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21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9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21화
제6장 깝죽거리지 마라 (5)
음침한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다. 내부에 불빛이 없다면 바로 앞도 구분하기 어려운 장소다. 불빛에 일렁이는 그림자들 사이에 누군가가 귀신처럼 접근하여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닫힌 문이 열리며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드러났다.
검은 그림자는 안으로 들어와 누군가를 향해 무릎을 꿇고 소식을 전했다.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내용은?”
“천무상회주의 암살입니다.”
“대금은?”
“황금으로 1천 냥입니다.”
암살의뢰치고는 엄청난 액수였다. 황금 1천 냥이면 흑살단(黑殺團)을 3년 동안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었다. 근래에 들어 이 정도로 큰 액수의 암살의뢰가 들어온 경우는 드물었다.
흑살단은 강호의 5대 자객단에 속하는 암살집단이다. 강소성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며, 개인 살인에서 집단 살인까지 수법 또한 잔인하고,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흑살단의 단주인 귀음살(鬼陰殺) 엽만청은 특급살수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살행(殺行)을 시작한 후 이제껏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뭔가 있군.”
엽만청은 쉽사리 청탁을 받아들이는 인물이 아니다. 그가 이제껏 실패하지 않은 것도 목표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살행을 해왔기 때문이다.
살수는 작은 실수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것이 부지기수다. 무턱대고 돈에 움직이게 될 경우 그날로 생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신중하게 상대를 파악하고 난 후 실행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탈이 없다.
“상단의 회주를 암살하는데 1천 냥이라! 조사는 해 왔겠지.”
“그렇습니다.”
흑살단의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흑살10호 배중환이 천무상회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왔다. 흑살10호는 의뢰를 받고 표적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이 주요임무였다. 그는 다른 흑살단원에 비해 암살능력이 떨어질지는 몰라도 목표물에 대한 조사능력과 판단능력은 뛰어난 편이었다.
-이름:강무진.
-나이:28세.
-무공:없음.
-모용세가, 철혈세가와 협조하여 요동상계를 장악.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강소성 상계에 진입. 강소성 상계를 뒤흔들고 있음.
-상회를 지키는 무인들의 수준이 일류에 근접한 것으로 파악됨.
-분류:일급.
엽만청은 생각한 만큼 일이 어렵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흑살단은 목표물의 능력과 배경에 따라 삼급, 이급, 일급, 특급으로 분류를 한다.
일급 이상이면 상당히 힘든 편에 속하지만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현재 흑살단의 역량은 역대 최강이었다. 더군다나 근래에 들어 암살의뢰가 적은 편이라 흑살단을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자객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뢰를 받아야 한다. 해볼만한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엽만청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적정한 의뢰를 불길하다는 이유만으로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 이번 의뢰가 다른 암살단에 들어가서 성공하게 되면 암살단의 존재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내가 직접 간다. 1호에서 9호까지 모두 대기하라고 해.”
“예.”
흑살단의 최정예가 엽만청을 비롯한 9명이었다. 이들이 한꺼번에 움직인 경우는 비천도객(飛天刀客) 남우환을 죽일 때뿐이었다. 그는 낭인이지만 낭왕(狼王)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절정도객이다. 낭인이기에 명성에서 뒤쳐졌을 뿐이지 강호백대고수에 근접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보유했다.
그에 비하면 이번 임무는 쉬운 편에 속했다.
* * *
강소성의 단평상단과 청린상단이 무너지고, 그 자리를 별 무리 없이 천무상회가 자리 잡게 되었다. 천무상회는 단평상단과 청린상단이 자초한 상계의 혼란을 바로 잡고 민심을 다독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강소성의 민심이 천무상회로 완벽하게 기울었다. 그로 인해 대치 중에 있던 석가장은 지속적인 압박을 받게 되었다.
천무상회와는 자금력과 물량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다. 대륙전장까지 발을 돌리기 일보직전이라 석가장이 운용하는 운룡상단도 천무상회에 흡수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어찌 일이 이 지경이 되었지. 나 총관! 정말 대륙전장마저 등을 돌렸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수십 년간 거래를 해온 대륙전장이 이처럼 손바닥 뒤집듯이 배반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전통을 자랑하는 석가장이 내 대에 이런 횡액을 맞이하다니 조상님을 뵐 낯이 없구나!”
석관혁은 탄식했다.
“이제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뭔가?”
“다른 6대상단에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도와주겠는가!”
석관혁은 천하6대상단이 도와줄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그 뒤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뻔히 눈에 보였다. 천무상회가 강소성 상계를 먹어치우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똑같은 짓을 할 것이다.
“장주님이 걱정하시는 바가 무언지는 압니다. 하지만 변방의 상회에게 강소성 상계를 넘겨 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석관혁은 결정을 망설였다. 오랫동안 고민을 하는 모습이었다. 석가장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만일을 대비해서 마련해 놓은 것이 있었다. 누대에 걸쳐 마련된 것으로 석가장이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열어야 하는가!’
