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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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31화
제1장 상계장악(商界掌握) (6)
5일이 지난 후.
석경환은 석가장의 매출현황을 보고 기겁을 하고 말았다. 매출현황이 급속히 떨어진 것은 물론, 판매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재고는 쌓이고, 물품을 나가지 않았다. 자금줄이 막혀 있는 상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그게 저희가 판매가를 정상가로 돌리기가 무섭게 천무상회에서 저가상품정책을 펼쳤습니다.”
“뭐야?”
석경환은 뒷골이 저려왔다. 천무상회에 크게 한 방 제대로 맞았다.
운룡상단에서 파는 상품을 정상가로 돌렸다고 해도 천무상회에 비해서는 가격 경쟁력이 있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천무상회에서 가격을 내려 버렸다.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운룡상단이 무너지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불과 5일 만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황금상회에 지원을 받아야 한다. 석경환은 황금상회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다급하게 움직였다.
황금상회의 총단에 머물고 있는 금만성은 노기가 가득 찬 눈으로 서신을 읽고 있었다.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황금상회의 전장과 지점이 정체 모를 존재들에 의해서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많은 피해는 아닐지라도 당장의 영업에 지장을 줄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놈들의 정체를 파악했나?”
“일류급에 달하는 낭인집단 같습니다.”
“누가 감히!”
금만성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짚이는 곳이 한 군데밖에 없었다.
황금상회는 풍운상회와 합작하여 태평상회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태평상회는 점차적으로 밀리는 형세였다. 설상가상으로 상계전쟁에서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천금상회가 돌아서려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었다.
2대2의 대결에서도 밀리는 상황에서 천금상회까지 돌아선다면 태평상회의 승산은 점점 희박해진다.
“치사한 수를 계속 사용한다 이거지. 받은 대로 돌려주마!”
차도살인지계에 이어 낭인까지 동원한 태평상회를 향해 분노를 터뜨린 금만성이었다. 그는 똑같이 보복할 것을 천명했다.
“석가장에서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며칠 기다리라고 했잖아!”
“다급하답니다!”
“멍청하긴.”
금만성은 짜증이 치밀었다. 무조건 자금지원을 해준다고 해서 상단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스스로 궁리를 해서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석경환은 상인의 자질이 떨어지는 자였다. 그렇지만 그를 장주가 되도록 한 사람이 금만성이었다. 모자란 놈을 석가장주로 내세워서 앞으로의 일을 쉽게 진행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금만성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제 와서 발을 빼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어음을 받고 자금을 지원해 줘.”
“알겠습니다.”
무조건적인 도움은 주지 않을 계획이다. 애초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소모되었다. 대계(大計)를 위한 전략이라고 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은 사양이었다.
황금상회로부터 자금을 조달받은 지 5일이 지났다.
운룡상단의 본점이 넘어갔다. 각 지점도 더 이상 장사를 하지 못하고 문을 닫을 지경에 처해 버렸다. 마구잡이식으로 빌렸던 어음들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석가장이 빌렸던 어음들이 전부 돌아왔다.
석경환은 석가장 내에 들어선 인물을 보고 분노했다. 그는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총관! 네가 감히 석가장을 배신한 것이냐!”
“배신이라는 것은 버려진 자에게 하는 말이 아닌 것으로 아는데, 아닌가!”
“닥쳐랏! 네놈이 지금까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석가장이 아니라면 출신도 분명치 않은 네놈이 총관의 자리에 올라섰을 것이라 여기는 것이냐!”
“누가 보면 네가 나를 신뢰한 줄 알겠군.”
흥분한 석경환과 다르게 나 총관은 냉정을 유지했다. 어차피 석가장은 천무상회에 먹혀 버렸다.
황금상회의 지원을 받고서도 전략적으로 사용하지 못한 것은 석경환이었다. 물론 나 총관이 석가장의 사정을 훤히 꿰뚫고 미리 선수를 친 것 때문에 계획이 어긋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계는 정해진 계획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언제 어느 때라도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감안하고, 그에 맞추어 즉각적인 대처를 해야 한다.
능동적이고 주도면밀한 대처를 하지 못한 것은 석경환이 장주로서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나 총관은 무진의 뜻대로 석가장을 무너뜨렸다. 총관의 자리에서 내쫓고 목숨을 위협했던 자에게 복수를 했다. 통쾌할 거라 생각했지만 나 총관은 씁쓸했다.
석가장의 부흥을 위해 노력했던 자신이 이제는 배신자가 되어 칼을 겨누고, 심장을 베어버렸다. 그동안 노력했던 것들이 전부 공허하게 느껴졌다.
