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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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8화
제6장 깝죽거리지 마라 (2)
장강의 여러 물줄기 중에 하나를 타고 작은 배가 유유히 떠가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물결을 타고 뱃사공이 노를 저었다. 미풍을 맞으며 배는 강물을 따라 내려갔다.
배 위에 타고 있는 청년은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술잔을 기울였다. 한가로운 강의 경치를 구경하는 한량처럼 보이기도 했다. 기녀라도 옆에 있다면 영락없는 고관대작의 아들이 나들이하는 모습이었다.
“정천맹에서 부맹주가 움직였습니다.”
“천하무림의 2인자가 상계의 일에 움직였단 말이지. 후후!”
정천맹의 부맹주가 직접 움직일 줄은 무진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상계의 일에 부맹주가 움직인다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천맹이 석가장의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과, 부맹주가 힘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왜지?”
“정천맹의 부맹주는 명목상의 직위일 뿐입니다. 중소문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정천맹의 위장술입니다.”
“지위만 있고 권력은 없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좋군.”
무진의 뇌리에 북리중천에 대한 효율성이 저울질되었다. 정천맹이 보기에 그의 가치가 적을지 몰라도 무진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사용하기 좋은 도구가 하나 더 생겼군.’
밀영1호 차중천은 정천맹의 또 다른 움직임을 무진에게 보고했다. 모든 정보는 밀영1호를 통해 무진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사파무림의 준동을 막는다는 명목하에 잠룡들을 출정시켰습니다.”
“어차피 시간을 들여 키운 먹이에 불과하겠지. 그렇다면 먹이가 상상 이상이면 아주 재밌게 돌아갈 거 같군.”
밀영1호는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그는 무진의 명령을 따를 뿐 개인적인 의견을 내놓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밀영에게 무진은 신이었다.
“밀영100호의 성취가 어느 정도나 되었지?”
“시간에 비해서는 밀영 중에서 가장 빠른 성취입니다.”
“재밌는 놈이지. 안 그런가?”
“위험한 놈입니다.”
“그래서 더 가치가 있지.”
밀영100호는 제일 마지막에 들어온 밀영이었다. 고작 10년 만에 밀영100호는 예상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섰다. 밀영대 중에서 가장 강한 밀영1호조차 밀영100호의 성취를 따라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경지에 올라설지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다.
“천살성을 타고난 놈이 실제로 있을 줄은 몰랐거든.”
무진이 별 뜻 없이 말하는 천살성(天殺星)은 절대 가볍지 않은 존재다.
예로부터 천살성을 타고난 자는 무공을 익히지 않더라도 희대의 살인마가 된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살기를 띠고 있는 아이는 일반적인 사람의 인성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더군다나 천재적인 오성을 타고났기에 무공을 배우기 적합한 재능과 신체를 가졌다.
500년 전 세상을 피로 물들게 했던 지옥마제(地獄魔帝) 공야슬 역시 천살성을 타고났다고 알려졌다. 그는 당시의 무인들을 비롯한 일반 백성들까지 족히 5천 명 이상을 죽였다고 한다. 당대의 16대고수 4명이 합공을 해서 간신히 제압을 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을 가졌었다.
이후로 천살성은 태어나는 순간 죽이는 것이 무림의 불문율로 통할 정도였다. 그런 무시무시한 능력을 타고난 밀영100호를 무진은 귀여운 아이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다. 무진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배포였다.
“이번에 그 녀석을 비롯한 하위 밀영을 사파무림에 보내.”
“알겠습니다.”
“정파의 잠룡들이 제법 죽는다면 상계를 신경 쓸 겨를도 없겠지.”
정천맹의 잠룡들은 모두 대문파의 후기지수들이다. 그들은 문파의 미래이자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 낸 후기지수들이 죽어나가는데 가만히 있을 문파는 없을 것이다.
“단평상단과 청린상단이 석가장의 위기를 틈타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깝죽거리는군.”
먹음직한 먹이가 굴러다니니, 날파리들이 끼어들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세상을 가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 있는 보물을 두고 돌아갈 수 있는 자는 세상에 많지 않았다. 무진은 그것을 알기에 지금 당장은 기다렸다. 서로 피를 흘리며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그들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기들끼리 물어뜯게 놔둬.”
“예.”
“그럼 그를 보러 가볼까.”
* * *
따그닥! 따그닥!
10명의 무인들이 호위를 하는 사두마차가 마을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차를 타고 있는 자는 정천맹의 부맹주인 북리중천이었다. 부맹주가 출타하는 인원치고는 무척이나 초라한 행렬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이 정천맹 내 북리중천의 현실이었다.
