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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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23화
제7장 밀영100호 (1)
정강산(井崗山).
강서성과 호남성의 접경지역. 험준한 지형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계곡물. 보는 이로 하여금 절경이라고 말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반면에 사람이 접근하기는 어려운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거진 수목 사이로 3명이 정강산의 서북쪽 초입에 들어섰다. 얼굴이 반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두의(頭服)쓰고, 검은 피풍의(避風衣)를 입은 사내들이다. 각자 대도와 곤, 검을 착용하고 있어 무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어둠을 틈타 산속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도 지형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특히 그들 중에 거대한 대도를 등 뒤에 매고 있는 자는 덩치가 7척에 달하는 거구였다.
“여기서 잠시 쉬자.”
“예.”
대도를 멘 무인이 말을 하자 나머지 2명이 따랐다. 거구의 무인이 이들을 이끄는 수장인 것 같았다. 거구의 무인은 불을 피운 주변에서 가장 안락한 곳에 앉아 등을 나무에 기댔다.
지형이 험한 산이고, 인적이 드물 곳이라 사람이 접근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변의 소리와 기척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이었다.
“술 가져와.”
거구의 무인이 말하자 얕은 염소수염을 지닌 자가 재빠르게 짐 보따리에서 백주 1병을 꺼내 바쳤다.
벌컥! 벌컥!
거구의 무인은 무엇이 못마땅한지 안주도 없이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빌어먹을 세상! 정파 나부랭이들이 하는 짓거리가 짜증나서 못 보겠다!”
“회가 결집되면 반드시 세상을 다시 전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때는 나의 대도가 세상을 울릴 것이다!”
대도를 지닌 무인은 사파계열의 무인으로, 혈풍대도(血風大刀) 우발산이라는 인물이다. 일찍이 신력(神力)을 타고난 장사로, 힘에서는 진 적이 없고 성격 또한 무척이나 거칠다.
우연히 흑룡성 8대 장로 혈풍도(血風刀) 나진탁의 성명절기인 혈풍칠식(血風七式)을 얻어 절정의 고수가 되었다. 애초부터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그에게 정파무림의 형식적인 예의나 구구절절한 가치관은 맞지가 않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거칠 것이 없이 행동을 하는데 현 세상은 그에게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정파놈들은 뒤로 호박씨를 있는 대로 다 까면서 남은 하지 못하게 하니 짜증나는 것은 당연했다. 어떻게 해서든 박살내고는 싶지만 그게 맘처럼 되지는 않았다. 죽지 않으려면 참아야 했다.
하지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참고 참다 결국 정파무림의 애송이들 몇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나서부터 일이 꼬였다. 계속적인 도주와 추격이 그의 심기를 무척이나 짜증나게 만들었다.
나머지 두 명은 염사곤(炎死棍) 고주환과 타락검(墮落劍) 전사기였다. 일류고수는 되지 못해도 그에 근접한 무위를 가지고 있으며, 비열한 수법을 잘 사용해서 일류무인이라고 해도 쉽사리 승부를 내기 어려운 독종들이다.
“며칠 전에 맛본 계집은 정말 극상이었는데!”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곧 월궁항아가 우 대협의 품에 안기게 될 겁니다!”
우발산은 좀이 쑤셨다.
도주 중에 마을을 한 곳 들른 적이 있다. 그곳에서 시골의 아낙답지 않게 미모가 제법 받쳐주는 계집을 보았다. 당연히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막아서는 서방의 목을 비틀고, 계집의 몸을 탐했다. 이미 사내 맛을 본 계집이라 하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추격전으로 인해 짜증이 난 우발산이라 거칠 것이 없었다. 그동안 해보지 못한 운우지정을 모두 쏟아 부었다.
부스럭!
“누구냐?”
인기척에 우발산이 대도를 집어 들었다. 한밤중에 수풀 속에서 사람의 발소리가 들린 것이다. 우발산과 고주환, 전사기는 감각을 곤두세우며 살기를 뿜어내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다.
