않은 루시안과 셀린은 물론이고 특히 엘리시아는 그야말로 그날 하루는 세라 누나의 보살핌을 받으며 쥐 죽은 듯이 방
안에서 끙끙거려야 했다.
케르츠 씨나 루웬 씨도 눈 밑에 다크 서클을 짙게 드리우고 어머니들이 해 주신 해장용 수프를 벌컥벌컥 들이켰으니, 타르헨 씨의 만행(?)이
얼마나 대단했을진 쉽게 상상할 것이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여기에 더 있다간 타르헨 씨가 몇 번이고 술을 더 들이부을 생각이라, 이를 피할 생각으로 숙취가 풀리는 즉시 짐을 싸서,
일행들은 타르헨 씨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애써 피하며 한편으로는 그렌 씨 남매들과 그들의 두 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나 역시도 그들에게 인사 나누려다, 내 옷자락을 살짝 잡아끄는 타르헨 씨의 나지막한 부름에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뭐, 그다지 중요한 말은 아닐세. 다만 이대로 헤어지기엔 조금 걸려, 한 가지 물어보려고 불렀지.”
“어떤……?”
“자네와 셀린 양 그리고 엘리시아 양은 혹시 서로 그렇고 그런 관계인가?”
“……네?”
타르헨 씨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두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물어보려니, 그는 멋쩍게 웃으면서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괜한 참견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는 좀 먹었어도 아직 눈치는 빨라서 말이지. 자네를 바라보는 셀린 양과 엘리시아 양의 눈빛이 사랑하는 남성을
보는 듯하던데. 셀린 양이야 이번에 맺어졌다니 그렇다 치더라도, 엘리시아 양은 아무런 관계도 아닌가?”
아무래도 신전을 향하기 전과 다녀온 뒤에, 타르헨 씨는 우리 모습을 보고 뭔가 복잡한 관계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모양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러한 경험자이기 때문이려나?
하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 대답해야 할지 조금 고민되어 주저하려니, 타르헨 씨는 ‘네 맘 다 알아!’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음, 원래 자네와 같은 성격이라면, 한 여성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마련이지. 혹시 셀린 양과 엘리시아 양 둘 다
받아들이는 데 심하게 고민하진 않나?”
“고, 고민이라면 있습니다만…….”
하지만 내가 말을 더듬은 이유는 나와 셀린 그리고 엘리시아 사이의 기묘한 관계의 흐름을 타르헨 씨에게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내게는 단순히 두 여성 문제뿐 아니라 이미 결혼을 약속한 첫 번째 여성인 레아 누나가 포함되어, 타르헨 씨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복잡한
상황이라 이것을 과연 설명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을 뿐이다.
아마 두 미인 아내를 둠으로써 남성의 하렘을 완성한 타르헨 씨라도 세 여성과 관계있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 혀를 찰 것 같다는 생각에, 우선은 입
다물고 조용히 그의 말에 수긍했다.
타르헨 씨는 내 말을 듣곤 ‘그러면 그렇지!’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자네도 보면 알겠지만, 내게는 두 아내가 있지. 그렇게 나 또한 그 두 여성에게 온전히 같은 사랑을 준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혹시 다른 한
여인에게는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늘 해 왔다네. 자네도 같은 고민을 할 것 같아 먼저 그 길을 걸어 본 인생 선배로서
충고 하나 하고자 하는데, 아니다 싶으면 무시해도 되니 기분 나빠하지는 말아 주게.”
“저를 생각해서 해 주시는 말인걸요. 따를진 모르겠지만, 경청하겠습니다.”
하렘을 이룬 사나이에게 강의(?)를 듣는다니 조금 그림이 이상하긴 했지만, 확실히 그와 관련한 전문인의 조언이 필요한 상황이라,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타르헨 씨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크흠! 하고 작게 헛기침하더니, 간단하게 딱 한 마디만을 내게 말했다.
“소통하게나.”
“소통, 인가요?”
“뭔가 거창한 조언을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그런 것은 딱히 없다네. 있을 리가 없지. 말 몇 마디로 사람을 간단하게 구슬리는 능력이 있다면,
고작 여자 문제로 끙끙 앓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어쨌든, 소통이란 참 중요하다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는 원인은 대부분 서로
간의 소통 부족이 원인이지. 남녀 관계는 더욱 복잡한 감정이 섞여 들어가긴 하지만, 그래도 서로 간에 소통이 필요함은 당연한 이야기야. 한 명과
한 명이 대화할 때와 여러 명이 다 같이 모여 이야기 나눌 때 또는 그들끼리만 만나서 이야기할 때, 모두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그
결과가 무조건 좋다고만은 볼 수 없겠지만, 충분히 소통한 뒤에 맺어지는 인연은 그 결실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걸세. 자네가 정말로 그녀들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보단 솔직히 표현하고 뺨을 맞을 각오로 그녀들을 함께 불러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게나. 그렇게만 한다면,
상황이 영 좋지 않게 흘러가서 뺨 맞고 끝나더라도 후에 칼침 맞을 일은 줄어들 테니까.”
“……왠지 마지막 말이 무척이나 섬뜩한데요?”
“실제로 그렇게 간 놈을 두어 명 정도 봤거든.”
“…….”
‘참, 여자 여럿 후린 놈들이었는데, 결국 이리 붙고 저리 붙더니 자기 몸도 분리되고 말았지.’라며 타르헨 씨는 쯧쯧 혀를 찼다.
어쨌든 레아 누나와의 경험을 통해 소통의 중요성은 알았기에, 나는 타르헨 씨의 말에 고개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참고하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오묘해. 사람은 머리로는 알아도 때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아무리 냉혈한이라도 머리가 살짝 돈 놈이 아닌 이상
마음을 완벽히 컨트롤하기란 어려운 일일세. 그러니 그녀들의 감정을 존중해 주며 일단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어 본 뒤, 그 뒤에 끙끙 앓으면서
고민해 보는 게 훨씬 나을 걸세.”
“그러면 타르헨 씨의 경우엔 어땠나요?”
결과야 보면 안다.
세 아이를 낳고, 지금도 깨소금을 들들 볶으며 행복하게 사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궁금해서 한 질문이었지만, 의외로 타르헨 씨는 와하핫! 하고 얼굴을 슬쩍 붉히더니, 뒷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말을 이었다.
“내 경우엔 운이 좋았지. 두 사람 모두 나와 함께 살기로 동의했거든. 힘든 일도 서로 나누고, 기쁜 일도 서로 공평하게 나눌 것. 누군가에게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이야기를 통해 불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함께 가정을 꾸려 가자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지. 뭐, 때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서로 싸우기도 했네. 그럴 땐 남자가 여성을 따로따로 찾아가 기분을 풀어 줄 필요가 있지. 누구 하나만 편애하지 않고 다 같이
충분히 아끼고 사랑한다는 표현만 한다면, 그녀들도 불만을 약간 감수할 걸세.”
이전에 레아 누나는 내게, 가능하면 다른 여성과 나를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확실히 밝혔다.
그런 레아 누나에게 셀린과 엘리시아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불안함으로 다가왔으나 확실히 타르헨 씨의 말이 정답이었다.
소통하지 않으면 결국 오해만 생길 뿐이고, 오해가 깊어져 소통이 안 될 때까지 치달으면, 결과야 보지 않아도 뻔하다.
이미 그 답이야 알았지만, 그것을 자신의 경험에 섞어서 다시금 일깨워 준 타르헨 씨에겐 감사 인사를 하고, 나는 일행들이 기다리는 장소로
돌아가, 마지막으로 그렌 씨 남매들과 그들의 두 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