석가장의 비밀이며, 석철심과 석관혁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강소성 상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된 무진이 한가하게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정원 주변에 만들어진 큰 연못에 사는 물고기에 밥을 주며 경치를 구경했다.
“시키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수고했다.”
휘이익.
푸드드드드득!
무진이 먹이를 뿌리자 연못 안에 물고기들이 물결을 일으키며 파닥거렸다.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것은 물고기들의 본능이었다. 무진이 보기에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맛이 좋은 먹잇감을 놔두고 돌아가는 인간은 드물다. 결국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내밀게 되어 있었다.
“북리중천에게 말을 전해라.”
“예. 회주님.”
“그럼 계획대로 움직여 주어야지.”
크하하하하!
무진은 호쾌하게 웃었다.
정보를 던지자마자 상대는 물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덤벼드는 날파리들이었다. 그에 대한 적절한 응징을 해 주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였다.
무진은 호위 몇 명만 데리고 청풍장원을 나섰다. 강소성에서 천무상회는 유명해도 무진의 얼굴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일단 얼굴을 드러낸 적도 없으며, 대외적으로 알려진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비밀스럽게 한 것이 아니기에 정보를 수집하는 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단, 무진의 진정한 실체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청풍장원에서 나온 무진은 마차를 타고 대로를 지나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무진의 마차는 8두 마차로, 좌우 양대의 문양이 독특하면서도 고풍스러웠고, 나무의 재질도 자단목과 향목을 고루 사용했다. 이음새 부분의 약한 부분은 강철을 이중으로 덧붙이고 보완하여, 단단함과 아름다움을 고루 분배한 고급마차였다.
마차를 끄는 말 역시도 일반적인 말과는 달랐다. 전체적인 말의 생김새는 백설총(白雪瘻)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달랐다. 말은 온몸이 흰 반면에 덩치가 조금 작다. 그에 반해 다리의 근육이 잘 발달이 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균형감각이 뛰어났다. 이것은 백설총과 몽고마를 교배하여 만들어 낸 변종이었다.
백설총이 새하얀 털과 큰 덩치를 가져서 보기에는 좋아도 지구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반면에 몽고마는 덩치가 작은 반면에 지구력과 체력이 강했다.
둘의 장점을 고스란히 가진 말이었다. 전설의 천리마(千里馬)에 비해서는 부족할지 몰라도 그에 비견되는 뛰어난 명마라고 할 수 있었다. 8두 마차가 지나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끌리는 것은 당연했다.
마차 안에 타고 있는 무진은 옆으로 누워 있는 상태였다. 휴식하기 편한 자세로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특이한 것은 마차가 움직이는데도 안은 그다지 큰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다. 마차의 차체를 만들 때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차는 소주를 지나 태호 연안에 있는 작은 산인 부초(夫椒)에 다다랐다. 부초 주변은 예전 오왕 부차가 월왕 구천의 3만 병사를 패퇴시킨 장소라고 한다.
무진은 부초의 능선 아래로 태호와 맞닿는 곳으로 마차를 몰도록 했다. 되도록 인적이 드물면서도 경치를 구경하기 좋은 장소였다.
마차에서 나온 무진은 넘실거리는 태호의 물살을 보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태호의 물결은 어디부터 시작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었다.
태호의 상공에 날개 위는 청색을 띠고, 배 부위는 흰색을 지닌 매가 맴돌고 있었다. 일정한 방위를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매가 태호의 물결 사이로 보이는 민물고기를 향해 뛰어 들어왔다가 다시 위로 솟구쳐 날아갔다.
휘이이이잉!
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반복적인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사사사사삭!
부초산의 수풀 사이로 움직이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날렵하면서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경신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풀과 비슷한 청녹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주변과 비슷한 색을 입어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무진을 주변으로 점점 조여 오고 있었다. 사방으로 포위하듯이 움직여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강했다. 근접거리까지 접근한 그림자는 총 10명이었다.
등 뒤를 포위 당한 위험한 상황이다.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접근할 때까지 호위무사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목표물까지의 거리를 확보한 이가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림자중에 한 명이 나와 신속하게 독침을 날렸다. 소매 속에 숨겨진 격살비침(擊殺秘針)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독침은 작고 가늘며, 투명했다. 정면으로 보고 있다고 해도 막아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독침이다.
피핏!
독침이 무진의 등 뒤를 격침했다.
‘끝났군.’
독침을 지시한 이는 일이 너무 싱겁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격살비침에 들어간 독은 학령초(鶴靈草)와 혈류산(血流酸)을 섞어 만든 것이다.