“정천맹이 어찌 가주에게 이런 대접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북리중천이 가장 신임하는 북리세가의 장로인 천지검(天地劍) 선호승이 한숨을 터뜨렸다.
선호승은 북리중천이 어렸을 적부터 북리세가의 장로직을 맡아 굳은 일을 도맡아 했던 인물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 자리를 다른 장로에 맡기고 북리중천의 개인적인 부탁을 처리해주는 일을 자처했다.
선호승은 정천맹이 북리중천을 대하는 태도가 항상 불만이었다. 북리중천은 북리세가의 희망이자 자랑이다. 역대로 그 누구도 극성으로 연마하지 못했던 성하유성도(星河流星刀)를 대성한 천재였다. 당대 16대고수의 항렬 바로 아래에 근접한 북리중천을 이처럼 형편없는 대우를 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북리중천도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선 장로만큼이나 불만이었다. 부맹주가 되기 위해서 그는 필사적으로 노력을 했다. 정천맹이 개최하는 각종 무림대회에 나가 입상을 한 후 명성을 쌓고, 악적들을 찾아내어 징벌을 했다.
그가 펼쳐내는 도법이 별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 하여 유성신도(流星神刀)라는 별호까지 얻었다. 나이 마흔에 그는 절대고수의 반열에 든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결국 부맹주가 되었다. 그 모든 것은 북리세가의 부활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그에게 주어진 것은 허울 좋은 지위뿐이었다. 실제적으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부맹주라는 지위가 없는 것이 명성을 쌓고 가문을 부활시키 데 효과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번 석가장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 움직이는데도 그에게 주어진 것은 현천단(賢天團)의 무인 10명이 고작이었다. 현천단은 맹의 12개의 단 중에서도 최하위의 무인들로 구성된 단이다. 물론 일반적인 문파의 무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이번 임무 자체를 그다지 높게 판단을 하고 있지 않다는 뜻도 되지만 북리중천을 무시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선 장로, 분명 분한 일이지만 당장은 내색하지 마십시오. 주변에 깔린 시선이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들입니다. 딴마음을 품고 있다는 기색만 보여도 맹주는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가주!”
선호승도 모르지는 않았다.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북리중천은 맹주인 공오대사를 생각할수록 답답함을 느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공명정대하지만 9파1방과 5대 세가라는 뿌리를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 자들은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맹주는 무섭다.’
그가 가진 무력의 일부분을 본 적이 있었다. 16대고수에 비해서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북리중천조차 공오대사의 무력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솔직히 10여초를 버틸 수 있을지가 의문이 들 정도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후가 점점 사라져서 이제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북리중천과 선호승이 한숨을 토로하는 사이에 마차는 멈추었다. 산동성에서 강소성을 지나는 동안 열 곳 정도를 거쳤다. 이번에 멈춘 곳은 강소성의 회음(淮陰)이었다. 소주로 가는 길을 따라 보응(寶應), 고우(高郵)를 지나 정강(靖江)에서 배를 타야 한다.
각 지방마다 정천맹의 인사들이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부맹주의 행차이기에 최고급의 숙박시설이 제공되었다. 무인들의 질적인 수준은 떨어질지 몰라도 겉으로 보이는 대접 자체는 최고급이었다. 명색이 부맹주이기에 형식적인 부분은 최대한 맹에서 배려를 해주었다.
북리중천과 선장로는 금풍각(金風閣)에 짐을 풀고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난 후 북리중천은 방으로 들어가서 짐을 풀고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다. 요즘 들어 밤하늘을 보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 북리중천이었다. 가슴속에 쌓인 한숨을 토해낼 수 있는 곳은 밤하늘뿐이었다.
금풍각 뒤편으로 마련된 산책길을 따라 사색에 잠기며 걸었다. 이 근방에서 가장 조용한 곳이 아닐 수 없었다. 주변에 보는 시선이 없자 마음이 편해졌다.
“별이 밝군.”
별이 떨어지는 모습을 본따 북리세가의 시조인 북리호정이 성하유성도를 창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별 속에 성하유성도의 모든 진의(眞意)가 들어 있다고 북리세가의 어른들이 항상 말씀을 하셨다. 북리중천도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차츰 나이가 들수록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응?”
북리중천의 등 뒤로 발소리가 들렸다. 한산한 산책길이라 사람의 인기척은 발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없었다. 그런 것은 둘째치고, 인기척이 느껴진 거리가 문제였다.
‘이럴 수가!’
고개를 돌려 상대를 보자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풀벌레소리조차 나지 않는 밤이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시간이었다. 내공의 화후의 절대경지에 육박하고 있는 북리중천이 지척까지 접근하는 상대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왔다. 이런 황당한 경우는 그의 생애에도 처음이었다.
북리중천은 상대를 응시했다.
