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것은 검 30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2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30화
030. 대면
“껄껄껄! 그런 규칙이 있었단 말이지?”
온-누르는 아직도 웃음기가 남았다는 듯 연신 배를 잡아 댔다. 그 모습을 보던 안톤은 솔직히 부아가 치밀기보다는 그저 허탈하고 억울할 뿐이었다.
“아무도 제게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나도 몰랐다, 이놈아. 그리고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느냐? 서로의 무를 겨루는데 무기에서 화염구가 튀어나오다니.”
“제 무기에서 화염구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이놈아, 말이 그렇다는 게지.”
안톤은 헤일스가 사용했던 팔찌에 대해서 떠올려 보았다.
평범한 마나 유저가 일시적이나마 오러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다니.
생각지도 못했던 아티팩트였고, 일반적인 무인들의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물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 검도 반칙이라 할 수 있겠지만…….’
안톤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나 아티팩트의 사용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냥 평범한 검을 지참하고 나왔을 것이다.
‘뭐, 그랬으면 아무래도 우승은 힘들었겠지만.’
안톤은 소천교에 대해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우승을 한다고 그렇게 설레발을 치더니, 예선에서 떨어졌구나.”
다만, 그렇다고 온-누르의 놀림이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
“아무튼 무명을 떨치기엔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을 텐데 아쉽게 됐구나.”
“자꾸 이상하게 몰아가시려 그러는데, 그런 거 아닙니다. 그리고 소천교에 참가한 것은 그저 가주의 전언 때문이었습니다.”
“언제는 돈 때문이라더니?”
“겸사겸사입니다.”
“예끼, 이놈아! 아무튼 또 손님이 찾아온 모양인데, 아무래도 또 네 손님인 것 같다.”
온-누르는 저 멀리서부터 기척을 느낀 모양이었다.
안톤 또한 원래는 기감이 예민한 편이었으나, 단전을 부수고 나서는 그저 지척에서 나는 소리에나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도대체 누구지?’
이 와중에 찾아올 손님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사람이 없었다.
은연중에 손님이란 린디아스 공녀가 아닌가 싶었으나, 이어진 온-누르의 말에 의해 그런 기대는 사라졌다.
“두 사람인데 한 놈은 그냥 그렇고, 한 놈은 꽤나 하는 놈인 것 같다. 혹시 공녀님인가 했지만 보폭을 보아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짐작 가는 사람이 있더냐?”
“없습니다만……. 아, 혹시 그놈이 보복을 하겠다고 찾아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놈이라면, 그 공녀님께 무례한 짓을 했다는 얼간이 말이냐?”
“예.”
안톤이 보았던 헤일스란 인물은 순순히 모든 결과를 납득할 자가 아니었다.
그라면 이렇게 별채까지 찾아와 귀찮게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지않아 안톤의 청각으로도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늘이 거두어지고 둘의 인영이 나타나자, 안톤은 의외의 표정을 지어냈다.
“클린턴 제오르?”
헤일스 제오르의 큰형이자, 이전 생에서 안톤을 죽인 오러 마스터.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십 대 후반의 청년은 처음 보는 자였다.
“내가 이름을 그대에게 말해 주었던가?”
안톤의 혼잣말을 들은 클린턴이 고개를 까닥였다.
암만 생각해 보아도 통성명을 나눈 기억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은 뭐, 주변 사람을 통해 이름을 들었겠지 하며 그러려니 했다.
“아무튼 여긴 어떻게 찾아오신 겁니까?”
“내 힘으론 자네를 찾을 수가 없어, 헤스갈 공자에게 직접 거처를 물었네. 혹여 이 점이 기분이 나빴다면 미리 사과를 하겠네. 미안하네.”
“됐습니다. 동생 때문에 찾아온 것입니까?”
물론 클린턴이 그렇게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안톤은 클린턴과 전생에 검을 나누었던 것이 인연의 끝이고 그마저도 앞으로 20년이나 지난 후의 미래였다.
20년의 간극이란, 사람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허나 괜한 기우였는지, 질문을 받은 클린턴은 사색을 하며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이상한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그건 절대 아니네.”
“그럼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직접 찾아온 겁니까?”
“자넬 찾은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네.”
동생을 위한 보복도 아니었는데, 이유가 두 가지나 되다니.
물론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와중이니 안톤으로서도 한 가지는 무엇일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고스란히 들어맞았다.
“내 모자란 동생 놈에 대한 사과를 하고 싶었네. 대전이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날 내가 그대에게 정식으로 사과한 것은 아니었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그럼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마냥 사람 좋던 호인에서 한 사람의 무인으로 변한 것 같달까.
털털하고 넉넉해 보이던 클린턴의 얼굴이 진중하게 변하였다.
클린턴은 곧은 눈으로 안톤을 직시했다.
“이런 부탁을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그대와 검을 나누고 싶네.”
“……?”
영문 모를 말을 들었다는 듯, 안톤의 얼굴에 의문이 피어났다.
그때 가만있던 온-누르가 끼어들었다.
“껄껄! 결국 말만 그렇지, 지 동생 놈 복수를 하겠다는 뜻 아니냐?”
“아닙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 계신데 제가 그런 짓을 하는 게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클린턴은 안톤의 의혹을 받았을 때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나를 아느냐?”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만, 어르신께서 굉장한 무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클린턴의 말은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동태 눈깔은 아니었구나. 그래, 복수가 아니라면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굳이 내 제자와 검을 나누겠다는 것이냐?”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누르를 겪어 본 안톤은 지금 그의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제자라니……. 하긴 그 정도쯤 되니……. 아무튼 이게 아니지.”
잠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클린턴은 다시금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갔다.
“오늘 제 동생 놈과 제자분의 대련을 보면서 난생처음 보는 검리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저 또한 검을 든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굉장히 무례한 요청이란 거,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그럼 왜 우리가 그걸 해 줘야 하지? 은혜는커녕 악연이라 할 수 있는 사인데 말이다.”
단호하기 그지없는 온-누르의 말에 클린턴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클린턴은 안 그래도 같잖던 동생이 보다 원망스러웠다.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부탁드릴 뿐입니다. 오러 유저가 되고 벌써 10년이 넘었고, 벽에 가로막힌 지도 3년이 되었습니다. 무슨 짓이라도 해서 그 벽을 부수고 싶습니다.”
클린턴이 부쩍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온-누르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나는 반대다. 허나 그걸 결정할 권리는 내게 없겠지. 그러니 내가 아니라 저놈에게 물어보거라.”
클린턴은 안톤과 시선을 한 번 마주한 후, 진지하게 허리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꼭 한 번 직접 그 검을 마주해 보고 싶습니다.”
전생에서의 클린턴을 기억하는 안톤은 조금 머쓱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아직 오러 유저의 경지였으나 언젠가 벽을 부수고 오러 마스터가 되어 펭 제국의 세 번째 명인이 된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은 그 시점까지 얼마 남지 않은 때일 것이다.
안톤은 그가 전생에 자신의 부탁을 진지하게 들어주었음을 상기해 냈다.
그냥 모른 척 거절할 수도 있었는데, 그는 정말 최선을 다한 일검을 보여 주었다.
“알겠습니다.”
클린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누가 알았을까.
그 클린턴 제오르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고개를 숙일 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