일단 맞는 즉시 몸이 마비되고, 혈맥이 가닥가닥 끊어진다. 그 이후 몸 안에 있는 장기가 녹아내리면서 몸까지 녹아서 사라진다. 화골산(化骨酸)과 비슷한 성질을 가졌지만 위력은 훨씬 지독했다. 절정 이상의 내공으로도 쉽사리 해독이 되지 않는 극독이며, 버틴다고 해도 일각을 넘기기 어렵다.
일급으로 분류한 목표물의 죽음이 확실해지자 그들은 돌아서려고 했다.
‘응?’
격살비침에 맞는 즉시 쓰러져서 발버둥을 쳐야 할 무진이 좀 전과 동일하게 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맞았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엽만청의 시선이 독침을 날린 흑살6호에게 향했다.
“잘못 날린 거냐?”
“아닙니다. 제가 그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게 어떻게 된 일이지?”
엽만청의 의문은 독침을 맞고 멀쩡한 무진에게 있었다. 더군다나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무진을 보았다.
“없다?”
태호를 바라보고 서 있어야 할 무진이 사라졌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봐도 무진이 보이지 않았다. 그 주변에 있는 호위무사들조차 감쪽같이 사라졌다.
살수의 감각은 일반적인 무인의 감각보다 훨씬 뛰어나다. 개미의 작은 발소리조차 인지하는 엽만청이 4장 안에 있는 존재의 기척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디로 갔지?”
흑살단원들조차 어안이 벙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목표물이 독을 맞고, 멀쩡하게 움직인 것도 이상하지만 사라진 것은 더 이상했다.
엽만청과 수하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라진 존재들을 찾기 위해서 감각을 예민하게 가다듬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귀신처럼 사라진 무진과 호위무사들은 그들의 감각에 잡히기는커녕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럴 수가!”
귀신이 곡할 상황이다. 살수생활 30년 동안 이런 황당한 경우를 겪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 채로 돌아보고 있던 엽만청은 후퇴를 결심했다. 정황을 파악하기 힘든 상황에서 재차 살수를 펼치는 것은 위험한 짓이었다. 우선은 뒤로 물리고, 정황을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후퇴…헛!”
엽만청이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무진이 다가와 있었다. 낌새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목표물이 접근해 와 있었던 것이다.
거리는 고작 1장이었다. 그 안에서 적이 공격해 왔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인정할 수 없다. 상대는 무공도 모르는 애송이였다.
“날 찾은 것 아닌가.”
“죽엇!”
돌아보는 즉시 엽만청은 음영사격(陰影死擊)의 무음섬(無音閃)을 출수했다. 어두운 그림자 속에 숨은 비수와 같은 일격은 소리조차 어둠에 묻혔다. 엽만청의 독문비격술이자 죽음의 살격(殺擊)이다.
탕!
회심의 일격이라고 여긴 무음격이 튕겨 나갔다. 그것도 가볍게 휘두른 손가락에 부딪치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귀음살이라고 불리는 엽만청의 최강 비도술이 어이없이 막혀 버렸다.
엽만청의 얼굴은 뜻하지 않은 무진의 놀라운 방어에 경직되었다.
“이럴 수가!”
“제법이다. 살수를 쓰는 데 말은 필요 없지.”
슈슝!
무진의 손가락에서 무형의 기운이 형성되더니 소리 없이 날아갔다. 가공할 속도를 지닌 무형의 탄지공은 무쌍의 위력과 정확성을 가지고 있었다.
퍼퍽! 퍼어엉!
흑살4호, 흑살 6호, 흑살 8호의 머리통이 터져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다. 방어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동료가 어이없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초극의 고수!’
엽만청조차 무진이 날린 탄지공을 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흘러내린 땀으로 인해 등 뒤가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지금 당장 흑살단원의 죽음조차 화를 낼 형편이 아니다. 우선은 이 상황을 타결하는 것이 먼저였다.
무진은 아무런 자세도 취하고 있지 않았다. 엽만청과 흑살단원은 망설이지 않고 좌우로 퍼지면서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무진의 시선을 분산시켜 공격 방향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흑살단은 살행도 뛰어나지만 합격술도 무시 못 할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방을 점하고, 철저히 살검만을 연속적으로 날리는 귀음살검진(鬼陰殺劍陣)을 펼쳤다.
살수이기에 나한진과 같은 차륜전은 맞지 않았다. 목숨을 도외시하는 동귀어진의 수법과 일치했다. 인체를 구성하는 사혈만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검진이었다.
차리리릭! 차착!
무진의 정면으로 흑살3호가 돌진해 들어왔다. 검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귀음살검의 뇌사자(雷死刺)였다. 군더더기가 일절 없는 정면 찌르기라 굉장히 빨랐다. 주변 흑살단원의 힘을 받아서인지 위력 자체가 판이하게 달랐다.
무진은 정면으로 찌르고 들어오는 흑살3호를 보면서도 자세조차 취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거리를 격하고 다가간 흑살3호의 검이 무진의 가슴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