‘젊다.’
너무 젊었다.
저처럼 젊은 나이에 북리중천의 이목을 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신중하게 정체를 물었다.
“누구냐?”
“그대가 북리중천인가.”
“내가 누군지 알면서 하대를 하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북리중천의 눈가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오랜 시간 억눌려 온 것들이 터져 나올 뻔했다. 정체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서 풍겨 나오는 오만한 성향이 북리중천의 심기를 자극하고 있었다.
“훗! 고작 껍데기뿐인 지위를 가지고 뭘 할 수 있단 거지.”
무진의 말은 비수가 되어 북리중천의 가슴을 꿰뚫었다. 정천맹의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처럼 직접적으로 북리중천에게 말을 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이 북리중천의 뇌리를 스쳐지나가자 전신이 떨려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마저 모욕감에 의해 사라져 버렸다.
북리중천은 그의 독문 내가기공이라고 할 수 있는 유성심법(流星心法)을 운용하였다. 넘쳐흐르는 유성심법의 유성기(流星氣)가 전신으로 퍼져나가자 자신감이 용솟음쳤다.
“지금 한 말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같잖은 실력으로 덤빌 것인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구나! 태어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북리중천은 참지 않고 먼저 움직였다. 흉맹한 기세가 밤의 잔잔함을 뒤흔들었다. 유성의 기운을 퍼뜨린 북리중천의 신형이 어둠을 갈라내었다.
쌔애앵!
어둠조차 그의 신형을 찾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바람을 가른 폭발적인 움직임 속에서 그의 성명절기인 성하유성도법이 펼쳐졌다. 유성신도라는 별호를 얻게 해준 북리중천의 절대검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북리중천은 방심하지 않았다. 상대가 젊다고 하수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2장의 거리까지 낌새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접근했다면 위험한 놈이었다. 그런 자를 향해 어쭙잖은 행동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성하유성도법(星河流星刀法) 제3절초-유성광정(流星光鑿).
빛을 뚫는 성하유성도법의 최강 쾌도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섭도록 빠른 유성의 기운이 뻗어 나갔다. 한줄기 뇌전을 방불케 하였다.
슈우우우웅!
2장 내에서 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공오대사조차 쉽사리 와해하지 못할 정도의 빠른 쾌도였다. 눈앞의 젊은 놈이 비록 위험한 놈이기는 하나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타아앙!
휘청!
“크윽!”
금성철벽을 두드리는 듯한 충격을 받은 북리중천의 신형이 크게 휘청거리며 뒤로 1장이나 물러섰다.
충격을 받고 물러선 북리중천은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유성도에 충격을 준 것이 무엇인지 봤기 때문이었다.
무진의 가슴을 꿰뚫는 순간에 뻗어 나온 좌수에 의해 북리중천이 충격을 받고 튕겨 나간 것이다.
“느리군.”
쉬이익!
북리중천의 시야에서 무진이 사라졌다. 기감을 열어 주변으로 확장시켰다. 어느 곳으로 움직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북리중천은 한 번의 공수(攻守)로 깨달았다. 상대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위험한 놈이자, 절대강자였다. 그조차 일생에 겪어 보지 못한 자였다. 여기서 잘못 대응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다.
‘바로 앞에서 신형을 놓치다니! 이럴 수도 있는 것인가!’
너무 놀라다 보면 오히려 침착해진다고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북리중천은 극도의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껴야 했다. 화경에 다다른 북리중천이 눈앞에서 무진을 놓쳤다. 귀신이 곡을 할 장면이었다.
“헛!”
어느 순간 등 뒤에서 위기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무진을 봤을 때였다. 상상할 수 없는 기풍(氣風)이 형성되었다.
휘이잉!
“커억!”
폭풍 같은 기운이 형성되어 북리중천의 신형을 날려버렸다.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중원의 100대고수 안에 드는 북리중천이 무진이 형성한 기운의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날아간 것이다.
씨익!
무진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바닥을 뒹굴다가 일어선 북리중천은 그 웃음을 보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항거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강자 앞에서 북리중천은 무척이나 초라한 느낌을 받았다.
“별거 없군.”
뿌득!
무진의 이죽거림이 북리중천의 자존심을 짓뭉개버리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이 들었지만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무진이 너무 강했다.
“오기도 독기도 없군. 그렇다면 실망인데.”
“잘…난 체하지 마라!”
무진의 말을 참고 들어줄 수 없었던 북리중천이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도법을 펼쳤다. 성하유성도법의 마지막절초이자 비전인 초극성(超克星)이었다. 떨어지는 유성마저 넘어서는 극강의 쾌도이며, 부딪쳤을 때 터져 나오는 기운이 폭발적이었다.