어둠 속의 수목과 수풀을 헤치며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달빛에 얼굴이 반사되어 모습이 비춰졌다. 나타난 인물은 허여멀건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공자였다. 영웅건과, 백의 무복, 화려한 장식이 달린 검을 지니고 있었다. 강호에 첫발을 내디딘 명문가 출신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우발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가뜩이나 저딴 놈들이 설치는 바람에 그의 대도에 피를 묻히지 않았는가! 참고 지내는 우발산을 참지 못하게 한 것이 바로 명문가에서 처음으로 무사수행을 한다고 깝치던 놈들이었다.
당시의 상황은 이랬다.
객잔에서 숙식을 해소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에 영웅건을 쓴 나부랭이들이 앞을 가로막고 지나가고 있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것들이 어른 지나가는데 피하지는 못할망정 부딪치는 것이 아닌가!
우발산은 참은 인(忍)자를 되새기며 한 번은 참아 주었다. 우발산은 되도록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놈들이 하는 말이 가관이 아닌가!
-멈춰라! 이놈! 감히 본 공자를 치고 그냥 가는 것이냐!
순간 귀를 뚫고 다시 들어봐야 했던 우발산이었다. 너무 조용히 지내다 보니 날파리 같은 것들이 다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한 번 더 참고 타일렀다.
-아가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다가 피똥 싼다!
친절한 우발산이었다. 얼마나 친절한가! 그가 살아오면서 이토록 친절하게 남을 대한 것도 처음이었다. 스스로의 대범함과 아량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놈들은 이런 우발산의 친절을 개같이 무시해 버렸다.
-감히 본 공자를 농락하고 그냥 가려고 하다니! 네가 사내라면 검을 뽑아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우발산은 손발이 다 오그라드는 심정이었다. 계속 듣다가는 마른 오징어처럼 비틀어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낯간지러운 말을 서슴없이 잘도 하는 놈이었다. 그것도 한 놈이 아니라 4명이 동시에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이 아닌가! 더 이상 듣고 있을 우발산이 아니었다.
-좋다! 이놈들아! 어디 덤벼보거라!
-본 공자가 무사수행을 위해 사파의 개를 처단하려고 한다! 어느 누구도 끼어들지 마라!
‘어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발산이 놈의 면상을 한 대 쳤다. 딱 한 대만 있는 힘껏 쳤을 뿐이다. 보기 좋게 바닥을 나뒹군 놈이 그 자리에서 개구리처럼 뻗어 버렸다.
그런데 이놈들이 치사하게 단체로 덤비는 것이 아닌가! 신경질이 난 우발산이 결국 대도(大刀)를 꺼내 휘둘렀다. 2명이 죽고, 2명은 병신이 되었다. 2명을 살려준 것도 감지덕지하다고 우발산은 여겼다.
그 뒤로 우발산은 도주를 해야 했다. 우발산이 건드린 곳이 정파무림의 명문이라고 하는 이가장(李家莊)과 정검문(正劍門), 풍운산장(風雲山莊), 대천도문(大天刀門)의 후계자들이었던 것이다.
예전의 기억을 상기한 우발산의 표정이 구겨질 만도 했다.
‘빌어먹을 당시에 겪은 억울한 일을 다시 생각나게 하다니!’
만면에 화사한 미소를 지은 미공자풍의 청년이 우발산과 일행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흉악한 기운을 풍기는 우발산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의 모습이었다.
고주환이 청년에게 정체를 물었다.
“넌 뭐 하는 놈이냐?”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소생은 천득구라고 합니다.”
이상한 말을 하는 청년이다. 험악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친근하게 말을 트고 있었다.
우발산과 일행이 미친놈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상황파악 못하는 애송이가 백호 앞에서 야채볶음이 맛있으니 같이 먹자고 할 놈이었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어서 꺼지지 못해!”
“저도 그러고 싶지만 용무가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잡소리 그만 하고 꺼져!”
“용무를 마치기 전까지는 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만약 제가 그냥 가면 제 주군께서 절 죽이실 겁니다!”
천득구의 표정이 잠깐 심각해졌다가 다시 웃는 얼굴로 변했다. 그가 말하는 주군이 어떤 인물인지 한번 겪어보면 다시는 실패라는 단어를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자 진리였다.