“네놈을 절대 그냥 두지 않겠다!”
“이미 끝났소.”
“끝나지 않았다! 아직 내가 남았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타났다. 내리쬐는 빛으로 인해 그림자가 형성되었다.
빛이 점차 사라지고 나자 약관의 청년이 석가장의 가주실에 들어와서 당연하다는 듯이 상석에 앉았다.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석경환과 식솔들 모두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네…놈은 또 누구냐?”
“그분은 천무상회의 회주시오.”
나 총관이 미리 신분을 밝혔다. 신분을 밝혀 석경환이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
나 총관이 무진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배포는 나 총관조차 측량하기 어려웠다. 적의 수하를 끌어들였으면서도 감시는커녕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다시 한 번 그가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깨달았다. 차려준 밥상도 건사하지 못하는 석경환 따위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석경환은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위인이다. 그는 나 총관이 아닌 무진에게 분노를 토해내었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온 것이냐! 죽고 싶은 것이냐!”
나 총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석경환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부려야 한다. 만용은 패망의 지름길이었다. 목숨이라도 건사하고 싶으면 입을 닫아야 했다.
무진은 석경환의 존재를 무시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건, 개가 짖는 것뿐이다.
“꺼져라.”
“이놈이!”
한순간에 쥐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다. 앞뒤 경황을 재기에는 분노가 이성을 뒤덮어 버린 지 오래였다. 석경환은 망설이지 않고 품안에 숨겨 놓은 비수를 꺼내 무진의 가슴을 향해 찔러 넣었다. 무진의 자세는 무방비에 가까웠다.
“위험합니다!”
나 총관이 소리를 질렀다. 주변에 호위무사조차 없는데 석경환의 무위가 범상치 않았다. 상재(商材)와는 달리 무재(武才)는 있는 편이었다. 나 총관은 무진이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파팟!
슈우웅! 쿠다다당!
무형의 기운이 꿈틀거렸다 사라졌다.
찰나의 간격에 뛰어 들어왔던 석경환의 몸이 대포처럼 튕겨 나가 천장에 부딪친 후 바닥으로 떨어져 형편없이 나뒹굴었다.
어안이 벙벙해지는 상황이었다. 석경환이 어찌하여 튕겨 나가 버렸는지 보고서도 알지 못했다. 눈뜬장님이 되는 순간이었다.
“크으윽!”
석경환은 입에 게거품을 문 채 바동거렸다. 전신의 혈맥이 가닥가닥 끊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폐인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무진은 폐인이 되어 가는 석경환을 한번 쳐다보는 것을 끝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석가장의 식솔들은 기겁을 했다. 무엇이 어찌 된 일인지 알 수는 없으나 무진이 석경환을 폐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들도 석경환처럼 될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용서는 한 번뿐이다.”
부들! 부들!
나 총관이 보기에도 석경환은 다시 깨어날 수 없는 완벽한 폐인이 되었다.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들고 관용을 베풀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진은 아량이라 여기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석가장의 수뇌부들은 두려움에 반박하지 못했다. 다시 덤벼들면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석경환이 공격을 하려다 충격을 받고 튕겨 나간 것은 수라탄강기(修羅彈剛氣)에 의해서다. 내가기공이 절대지경에 달한 고수라고 해도 수라탄강기에 적중되면 내부의 장기가 녹아버린다.
삼류 찌꺼기에 불과한 석경환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무진이 손속에 사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무진에게는 대단한 관용이었다.
섬뜩한 한기가 실내를 장악했다. 무진의 단 몇 마디에 모두 주눅이 들었다.
무진은 그들을 한심하다 여겼다. 어차피 쓰레기는 쓰레기다. 다시 재활용한다 하여 본성이 달라지지 않는다. 버러지들을 이끌어 나갈 이유가 없다.
“죽고 싶은 놈은 남아도 좋다.”
후다다닥!
말이 떨어지기 전에 석가장의 수뇌부들은 허겁지겁 줄행랑을 쳤다. 나 총관도 무진의 손속에 심한 충격을 받았지만 심기를 차분히 다스리고, 무진의 명을 대기했다.
무진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석가장에서 유일하게 건진 것은 나 총관이다. 그가 희대의 천재이거나, 세상을 농락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총관은 시기를 타고, 주변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무진에게 필요한 존재는 천재가 아니다. 천재는 간혹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서 주제파악 못하는 짓을 할 수 있다. 주인을 무는 개는 필요 없다.
“네게 이곳을 맡기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무진은 나 총관에게 석가장을 맡겼다. 오늘부터 석가장은 천무상회의 지점이 되었다.
“지금쯤 황금충이 노발대발하겠군.”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석가장이 천무상회에 넘어가 버렸다.
석경환은 황금상회를 통해 돈을 융통하면서도 많은 자금을 뒤로 빼돌리려고 했다. 결국에는 빼돌린 자금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혼자서만 살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석가장이 무너져 버리고 만 것이다.
“사천성으로 간다.”
밀영대 10명이 무진의 뒤를 따랐다.
석가장을 순식간에 정리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부르르르!
나대환은 자신의 손목을 보았다. 닭살이 돋아나 있었다. 손목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천하의 황금노가 주군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었다니!”
상계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존재였던 황금노가 궁지에 몰리는 상황은 나대환조차 예측할 수 없었다. 누가 감히 그런 비현실적인 일을 해낼 수 있단 말인가!
나대환은 무진에게 거대한 벽을 체감했다. 감히 그로서는 깊이를 잴 수 없는 심기를 지녔다. 반항도 틈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나대환에게 무진은 완전무결한 존재처럼 보였다.
* * *
태평상회의 저항이 예상보다 거셌다.
황금상회의 보복이 이루어진 직후 태평상회도 작심하고 덤벼들었다. 상계 역시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약육강식의 전장이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태평상회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풍운상회와 천금상회 역시 덩달아 엮이는 바람에 상계전쟁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도중에 멈출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갔다. 마치 상극의 지남철(指南鐵)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황금상회의 본점에서 전체적인 지휘를 하던 금만성은 석가장의 소식을 듣고 무진의 예상대로 분노를 터뜨렸다. 태평상회를 상대하는 동안 천무상회가 어부지리를 취한 것이다.
석가장에 쏟아 부은 자금과 어음이 공중으로 붕 떠버렸다. 다시 찾으려고 해봤자 지금 당장은 손을 쓰기가 힘들었다. 그동안 석가장에 어음을 대주고, 자금을 빌려준 곳이 천무상회였던 것이다.
천무상회가 미리 손을 써서 석가장을 지부로 만들어 버렸다.
실룩! 실룩!
수십 가닥으로 이루어진 금만성의 주름이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일을 시작하고 지금처럼 낭패를 당한 경우도 드물었다.
하지만 재앙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태평상회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관에서 연락이 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소금의 전매권을 재조정한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왜?”
“아무래도 태평상회 쪽에서 손을 쓴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제국의 율법상 소금의 전매권은 국가에서 관리를 한다. 국가에서 소금을 관리하고 그에 대한 판매권의 일부를 상단에서 사도록 유도를 하는 것이다.
소금 전매권의 경우 6할가량은 대명상회에서 차지한다. 황궁과 연계를 한 상단이라 다른 상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선권을 준 것이다.
나머지 4할을 대륙 상단에서 관리를 한다. 황금상회의 경우 4할 중 3할의 전매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총 소금 전매권의 3할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막대한 자금을 형성할 수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이 소금 가격이 치솟는 시기에는 금보다 더 비싼 것이 소금이었다.
“도지휘사에게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이냐!”
“죄송합니다!”
황금상회의 회주는 금선기였다. 하지만 금선기가 누구보다 어려워하는 존재가 금만성이다. 금만성의 분노에 금선기는 안절부절못했다.
금만성은 간신히 노기를 다스리고 다시 물었다. 화를 낸다고 해서 결정된 사안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재조정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
“관에서는 되도록 공평하게 나누려는 것 같습니다.”
“뭐야?”
4할을 공평하게 나누면 1할이 떨어지기 힘들다.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자금을 걷어 들였던 2할의 소금 전매권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릴 위기였다.
황금상회의 자금력이 대륙에서 손에 꼽힌다고 하지만 소금 전매권이 사라져 버리면, 막대한 손실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었다.
“자금을 다 쏟아 붓는 한이 있더라도 전매권을 따야 한다!”
“알겠습니다!”
태평상회는 원래부터 소금 전매권이 없었다. 만약 이번에 소금 전매권을 쟁탈하게 되면 숨통을 터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반항이 거세기는 하지만 조금만 더 조이면 끝을 낼 수 있었다.
석가장을 잃은 것은 다시 찾으면 되었다. 어차피 약속했던 강소성 상계의 진입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도 금만성은 천무상회를 만만히 보고 있었다. 공교롭게 터진 소금 전매권 쟁탈전이 천무상회의 문제를 뒤로 미루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