다급한 표정과 안타까움이 물씬 풍기는 말투였다. 순간적으로 우발산과 일행은 천득구의 화술에 끌려가고 말았다. 자신들이 왜 가만히 듣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너무 황당하다 보니 말문이 막힌 것이다.
“용무가 뭐냐?”
“간단한 겁니다. 그저 여러분들의 얼굴을 뜯어서 면피를 만들 생각입니다. 그러니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뭐?”
“나이가 들어서 잘 못 들으셨나 보군요. 얼굴 좀 뜯겠으니 잠시 수고스러움을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미친놈의 피를 묻히면 재수가 없을 것 같아서 참고 있으려고 했건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얼굴을 뜯는다는 말은 죽인다는 말과 진배없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용무를 태연하게 말하는 놈은 정말 미친놈이었다.
분위기가 아주 살벌하게 변했다.
“죽고 싶으냐! 애송이라 봐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구나!”
싱글! 싱글!
공포분위기 속에서도 천득구는 미소를 잃지 않는 꿋꿋함을 보여주었다. 천득구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우발산, 전사기, 고주환의 심기가 폭발하고 말았다.
화를 내는데 상대가 웃으면 어떤 심정일까! 일반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나,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생각하는 놈들이 과연 그런 반응을 보일까!
정답은 아니다. 살기가 폭주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만큼 얘기한 것도 많이 참은 것이다.
“봐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죽여주마!”
전사기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검을 날렸다. 1장의 거리이기에 일검이면 충분하다 여겼다. 운룡섬보(雲龍閃步)를 밟으며 신속하게 움직여 깔끔하게 검을 휘둘렀다. 검이 천득구의 지척에까지 다가오는 위급한 상황이다.
‘아직도 웃어!’
전사기는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웃고 있는 천득구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무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불안감으로 인해 검끝이 조금 흔들렸다.
어느새 검은 허공을 베었다. 놈의 신형을 찾기가 무섭게 바로 옆 사각지역에 천득구의 모습이 나타났다. 반보의 움직임이지만 너무 빨랐다. 전사기의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보법이었다.
“아니?”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날카로운 기운이 전사기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파아앗!
목이 잘려 나갔다.
머리를 잃은 전사기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천득구가 전사기의 머리를 보며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면피를 만드는 데 몸은 필요 없습니다.”
좀 전까지 사람 좋은 미소로만 보이던 천득구의 모습이 이제는 소름이 끼쳤다. 우발산은 느낄 수 있었다.
‘보통 놈이 아니다!’
좀 전에 보인 일수는 대단했다. 검도 아닌 손날로 사람의 목을 저토록 깔끔하게 잘라낼 수 있는 존재는 극히 드물다. 상대는 다른 이도 아닌 타락검 전사기였다. 그가 비록 일류가 되지 못했다고는 하나 허무하게 죽을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다.
우발산은 신형을 곧추세우고 대도를 꺼내 방비를 했다. 고주환도 그의 애병인 적마곤(赤魔棍)을 꺼내들며 천득구를 노려보았다. 동료를 잃었기에 슬퍼하는 표정들은 아니다. 어차피 그들의 의리는 목숨만큼 소중하지 않다.
“네놈은 누구냐?”
“소생은 좀 전에도 말했듯이 천득구라고 합니다.”
“닥쳐랏!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음, 말해봤자 모를 겁니다.”
“이놈!”
파팟!
고주환이 적마곤으로 바닥을 치자 천득구의 정면으로 흙덩어리가 날아왔다. 흙을 뿌려 시야를 어지럽히고 공격하려는 수작이었다. 영웅의 표상처럼 생긴 놈이라면 저급한 수법에 당황할 것이 분명했다.
고주환은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흙덩어리를 날림과 동시에 비수를 날렸다.
슈슝!
얼굴, 가슴, 단전을 노리는 세 개의 비수가 흙을 뚫고 천득구를 향해 날아왔다. 천득구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뒤로 물러섰다.
비틀!
흔들거리는 신형을 본 고주환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비수에는 독이 묻어 있었다. 극독은 아닐지라도 맞는 즉시 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끝났다! 이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